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지능의 탄생

박현식 | 기사입력 2019/12/27 [05:17]

[서평] 지능의 탄생

박현식 | 입력 : 2019/12/27 [05:17]

 

▲ 지능의 탄생(이대열 저, 2017)  © 강원경제신문



지능의 탄생(이대열 저, 2017) / 차용국

 

어떤 이는 고등교육 진학률이 80%에 이르는 우리 사회를 지식은 넘치는데 지혜롭지 못하다고 탄식을 합니다. 지나친 우려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경청할 의미는 충분한 듯합니다. 지식이 파편화 되어 있는 구조에서 탈출하여 통섭의 세계로 확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1세기(사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였지만)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어떤 일도 한 분야의 편중된 지식과 사고로는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복잡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을 아우르는 통섭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 책에서 인간의 뇌에 대한 접근은 매우 통섭적입니다. 경제학의 효용이론과 게임이론을 뇌과학의 분야에 차용합니다. 사실 게임이론이 생물학에 등장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리차드 도킨슨이 그의 화재작 '이기적 유전자(1974년)'에서 진화론의 논리를 풀어가는 이론으로 차용하기도 했었습니다. 자, 그럼 인간의 뇌속에서 지능은 어떻게 탄생해서 어떤 작동을 하고 있는지, 인간의 삶과 마음과 행복이 형성되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지능은 수학적 또는 논리적인 문제를 푸는 능력이 아니라 지능을 가진 주체에게 가장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할 수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인간의 삶이란 끊임없는 선택의 과정, 즉 의사결정의 연속이며, 지능은 다양한 환경에서 복잡한 의사결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선택 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26쪽).

 

인간은 행복하기를 소망합니다. 삶에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은 상당 부분 행복을 선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행복은 설정점(set point)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행복감이 원래의 설정점 수준으로 회귀한다고 합니다(68쪽).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지속적인 행복을 누린다거나 축적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마치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처럼 아주 잠깐 동안만 바닥을 벗어날 수 있을 뿐이라고 하여,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고도 부릅니다(70쪽). 실제로 행복의 설정점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의 행복에 대한 기대수준을 낮추고, 아주 소소한 일상에서 자주 좋은 경험을 하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함의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양분을 포함하고 있는 음식일수록 효용이 높은 것은 진화의 산물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물에 대한 효용이 불변인 것은 아닙니다. 효용의 많은 부분은 경험에 의해 바뀌게 되고(79쪽), 사회화 되면서 무리 지능(swarm intelligence)을 만들어 냅니다. 무리지능이란 집단에 속한 모든 개체에게 명령을 내리는 지도자가 없어도, 각각의 개체가 비교적 적은 수의 개체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사이에 합리적이고 질서 있는 행동을 만들어내는 경우를 말합니다(107쪽). 뇌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가장 적절한 행동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상황에서 예상되는 결과물에 따라 여러 가지 행동의 효용을 스스로 계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행동의 결과는 동물의 환경에 따라서 언제라도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뇌는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학습을 해야만 합니다(158쪽). 이것이 학습이 없이는 진정한 지능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일 것입니다. 장차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정보라면, 그것이 지금 당장에는 전혀 쓸모가 없더라도 기억해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유전자는 당장의 생리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환경의 변화를 성공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내용의 지식이라면 언젠가는 자기복제에 큰 공헌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뇌를 발달시켰습니다(187쪽). 사회적 의사결정과 그밖의 모든 사회적 활동이 인간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은, 인간의 뇌가 진화하는 과정에서도 사회적인 요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256쪽). 뇌는 사회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지능을 학습하고 발달시켰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80%에 이르는 고등교육 진학률이 지능의 우수성이나 발전을 대변할 수는 없습니다. 진학률은 사회적 요인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학력과 지혜는 등가물일 수 없습니다. 카를 야스퍼스는 인류 사상의 원형이 형성된 기원전 500년 전후를 '축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예레미아와 같은 성현이 활동했던 시대입니다. 인류는 20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이들 천재들의 사고와 지혜를 넘지 못한다고 합니다. 4차 산업혁명 기술과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인류는 여전히 현대의 문제에 관한 해답과 소망을 이들 천재들에게 묻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아버지 세대 또는 과거 어느 세대보다도 결코 지혜롭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높은 진학률은 또 하나의 허상과 편견일 뿐입니다. 간판으로 대변되는 허상의 지식을 버리고 지혜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대입니다. 인류는 언제든지 진실한 지혜의 거울을 찾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유랑민의 후예입니다. 이제 우리 앞에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초연결, 초융합, 지능화로 대변되는 디지털 기술문명을 선도할 지혜를 찾아내는 것은 우리 시대의 몫입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주간베스트 TOP10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