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41-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제41회>-챕터12 <밀랍을 찾아서> 제2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 기사입력 2019/10/12 [17:01]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41-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제41회>-챕터12 <밀랍을 찾아서> 제2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 입력 : 2019/10/12 [17:01]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41-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수상작 <불멸의 꽃>     ©김명희(시인 .소설가)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41회

   챕터12 <밀랍을 찾아서> 제2화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불멸의 꽃> 챕터12 간지     ©김명희(시인 .소설가)

 

 

 

2

 

그녀에게는 사소한 인연의 그리움보다 더 시급한 것이 있었다. 그녀는 개경으로 돌아와 서둘러 주자소로 향했다.

 

“영감님 안녕하셨어요.”

 

“묘덕 아씨. 어서 오시오. 백운화상스님은 안녕하시오?”

 

“네. 덕분에 스님도 잘 계십니다. 남원속현과 부안진에서 가져온 도토는 써보셨어요?”

 

활자장 최영감이 묘덕 앞에 금속활자본으로 인쇄한 표본 하나를 펼쳐 보였다.

 

“이게 말이오. 차후 여러 번 거쳐봐야 알 일이지만. 다행이 남원에서 가져온 진흙이 갈라지지 않았소이다. 헌데, 앞전에 교주도(강원도)에서 전해 받은 밀랍은, 가마에 끓여 채에 걸러보니 불순물이 너무 많소. 그것들 거르다보면 양이 얼마 되지 않소. 만약 그냥 사용한다면 불순물 때문에 활자 표면이 절대 깨끗하게 찍혀 나오지 않게 될 것이오.”

 

“그렇군요. 영감님 그럼 어찌해야 할까요?”

 

“올봄에 지리산 피밭골에서 새로 채취한 밀랍을 한번 다시 써볼까 합니다만…….”

 

“그래요? 지리산 자락에 있는 피밭골요? 알겠습니다. 영감님. 그럼 제가 지리산을 다시 다녀오겠습니다.”

 

“아씨……. 허허허. 지리산 피밭골은 남원보다도 훨씬 외지고 먼 곳인데 알고나 하는 소리요? 너무 멀어서, 아씨가 과연 다녀오실 수 있을지 걱정이오.”

 

“영감님. 그건 염려 마세요. 저는 어떤 일도 이미 마음의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피밭골이 아니라 그보다 더 먼 세상 끝이라도 제가 어떻게든 가서 밀랍을 구해올 것입니다.”

 

“아씨 그러시다면, 지리산 피밭골에 가시면 직전봉밀당(稷田蜂蜜糖) 이라는 집이 있을 게요. 그 집에 임말천 이라는 함자를 쓰시는 노옹이 있소. 그 집이 해마다 양질의 밀랍을 많이 채취하는 집으로 유명하오.”

 

“알겠습니다. 영감님 그럼 지리산 피밭골에 다녀오는 대로 다시 들르겠습니다.”

 

사저로 돌아온 묘덕은 작은 망설임도 없이 금비와 또 다시 원행을 나섰다. 개경은 진달래와 개나리꽃향기로 넘실거렸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봄꽃은 모두 시들고 밤꽃향기가 지천이었다. 어느새 남원속현을 지났다. 섬진강 벚꽃도 모두 지고 없었다. 주변 나무들은 이미 초여름 빛을 꺼내들고 있었다. 섬진강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자 곡성속군 땅에 도착했다.

 

“어머나, 아씨. 이곳은 벌써 초여름 날씨입니다요.”

 

“그렇구나. 날씨가 제법 덥게 느껴지는 걸 보니 남쪽으로 많이 내려오긴 했나보구나.”

 

가마꾼들도 더운지 연실 목에 두른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묘덕은 곡성속군을 가로질러 구례진 쪽으로 향했다. 구례진으로 들어가 그곳 주민에게 피밭골로 가는 길을 물었다.

 

“피밭골을 가시려믄 연산속현을 지나야 혀지라. 저 짝 길루다 산길을 쪼매 올라가믄 연산속현이 나오고요잉. 그 마을 뒷길루 난 산길을 한참 오르다 보믄 토지촌이 나옹께 그 짝 가서 물어보믄 소상히 알려줄 것여라.”

