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54-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54회 챕터16 <토복령과 남태령 산적들> 제6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 기사입력 2020/01/1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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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54-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54회 챕터16 <토복령과 남태령 산적들> 제6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기사입력  2020/01/11 [18:11]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54-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김명희(시인 .소설가)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54회   

챕터16 <토복령과 남태령 산적들> 제6화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수상작 <불명의 꽃> 챕터16 간지     ©김명희(시인 .소설가)

 

 

 

“이보시오! 정신이 좀 드시오?”

 

“으으으……. 으흐…….”

 

영감이 힘겹게 눈을 떴다.

 

“이 산중에서 노인 영감 혼자 어인 일이오?”

 

“아…….”

 

영감은 한참 만에 정신을 차렸다. 이마에서 피가 흘러 내렸다. 머리에 통증이 엄청나게 몰려왔다. 어지럽고 현기증이 심해 시야가 흐릿했다. 영감의 눈에 백여 명의 군사와 깃발과 마병들이 희뿌옇게 보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이보시오. 어찌된 일이오? 괜찮소이까?”

 

“아……. 괜찮소……··.”

 

“움직일 수 있겠소?”

 

“난 괜찮소……. 괜찮으니 어서 가시던 길을 가시오. 신세를 졌소이다.”

 

“조심하시오. 이 겨울에 정신을 잃으면 그 길로 황천행인 줄 모르시오?”

 

“……. 도와 주셔서 고맙소이다.”

 

“혹시, 이 주변에서 산적 떼나 수상한 무리들을 보지 못 했소?”

 

영감은 잠시 망설였다. 산적들의 본거지를 알려주려면 여기서 시간을 더 지체하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모, 모르오……. 보지 못 했소이다.”

 

“알겠소, 어서 조심해서 산을 내려가시오.”

 

“알겠소……. 고맙소이다.”

 

영감은 몹시 어지러웠다. 한동안 나무를 잡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살폈다. 발아래 토복령 굵은 뿌리 세 개가 눈에 띄었다. 한참 전 이것 때문에 영감이 바위벼랑을 구른 것이었다. 영감은 그것들을 소중히 보따리에 챙겨 담았다. 그는 한참을 더 그곳에 앉아 정신을 차린 후에야 다시 길을 떠났다. 그가 남태령 고개를 무사히 내려가니 또 하루해가 기울고 있었다. 어젯밤 은전을 산적들에게 몸값으로 다 준 후, 영감은 돈을 아끼지 위해 주린 배를 참았다.

 

‘아씨는 지금쯤 어찌 되셨을까……. 행여 뭔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제발 무사하셔야 할 터인데…….

 

영감의 마음은 쇳덩이처럼 무겁기만 했다. 가까운 역원을 찾아간 그는 장화 속 은전을 모두 털어 급히 말을 하나 빌려 타고 밤새 개경으로 달렸다. 겨울바람을 안고 달린 그는 온몸이 얼어 감각조차 없었다. 찢어진 이마가 벌어져 피가 계속 흘렀다. 영감은 소매로 대충 닦으며 달리고 또 달렸다. 그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눈을 뭉쳐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개경이 가까워질수록 눈보라가 엄청나게 몰아쳤다. 시간은 이미 한밤중이었다. 달려도 달려도 제자리를 맴도는 칠흑 같은 악천후가 이어졌다. 영감은 잠 한숨 자지 않고 말을 달려 개경에 도착했다.

 

9

 

영감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곧장 묘덕이 있는 사저로 말을 달렸다.

 

“금비야! 금비야! 어서 문 열어라!”

 

금비가 달려 나와 어둠속에서 대문을 열었다.

 

“아니! 영감님!”

 

“오냐 그래! 어서 들어가자! 아씨는 좀 어떠시냐?”

 

“계속 저러고 계십니다요.”

 

둘은 눈보라치는 어둠을 가로질러 안채로 들어섰다. 환한 곳에서 활자장 영감을 본 금비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영감님! 지금 영감님 얼굴이……. 이마는 어쩌다 이리 되셨습니까요? 세상에!”

 

“괜찮다. 어서 아씨께로 가자!”

 

“영감님 주자소 문도 닫으시고 그간 어디를 다녀오시는 길입니까요?”

 

영감은 싸늘한 손으로 아씨의 손을 잡았다.

 

“아씨…… 제발, 어서 깨어나시오……. 언제까지 이렇게 자리보존만 하실 참이오?”

