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백지 고백성사

박현식 | 기사입력 2019/12/06 [07:21]

[서평] 백지 고백성사

박현식 | 입력 : 2019/12/06 [07:21]

 

▲ 백지 고백성사(신광순 시집, 2019) / 차용국

 

오늘도 초로의 신사는 한탄강으로 갑니다. 그가 한탄강에 갈 때면 언제나 열두 살 소년이 따라옵니다. ''은하수 강물 위에 아직도 떠다니는 / 어머니의 하얀 고무신 / 강벼랑을 맴돌고 있는 처절한 절규 / 이제는 돌아앉아 강바람을 달래도 좋으련만 / 아직도 떠날 줄 모르고 울고 있네 / 우리 엄마 살려달라고(한탄강은 알고 있다, 일부)''

 

신광순 시인이 보내준 시집 ''백지 고백성사''를 읽으며, 나는 엄마 잃은 열두 살 소년이 되어 그와 함께 울었습니다. ''오십오 년 전 장마철 / 시뻘겋게 불어난 한탄강 강물에 / 떠내려간 내 어머니의 하얀 고무신(어머니의 하얀 고무신, 일부)''은 짙은 그리움이기도 했지만, 뼛속까지 시린 배신감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하늘이었고 세상 전부였던 열두 살 자식이 보는 앞에서 강물에 몸을 던진 어머니!

 

그것이 그의 상처의 시작이었고, 배신이었고, 절망이었고, 치유할 수 없는 눈물이었습니다. 그는 삶이 답답하고 화가 날 때면, 고추밭으로 뛰어가 매운 고추 서너 개를 넣고 씹으며,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어온 아픔과 절망을 극복해갑니다. 이렇게 치열한 자기성찰과 진솔한 삶을 찾아가는 구도자와 같은 은유의 길가에 용서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과 미움은 등가라 했던가. 어머니에 대한 사랑만큼 미움도 커서 쉬 용서하지 못 합니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 가장 미워하고 용서 못 한 사람이 있었다면 / 어머니였습니다(어머님께 용서를 뵙니다, 일부)''

 

시인은 또 한 번 반성의 눈물을 흘립니다. 어찌 자식이 부모를 용서한단 말인가. 사람의 죄 중에서 가장 큰 죄가 부모를 미워한 죄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오히려 어머님께 부끄러운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화석처럼 굳어진 나의 잘못 앞에 / 오늘 하는 고백성사는 / 빛바랜 백지장이다(치유할 수 없는 상처, 일부)''

 

오십오 년 동안 슬픔과 고통의 원인으로 미워했던 어머니는 실은 그리움과 사랑의 반어적 은유였습니다. 이제 시인은 따뜻한 가슴으로 어머니의 참모습을 봅니다. ''저녁을 굶던 날 밤에도 / '푸른 하늘 은하수'를 불러주시며 / 별을 한 삼태기 쓸어 모아 / 제 가슴에 부어 주시던 어머니가 / 오늘 따라 더욱더 둥글게 가슴에 다가옵니다(아직도 떠내려가는 어머니의 하얀 고무신, 일부)''

 

신광순 시인은 누구나 바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일상의 언어로 시를 지었지만 그 공감의 터는 가늠할 수 없을만큼 넓고 깊이가 있습니다. 이는 시인이 삶을 다져온 내공의 넓이와 깊이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시인과 다양한 시가 있지만, 결국 시는 남과 더불어 울 수 있는 공감의 터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공감은 남과 더불어 우는 것입니다. 남의 고통에 함께 슬퍼하고, 남의 행복에 함께 기뻐하는 것이 공감입니다. 신광순 시인의 시집 ''백지 고백성사''를 펼치며 고통의 슬픔에 함께 울었고, 시집을 덮으며 찬란한 슬픔이 아름다워 기쁘게 울었습니다.

 

시집을 받았으면 바로 시집을 읽고 많든 적든 감상문이나 감사 편지를 써서 올리곤 했습니다. 돌비석을 손톱으로 쪼아 지은 시인의 산고의 산물을 그냥 받고만 마는 것은 염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행하는 나의 조촐한 답례 방식입니다. 하지만 신광순 시인의 시집을 덮고도 한동안 답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글이 너무 가벼워 혹여 그의 공감의 터를 범하는 누를 범하지는 않을까 우려되었기 때문입니다. 부디 신광순 시인님과 벗님들의 넖은 아량으로 빈 터를 채워주시기 바랍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시평을 쓴 차용국 시인은 강원경제신문의 [서평쓰는 시인 차욕국]으로 틈틈이 컨텐츠 구축을 진행코자 한다. 제목을 [서평]으로 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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