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56-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56회 챕터17 <사라진 금속활자비법서 > 제2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 기사입력 2020/01/25 [18:01]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56-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56회 챕터17 <사라진 금속활자비법서 > 제2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 입력 : 2020/01/25 [18:01]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56-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김명희(시인 .소설가)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56회

챕터17 <사라진 금속활자비법서 > 제2화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챕터 17간지 표지     ©김명희(시인 .소설가)

 

 

 

 

 

영감의 눈이 번쩍 빛났다.

 

“아씨. 혹시 아씨가 어제 흙 묻은 손으로 저 환기구를 만지셨소?”

 

“아니요. 어제 주형틀 식기를 기다리며 손은 이미 다 씻은 후였지요. 영감님이 환기구 열어두라 하셔서 그 후에 환기구를 만졌지요. 영감님, 그건 왜 물으세요?”

 

“그럼 혹시 환기구를 새벽에 다시 열었소?”

 

“아니요. 영감님이 주형틀 빨리 식게 조금 열어두라 하셨잖아요? 그래서 열어둔 후, 저는 전혀 손대지 않았는데…… 왜요? 영감님이 밤에 환기구를 다시 잠그셨어요? 저는 몰랐습니다.”

 

“어제 새벽에 너무 추워 깼다가 내가 환기구를 닫고 눈을 붙였소.”

 

영감은 환기구로 다가가 보았다. 환기구는 분명 새벽에 영감이 닫아 걸은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덜렁거리며 열려있었다. 영감은 맨손으로 창틀을 쓰윽, 문질러 보았다. 영감의 손에 진흙이 묻어났다. 누군가 창틀을 밟고 넘어 들어온 족적이 분명했다.

 

“이럴 수가! 흙이오! 저 환기구를 어제 가장 마지막으로 닫아 걸은 사람은 나였소! 그런데 그때 전혀 없었던 흙이 지금 이렇게 묻어 있소! 필시 새벽에 누군가 또 다시 이곳을 통해 들어왔었다는 증거요!”

 

“영감님 소름 끼칩니다……. 그럼 대체 누가…….”

 

영감이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가 주자소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보다 외쳤다.

 

“여기오! 여기에도, 저기도 발자국이 남아 있소. 놈은 주자소 정문 쪽이 아닌, 저 들판 들길 쪽으로 잠입해 와 뒤란 잠긴 환기구를 따고 거처실로 숨어들었던 게 분명하오.”

 

활자장 최영감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한쪽만 남은 그의 눈이 바삐 움직였다.

 

“맙소사! 그럼 어젯밤 이곳에 도적이 들었다고요? 여, 영감님. 그렇다면 그가 누굴까요? 누가 그 밤에……! 더구나 영감님과 저도 거처실에 자고 있었는데, 버젓이 거처실까지 들어와서 겁도 없이 그 서책을 가져갔다면, 그가 대체 누굴까요?”

 

“…….”

 

영감은 뭔가 깊이 생각만 하고 있을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영감님. 그럼 우선 관아에 신고부터 하셔야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범인이라도 찾아보지요.”

 

“그건 관아에 신고해 찾을 수 있는 그런 서책이 아니오…….”

 

활자장 최영감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허탈하게 대답했다.

 

“영감님. 그게 무슨 뜻이지요? 그럼 혹시 짐작 가는 범인이라도 있단 말씀이세요?”

 

영감이 의자깊이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영감은 가뜩이나 한쪽 눈이 백안(白眼)인데다 표정이 굳어지자 더욱 살벌해 보였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로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다. 깊은 한숨만 연달아 내쉬었다. 그녀는 마음이 불안해 견딜 수 없었다. 어제 그녀가 보기에도 그 서책은 범상치 않았다. 한참 후 영감이 온 몸에 맥이 빠진 듯 입을 열었다.

 

“아씨……. 그 책이 없으면 아씨와 나는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소. 그 서책이 없으면 활자주자는 절대 완성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안타깝지만……, 주자는 모두 물 건너갔소이다.”

 

“영감님. 그게 대체 무슨 책인데 그러세요? 제가 알면 안 되는 일인가요?”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화상으로 뒤엉킨 살갗이 흉하게 딸려 올라갔다. 잠시 고민하던 영감이 뭔가 중대한 결심을 한 듯 그녀를 보았다.

 

4

 

뭔가 말을 하려던 영감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다시 눈을 감았다. 한동안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씨…….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으시오. 하아……, 그러니까 그 서책은…….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아주 중요한 금속활자주조비법서(秘法書)요. 그 가치는 어떤 것으로도 환산할 수 없소.”