 

묘덕은 아무 기척이 없었다. 활자장 영감은 아씨를 한참 바라보다 눈물이 흘러 더는 볼 수 없었다.

 

“금비야. 아씨 탕약은 어찌 되었더냐? 아직 남았느냐?”

 

“애 저녁에 다 먹고 없습니다요……. 그래서 두 번이나 영감님 주자소에 찾아갔습죠. 그때마다 안 계시더니…… 이 밤중에 대체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요?”

 

영감은 어깨에 지고 온 보따리를 금비에게 내어놓았다.

 

“토복령이니라. 너무 얼어서 약성이 있을까 모르겠다만. 이거에라도 기대를 해봐야지 달리 도리가 없구나…….”

 

“아니! 영감님. 개경 전체를 누벼도 없었던 이 귀한 토복령을 어디서 구하셨습니까요?”

 

“해남진에 다녀왔느니라. 금비야 미안하구나. 아픈 아씨를 네게만 맡겨두고 주자소를 너무 오래 비워 네가 얼마나 놀랐느냐?”

 

“영감님. 그 먼 곳을. 아씨 약을 구하러 다녀오신 겁니까요? 하요…… 세상에…….”

 

“이리 시일이 오래 걸릴 줄 낸들 알았겠느냐. 그곳에 갔어도 토복령은 없더구나. 그래서 그곳에 있는 명감나무 자생지를 찾아 야산을 모두 뒤져보니 다행히 조금 구할 수 있었다.”

 

“아효. 영감님! 조금이라닙쇼. 이렇게 많은 양을 구하셨는데. 정말 고맙습니다요.”

 

“고맙긴. 아씨가 저렇게 된 건 모두 내 책임이다. 내가 곁에 있었더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터인데. 경험도 없는 아씨만 홀로 남겨놓고 내가 자리를 비우는 게 아니었어……. 모두가 내 잘못이다. 아씨가 깨어나지 않으시면 내 어찌 하늘을 보며 살지. 그것이 두렵구나……. 금비야. 어서 탕약을 정성껏 달여라…….

 

“예, 영감님. 아씨가 영감님의 은덕으로라도 속히 일어나셔야 할 터인데…….”

 

영감은 천근만근 내려앉는 몸을 이끌고 어둠을 헤치며 주자소로 돌아왔다. 오래 비워둔 주자소를 열고 들어가 불을 밝혔다. 주자소는 찬바람이 휑하니 불고 냉기가 가득했다. 영감은 그 후 오랫동안 뒤란 출입문을 열지 않았다. 그쪽만 바라보면 흉물스런 물건을 보는 듯 정나미가 떨어졌다. 아침이 되자, 저자거리는 변함없이 인파들로 북적였다. 해가 뜨고 지는 것도 여전했다. 묘덕아씨만 다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영감은 목활자 주문도 받지 않았다. 모든 것이 허무하고 의욕이 전혀 나지 않았다. 그저 습관처럼 주자소 문을 열고 멍하니 하루를 보내다 다시 문을 닫는 일이 일과였다. 출입구 밖에 쌓아 놓았던 값비싼 황양목들은 겨우내 눈과 비에 낡아 못쓰는 것들이 날로 늘어갔다. 며칠이 또 흘렀다. 이따금씩 수상한 이들이 주자소 안을 기웃거리다 사라지는 것은 여전했다. 온종일 들판을 바라보다 영감은 주자소 문을 닫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했다. 더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다음날, 영감은 저자거리로 나갔다. 거간꾼들과 객주를 돌며 주자소를 인수할 새 주인을 알선해 달라 당부 하고 터덜터덜 돌아올 때였다.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 주자소를 향해 걷는데 영감의 눈에 금비가 보였다. 금비는 숨을 헐떡이며 잠긴 주자소 문을 있는 힘껏 두드리고 있었다.

 

“금비야!”

 

“하악! 하악! 하악! 아효! 영감님! 대체 어디 갔다 이제 오십니까요?”

 

“왜 그러느냐? 설마 아씨께 뭔 일이라도 생긴 게냐?”

 

 “영, 영감님! 우, 우리. 하악! 하악!”

 

“아이고, 얘야. 좀 숨 좀 돌리며 찬찬히 말해 보거라. 아씨가? 아씨가 왜?”

 

10

 

“영감님! 우, 우리 아씨가. 깨, 깨어나셨습니다요! 아씨가 방금 깨어나셨어요!”

 

“뭐, 뭣이? 그, 그게 사실이냐? 그게 사실이야?”

 

“예! 어서 가셔요. 어서요!”

