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63-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63회 챕터20 <나를 받으소서> 제1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 기사입력 2020/03/14 [16:29]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63-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63회 챕터20 <나를 받으소서> 제1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 입력 : 2020/03/14 [16:29]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63-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김명희(시인 .소설가)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63회 

챕터20 <나를 받으소서> 제1화

 

▲ 제2회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챕터20 간지 표지  © 김명희(시인 .소설가)

 

 

 

 

 

 

“이제……. 그자들과 약속된 시일이 다 찼구려. 곧 최하라는 자가 와서 약조대로 이 서책을 가져갈 것이오.”

 

“영감님…….”

 

울지 않으려던 그녀의 얼굴에 두 줄기의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젠 그자가 이 서책을 명나라로 팔아먹든 어쩌든 안타깝게도 내 권한 밖의 일이 되었소……. 부디 석가모니부처님의 가호가 계셔서 이 금속활자주조실험 비법서가, 고려의 명운을 더 옭아맬 간악한 무리들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말기만 바랄뿐이오.”

 

 

 

 

 

< 20. 나를 받으소서 >

 

1

 

공민왕 17년 묘덕의 나이 어느새 48세가 되었고, 백운화상은 69세가 되었다. 묘덕은 어느새 많이 늙은 여인이 되어있었다. 명나라가 건국되자 공민왕은 이인임을 보내서 명과 협력하여 요동에 있는 원의 잔존 세력을 공략했다. 공민왕 19년에는 이성계로 하여금 동녕부를 치게 했다. 오로산성을 점령시켜 쇄잔 했던 고려의 국위를 만방에 떨쳤다. 내정에 있어서는 전형권을 쥐고 있던 귀족회의 기관인 정방을 폐지했다. 신돈을 채용하여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했다. 귀족들이 겸병한 토지를 본 소유자에게 모두 반환하고 불법으로 노비가 된 사람들도 풀어 주었다. 그러나 홍건적과 왜구가 쳐들어와서 나라의 우환이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활자장 영감의 남은 눈을 인두로 지지고 강제로 금속활자주조실험서(金屬活字鑄造實驗書)를 갈취해간 최하와 망이는, 보름 후 영감에게서 다시 건네받은 그 비법서를 결국, 웃돈을 더 받고 명나라 상인에게 팔기로 했다. 그러나 약조한 날을 기다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얼마 못 가 그의 움막에 불이 나고 말았다. 최하는 그 마지막 남은 활자비법서와 함께 불에 타 한줌 재가 되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영감에게서 앗아간 금속활자주조실험비법 원서는 명나라 상인의 손에 넘어가지 않고 움막에서 소각되어 허공으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 서책이 허공의 재가 된 것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허나 최하와 망이의 가시덤불 같았던 거친 삶은 가엾고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포악하고 이기적이었던 그자들의 불행한 삶은 어느 한때 사람답게 행복함을 누려보지도 못한 채 그렇게 연기와 함께 허공 속으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이 영감 마음을 몹시 스산하게 만들었다. 영감은 그 충격으로 주자소를 모두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 후 영감은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

 

그해 4월, 백운화상이 묘덕에게 출가준비를 하라고 제자 달잠을 통해 전갈을 보내왔다. 청주목에 있는 흥덕사에서 출가식이 있을 예정이니 그곳으로 오라는 전갈이었다. 인도 고승 르마난타가 마침 왜국에 머물고 있어 특별히 모시기로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흥덕사는 백운화상이 원나라로 떠나기 전날 머물던 남다른 사찰이었다. 그날 사랑하는 묘덕을 잊지 못해 온 세상을 정처 없이 떠돌던 백운화상이 청주목에 다다랐을 때, 무심천변에서 모든 속세의 사랑을 내려놓았었다. 오래전 그날 밤 백운화상이 달빛을 보며 울다 흥덕사에 깃들어 장삼가사자락 모두 벗어놓고 밤 새 맨 몸으로 온 몸이 부서지도록 법고를 두드렸던 일을 묘덕이 알 리 없었다. 백운화상은 자신에게 특별한 흥덕사에서 자신이 아꼈던 속세의 한 여인을 마지막으로 허심 없이 내려놓고 싶었다. 그녀를 무심천과 함께 자신의 가슴 안에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2

 

묘덕은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를 풀었다. 긴 머리가 그녀의 나이 들어 굽어가는 허리께까지 늘어졌다. 어느새 세월은 그녀의 고운 머릿결 안쪽까지 들어차 머리가 희끗희끗 했다. 천천히 정성을 다해 머리를 감으며 그녀는 속세 여자로서 마지막 세모 식을 가졌다. 물기를 말려 가지런히 빗고, 다시 곱게 틀어 올리는 것을 여종 금비가 다가와 말없이 시중들었다. 묘덕은 주름 가득한 손으로 방안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금비에 대한 사노비문서였다. 마당 한켠에 앉아 문서에 조용히 불을 붙였다. 묘덕은 금비에 대한 사노비문서를 망설임 없이 불태워 바람에 날려 보냈다. 문서는 삽시간에 한줌 검은 재가 되어 깃털처럼 공중으로 멀리 흩어졌다. 그녀가 그것을 오래 바라보다 천천히 일어나 금비를 품에 꼭 안았다.

