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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9-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제9회>-챕터3<묘덕아, 저절로 그리 된 것이니라.>5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기사입력  2019/03/02 [19:01]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9-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김명희(시인 .소설가)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9회>

 

 

챕터 3 <묘덕아, 저절로 그리 된 것이니라.> 5화

 

 

▲ 불멸의 꽃 챕터3표지     ©김명희(시인 .소설가)

 

 

 

그녀는 차마 스님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없다. 님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입을 열었다. 

 

“저자거리 주자소에 좀…… 다녀 오거라.”

 

“주자소요?”

 

“네가 주자소에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겠구나. 그렇지?”

 

“네.”

 

“음, 저잣거리 가운데 길을 지나 뒤쪽 골목으로 돌아가면 막다른 곳에 주자소가 있느니라. 그곳에 활자장 최영감님 이라는 분이 계실게다. 활자장 최 영감님을 찾아가서 이 서책을 전하고 오거라. 내가 앞전에 들러 미리 말을 해 두었다. 선원사에서 보냈다고 말씀드리고 목활자본으로 부탁드린다고 하면 바로 아실게다. 중요한 경전이니 잘 챙기시라 이르고.”

 

“예에.”

 

묘덕은 백운스님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스님이 건네준 서책을 품에 안고 일주문을 지나 산을 내려갔다. 마을을 지나 한참을 더 큰길로 나가자 백운스님 말씀처럼 저자거리가 나왔다. 저자거리 입구에는 땔감을 팔러 나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지게를 세워놓고 땔감을 사갈 임자를 기다렸다. 길가에 즐비한 좌판에는 어느 새 감과 사과 배들이 나와 있었다. 가을이나 되어야 맛보는 과일들도 한둘씩 눈에 띄었다. 아직 한낮에는 더웠지만 어느새 계절은 가을로 향해 가고 있었다. 고운 옷감들과 각종 장신구들도 가득이었다. 눈부신 비단과 처음 보는 악기들 빗 차 밀가루 후추 상아 칠보 진주보석과 향로까지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었다. 묘덕은 그것들을 구경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행복했다. 저자거리 중앙으로 통하는 본길을 지나 뒷길로 몇 구비 돌자 나전칠기 골목이 나왔다. 그다음 철동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철동에서는 솥이나 칼 작두와 같은 다양한 생활도구들과 농기구와 무기류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 대장장이의 쇠망치 소리가 밖에까지 들려왔다. 철동을 지나자 곧바로 유시골목이 나왔다. 유시는 각종 기름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한쪽에는 지전도 있어서 수입된 원나산과 왜국산 그리고 국산 종이들이 가지런히 가로막대에 걸린 채 오가는 손님을 맞이했다. 푸른 깃발이 꽂힌 술집에도 손님들이 북적거렸다. 날씨가 싸늘해지자 쌍화점은 솥을 밖에 내걸고 연실 뜨거운 김을 하얗게 피워댔다. 솥뚜껑을 열 때마다 잘 쪄진 만두들이 부유층 행인들의 미각을 자극했다. 만두와 국수는 평소에 즐겨먹기 힘든 고급 음식이었다. 대부분 큰 잔치에서나 맛보는 것들이었다. 밀가루가 대부분 외국에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묘덕은 쌍화점 앞을 지날 때 갓 쪄낸 향긋한 만두냄새에 입 안 가득 군침이 돌았다. 한참 구경을 하며 후미진 안쪽으로 돌아서니 백운스님 말대로 막다른 곳에 주자소 간판이 보였다. 그녀는 저잣거리 초입은 몇 번 와봤지만 이 안쪽 후미진 골목은 오늘 처음이었다. 묘덕은 처음 보는 주자소가 무척 신기했다. 주자소 밖에는 목활자 재료로 보이는 황양목(黃陽木)이 가득 쌓여있었다. 한쪽에는 커다란 물속에 나무속의 진을 삭히기 위해 목재를 가득 담가놓은 모습도 보였다.

 

묘덕이 주자소로 들어가려다 뭔가를 발견하고 발길을 멈췄다. 나무 더미 뒤에 낯선 사람의 뒷모습이 얼핏 보였다. 그들은 삿갓을 깊이 눌러쓰고 있었다. 언뜻 보니 몰래 주자소 안을 염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상하다 싶었던 묘덕이 그들을 빤히 바라보다 그쪽으로 다가갔다.

 

“이봐요. 누구 찾아 오셨…… 아얏!”

 

두 사내는 그녀에게 들키자, 어깨로 강하게 밀치며 순식간에 달아났다. 달아나던 그들 중 한 사내의 눈이 묘덕과 짧게 마주쳤다. 사내의 얼굴이 어딘가 좀 이상했다. 분명 사람인데……. 얼굴 한쪽이 흉측하게 일그러져 소름끼쳤다. 그들은 순식간에 묘덕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아효, 아파라……. 별 이상한 사람들 다 보겠네.”

 

묘덕이 주자소 문을 열고 두리번거리며 들어갔다. 주자소 특유의 나무냄새가 훅, 끼쳐왔다. 처음 맡아본 주자소 나무 냄새는 향기로운 숲속에 들어온 듯 했다. 절에서 자주 맡았던 산속 냄새와 흡사해 그녀는 정감이 느껴졌다. 탁자를 사이에 투고 손님과 대화중이던 활자장 최영감이 묘덕이 들어가자 잠시 일어났다. 높은 연륜이 묻어나 보이는 장인의 외모였다. 묘덕이 공손히 합장 하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팔에 토시를 하고 검은 색 앞치마를 찬 활자장이 그녀를 맞았다.

