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64-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64회 챕터20 <나를 받으소서> 제2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 기사입력 2020/03/21 [18:01]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64-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64회 챕터20 <나를 받으소서> 제2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 입력 : 2020/03/21 [18:01]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64-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김명희(시인 .소설가)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64회 

챕터20 <나를 받으소서> 제2화

 

▲ 제2회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챕터20 간지 표지     ©김명희(시인 .소설가)

 

 

 

 

 

고요히 눈을 감은 묘덕의 귓가에 갈바람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알 수 없는 무거운 가벼움이 그녀의 마음을 점령해나갔다. 잘린 머리카락이 그녀의 주름진 목과 어깨를 스치며 ‘투둑, 투둑,’ 떨어져 내렸다. 그것들은 묘덕의 흰 버선 발아래로 우수수 쌓여갔다. 백운화상은 달잠을 시켜 묘덕의 반백이 된 머리카락을 소중히 받아냈다. 삭발식의 장엄한 예식과 함께 절 마당 한켠에서는 승무가 눈부시게 펼쳐졌다.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

 

‘인간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사라지는가……. 내 안에 있는 번뇌라는 우물은 언제쯤 가야 마를 것인가……’ 묘덕은 생각했다.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

 

그녀는 긴 머리가 잘려나가면서 현실의 슬픔과 번뇌도 하나씩 잘려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삭발을 마치고 백운화상이 향에 불을 붙여 하나를 들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연비를 위해 그녀가 야윈 손목을 걷어 올리며 다시 눈을 감았다. 파르라니 깎은 그녀의 모습이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백운화상이 손에 들고 있던 향불로 묘덕의 오른팔에 엄숙히 연비했다. 이제 고승 르마난타의 설법을 들으며 그녀가 계를 받을 차례였다.

 

“깨끗이 믿어야 할 4귀를 받으라.”

 

“형상 없는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무생의 부처님 교법에 귀의합니다. 다툼 없는 스님네께 귀의합니다. 최상승 무생계에 귀의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모든 삼업 죄를 참회하여 없애라.”

 

“도는 본래 깨끗하건만 미혹하여 모른 까닭에 한량없는 죄를 짓게 되어 번뇌의 이 몸 받았네……. 제가 이제 애달프게 참회하오니 불보리를 속히 증득하게 해 주소서…….”

 

“나무관세음보살…….”

 

“육대원을 크게 발하라.”

 

“일체 중생이 성불하지 않으면 저 역시 성불하지 않겠습니다. 일체 중생이 지닌 모든 번뇌를 제가 대신 받겠습니다. 일체 중생의 어리석음을 밝은 지혜로 바뀌게 하겠습니다. 일체 중생이 지닌 모든 재난을 안온하게 하겠습니다. 일체 중생의 모든 탐‧진‧치를 계‧정‧혜로 바뀌게 하겠습니다. 일체 중생이 모두 저와 더불어 정등각을 이루게 하겠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온갖 착한 일도 닦지 말고 악한 일도 짓지 말라. 위의 조항들은 옛날 법도를 갖추었으므로 또렷이 지닐 경우 한 번만 귀에 스쳐가도 모두 보리를 증득할 수 있나니 깊이 사유하고 수습하여 영원토록 부처님 법을 신봉함으로써 다 함께 어지러운 이 나루터를 떠나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올라가야 하느니라.”

 

“나무관세음보살…….”

 

“이 나라 임금의 성수가 만세에 이르소서. 세자와 왕들의 수명이 천수에 이르소서. 궁궐의 풍요로움이 영원토록 무성하소서. 국왕전하의 복수가 무강하시고, 문무관료의 벼슬이 더욱 높아져 천하가 태평하여지고, 바람과 비가 알맞고 나라가 태평하여져 백성을 편안하게 하여 주소서. 부처님의 위대하심이 빛을 더해가고, 부처님의 법 또한 늘 온 세상으로 전해지길 바라나이다.”

 

“나무관세음보살…….”

 

“여래께서 제자들에게 유교 전수한 일승계법을 서천의 선사 르마난타가 우바이 묘덕에게 내려 주노라.” 

 

묘덕이 계첩을 받고 나자 백운화상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묘덕스님……. 이제 어디로 가실 것입니까?”

 

잔잔하게 미소 짓는 그녀. 얼굴 한쪽이 심하게 남은 흉터로 인해 심하게 일그러졌다. 백운은 그녀의 일그러지는 미소를 볼 때마다 가슴이 저려왔다.

 

“스승님은 이제 어디로 가시렵니까?”

 

“소승은 전국을 돌아볼 생각입니다만…….”

 

“스승님. 저도 전국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소승과 함께 곳곳에 현존하시는 부처님을 만나러 가시렵니까?”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백운화상은 말없이 다가와 묘덕에게 원나라 유학시절에 가져온 직지(直指)라는 책을 건네주었다.

 

“자. 묘덕스님……. 이제 이 책을 가까이 해보세요. 스님의 영혼이 자비의 광명세계로 나아가도록 늘 깨어 정진하세요. 모든 허상을 멀리 하시고 바로 보고 바로 깨닫는 길로 가세요.”

 

“나무관세음보살…….”

 

묘덕스님이 파르라니 깎은 머리로 장삼가사를 단정히 차려입고 백운화상을 향해 합장했다. 흥덕사 영인스님도 묘덕스님을 보며 인자하게 웃었다. 오전의 궂었던 날씨는 사라지고 봄 햇살이 흥덕사 뜨락에 가득했다. 하얀 목련과 수줍은 몽우리를 터뜨린 히어리가 청주의 맑은 하늘을 향해 선녀 같은 날개옷을 한껏 펼쳤다. 그 아래 화단에는 돌단풍들과 밀짚꽃이 앙증맞고 예쁘게 향기를 뿌리며 묘덕스님의 출가를 축하했다.