 

“금비야. 그동안 못난 내 수발을 드느라 고생 많았다. 이제 내가 오늘 저 문을 나서거든 이 집은 내가 어제 이른 대로 얼마를 받든 거간꾼에게 모두 처분하여라. 이집을 판돈은 모두 양평목 용문산에 건립중인 윤필암에 시주해다오. 그리고 너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느니라. 어제 사람을 보내 조정 상서도관(尙書都官)에도 네 신분에 대한 자유를 미리 기별해두었다. 이제 너는 누구의 노비도 아닌 게야. 그러니 당당하게 너의 고향으로 돌아가라. 알겠느냐? 네 방 첫 번째 반다지에 네게 필요한 노잣돈과 고향에 내려가 자리 잡을 밑천을 좀 넣어 두었다. 그 돈을 갖고 고향으로 가서……. 좋은 사내 만나 애틋한 사랑 듬뿍 받으며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꼭 닮은 예쁜 아이들 많이 낳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야한다. 알겠느냐?”

 

“네, 감사합니다요. 아씨. 부디 몸 건강 하세요……. 흐흑!”

 

“그래, 우린 다시 만날 것이야……. 곧 금속활자를 본격적으로 만들게 되면, 지리산 밀랍을 구해야 하니, 그 때 네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잘 알겠습니다요.”

 

금비가 그녀의 품에 안겨 흐느껴 울었다. 그동안 금비를 시켜 하나씩 정리를 해두긴 했지만 묘덕에게는 애증이 엇갈리는 집이었다. 알 수 없는 스산함을 뒤로하고 그녀는 오랫동안 정들었던 대문을 나섰다. 그 길로 곧장 아무 미련 없이 수게식이 있을 청주 흥덕사로 떠났다. 사월이지만 꽃이 아닌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묘덕은 잿빛 하늘을 주름진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사월에 내리는 눈이라……. 사월에 눈이 내리다니 신기한 일도 다 있구나. 사월에 내리는 눈은 향기가 없구나. 세상은 어느 것도, 확신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어…….’

 

쓸쓸히 걷는 그녀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얼비쳤다. 온 세상에 꽃이 만발해야 할 봄이었지만 날씨가 무척 차가웠다. 무심천을 건너고, 양병산 동남쪽 기슭의 오솔길을 지나자 연당리 마을이 멀리 보였다. 그곳 흥덕사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3

 

절 마당은 벌써 분주했다. 흥덕사 주지 영인스님이 뛰어나와 그녀를 반겼다. 묘덕은 옷을 갈아입고 숙연한 마음으로 흥덕사 법당으로 들어갔다. 모든 선승들이 자리에 앉자, 대웅전에서 잠시 백운화상의 설법이 게송 되었다. 백운화상은 선상 위로 올라 주장자를 한 번 내려치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세 칸밖에 안 되는 전이 비록 좁기는 하지만

 

시방법계를 두루 머금고 있으며,

 

스스로 깨친 자가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자 말해 보시오.

 

어떤 것이 스스로 깨친 자인가를! 할!”

 

 
그의 목소리에서도 연로한 세월이 베어났다. 그는 ‘할’을 외치고,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로 이 자리를 떠나지 말고

 

여기에서 담연하고 고요하게 그것을 살펴보시오.

 

그러면 스스로 깨친 자가

 

앞에 있는 듯하다가도 홀연히 뒤에 있기도 합니다.

 

그것은 마치 신통변화와 같아서

 

일정한 방향과 자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자 말해 보시오.

 

스스로 깨친 자란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처럼 기괴한가를!”

 

 
백운화상은 좌중을 주름 깊은 눈으로 잠시 바라보다가,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작년에는 손님처럼 있더니만 오늘은 주인이 되었구나.

 

달리 기특할 것도 없이 당당한 6척 길이의 몸뚱이만 분명하구나.’

 
백운화상은 주장자를 한 번 내려치고는 선상에서 내려왔다. 어느새 백운화상도 많이 늙어있었다. 장엄하고 숭고한 불교의식 속에 쉰이 다 되어 출가한 묘덕의 삭발식이 시작되었다.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염불소리가 돌림노래처럼 이어지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독경소리는 신비로웠다. 법당 가득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녀가 천천히 머리에 꽂았던 비녀를 빼고 틀어 올렸던 머리를 길게 풀어 내렸다. 그녀는 들릴 듯 말듯 떨리는 숨을 내 쉬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숙연하게 앉아있는 곳으로 백운화상이 삭발도구를 챙겨 침착하게 다가왔다. 묘덕은 백운화상에게 머리를 깊이 숙이고 눈을 감고 모든 것을 내맡겼다.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

 

눈을 감은 그녀에게 가까이에서 백운화상의 체취가 느껴졌다. 그의 노쇠한 숨소리가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알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서늘한 칼날이 머리에 느껴졌다. 두피에 닿는 차가운 칼날의 감촉이 박하처럼 청량했다.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

 

‘사각……. 사각…….’

 

한 올 한 올 기다란 머리카락이 잘려 발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묘덕을 속세에서 한 송이 꽃이게 했던 오랜 형상들이 망설임 없이 잘려나갔다. 백운화상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묘덕에게 느껴졌다.

 

‘사각사각’

 

 

 

고요히 눈을 감은 묘덕의 귓가에 갈바람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 다음 주 토요일 ( 3/21) 밤, 64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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