 

“네에? 그 서책이 금속활자주조비법서 라고요? 그럼, 앞전에 말씀하셨던 고려 어딘가에 단 하나 남은 비법서가 있다더니 그게 바로 그 서책이었단 말예요? 그 비법서를 영감님이 지금까지 갖고 계셨던 거고요? 맙소사!”

 

“그렇소. 그것은 내 조부와 부친이 친히 대를 물려 기록한 것이고 내게 남긴 유일한 유품이기도 했소이다. 최 균 이라는 함자를 쓰셨던 제 조부께서는 120년 전 이 나라에 무관이자 문관이셨소. 대 혼란기였던 그 당시 강화로 천도한 후 우여곡절 끝에 조부께서는 인류 최초로 금속활자주조법을 창안해서 상정고금예문 총28권을 어렵게 간행하셨소. 몇 년 후 역시 주조법을 이용해 고려대장경을 금속활자로 다시 새기시기도 했소. 물론, 오랜 실험과 실패 끝에 가까스로 완성이 되었던 것이외다. 그 상정고금예문은 국가의 전례(典禮)를 다룬 중요한 자료였소. 그 때 주자를 개발하면서 터득한 비법을 고스란히 기록했고, 그 서책을 두벌을 만들어 조부님의 아우, 그러니까 제 둘째 조부님이셨던 최 문 이라는 분과 최 현 이라는 함자를 쓰셨던 제 부친 집에 각각 한권씩 두었는데, 그 때 난리로 갑자기 강화도로 천도를 하는 바람에 조부님의 아우 최 문 이라는 분이 보관했던 것은 분실했다고 하오. 그 후, 두 형제는 이승을 하직했고 조부님 아우의 아들인 최 묵 은 최 하 라는 아들을 남기고 다시 세상을 떠났소. 그러니까 최하와 나는 먼 친척 간이었소이다. 허나 그간 우리는 서로 왕래도 없이 얼굴도 모르고 남처럼 살았소. 내 부친도 어느 날 조부와 당신까지, 이대에 걸쳐 실험한 주자의 모든 실수경험과 비법을 총 정리하여 내게 책 한권을 남기고 저승으로 가셨소. 고려의 주자인쇄 연구는 그 후 원나라의 굴욕적인 종속정치의 자행으로 그 기능이 점차 마비되어갔고 그러다 최근 얼마 전에 원이 신흥세력인 명에 의해 북쪽으로 쫓기면서 다시 주조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던 중이었소. 그 때 나는 국자감 서적포에서 주조연구수장으로 있었소. 내가 그곳에서 자신 있게 실험을 하고 연구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조부와 부친이 대를 이어 손수 기록해 내게 남긴 금속활자주조실험서(金屬活字鑄造實驗書)라는 유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소. 그러나 그 서책에 완벽한 기술이 들어있었던 것은 아니오. 다만 오랜 실험을 통해 실패했던 경험이 모두 기록되어 있었고 간간히 어쩌다 주자가 완성되었을 때의 성분들 수치와 비법이 적혀있었소. 나라에서 주권을 되찾으려는 의식이 대두되면서 다시 주자를 만들어 경사자집(經史子集)은 물론 의서(醫書)·방술서(方術書)·병서·율서(律書)에 이르기까지 고루 찍어내서 학문에 뜻을 둔 이들의 독서를 널리 권장하여야 한다는 건의가 한창 제기되던 중이었소이다.”

 

“그런데……. 그 비법서를 대체 누가 도적질 해 간 것이란 말인가요?”

 

“그것은 오래전부터 시작된 오해와 악연에서 비롯되었소.”

 

“오해와 악연이요?”

 

“그렇소……. 어느 날 서적포로 한 사람이 나를 찾아왔소. 그는 대뜸 내 앞에 나타나 금속활자주조실험서(金屬活字鑄造實驗書)가 내게 있는 것을 알고 왔으니 내놓으라 하더이다. 나는 선친이 남겨준 중요한 유품이라 그럴 수 없다 했소. 그러자 그자는 그 서책에는 오래전 자신의 조부도 일익을 한바가 있으니 그 서책을 돌려달라는 것이었소. 나는 필사본을 주겠다 했고 그는 필사본이 아닌 원본을 요구했소. 그자는 원본과 함께 주조법에 대한 모든 주인권도 내게 포기하라고 엄포를 놓았소. 나는 선친의 유품이라 절대 그럴 수 없다 거절했고 그는 나를 오래 협박하다 안 되자 돌아갔소. 몇 년 후, 그에 대한 엄청난 소식을 들었소. 그자가 혼자 밀실에서 쇳물을 녹이다 용광로를 안고 쓰러졌다는 것이었소. 그 일로 온몸에 아주 심한 화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소……. 그 소식을 접한 나도 놀랐고 무척 가슴 아팠소. 모르긴 해도 그자가 백린에 함유된 금속독성을 간파하지 못해 당한 참사였을 것이라 나는 생각하오. 그러나 그는 내가 꾸민 일이라 오해를 한 것 같았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씨. 합금을 녹이다보면 광물들 중에는 엄청난 맹독을 내뿜는 성분들이 있소이다. 그중 가장 불에 잘 녹으면서도 치명적인 독성을 안고 있는 것이 바로 백린이오.”

