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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간 행복을 쓴 일기장, 국가역사가 되다 '일기 할머니' 최영숙 여사
 
김철우 기사입력  2018/08/21 [12:13]

[강원경제신문] 박현식 기자 = 51년간 단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쓴 일기장이 국가기록원에 영구보존 되었다. 일기를 쓴 주인공은 부론면 단강 출신의 최영숙 씨. 1938년생인 최영숙 씨의 일기는 당시 사용하던 종이의 변천 과정뿐만 아니라 노트의 출판형태 그리고 마을의 대소사까지 기록하고 있어 높은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 사진 왼쪽이 최영숙 여사, 오른쪽은 남편인 김긍수 씨     © 강원경제신문

 
꿈과 희망 그리고 평화를 이야기하다. 15살이 되던 1953년부터 51년간 단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쓴 일기장이 국가기록원에 영구보존 되었다. 20182월 귀래백년 독서대학에 참가한 부군 김긍수 씨의 소개로 자택을 방문하여 일기장을 확인하고 국가기록원에 연락하면서 현장방문과 일기장을 국가에 기증하고 국가기록원에서는 51년간의 귀래지역의 날씨, 물가정보, 농촌이 생활상 등 역사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하여 최영숙의 일기는 61일에 국가적으로 보존 활용되며 후대기록문화유산으로 전승되게 되었다.
 
51년 쓴 일기 국가기록원에 보존
 
최영숙(1938년생) 여사는 부론면 단강 출신으로 부군 김긍수 선생과는 초등학교 동창생이다. 초등학교 동창생이지만 잘 알고 지내지는 못했지만, 귀래면과 부론면 면계 지역의 한 마을 사람이라 동창생인 최영숙 여사의 고모가 중매해 최영숙 여사와 결혼을 하면 내 인생이 좋겠구나 하는 생각에 중매결혼을 하였다. 살아보니 역시 잘 선택하였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최영숙 여사의 일기는 갱지에서부터 중성지까지 일반인이 사용했던 종이의 변천사를 알 수 있으며 시대별 노트의 출판형태도 알 수도 있다. 일기에는 마을에서 벌어진 작고 큰일도 꼼꼼하게 적혀 있다.
최영숙 여사가 일기를 쓰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 줄곧 1등만 차지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못 하게 되면서부터이다. 평생 글을 못 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연필을 잡기 시작했고 힘든 농사일로 인해 피곤해서 쓰러져 잠들어도 새벽에 일어나 전날의 일기만은 꼭 쓰고 잤을 정도로 끈기도 대단하였다. 최영숙 여사 일기 105점은 음력 날짜와 날씨를 기록하고, 그 아래 최 씨 개인과 가족, 이웃, 마을 대소사 등을 적었다. 51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록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해, 61일 일기를 기증받아 영구보존을 위한 약품 처리 등 원본 영구보존 절차를 밟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전국 순회 전시 등 이벤트도 기획하고 있다.   
 

▲     © 강원경제신문

 
전국 순회 전시 등 기획
 
50년 넘게 일기를 오랫동안 써온 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80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모여 매월 첫째 월요일 2시에 모이는 귀래백년 독서대학(김동섭 학장)에 특강 차 갔다가 알게 되어 기네스북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기록물 등록 절차를 알아보던 중 국가기록원의 존재를 알고 연락을 취하던 중에 원주에 역사학자인 강범희 선생께서 민간기록물 수집위원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범희 위원은 "개인 일기임에도 지역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국가기록원 민간기록물 수집위원으로서 적극 추천하여 국가기록원에서 영구 보존하기로 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참여한 일기가 국가기록물이 된 것을 최영숙 여사와 함께 기뻐했다.
 
학업에 대한 미련 때문에 일기 쓰기 시작
 
최영숙 여사가 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학업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어떠한 어려움이 닥쳤을 때 우리는 그것을 헤쳐나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6·25 전쟁 이후 생활고로 중학교 진학이 어려웠고, 정식 교육을 받을 수 없어 일기 작성에 열중했던 것은 초등학교 때 배운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기는 필요했다고 한다.
 
최영숙 여사는 "초등학교 때 배운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일기를 쓴 것인데 나라에서 인정해주니 너무도 기쁘다. 자라나는 청소년, 어린이들도 나와 같이 일기를 썼으면 좋겠다. 일기를 쓰면 바른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50년대에는 종이가 귀하고 공책이 없어 48절지 크기로 갱지를 잘라 실로 꿰어 일기장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일기에는 농사철 풍경과 귀래면의 변화상이 꼼꼼히 담겨 있다. 나이가 들면서 공책에 일기를 썼는데 그간 모은 일기장만 105점이나 된다. 남편 김긍수 씨는 "국가기록원에 보존된다고 해서 최근 아내 일기를 다 읽어 봤다. 내가 모르던 생활정보도 기록돼 있어 매우 놀라웠다."고 말했다. 이번 취재를 통해 더욱 감명 깊은 것은 남편의 외조이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어렵고 힘든 생활 속에서도 일기를 쓸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과 1964년도에는 남편이 여원출판사에서 판매하는 일기 노트를 사다 주면서 일기를 쓸 수 있도록 독려하여 준 것이다. 그 당시 책을 구하기도 어려운 시절인데 일기장을 사서 줄 정도로 서로를 아끼고 격려하는 삶에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     © 강원경제신문

 
개인의 기록뿐만 아니라 역사적 가치 충분
 
귀래면 주민들은 최영숙 여사의 일기가 국가기록원에 보존된다는 결정이 나자 자기 일인 것처럼 축하 행사를 열었다. 귀래백년 독서대학에서는 귀래면 주민자치센터도서관에서 '최영숙 여사 51년간 쓴 일기 국가기록원 등재 축하 공연'을 개최하였다. 귀래백년 독서대학 김동섭 학장은 "우리 마을의 변천사가 모두 기록돼 있다니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였다. 심사를 거쳐 국가기록원 등재의 영예를 누리게 됐는데 이는 본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쁨이다. 기록하는 문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숙 여사의 일기 특징은 일기가 단순히 자신의 생활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서기, 양력, 음력, 요일, 날씨가 있으며 기상청 기록에도 없는 지역의 일기가 빠짐없이 있으며 지역에서 일어나는 행사, 대소사 들이 있어 마을에서 일어난 일들로 분쟁이 생길 때마다 최영숙 여사를 찾아와 진위를 따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일기를 쓴다는 것을 안 동네 사람들은 통신 수단이 없던 시절 마을 사람들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역할도 하셨다고 한다. 편지를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할 때 상대의 입장에서 편지를 써주면 자신의 가슴속에 들어 왔다 갔느냐고 말할 정도로 심금을 울리는 편지로 마을에서는 인기가 짱이었다고 옛이야기를 하신다. 중학교 진학을 못 하게 되면서 평생 글을 못 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연필을 잡기 시작했고 힘든 농사일로 인해 피곤해서 쓰러져 잠들어도 새벽에 일어나 전날의 일기만은 꼭 썼을 정도로 자신의 감정보다는 하루의 일과를 그대로 적다 보니 올곧게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 최영숙 여사가 일기를 쓰게 된 진짜 이유라는 것이다. 중학교만 다닐 수 있었어도 문학을 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최영숙 여사는 수필집도 내고 방송도 여러 번 타고 했지만 여러 번의 수술과 힘이 없어 글씨를 잘 못 쓰는 데 7월부터 다시 일기를 쓰고 있으며 한 달을 꼬박 다 쓰셨다고 한다. 앞으로 계속 일기를 쓰겠다고 약속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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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21 [12:13]  최종편집: ⓒ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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