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42-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제42회>-챕터12 <밀랍을 찾아서> 제3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 기사입력 2019/10/1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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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42-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제42회>-챕터12 <밀랍을 찾아서> 제3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기사입력  2019/10/19 [17:01]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42-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수상작 <불멸의 꽃>     ©김명희(시인 .소설가)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42회

챕터12 <밀랍을 찾아서> 제3화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불멸의 꽃> 챕터12 간지     ©김명희(시인 .소설가)

 

 

 

연곡사에서 하룻밤을 머문 묘덕은 아침이 되자 다시 길 떠날 차비를 했다. 지난 밤 그녀는 가릉빈가처럼 부도 속에 갇혀 울었던 것도 같았다. 그 눈물은 어찌 보면 그녀만이 오래 간직한 아련한 노래였을지도 모른다. 이제 한동안 그 마음은 가릉빈가가 대신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는 여러 겹으로 아쉬움이 되어 발목을 붙잡는 미련을 연곡사 뜨락에 고이 내려놓고 다시 절을 나섰다. 조금 더 올라가니 직전마을이 나왔다. 이 마을은 모든 농가가 피(기장)를 재배하고 있었다. 골짜기 작은 산비탈 농지마다 온통 피밭이 눈에 띄었다. 푸르게 넘실대는 피(기장)들이 멀리서 보니 초록비단을 펼쳐놓은 듯 색이 고왔다. 한참 더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니 피밭골이 나왔다. 그곳은 마을 입구부터 곳곳에 초막으로 엮어놓은 벌집이 끝도 없이 널려있었다. 이제 갓 꽃을 피우기 시작한 피나무와 앙증맞은 며느리밥풀꽃이 그녀 눈에 가득 들어왔다.

 

“하악, 하악, 하악, 아후! 아씨, 어서 조금만 더 힘을 내셔요. 드디어 피밭골입니다요. 정말 엄청나게 머네요. 하악, 하악.”

 

“하악, 하악, 그러게 말이다. 아……! 정말 길이 험하고 멀구나……! 하악, 하악.”

 

묘덕이 목덜미 땀을 닦는 가마꾼들을 격려했다.

 

“모두 가파른 산길을 오르느라 애들 쓰셨소.”

 

“아고메, 피밭골 가려다 저승먼저 가는 줄 알았슈. 하이고. 하악, 하악.”

 

가마꾼들의 말에 묘덕이 웃으며 주변을 돌아다보았다. 주변이 밤나무로 가득했다. 밤꽃들이 비리고 진한 향을 날리며 바람에 하늘거렸다. 곳곳에서 꽁지에 검은 줄무늬가 가득한 작은 벌들이 윙윙거리며 허공에 까마득히 날아다녔다. 이따금 가마꾼들의 머리위로 벌들이 맴돌았다. 가마꾼들이 머리를 흔들며 땀 닦던 수건을 휘둘렀다.

 

“금비야. 벌 조심해라. 쏘이면 큰일이니라.”

 

“예 아씨. 근데 이곳에는 기장을 엄청 심어놨네요?”

 

“이곳은 산이 높아 논이 없잖느냐. 연곡사 스님들이 오래전에 식량이 부족해서 척박한 토양에도 잘 자라는 오곡중 하나인 기장을 심기시작하면서 이곳이 피밭골이 되었다더구나.”

 

“네에.”

 

“그려서 저 아래 마을을 직전이라 하는 거랑께요. 기장을 심는 마을이라는 뜻여라. 그란디, 이곳 사람들은 아닌 것 같구……. 워디서 오신 분덜여라?”

 

언제 왔는지 한 노인이 나뭇짐을 지고 산을 내려오며 말을 붙였다. 노인의 지게 위에도 벌들이 여럿 앉아있었다. 묘덕이 목례를 하며 노인에게 물었다

 

“이곳에 혹시 직전봉밀당 이라는 집이 있는지요? 저희는 그곳을 찾고 있습니다.”

 

“그 집이라믄 제대로 찾아와 부렀소. 쩌그로 쪼까 더 올라가 보쇼잉.”

 

노인이 지게작대기를 들어 아름드리 밤나무와 아카시나무가 가득한 산비탈 쪽을 가리켰다. 묘덕일행은 그곳으로 향했다.

 

4

 

수령이 제법 된 밤나무 숲을 지나자 직전봉밀당(稷田蜂蜜糖)이라 쓰인 집이 보였다. 그곳은 주변이 검은 벌들의 세상이었다. 산비탈아래 흰머리 가득한 노인이 머리에 망을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묘덕은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노인은 달려드는 벌들을 연기로 쫓으며 꿀을 채취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활자장 최영감이 말한 그 임말천 옹인 듯했다. 가까이 가보니 우거진 풀 숲 아래 초막으로 만든 벌집이 밤나무 숲을 에워싸며 수백여 통이 놓여 있었다. 비가림막 아래 놓인 수백 개의 벌통 주변에 꿀벌들이 붕붕대며 드나들었다. 팔순이 넘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혈색이 해맑은 노인이 벌이 다닥다닥 붙은 벌통을 꺼내 살피고 있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노인이 천천히 이쪽을 돌아봤다.

 

“워디서들 오셨당가요?”

 

“개경서 왔습니다.”

 

“개경이라고라? 개경이라믄……. 겁나게 먼 곳인디……. 워츠코롬 먼 여까정 오셨당가요?”

 

“개경 저자거리 주자소에 계시는 활자장 최영감님 소개로 왔습니다.”

 

“워매. 그려라? 안 그래두 연통은 받아구마이라. 근디 생각보다 빨리두 오셨소잉. 나가 시방 요 모양인게로 우선 먼저 집에 드가 계쇼잉?”