 

4

 

묘덕스님이 흥덕사 주지스님이신 영인스님과 석찬스님의 선방을 찾아온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묘덕스님, 어인 일이십니까?”

 

“아, 예. 영인스님과 석찬스님께 긴히 의논드릴 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석찬이 묘덕에게 고요히 차를 권했다.

 

“하실 말씀이 무엇이신가요?”

 

“스님. 그동안 제가 준비해 온 것이 좀 있습니다. 백운스승님의 설법을 견고한 서책으로 만들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스님 생각은 어떠세요?”

 

영인스님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흠……. 그러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안 그래도 모든 속세의 중생들이 백운화상스님과 같은 큰 스님의 어록에 감화되어 부처님의 뜻을 알아가는데, 그 깨달음의 말씀이 여러 권의 책으로 만들어진다면 온 세상의 주린 마음들이 평온을 되찾고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될 것이옵니다. 그것은 부처님도 하루속히 이뤄지길 바라시는 일이실 겁니다.”

 

석찬스님이 입을 열었다.

 

“허나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말씀입니다. 오래전부터 우리제자들 사이에서도 자주 의논이 오갔던 일이지만 비용의 걸림돌 때문에 수시로 의논이 멈췄던 일입니다.”

 

“스님. 비용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가산을 정리 한 게 있으니 충족치는 않아도 부처님 설법을 정리한 백운화상스님의 어록을 금속활자로 만들 정도는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온 세상에 부처님의 자비와 가르침을 더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고요.”

 

“흐음……. 그럼요. 물론입니다. 저희가 죽기 전에 행해야할 선업이기도 하지요. 허나, 금속활자를 만들려면 다량의 밀랍과 질긴 한지와 많은 청동이 필요합니다. 그 모든 것을 준비하려면 생각처럼 만만치는 않을 것입니다. 묘덕스님도 많이 힘드실 터인데.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가능합니다. 모든 것을 부처님의 선업을 위해 기꺼이 바칠 것입니다.”

 

놀란 쪽은 역시 석찬스님과 영인스님이었다. 묘덕스님은 상당한 재산가였다. 그녀는 죽은 충숙왕의 여식이었고 덕비 홍씨의 딸이었다. 그녀는 많은 학자나 권세 있는 집안과도 교류하고 지냈던 세력가 정안군의 미망인이었다. 그 많은 재산을 묘덕스님이 선뜻 시주하겠다는 말에 석찬도 내심 무척 놀라웠다.

 

“스님. 제 가부께선 세상을 등지셨고 제 후손 또한 없습니다. 어려서 생모와 이별한 후 저를 거두어 주시고 오랜 세월 저를 보살펴주셨던 부처님과 백운화상스승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에서 결정한 일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위로가 없었다면 지금 저는 이승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고난이 닥칠 때마다 매양 불심으로 마음을 다스려 왔습니다. 이제 부처님 전에 출가를 한 저입니다. 이 세상에 홀로 남은 제가 재산을 가지고 있은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일평생 제 마음을 다스리고, 속세의 인연에 연연하지 않게 해 준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 제 소원이었는데, 이제 그 뜻을 이뤘습니다. 그러니 이제 마지막 남은 가산을 부처님 전에 바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저의 모든 가산은 제 힘과 땀으로 이룬 것이 아닙니다. 이 모두가 부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가능했지요. 이제 다시 그분께 돌려드리는 것뿐입니다.”

 

석찬스님과 영인스님이 기쁘게 마음을 모았다.

 

“묘덕스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니 그럼 저희도 함께 마음을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부처님의 귀한 가르침이 스승님의 손길로 널리 세상을 보듬고 선업으로 이끌 날이 앞당겨지길 기도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영인스님이 나섰다.

 

“묘덕스님. 그렇다면 지금부터 하나하나 준비를 하기로 하시지요. 소승이 한편에 공간을 마련하라 이르겠습니다.”

 

“네, 영인스님 고맙습니다. 밀랍은 제 여종이었던 금비에게 미리 부탁해 두었습니다. 금비의 고향이 지리산입니다. 지리산자락에 벌을 치는 농가들이 워낙 많으니 곧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지는 안동속현과 전주속현에 부탁을 해 놓았습니다. 저희가 원하면 바로 보내주실 것입니다.”

 

“아, 그러셨군요. 금속활자에 쓰는 묵은 목판에 쓰는 송연묵과 달리 기름 성분이 가미된 유연묵을 써야합니다. 유연묵은 오랜 시간이 걸려 조금씩 모아지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릴 듯합니다. 그럼 유연묵과 용광로와 가마는 제가 알아보고 설치하겠습니다.”

 

“네, 스님 고맙습니다. 제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활자장 최영감님께도 한번 더 이 일을 도와 달라 부탁드렸지요. 기별을 드리면 바로 오신다 하셨습니다.”

 

“아이구. 묘덕스님께서 그간 여러모로 준비를 많이 해 오셨군요. 참 대단하십니다. 아무튼 이번의 묘덕스님 뜻을 우리 흥덕사의 불제자들에게도 널리 알리어 최대한 힘을 보태겠습니다.”

 

“두 분 스님께 감사함을 올립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묘덕스님이 석찬스님과 영인스님께 공손히 합장하고 선방을 나왔다. 

 

 

 

 

 

 

-> 다음 주 토요일 ( 3/28) 밤, 65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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