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말의 품격

박현식 | 기사입력 2020/01/20 [12:10]

[서평] 말의 품격

박현식 | 입력 : 2020/01/20 [12:10]

 

▲ 말의품격



 

말의 품격(이기주 저, 2017)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같은 말이라도 이쁘고 온화하게 하는 사람이 있고, 밉고 앙칼지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에는 사람의 성격이 내재되어 있어서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도 사람의 품격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나만의 체취, 내가 지닌 고유한 인향은 내가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5)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홀로 떨어진 섬과 같은 존재인데, 각기 다른 섬을 이어주는 것이 말이라는 교각입니다.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채워주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연결고리(7)라는 뜻입니다. 현생인류가 경쟁 관계에 있었던 여러 인류를 제치고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말을 선택한 것입니다. 말은 생물학적인 생존과 유전을 넘어 문화적 진화라는 새 길을 열었습니다.

 

사실 우리 조상이 말을 선택한 것은 매우 위험하고 혁명적인 도전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말은 목구멍 후두 위쪽에 있는 소리통에서 내는 소리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포유동물의 후두는 목구멍 위쪽에 붙어 있어서 소리통이 매우 작은데, 인간의 후두는 아래쪽으로 내려와 있어서 위쪽에 커다란 소리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후두가 목구멍 위쪽에 붙어 있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음식이나 물을 먹으며 동시에 숨을 쉴 수도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음식을 먹으며 신속하게 위험을 감지하고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후두가 아래쪽에 있으면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에게도 이런 진화의 증거는 남아 있습니다. 유아의 후두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후두가 목구멍 위쪽에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소리통이 작아 '배가 고프다. 대소변을 보고 싶다. 혼자 있어 무섭다' 등의 말을 할 수가 없으니 울음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인간의 후두는 자라면서 목구멍 아래쪽으로 이동하여 대략 14세가 되면 어른과 같은 위치에 고정됩니다. 인간은 이렇게 변성기를 지나면 각자 큰 소리통으로 자기만의 음역을 갖게 됩니다.

 

왜 인간은 이런 번잡한 변화를 선택한 것일까? 모든 생물은 생존에 유리한 쪽으로 자연선택을 합니다. 인간이 이런 진화를 선택한 것은 무언가 생존과 유전에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생물학적인 유리함과 편리함을 기꺼이 버리고, 신체의 위치까지 변화시켜 소리 영역의 확대를 감행했습니다. 말이 당장의 생물학적인 유리함과 편리함보다 생존과 유전에 더욱 긴요했다는 함의입니다. 이와 같이 말은 우리 조상이 지난한 진화를 거치면서 후대에게 전해준 소중한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말은 음식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조상이 우리에게 전해준 행복의 유전자는 단순합니다. 사람이 가장 충만한 행복감을 느낄 때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좋은 음식을 적절한 방법으로 적당한 양을 먹는 것입니다.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는 늘 음식이 준비되어 있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좋은 음식과 궁합이 맞는 말은 공사를 아우르는 품격과 공감을 형성합니다. 식사 자리는 공사의 영역이 어우러진 공간이자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적인 중대사와 사적인 중대한 결정 상당수가 식탁 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72)는 것은 낯설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인의 밥상머리를 살펴보면, 행복의 한 축이 심각할 정도로 비어 있습니다. 말 없는 식사 시간은 너무도 짧기만 합니다. 화난 사람처럼 경쟁이라도 하듯 순식간에 밥을 입에 퍼넣는 삭막한 풍경이 펼쳐지곤 합니다. 사람은 다 먹고 살아가는 것인데, 왜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자조섞인 말을 하면서도, 오래도록 길들여진 습성을 버리기는 쉽지 않은 듯합니다. 이런 식습관은 마땅히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환경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배려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고품격의 말이 공감의 식탁에 흐르는 일상의 행복을 결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연하면서도 매우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말을 잘 하려면 먼저 잘 들어야 한다는 말에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은 경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가르침으로도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실천하기란 무척 어렵기만 합니다. 일부 뇌공학 전문가들은 경청이 어려운 이유를 인간의 고등한 뇌 메커니즘에서 찾기도 합니다. 언어권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사람은 1분 동안 대략 200단어까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우리 뇌는 그보다 4배나 많은 800단어 정도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뇌 능력을 4분의 1만 사용해도 상대의 말을  충분히 해석할 수 있으므로 굳이 타인의 말을 경청할 필요를 못 느낀다는 얘기(37)입니다.

 

그러기에 남의 말을 경청한다는 것은 인내와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특히 장기간의 경청은 극도의 고단함을 이겨내야 하는 수련 과정과 다를 바 없는 듯합니다. 언어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성인의 최대 집중력은 18분이라고 합니다. 18분 넘게 일방적으로 대화가 전개되면 아무리 좋은 얘기일지라도 참고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마크 트웨인이 '설교가 20분을 넘으면 죄인도 구원받기를 포기한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92)일 것입니다. 적정한 시간에 간결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말할 수 있는 말습관을 가다듬는 노력의 필요성을 시사하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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