"날마다 먹는 밥"

아름다운 우리말로 빚어내는 조각-푸른숲 시골빛 삶노래(11)

최종규 우리말지킴이 | 기사입력 2014/06/30 [22:09]

"날마다 먹는 밥"

아름다운 우리말로 빚어내는 조각-푸른숲 시골빛 삶노래(11)

최종규 우리말지킴이 | 입력 : 2014/06/30 [22:09]

우리들은 누구나 날마다 밥을 먹습니다. 밥은 쌀밥일 수 있고 보리밥일 수 있습니다. 죽을 밥으로 삼을 수 있고, 풀물(풀을 짜서 얻은 물)을 밥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고기를 밥으로 삼거나, 막걸리를 밥으로 삼기도 합니다. 빵이나 과자나 케익이나 피자나 햄버거를 밥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입으로 이것저것 넣어서 기운을 얻습니다.
 
날마다 먹는 밥으로 날마다 새롭게 힘을 내어 살아갑니다. 날마다 먹는 밥은 날마다 새롭게 내 몸을 이룹니다. 고기를 먹는 사람한테서는 고기 냄새가 납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한테서는 술 냄새가 납니다. 밥을 먹는 사람한테서는 밥 냄새가 나고, 풀을 먹는 사람한테서는 풀 냄새가 나요. 먹는 대로 몸을 이루니, 먹는 대로 몸내음이 됩니다. 그리고, 먹는 대로 똥과 오줌이 되어 밖으로 나와요.
 
어떤 밥을 먹느냐에 따라 몸이 달라집니다. 몸이 달라지는 만큼 마음이 달라집니다. 마음이 달라지는 만큼 생각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는 만큼 삶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아무것이나 먹지 않습니다. 먹는 대로 스스로 몸과 마음과 생각과 삶을 이루니까, 아무것이나 먹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살아가고 싶은 대로 밥을 찾아서 먹습니다.
 
꾸역꾸역 밥을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억지로 밥을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골을 내거나 짜증을 부리면서 밥을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허둥지둥 밥을 먹거나, 왁자지껄 어수선한 데에서 얼이 빠지면서 밥을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따순 손길로 지은 밥을 고맙게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즐겁게 지은 밥을 노래하며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쁘게 지은 밥을 도란도란 어울리면서 깔깔 호호 이야기꽃 피우면서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밥은 우리 몸을 이룹니다. 그리고, 밥을 짓는 손길이 우리 마음을 이룹니다. 여기에, 밥을 먹는 매무새가 우리 생각을 이룹니다.
 
일본에서 만화상을 받은 《동물의 왕국》(학산문화사 옮김)이라는 만화책이 있습니다. 모두 열네 권으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라이쿠 마코토라는 분이 그린 만화책입니다. 《동물의 왕국》 12권을 보면 여러모로 재미난 말이 나옵니다. ‘밥’과 ‘삶’이 얽힌 이야기가 곳곳에 있어요. 이를테면, “난 새끼 죽이기가 왜 있는 걸까 고민하다, 깨달았어. 먹이 수가 제한되어 있으니, 살 수 있는 새끼 수도 제한되고, 결국 사자끼리 서로 죽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된 거야(78∼79쪽).”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사자가 서로 죽여야 하는 까닭은 먹이(밥)가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겠지요. 그렇겠네요. 그러면 사람은 어떨까요? 사람도 서로 죽이고 죽어요. 아무래도, 사람이든 사자이든 밥(먹이)이 모자라다고 여기기 때문이리라 느낍니다. 밥이 넉넉하다면 사람이나 사자가 싸우거나 서로 죽여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밥이 넉넉하니, 나라와 나라가 서로 밥을 나누면 돼요. 굳이 국경선을 쇠가시울타리로 세워야 하지 않습니다. 정치나 사회나 경제 얼거리가 다르대서 남북녘처럼 총부리를 맞대고 다투어야 하지 않아요. 나누거나 주고받으면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서로 나누려고 하는 나라나 사회나 문화라 한다면 싸움이 없고 전쟁무기가 없습니다. 서로 나누려고 하는 곳에서는 죽임이 없습니다. 서로 나누려고 하는 곳에서는 늘 ‘삶’이 있어요. 삶을 아끼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을 꽃피우려는 ‘마음’이 있어요.
 