 

“오냐! 그래! 어서가자!”

 

금비와 활자장 영감은 그길로 한번도 쉬지 않고 묘덕의 사저로 내달렸다. 아씨는 금비 말처럼 눈을 힘겹게 뜨고 누워있었다.

 

“아씨! 아효! 정신이 좀 드시오?”

 

“…….”

 

묘덕이 대답대신 창백한 얼굴로 활자장 영감을 향해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아효, 기적이오. 기적이외다! 아씨가 드디어 깨어났구려. 이럴 수가! 이런 기쁜 일이!”

 

“…….”

 

묘덕은 영감을 힘겹게 바라보며 또 한번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영감님. 이게 다 영감님이 해남진 그 먼 곳까지 가셔서 손발이 얼도록 언 땅을 파서 구해다 주신 그 약덕분입니다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죠. 영감님이 우리 아씨를 살리셨습니다요.”

 

“아니다. 별말을 다 하는구나. 너만큼 아씨 곁에서 애 쓴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네 눈물이 아씨를 다시 소생케 하였구나……. 네 손길에 부처님 은덕이 깃들었던 게야……. 금비야, 네가 장한 일을 했다.”

 

묘덕은 아직 말은 못했지만 영감과 금비를 번갈아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녀가 웃자, 그녀의 한쪽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져 살갗이 치켜 올라갔다. 금비는 너무 가슴이 아파 얼른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전의 곱고 그윽했던 묘덕의 깊은 미소는 이제 오간데 없었다. 영감은 마음 한켠이 끝없이 무너져 내렸다. 영감은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기쁨이 밀려왔다. 그녀는 금비가 주는 토복령 탕약을 조금씩 받아먹었다. 앞전보다 훨씬 좋아진 모습이었다. 그녀는 날이 갈수록 몰라보게 회복되고 있었다.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들판에는 쑥과 냉이가 손톱만큼씩 얼굴을 내밀었다. 바람도 어느새 차가운 빗장을 풀고 병아리 털처럼 보드랍게 변해갔다. 금비는 묘덕이 깨어난 후, 다시 말을 하고 미음을 먹는 일 모두를 주자소로 달려와 영감에게 자랑처럼 늘어놓고 돌아갔다. 활자장은 금비가 주자소에 들러 묘덕의 소식을 전하고 갈 때마다 세상의 봄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영감은 아씨의 놀라운 회복 소식에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영감이 거간꾼들에게 내놓은 주자소를 보러 사람들이 심심찮게 다녀갔다. 그것을 본 금비는 누구보다 아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봄이 완연해 져 들판에 나비가 날고 야산마다 철쭉이 새색시 볼처럼 아름답게 물든 날, 금비가 다시 주자소로 달려왔다.

 

“영감님!”

 

“어, 금비구나. 어서오너라. 아씨는 좀 어떠시냐?”

 

“우리아씨 어제부터 미음도 끊고 진지 드십니다요! 후훗! 정말 믿어지지 않습니다요.”

 

“세상에! 어찌 그리 회복이 빠를 수 있느냐. 정말 놀랍구나. 네 정성에 하늘이 감복한 것 이니라…….”

 

“영감님도,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요. 그런데 영감님.”

 

“오냐. 왜 그러느냐?”

 

“우리 아씨께 주자소 문 닫는다고 말씀드렸더니 한사코 안 된다고 말리십니다요. 저더러 냉큼 가서 영감님께 아씨 뜻 좀 전해 달라 하셔서 이렇게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요.”

 

“그래? 허나 이제는 아무 쓸모없는 이곳을 열어놔서 뭐하겠느냐. 나도 이제는 많이 늙었다. 이젠 활자라면 신물도 나구 정나미가 떨어져 돌아보기도 싫구나.”

 

“아씨가 영감님께 부탁이라고 하셨습니다요. 제발 문 닫지 마시라 전해 달라굽쇼.”

 

“문 닫는 거야 뭐 아무 때나 닫을 수 있는 일이니라. 아씨가 정 그리 섭섭하다 시니 시일을 늦췄다가 내놓아도 상관은 없느니라. 그러니 괜한 일로 아씨 걱정하시지 않도록 주자소는 문 닫지 않는다 했다고 그리 말씀이라도 드려라.”

 

“예. 쇤네는 그럼 그리 알고 돌아갑니다요.”

 

 

 

 

 

 

 -> 다음 주 토요일 ( 1/18) 밤, 55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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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11 [18:11]  최종편집: ⓒ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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