 

묘덕 일행은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주변 우거진 나무숲에서 청량한 바람이 불어왔다. 토지촌에 다다라 다시 길을 물었다.

 

“피밭골 이라고라? 하이구, 그 겁나게 먼 곳을 우찌 갈라고라? 웬만한 남정네들두 오르기 힘든 험한 산센디요? 암튼 저 짝으로 쪼매 더 가믄 내동소라는 쬐간헌 마을이 나와라. 그 마을서 팔 리쯤 산길을 오르다 보믄 연곡사라는 절이 나올 텡께요. 그 절을 지나 곧장 더 산길루 오리쯤 올라가다 보믄 계곡을 끼구 직전마을이 나오지라. 거그서 계곡 길을 따라 쪼매 더 올라가믄 중턱에 피들을 겁나게 심어놔서 금방 눈에 띌 것이여라. 피들이 심겨진 곳을 따라 올려다 보믄 비탈진 곳에 피밭골이 보이지라. 길이 겁나게 험항깨 조심들 허쇼잉.”

 

“고맙소.”

 

묘덕은 금비와 걸어서 올랐다. 산길은 그야말로 가팔랐다. 발밑에 초롱이끼와 뱀톱들이 옹기종기 어여쁘게 자라나고 있었다. 내동소는 서너 가구가 모여 사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내동소를 지나니 계곡이 보였다. 계곡 주변에 핀 꿩의 다리가 하얗고 소박하게 꽃을 흔들고 있었다. 커다란 함박꽃의 희고 청초한 모습이 탐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금비야. 저 꽃 좀 보거라.”

 

“어머, 아씨. 흰 빛깔이 참 고고하고 예쁩니다요.”

 

“그렇지? 아직 몇 송이 매달려 있구나. 저 꽃의 향기가 무척 좋단다.”

 

“아, 맞습니다요. 저도 고향에서 많이 맡고 자랐습죠.”

 

길은 갈수록 협소했다. 곳곳에 날카로운 돌이 나뒹굴었다. 오솔길이라 가마꾼들이 빈 가마를 끌고 올라가기에도 벅찬 산세였다. 쥐다래의 희고 붉은 꽃들과 호골무 꽃이 벌과 나비를 부르고 있었다.

 

“아씨. 이렇게 꽃들이 지천이라서 이곳에 꿀벌을 많이 치나봅니다요.”

 

“아, 금비야. 네 고향도 이쪽이라 하지 않았더냐?”

 

“예. 저희 고향도 벌이 많기로 유명합니다요. 저 너머……. 이 산 반대편에 있습죠.”

 

“그래? 다음에 내려올 때는 네 고향도 좀 들러보자꾸나.”

 

묘덕과 금비는 치맛자락을 허리에 질끈 묶고 기어오르다시피 경사진 길을 올랐다. 가다가 수없이 비탈길에 미끄러지고 돌에 미끄러져 구르기도 했다. 오솔길 사이사이마다 초록싸리가 꽃분홍색으로 활짝 피어있었다. 깊은 산속이라 바람이 차고 눅눅했다.

 

“금비야. 올 해는 금마타리 꽃이 조금 늦는가보구나. 벌써 피었어야 하는데 이곳에는 아직 꽃대가 올라오지 않았네.”

 

“아씨. 작년에 이쪽 지리산 겨울이 길었었데요. 그래서 봄꽃이 조금 늦나봅니다요.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하아, 힘들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을 만큼 숲이 우거진 곳에 이르자 연곡사라는 절이 나왔다.

 

3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었다. 묘덕은 연곡사에 도착해 하룻밤 묵기로 했다. “금비야.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고 내일 피밭골로 가자꾸나.”

 

“하이고 아씨. 정말 무지 힘듭니다요.”