만화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곱씹습니다. “친구라 여겼던 주위 녀석들은 모두 텅 빈 껍데기였고, 마음이 담긴 대화라곤 할 수 없었어. 풀이며 나무, 탑 외의 동물들은, 모두 ‘살아 있다’는 느낌으로 빛나는데(119쪽).” 이러한 이야기는 만화책에서만 나옴직한 이야기라고 느끼지 않아요. 우리는 서로 이웃이요 동무라고 하지만, ‘지구별 이웃’이나 ‘지구별 동무’라고 하지만, 정작 서로를 겨누는 전쟁무기를 거두지 않아요. 자꾸 더 많은 전쟁무기를 과학자가 만듭니다. 자꾸 더 새로운 전쟁무기를 기술자가 만듭니다. 우리들도 전쟁무기 만드는 공장에서 일거리를 얻고, 젊은이를 군대로 보내어 ‘사람 죽이는 훈련’을 시킵니다.
 
군대에서 전쟁무기를 손에 쥔 젊은이가 배우는 것은 오직 ‘전쟁 훈련’입니다. 군대에서는 사랑을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학교에서도 삶이나 사랑을 가르치지 않아요. 한국에서는 초·중·고등학교 모두 입시지옥입니다. 그냥 입시학원이 아닌 입시‘지옥’이에요. 동무끼리 밟고 올라서도록 부추기는 학교 얼거리입니다.
 
한국은 지구별에서 ‘학생 자살률’이 가장 높습니다. 다른 어느 나라도 따라오지 못할 ‘학생 자살률 1위’인 곳이 한국입니다. 브라질에서 벌어진 축구잔치에 마음을 쏟을 한국이 아니라, 입시지옥 때문에 아픈 아이들을 바라보아야 할 한국입니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을 나라로 가꾸어야 하고, 아이들이 전쟁무기에 시달리지 않을 사회로 일구어야 하며, 아이들이 꿈과 사랑으로 삶을 짓도록 이끌어야 해요.
 
만화책에서 흐르는 “죽음을 주지 말라고 하지만, 정작 너희는 생물을 죽이고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잖아? 식물을 포함해 너희는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이며 살아왔지? 생명을 빼앗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몸으로 어째서 나의 대량학살이 정상이 아니라고 하는 거지(163쪽)?”와 같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되읽습니다. 우리는 늘 밥을 먹습니다. 밥은 언제나 목숨입니다. 쌀과 보리도 목숨입니다. 능금과 배와 수박과 포도도 목숨입니다. 배추와 무와 당근도 목숨입니다. 소와 돼지와 닭도 목숨이에요. 빵이 되는 밀가루도, 밀알이요 목숨입니다.
 
목숨 아닌 밥을 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른 목숨을 먹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왜 다른 목숨을 먹으면서 내 목숨을 지킬까요. 언제나 다른 목숨을 먹어야 하다 보니,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 어깨동무하는 길보다는 서로 괴롭히거나 다투거나 빼앗는 길로 나아갈밖에 없을까요. 다른 목숨을 먹더라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보살피는 마음을 지킬 수는 없는가요.
 
날마다 먹는 밥으로 날마다 새 하루를 짓습니다. 날마다 밥을 비롯해서 새로운 바람과 새로운 물을 마십니다. 새롭게 흐르는 바람이 있기에 바람을 먹으면서 숨을 쉽니다. 새롭게 흐르는 물이 있어 물을 먹으면서 몸을 싱그럽게 움직입니다.
 
밥 한 숟가락을 나누면 밥 한 그릇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밥 한 술을 덜어 이웃과 나누면 서로 배부릅니다. 그러나, 이웃 밥그릇에서 밥 한 술을 가로챈다면? 이웃은 굶지만 나는 두 그릇을 먹는다면? 사랑과 평화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있지만, 전쟁과 지옥 또한 늘 우리 곁에 머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아름다운 목숨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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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최종규 :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전남 고흥에서 꾸린다.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살려쓰기》, 《사진책과 함께 살기》 같은 책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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