 

“아닙니다. 천천히 일 보시지요. 기다리겠습니다.”

 

“아따, 고마워 우짜쓰끄나. 쪼매만 지둘르쇼잉? 내 싸게 마치고 드갈 텡게.”

 

묘덕은 보면 볼수록 참 신기했다.

 

‘손톱보다도 작은 벌들이 어쩌면 저렇게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고 영롱하게 빛나는 꿀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밀랍 땜시롱 왔지라?”

 

“그렇습니다.”

 

“그라제잉? 그전에 우리 선친 살아계셨을 적으, 그 최영감 선친께서 자주 이곳에 사람을 보내곤 혔어라. 오래전 최영감도……. 서너 번 사람을 보냈었지라. 한동안 잠잠 혀서 겁나게 궁금 혔는디……. 안 죽고 요레 살다 봉께로 워쨌끄나 만날 사람은 만나는 갑소. 워쨌든 반갑소잉.”

 

“어르신께서 이리 반겨주시니 저 또한 고맙습니다.”

 

“인거 하나 드셔 보쇼잉.”

 

노옹은 노란 꿀이 가득한 육각형 모양의 벌집 한 조각씩을 떼어 묘덕 일행에게 건넸다.

 

“한 입에 걍 털어 넣어부쇼. 꿀물만 쪽 빼 무꼬 뱉아뿌쇼. 허허허. 입안에 남는 그 껍데기가 밀랍이 되는 거지라.”

 

금비가 손에 받아 모두에게 건넸다. 모두는 달콤한 꿀맛에 놀라 탄성을 질렀다.

 

“요, 밀랍이 뭐이냐 하문 말여라. 저 눔들이 웬 산을 날아댕김서 오만 나무껍질과 꽃봉오리에서 화분을 모아가꼬 그기에다 지 몸에서 내보낸 분비물을 섞어놓은 천연 방부제여라. 그려서 그 밀랍으로 촛불도 켜고 다른 약제도 만들어불고 하지라. 그것을 여그서 매년 모았다가 응고시켜 필요한 곳에 보내주는 것이여라. 저 밀랍을 굳히믄 노랗구 단단한 덩어리가 되야불지라.”

 

“아……, 그렇군요. 참 신기합니다.”

 

“그나저나, 활자장 최영감이 다시 주조에 손을 대기로 헝갑소?”

 

“그럼, 그전에도 그분이 주조를 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전에는……. 최영감 부친이 금속활자주조를 시도해 본담서 밀랍으루 실험을 종종 혔소. 근디 고거이 생각 맨치로 수월치 않았든 겝소. 한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제라. 그 후, 최영감 부친과 조부께서 그 뭣여, 상정고금예문이랑 수월찮은 국보를 금속활자로 거시기 혔다고 소문이 돌았었는디……. 모리긴 해두 최영감이 그 집 선친의 솜씨를 다 물려 받았을 거고마이라. 지는 최영감이 금속활자주조를 원제 혀도 다시 혈줄 알았지라. 제 버릇 남 주것소?”

 

“대단한 분들이셨군요.”

 

“그랴지라. 그 뒤 병으루다 선친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도 있었고. 항간에는 칼을 맞고 죽어부렀다는 말도 있었지라. 그 뒤론 우찌되야부렀나 내두 잘 모르겄소.”

 

“네…….”

 

노옹은 남은 일을 마치자 서둘러 집으로 안내했다. 집안에는 꿀을 담는 항아리가 가득 쌓여있었다.

 

“긍게, 시방. 밀랍을 월매나 가져갈라요?”

 

“네. 우선은 표본에 쓸 것과 적당한 여분을 좀 가져가려고요. 차후 또 한번 사람을 보내든지 연통을 넣겠습니다.”

 

“그랴요. 알았어라. 오늘은 날도 늦었응게 여서 저녁 묵어불고 하룻밤 쉬었다가 내일 챙겨줄 텡게 가져 가쇼잉?”

 

노옹의 아내가 대접한 저녁을 먹었다. 모두는 내일을 위해 일찍 쉬었다. 금비는 고단했는지 이내 잠이 들었다. 묘덕은 낮에 노옹이 했던 최영감에 대한 이야기들이 귓전에 맴돌았다.

 

‘선친과 조부로부터 세도가의 대단한 가문. 이미 오래전에 주조를 실험해 왔던 그 집 조상들. 그런데 그 영감님, 왜 지금은 그리 후미진 곳에서 초라한 삶을 살고 있을까……?’

 

밤중에 노옹의 아내가 금비와 묘덕이 머문 건넌방을 두드렸다.

 

“요거 쪼까 드셔보쇼잉. 피곤할 때 묵어도 겁나게 조아부러요.”

 

“고맙습니다.”

 

노옹의 아내는, 야참으로 한과와 꿀을 맛보라고 들이밀고 갔다. 피밭골의 아침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문밖에서 온갖 새들의 소리가 상쾌해 더는 누워있기 아까웠다. 짧게 잔듯한데 몸이 굉장히 가벼웠다. 앞산에 베일처럼 드리워진 하얀 안개가 여인의 은밀한 속옷처럼 하늘거렸다. 노옹과 아내는 벌써 집에 없었다. 바깥채에 머문 가마꾼들은 아직도 코 고는 소리가 요란했다. 한식경쯤 지나자 채마밭에서 아내가 돌아와 조반 준비를 했다. 묘덕일행은 조반을 먹고 소중한 밀랍을 챙겨 개경으로 다시 출발했다. 

 

 

 

-> 다음 주 토요일(10/26) 밤, 43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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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19 [17:01]  최종편집: ⓒ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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