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박현식 | 기사입력 2020/02/06 [09:20]

[서평]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박현식 | 입력 : 2020/02/06 [09:20]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대런 애쓰모글루ㆍ제임스 A.로빈슨 저, 최완규 옮김, 2016) / 차용국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대런 애쓰모글루ㆍ제임스 A.로빈슨 저, 최완규 옮김, 2016) / 차용국

 

십여 년 전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고 받은 감동과 층격, 그리고 몇 가지 의문점은 오래도록 남아있었습니다. 1998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 책은 진화생물학자이며 인류학자인 저자가 인류 문명의 불평등의 원인을 분석한 역작입니다. 저자는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라는 문제에 대하여 지리적 위치에 주목하고 대륙별, 민족별 분석을 시도합니다. 세계 불평등의 원인이 지리적 위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이 논리를 지리적 위치 가설(geography hypothesis)이라고 합니다.

 

지리적 위치 가설은 대부분의 가난한 나라는 열대 지역에 있고, 잘 사는 나라는 온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는 현상을 토대로 구성한 논리입니다. 열대 지역은 잦은 질병으로 건강과 노동 생산성에 악영향을 끼치고, 열대 토양은 농업 생산성을 떨어뜨리는데, 이에 관하여 온대 지역은 비교우위에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기존 가설에 더하여 다이아몬드는 각 대륙의 활용할 수 있는 동식물과 환경의 차이가 농경생활의 강도와 기술 혁신에 영향을 주어 대륙 간 불평등의 기원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서 가축과 재배 가능한 동식물이 많아지면 사냥과 채집생활을 하던 사회가 농경사회로 이양되고,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노동의 분화와 무역 및 기술혁신 등, 사회 전반적인 발전이 급속도로 전개되어 번영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원으로 근대 서아시아의 비옥한 초승달지대(Fertile Crescent)가 아메리카 대륙보다 부유한 사회로 먼저 발전할 수 있었다는 사례를 제시합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석학의 깊은 통찰력에 공감하면서도 개운치 않은 의문점이 한동안 쉬 떠나지 않고 서성거렸습니다. 이 가설은 마치 망원경으로 본 현재의 현상을 일반화 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같은 지역권 내에서도 부의 불평등은 시대에 따라 요동치듯 변화를 거듭하였으며, 그 파고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한때 동남아시아의 맹주로서 찬란한 앙코르문명을 건설한 캄보디아였지만 지금은 주변의 어느 나라보다도 가난하며,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몽골이었지만 지금은 동북아의 북방에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같은 유럽권 내에서도 동구는 서구의 발전과 보폭을 맞추지 못하고 뒤쳐지다가 붕괴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광복 전후 경제력에서 북한이 남한보다 우위에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남한이 북한보다 40배 이상 앞서 있습니다. 지리적 위치 가설에서는 이와 같은 질문에 관한 대답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수년 간 바쁜 일상에 묻혀 당초의 궁금증도 시들해질 무렵, 대런 애쓰모글루ㆍ제임스 A.로빈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읽었습니다. 저자는 먼저 세계불평등 문제에 대한 기존의 이론들을 검토합니다. 즉,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주장하는 지리적 위치 가설, 문화적인 요인을 부의 근원으로 보는 문화적 요인 가설, 그리고 경제학자들의 무지 가설 등에서 주장하는 논지의 한계를 조목조목 비판한 후, 국가 간 빈부의 기원은 제도의 차이라고 결론을 짓습니다. 한 나라의 빈부를 결정하는 데 경제제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그 나라가 어떤 경제제도를 갖게 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와 정치제도이며, 정치 및 경제제도의 상호작용이 한 나라의 빈부를 결정한다(27)는 것입니다

 

이 주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노갈레스시입니다. 이 도시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 북쪽은 미국 애리조나주에 속해 있으며, 남쪽은 멕시코 소노라주의 관할입니다. 북쪽의 시민은 연평균 3만 달러 수준의 가계 수입과 다양한 공공서비스의 수혜를 누리며 살아가는데, 남쪽의 시민은 북쪽 시민의 3분의 1 수준의 수입과 열악한 공공서비스를 감내하며 살아갑니다. 지리나 기후는 물론 창궐하는 질병의 종류까지 다를 게 없으며(29), 조상도 같고 즐겨 먹는 음식과 즐겨 듣는 음악 등, 문화마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30), 이처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 각기 소속 국가의 서로 다른 정치 및 경제제도가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북쪽 노갈레스는 미국의 정치ㆍ경제제도가 마련해놓은 인센티브에 따라 사업가와 기업인의 투자가 왕성하게 이루어지며, 시민은 스스로 교육과 기술을 습득하고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하여 부를 축적합니다. 이러한 경제제도에서 창출한 부는 궁극적으로 공공서비스의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고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시민은 민주주의 과정에 참여하여 대표를 뽑고, 그들이 정도를 벗어나거나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갈아치우는 정치제도가 뿌리내리고 있습니다(30). 반면에 남쪽은 2000년 정치개혁 이전까지 썩을 대로 썩은 멕시코의 제도혁명당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사업가와 기업인은 창업 허가를 받기 위해서 무수한 관리에게 뒷돈을 주어야 했고, 시민의 교육 및 직업 선택의 기회는 열악했습니다. 또한 법질서와 공공서비스는 엉망이었습니다. 기업이나 시민의 인센티브가 없는 정치ㆍ경제적 악순환의 고리가 꼬일대로 꼬여있었던 것입니다.

 

노갈레스시의 사례는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한 국가가 개방과 포용의 정치ㆍ경제적 제도를 선택하고 발전시키느냐, 착취적 제도를 운영하느냐가 결정적 요인이라는 점입니다. 개방과 포용의 제도에서 인간은 인센티브를 찾아 일하고, 창조적 파괴를 기꺼이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부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착취적 제도에서는 인센티브도 창조적 파괴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난에 빠지는 이유입니다. 오늘날 남북한 경제력의 현저한 차이도 노갈레스시의 사례와 같은 맥락에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국가가 실패하는 원인은 착취적 경제제도가 국민과 기업가에게 인센티브와 창의력의 발현 기반을 마련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착취적 경제제도는 착취적 경제제도를 뒷받침해줄뿐입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착취적 정치ㆍ경제제도는 국가가 실패하는 근본 원인일 수밖에 없습니다(523).

 

지금 세계는 4차산업혁명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기술과 융합하여 개인과 국가의 발전과 부를 창출합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한국이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인적ㆍ기술적 조건도 매우 좋습니다. 한국의 창의성지수(Creativity Index)가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창의성지수는 재능(Talent), 기술(Technology) 그리고 관용(Tolerance)지수의 결과를 종합하여 도출합니다. 한국은 상위권의 재능 및 기술지수를 유지하고 있지만 창의성지수는 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매우 낮은 관용지수 때문입니다. 이는 곧 새롭고 이질적인 생각과 발상에 대한 개방과 관용이 매우 인색하다는 함의입니다. 새롭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교류할 수 있으며, 실패를 용인하고 재도전의 디딤돌이 되어주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의 발전과 부를 이루어내는 원천이라 하겠습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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