 

“아! 그럼 제가 작년에 사고가 난 것도 모두다…….”

 

“그렇소. 아씨, 바로 그거요. 아씨가 그리되신 것도 백린의 그 맹독성 연기 때문이었소. 그것을 주의하고 환기를 잘해야, 그 독에 중독되지 않소. 금속 성분을 전혀 모르고 밀실에서 다루다가 급성중독을 일으키면, 짧은 시간에 목숨까지도 단번에 잃을 수 있소. 아씨도 하마터면 그 때 큰 일 날 뻔 했잖소……. 지금은 아씨가 무사하니 얼마나 천행인지 모르오.”

 

“아, 그랬었군요. 그래서 영감님이 환기구를 크게 만드신 거였군요?”

 

“그렇소.”

 

“그럼, 그 맹독을 내뿜는 성분이라는 게…….”

 

“휘안석이라 하는 것이오. 백린의 주원료가 되는 회백색 광물인데……. 그것을 녹이면 매우 밝은 청색의 불꽃을 내며 타다가 흰 연기를 발생하게 되오. 이 성분이 사람에겐 맹독이지만 금속활자를 만들 때에는 없어선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성분이오. 그날 아씨가 넘어지면서 그 성분들이 모두 섞여 백린의 분량을 초과한 것이 우리의 결정적 실수였소. 그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하오. 허나 그것이 주자의 쇳물에 들어가면 쇳물이 굳은 후에 판형틀에서 활자들이 쉽게 잘 분리되도록 돕는 역할을 하오. 활자의 강도도 아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성분이오. 허나 그 연기는 엄청난 맹독이오. 이를 밀실에서 오래 맡으면 중독이 심해 현기증으로 쓰러지거나 심하면 호흡곤란으로 목숨을 잃기도 하오. 아마도 그자는 그 성분을 알아냈지만 맹독성의 위험까지는 전혀 몰랐던 것 갔소. 그러다 보니 그 독성에 중독되어 호흡곤란이나 어지럼증을 느꼈을 테고 순간 뜨거운 용광로를 안고 쓰러진 듯하오. 그 후 그가 죽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는데……. 또 어디서 누군가 봤다는 소문도 간간히 들렸소…….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까맣게 잊고 이래저래 세월이 흘러 나도 잊고 살았소이다. 그러던 어느 날, 국자감 서적포 연구실에서 내가 녹인 멀쩡한 쇳물이 갑자기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소이다. 그것은 쇳물에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될 성분이 누군가에 의해 몰래 첨가된 게 원인이었소. 나는 그 사실을 한쪽 눈을 실명하고 서적포에서 쫓겨난 후에야 뒤늦게 알게 되었소이다.”

 

“세상에! 영감님 그럼 혹시 저번에 여러 번 주자소를 염탐하던 그들이……?”

 

“아씨! 그 때 혹시 그 중 한 사람 얼굴에 심한 흉터가 있다 하지 않았소?”

 

“네, 맞아요! 저처럼 한쪽 얼굴이…… 흉터가 저보다도 무척 심했어요. 제가 여러 번 그자들과 마주쳤지요.”

 

“아마도 내 짐작이 맞다면…… 어젯밤 그 비법서를 가져간 자는, 그 자일 거요. 내 먼 친척이라는 그 자……. 그자가 용케도 아직까지 살아있었던 모양이오. 요즘, 원나라가 일으킨 변화의 바람을 타고 너도나도 인쇄기술과 신문물에 대한 정보를 사고파느라 혈안이 되어있는데, 왜 그잔들 세간의 소문에 욕심나지 않았겠소? 만약…… 그자가 살아있다면 내 직감이 맞을 게요. 그자가 바로 최하라는 자요.”

 

“영감님. 그럼 장차 어쩌실 참이신가요? 그 서책을 다시 찾을 방도는 없나요?”

 

 

 

 

 

 

-> 다음 주 토요일 ( 2/1) 밤, 57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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