 

연곡사로 들어가는 일주문 앞에 이르자 지리산연곡사(智異山燕谷寺)라는 낡은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연곡사라는 이름은 오래전 어떤 스님이 처음 절터를 잡으러 왔다가 이 절 연못에서 제비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지은 것이었다. 묘덕은 이곳이 어딘가 했더니 아주 어릴 적 백운을 따라 한번 다녀간 기억이 어슴푸레 떠올랐다. 일주문에서 한 단을 오르니 좌우에 요사가 들어서 있는 넓은 마당이 나왔다. 그곳에서 어릴 적 밥을 먹었던 기억이 흐릿하게 떠올라 묘덕은 반가운 마음에 입가에 웃음이 났다. 일주문과 수직선상에 대적광전이 바라다 보였다. 그녀는 금비와 함께 연곡사 동쪽 부도 앞에 잠시 멈추어 섰다. 부도 벽면에 그려진 주악천녀가 흰 학을 타고 날아오르며 비파를 연주하고 있다. 학의 가늘고 긴 목이 구름처럼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높이 허공을 향해 날아오르는 모습이었다.

 

‘저 천녀가 지금 현을 뜯으며 연주하는 간절한 곡조는 어떤 것일까.’

 

묘덕의 귓가에 몽환적이며 신령한 선율이 들려오는 듯 했다. 그녀는 부도가까이 다가가 천녀의 손을 가만히 맞잡아 보았다. 눈을 감으면 당장이라도 묘덕의 손을 이끌고 눈부신 천상의 세계로 데려가 줄 것만 같았다. 바로 옆 벽면에는 극락조가 섬세하고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었다. 신비로운 날개를 활짝 펼치고 부도에서 살아나와 피밭골 골짜기를 지나 지리산 천왕봉까지 멋지게 날아오를 기세였다.

 

‘저 비단처럼 희고 고운 깃을 커다랗게 펼치고 날아오르면 누군가는 선녀가 하강한 줄 착각을 불러일으키리라.’

 

자신의 몸보다 두세 배는 더 길고 아름다운 꽁지깃이 방금 사바세계를 한바퀴 돌아온 듯 날개옷처럼 하늘거렸다. 묘덕은 연곡사 동부도비 앞에서 방금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았다. 연곡사의 초여름 풍경이 싱그럽게 펼쳐졌다. 조금 더 걸음을 옮기자 연곡사 북부도가 보였다. 북 부도는 얼마 전 세운 듯 보였다. 향료와 산천왕상, 가릉빈가의 모습도 새겨져 있었다. 머리는 사람, 몸통은 새의 형상을 하고 있는 가릉빈가……. 그녀는 가릉빈가의 형상을 보며 자신을 보는 듯 했다.

 

‘가슴속 간절한 사랑과 하나 되지 못하고 그렇다고 그를 영원히 떠나지도 못한 채 이승을 맴도는 나. 이번 생의 불협화음이 꼭 가릉빈가 너를 닮았구나. 가슴 속에 서린 어떤 한 때문인지 가릉빈가, 너는 천상의 목소리를 가졌다지…….’

 

묘법연화경에서는 부처님 음성을 가릉빈가 음성에 비유했다. 가릉빈가는 천년을 사는 새였다. 수명을 다해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불을 피워 놓고 주위를 돌며 세상의 모든 노래를 연주하며 열락의 춤을 추다 불 속에 뛰어들어 타죽는 기이한 새. 그러나 곧 따뜻한 재에서 한 개의 알이 생겨 부화하고, 다시 과거의 환상적 생활을 계속하다가 또 불 속에 뛰어들어 타죽는다는 저 가릉빈가. 그토록 억겁의 세월을 이어가며 생사의 순환을 반복하는 동안 저 새가 염원하는 간절함은 무엇일까. 묘덕은 연곡사 부도에 새겨진 가릉빈가의 얼굴에서 뭔지 모를 끝없는 슬픔이 오래 가슴속에 맴돌았다.

 

 

 

연곡사에서 하룻밤을 머문 묘덕은 아침이 되자 다시 길 떠날 차비를 했다. 

 

 

 

-> 다음 주 토요일(10/19) 밤, 42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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