 

“어서 오시오.”

 

“아이 아파라. 별 이상한 사람들을 다 봤네……. 영감님 저 사람들 누구예요?”

 

“누굴 말하는 것이오?”

 

활자장 최영감이 묘덕을 빤히 마주보았다. 묘덕은 순간 섬뜩했다. 최영감의 왼쪽 눈이 이상했다. 검은자위를 흰자가 모두 덮어버린 백안(白眼)이었다. 묘덕은 태어나 그런 끔찍한 눈은 처음 보았다. 그녀는 순간 등골이 오싹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문밖에요. 이상한 치들이 이 안을 염탐하다 저와 마주치자 급히 도망가더라고요.”

 

“문 밖에 말이오?”

 

“네, 문밖에서 어떤 낯선 사내들 둘이 이 안을 몰래 엿보고 있었어요. 모르셨어요?”

 

묘덕의 말에 활자장의 눈빛이 잠시 빛났다.

 

“어찌 생겼소?”

 

“삿갓을 눌러써서 얼굴은 자세히 못 봤는데……. 아! 한 사내는 얼굴에 흉터가 아주 심해서 마치 괴물 같았어요.”

 

“……!”

 

활자장 최영감의 안색이 잠시 어두워지는 듯 했다. 묘덕은 생각했다.

 

‘저 영감님도. 밖에서 염탐하던 그들도. 이상 하네……. 뭐지? 이 사람들?’

 

“저, 이 거요.”

 

활자장 최영감은 묘덕이 내민 서책을 받아들었다.

 

“선원사에서 왔소?”

 

“네. 저희 백운스님이 목활자본으로 부탁드린답니다.”

 

“알고 있소. 일전에 이곳에 그분이 잠시 들렀다 가셨소이다.”

 

“네에.”

 

“식혜 한잔하시오.”

 

“어머. 고맙습니다.”

 

활자장 최영감은 그녀에게 식혜를 한잔 건네고, 다시 손님들 앞으로 돌아가 대화를 이어갔다.

 

4

 

거처실에는 몇 사람의 스님과 벼슬아치들이 아까부터 와서 상담 중이었다. 최영감과 금속활자주조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듯 했다. 묘덕은 식혜를 마시며 주자소 실내를 천천히 구경했다. 영감의 책상 위에 단단한 황양목을 매끈하게 켜서 다듬은 오리목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영감의 작업대 위에는 여러 용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갖가지 조각칼과 다양한 송곳들, 실톱과 대젓가락과 먹솔도 보였다. 먹판과 고리짝도 한쪽에 있고, 낱장의 인쇄물들이 여러 겹 쌓여있었다. 도구들은 활자장의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윤이 났다. 작업대 중앙에는 판각하다 멈춘 목활자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바닥에는 조각칼로 파낸 나무찌꺼기들이 수북했다. 묘덕은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들을 만져보고 구경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아. 말이야 쉽소만……. 그나마도 주물사주조법은 글자 윤곽도 평평하고 영 엉망이오. 서로 엉겨 붙고 줄도 맞지 않을뿐더러, 글씨도 들쭉날쭉하오. 그나마 해본다면 밀랍주조방식인데……… 근데 그게 절대 만만치가 않소. 사찰들마다 경전 비용절감을 위해 암암리에 시도해보는 모양인데……… 거푸집이나 쇳물에 문제가 심해 모두 실패하고 있소이다. 본격적으로 할 거 같으면 많은 양의 밀랍은 어찌 구하며 값비싸기로 유명한 유연묵은 또 어찌 충당을 다 할 참이오? 이암과 모래도 그렇고 황토도, 매번 점토를 선별해 지방에서 구해다 써야하는데…… 그게 당신들이 몰라 그렇지 생각처럼 만만한 게 아니오. 그리 쉽다면 우리가 벌써 시도했을 거요. 돈 되는 일인데 누군들 마다하겠소? 목판이야, 단단한 황양목이 귀해서 구하기 어렵긴 해도, 거기에 쓰이는 송연묵도 유연묵에 비하면 무척 저렴하고 어쨌든 벽련목 같다 쌓아 놓구 인거재나 정련목을 켜고 다듬어 그때그때 오리목으로 손질해서 쓰면 된다지만……. 아무튼 아까 말했듯 더는 긴 얘기하기 싫소. 금속활자라면 다른 데 가서 알아보시오. 나는 그 골치 아픈 일 맡을 생각이 없소. 다른데 가 봐도 선뜻 나설 사람은 없을 테지만 말이오.”

 

거처실에 앉아 상담하던 스님일행이 떨떠름한 얼굴로 일어났다. 묘덕은 작업대 오른쪽 창가에 있는 책꽂이를 구경했다. 누렇게 빛바랜 책 한권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왠지 범상치 않아보였다.

 

‘이건 뭐지? 금속활자주조실험서(金屬活字鑄造實驗書)……?’

 

묘덕이 그 서책을 무심코 꺼내들었다. 일행들을 보낸 영감이 그녀 쪽을 돌아보더니 경직된 얼굴로 불쑥 다가왔다. 

 

 

 

-> 다음 주 토요일(3/9) 밤, 10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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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02 [19:01]  최종편집: ⓒ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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