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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 사회복지사로 살아가는 이야기 춘천시 장애인근로사업장 재활상담사 이윤선
 
김철우 기자 기사입력  2018/10/21 [14:33]

[강원경제신문] 김철우 기자 = 중증장애인으로 사학과 석사학위를 받은 후 사회복지사가 되어 장애인근로사업장에서 재활상담사로 근무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은 직원 복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이윤선 씨. 중증장애인에게 귀중한 사례를 만들어 주고, 사회의 인식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춘천시장애인근로사업장 이윤선 재활상담사     © 김철우 기자

 

- 장애를 나의 몫으로 받아들이다.

화목하고 민주적인 가정에서 12녀 중 장녀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세 살이 되던 해 고열로 매우 아프더니 병원에서 뇌성마비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걷고 뛰는 게 소원이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장애를 나의 몫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면 그 안에서 내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세상에 당당하고 의연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학문에 대해 꿈을 품다.

장애가 심한 편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고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이 공부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 유별난 집중력을 보였고 또한 새로운 것을 배우고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데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목표가 하나 생겼습니다. 공부로 세상에 인정받고 어떤 한 분야에서만큼은 반드시 최고가 되자. 이것이 장애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인 순간부터 줄곧 마음에 품은 삶의 목표였습니다.

특수학교에 다니면서 더욱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알아가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내 공부에서만큼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완벽을 추구했습니다. 특수학교라는 체계에 안주해서 자만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보고 목표를 키웠습니다.

 

- 대학, 자신감이 생기다.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한림대학교 사학과에 진학하였는데 대학 생활은 저에게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저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도 대학에서 인정받는 것은 무척 중요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고 힘든 부분이 많았지만, 저는 의연하게 공부하고 친구들에게도 진심으로 대하며 대학이라는 사회를 점점 나의 영역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여러 교수님과 친구들도 처음에는 제가 다르므로 주목하고 관심을 가졌지만, 함께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저의 능력을 그대로 인정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역사학은 장애인에게 결코 공부하기 쉬운 분야가 아니었습니다. 답사를 많이 다녀야 하는 것은 물론 보아야 할 자료들도 방대하고 어떤 경우에는 자료를 직접 찾아 나서야 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어떤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역사를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과 똑같이 활동에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장애 때문에 안 된다, 혹은 못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절대로 듣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답사도 함께 가고, 학술 동아리에도 들어서 세미나는 물론 여러 가지 과외 활동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이윤선 재활상담사가 일하는 모습     © 김철우 기자

 

- 대학원 진학, 강단에 서고 싶다.

대학교 4학년,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또 다른 목표가 생겼습니다. 이 분야의 공부를 끝까지 해서 강단에까지 서보겠다는 것 말입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결국에는 저의 의지대로 대학원에 진학하였습니다. 석사 과정의 세부 전공은 한국 근현대사. 사람의 이야기를 역사로 쓰고 싶어서 선택한 분야였습니다.

대학원의 공부는 훨씬 더 깊이 있고 초점 있는 연구를 요구하였습니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었습니다. 끝까지 잘 해내서 장애가 있어도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내내 한눈 한번 팔지 않고 공부에만 열중했고 차근차근 저에게 주어진 과정을 밟아갔습니다. 노력한 만큼의 결과는 있었습니다. 과정도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고 5학기 만에 석사 논문도 완성하였습니다. 20078월에 드디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 박사 과정 불합격, 시련을 견뎌내고 새로운 곳을 보다.

