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피로사회(한병철 저, 김태환 옮김, 2015) / 차용국

박현식 | 기사입력 2020/03/13 [22:08]

[서평] 피로사회(한병철 저, 김태환 옮김, 2015) / 차용국

박현식 | 입력 : 2020/03/13 [22:08]

▲ [서평] 피로사회(한병철 저, 김태환 옮김, 2015) / 차용국



 

 

피로사회(한병철 저, 김태환 옮김, 2015) / 차용국

 

 

최근 한 여행 전문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단체관광보다 홀로 여행하는 경향이 증가한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관광지보다 혼자 한적한 곳에서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말입니다. 스마트폰에 깔린 SNS 앱을 끊고, 모임도 기피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입니다. 이를 조모(JOMO : Joy Of Missing Out) 현상이라고 합니다. 정보와 유행에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포모(FOMO : Fear Of Missing Out) 현상의 반대 개념입니다. 조모 현상은 과잉 정보와 과잉 인간관계로부터의 해방을 갈구하는 몸짓으로 볼 수 있고, 치열한 경쟁과 피로로부터의 도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 시대를 지배했던 통제와 규율이 디지털 시대로 변하면서 개방과 자율로 대체되는데, 경쟁과 피로는 전혀 호전되지 않은듯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 한병철은 지금 시대는 지난 세기를 지배했던 부정성의 패러다임이 긍정성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었거나 변화해가는 과정이라고 진단합니다. 금지, 강제, 통제, 의무, 결핍, 타자에 대한 거부 등과 같은 부정성의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시대는 규율사회이며, 복종적 주체의 활동무대입니다. 반면에 능력, 성과, 자기 주도, 과잉, 타자성의 소멸 등과 같은 긍정성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된 시대는 자율사회이며, 성과 주체가 활동하는 사회입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긍정성을 기저로 한 자율과 성과사회입니다. 그러면 지금의 사회에서는 지난 세기에서의 병리가 해소 내지는 완화되었을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기 때문입니다(11).

 

병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부정성이 지배하는 규율사회는 면역학적입니다. 면역학적 행동의 본질은 공격과 방어입니다. 면역 방어의 대상은 타자성 자체입니다. 아무런 적대적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타자도, 아무런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타자도 이질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제거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12). 규율사회에서의 경쟁과 폭력은 타자를 향한 것입니다. 반면에 긍정성을 기저로 한 성과사회는 더 이상 이질성과 타자성이 의미 있는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성과사회에서의 이질성은 차이일 뿐이고, 타자성 역시 날카로운 대립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질성과 타자성이 소멸한 성과사회에서 경쟁과 폭력의 대상은 자아입니다.

 

폭력은 부정성에서뿐만 아니라 긍정성에서도 나올 수 있습니다. 이질적인 것, 낯선 것뿐만 아니라 같은 것도 폭력의 원천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17). 성과사회의 자아를 향한 폭력은 적대성의 대상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박탈하기보다 포화시키며,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갈시키는 것입니다(21). 성과사회의 주체는 성과 극대화를 위해 스스로 과다한 노동에 투신하며 만족감을 느낍니다.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가하는 폭력이기에 그 심각성을 지각하지도 못합니다. 끊임없이 자기 착취로 치닫는 폭력은 영혼의 황폐화와 극심한 피로로 귀결됩니다.

 

성과사회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입니다(66).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질주하다가 갑자기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모든 능력을 소진하는 피로입니다. 그것은 모든 공동체, 모든 공동의 삶, 모든 친밀함을, 심지어 언어 자체마저 파괴하는(67) 심각한 피로입니다. 성과사회에서는 법과 의무에 복종하거나 타자와의 경쟁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성과 향상을 위해서 자신을 과잉 노동으로 몰아붙이지만, 결코 결실의 만족감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성과의 기대감도 끝없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결국 성과사회에서의 노동은 애초부터 목표와 완결성이 없는 성과 재생산 자체를 위한 노동일 뿐입니다. 성과 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 나타나는 질병이 우울증입니다. 우울증은 일차적으로 과잉 노동과 능력의 소진에서 발발하는 피로입니다.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는 증상입니다(28). 성과사회에서는 자신과의 전쟁으로 인해 지치고 소진해버립니다. 성과 주체는 자신의 굴레에서 벗어나 타자와의 공간을 함께 할 줄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자신의 세계에서 이를 악물고 자신의 노동에 채찍을 휘두를 뿐입니다. 과도한 선택의 자유를 누리는 성과 주체는 강력한 유대의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우울증은 모든 유대를 끊어버립니다(96)

 

성과사회의 주체는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지난 세기의 예속적 본성을 지닌 주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외적 강제에서 해방되었다고 믿는 긍정성의 사회는 파괴적 자기 강제의 덫에 걸릴 수 있습니다. 21세기의 대표 질병인 소진증후군이나 우울증 같은 심리 질환들은 모두 자학적 특징을 보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폭력을 가하고 자기를 착취합니다. 타자에게서 오는 폭력이 사라지는 대신 스스로 만들어낸 폭력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그러한 폭력은 희생자가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104). 폭력의 극단적인 자기 착취는 피로와 우울증을 유발합니다.

 

궁핍한 시대에 사람들은 흡수와 동화에 관심을 가지지만, 과잉의 시대에는 거부와 배척에 주목합니다. 과잉의 시대에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최적의 선택도 어려운 숙제가 되기도 합니다. 정보의 과잉은 개인과 국가 및 인류 전체의 저항력을 떨어뜨릴 위험성도 있습니다. 사회의 패러다임이 부정성에서 긍정성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유토피아가 만들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긍정성의 과잉을 기저로 한 성과사회는 오히려 매우 강렬한 성공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성과사회의 문제점과 질병도 바로 이런 욕망에서 발발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의 가치에 관한 성찰과 자각 및 사려 깊은 실천을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라이언 20/03/14 [10:06] 수정 삭제  
  좋은 서평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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