석사 과정을 무사히 마쳤으니 계획했던 대로 박사과정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몇 차례 지도 교수님과의 논의 끝에 박사과정 입학전형에 지원했고 면접도 보았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유는 단지 장애 때문에 자료를 찾으러 다니기가 힘들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부당한 결정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불합격의 이유가 장애 때문이라면 그것은 분명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위해서도 그랬지만, 앞으로 공부할 장애인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학교의 부당한 결정을 받아들이고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권위에 진정하여 조사 과정을 거치고 결정문이 나오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시간을 보내면서 장애인 복지와 인권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많아졌고 그간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장애인 근로사업장의 일도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 1년 과정의 공부를 시작했고 사업장에서 맡은 일도 충실하게 임했습니다. 그렇게 또 열심히 살았더니 인권위 심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과는 제가 생각했던 대로 장애를 이유로 한 박사과정 불합격은 잘못이며, 학교 측은 즉시 불합격을 취소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정이 났으니 당장에라도 역사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이미 또 다른 분야인 사회복지 과정을 시작했고 사회복지사 1급 시험에 합격해서 이쪽 분야에서도 역할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장애인 근로사업장의 일도 이제는 가볍게 여길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사회복지사 1급 시험의 합격을 목표로 해서 체계적인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사업장에 매일 출근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사회 복지 공부의 큰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제가 더 많이 공부해서 힘들게 일하는 사업장 동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결국, 1년간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1급 시험을 보았고 합격했습니다. 그래서 20103월에는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 공연프로그램     © 김철우 기자


-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일하는 곳, 춘천시 장애인근로사업장

제가 일하는 곳은 춘천시 장애인근로사업장입니다. 장애인의 고용 창출이라는 공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설립된 사회적기업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일하며 복사 용지와 화장지를 생산하여 판매하는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입니다. 2005년 대학원 석사과정에 들어가면서 아버지가 명예퇴직하셨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며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그때 막 사업을 시작하던 보호작업장에 재택근무로 입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에는 사무직으로 직원 복지 프로그램 기획 및 홍보 업무를 담당하였다. 철없던 스무 살 시절에는 하고 싶은 게 참 많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줄 믿었습니다. 꿈은 다른 곳에 있었지만, 심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다 보니 좌절도 많았고 삶의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그런 제게 함께 일하자고 손 내밀어 준 이곳, 사업장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보람도 느낍니다. 처음 사무직을 시작할 때에는 저의 몸으로, 이렇게 심한 장애를 가지고 하루 8시간의 근무가 가능하겠느냐, 힘들지 않겠느냐는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컸습니다.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일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역할을 하고, 장애가 있어 다른 사람이 되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세상과 어울려 살고 싶었습니다. 걱정과 우려를 한 번에 잠재울 방법은 현실로 보여 주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저는 일을 시작했고, 곧 일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걱정과 우려보다는 저의 의지가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제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모든 일은 제 의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의지가 있어야 환경도 변하고 사람들의 마음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찾아온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드는 건 순전히 저의 몫이었습니다. 제가 잘해야 다른 중증 장애인들에게도 기회가 생길 것이고, 하나의 사례로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역할도 할 것이기 때문에 내 일이었지만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커다란 사회적 역할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제게도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동기 부여가 되고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중증의 장애를 가진 사회복지사는 아직 우리 사회에선 흔하지 않습니다. 장애인, 노인 등의 사회적 취약계층을 관리하고 보살피고 도와주는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비장애인의 몫이라는 생각이 훨씬 더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장애인은 많지만, 실제로 취업해서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이 가운데에서도 대부분이 경증 장애인입니다. 더불어 사는 것을 표방하는 사회 복지에서조차 중증의 장애인과 함께 일하기를 꺼리는 아이러니는 아직도 풀기 힘든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제게 기회가 찾아왔고 좋은 인연으로 사업장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제게 손을 내밀어 준 우리 사업장에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일 할 수 있게 환경을 마련해 주었고, 동료들 역시 저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능력을 인정해 주어서 별문제도 없이 일하고 늘 진심으로 서로를 대합니다.

 

출퇴근은 어머니가 차로 해주시고 회사 생활은 동료들 그리고 근로지원인 선생님과 함께합니다.선생님은 제게 참 좋은 파트너입니다. 업무에서도 장애 때문에 하기 힘들 거나 늦어지는 부분을 주로 보조해 주시는데 그렇게 되면 일이 훨씬 수월하게 진행됩니다. 업무 보조뿐만 아니라 식사, 이동 등도 도와주는 역할을 하므로 회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입니다. 저와 같은 중증의 장애인들이 직업 생활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근로지원인 등 보조 인력을 활용할 필요가 있는데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부분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중증의 장애인도 보조 인력의 도움을 적절히 활용하면 충분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비장애인만큼의 역할을 할 수가 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저는 일만큼은 철저한 편입니다. 장애가 있으니 이 정도만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남들보다 일찍, 더 부지런히 준비하고, 더 많이 생각하고 의견을 내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몸에는 장애가 있지만, 남들보다 뛰어난 성과물을 내고 비장애인들이 못하는 일을 하고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야 사업장에서 저의 위치는 굳건해질 수 있었습니다. 사회는 냉정하고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건 순전히 자기 자신의 몫이었습니다. 장애인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몫을 열심히 살아내고 충실히 생활하여야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변하고 사회도 장애인을 인정해 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사회를 탓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책임감으로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제가기획한 복지 프로그램을 동료 직원들이 함께 진행해 주고 근로 장애인들이 참여하여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하고 기쁩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 프로그램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제가 일하는 사업장에서는 30여 명의 장애인이 함께 일하며 꿈을 만들고 이루어갑니다. 제가 사회복지사로서 그분들에게 무언가를 해 준다기보다는 함께 일하는 동료로 서로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듯합니다. 다들 부족한 부분을 한두 군데씩 가지고 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일구어 가는 그분들의 모습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일하는 장애인들은 눈빛이 다릅니다. 모두 자신감이 넘치고 마음에서도 그 어떤 우울함이나 좌절을 엿볼 수가 없습니다. 마치 자신들은 장애인인 아닌 양 생각하고 이야기하며 또 생활합니다. 특히 저는 지적 장애인들이 직업 생활에 참여하며 독립적인 삶을 이끌어 가는 게 참 좋아 보입니다. 제 또래의 친구들과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관계도 돈독한 편입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진심으로 대하면 장애는 더는 벽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사업장에서 함께 하며 장애인 복지와 행복한 삶의 처음과 끝은 모두 직업 생활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깨닫습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보면 교육에 참여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동도 힘들고 여러 가지로 불편한 부분이 많으므로 제가 교육에 참여하고 이런 걸 꺼릴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저는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되면 자진해서라도 꼭 참석하는 편입니다. 교육에 가면 사회복지사들이 모인 자리라 장애인은 저 혼자뿐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비장애인 사회복지사들 가운데에서도 장애인, 그것도 중증의 장애를 가진 저의 존재는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됩니다. 이론적으로는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늘 이야기했던 사회복지사들조차도 장애인은 보호와 보살핌의 대상이라는 고정 관념 속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신과 같은 위치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저의 존재는 인식 변화의 계기가 되고 사회 복지의 실제를 깨닫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교육이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힘들고 불편한 부분을 감수하고라도 사회복지 교육에 꼭 참석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생일축하 프로그램     © 김철우 기자

 

- 직업재활에서 또 다른 길을 찾다.

장애인 근로사업장에서 프로그램 관리 업무를 하다 보니 사회복지적 지식만으로는 근로 장애인의 특성과 욕구에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업재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2016년에 대구사이버대학교 재활상담학과에 편입하여 장애인재활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이번 8월에 졸업했습니다.

2017년부터 사업장에서 직업재활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직업상담, 직업평가, 재활계획수립, 사례관리 등을 통해 근로 장애인의 안정적인 직업생활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장애인들을 상담하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무척 많았습니다. 제가 이 사회에서 느끼는 감정들, 모든 이야기가 마치 저의 이야기 같아서 기쁘고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어디에서도 좋아하지 않고 환영받지 못했던 자신이 이곳 사업장에서 일하며 의미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늘 보람을 느끼며 즐겁게 생활한다는 근로 장애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업장은 장애인들에게 참 좋은 일터입니다.

요즘 들어 최저임금도 많이 오르고 복사용지와 화장지를 생산하는 업체도 많아져서 사업장의 운영에 어려움이 많지만, 그래도 직원들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장애인의 고용유지와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 지급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장애, 솔직하고 당당하게 먼저 다가갈 수 있다.

최근 사업장의 국장님이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자신이 먼저 장애에 솔직하고 당당해져야 사회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복지사가 될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장애에 당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소극적이고 힘든 부분은 보여주지 않으려고 늘 괜찮은 척, 행복한 척했던 것 같습니다. 장애는 아프고 힘들고 불편한 것인데,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편안하고 솔직하게 다가가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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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21 [14:33]  최종편집: ⓒ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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