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한국문화인류학회 엮음, 2010) / 차용국

이정현 | 기사입력 2020/04/01 [12:22]

[서평]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한국문화인류학회 엮음, 2010) / 차용국

이정현 | 입력 : 2020/04/01 [12:22]

 

▲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한국문화인류학회 엮음, 2010) / 차용국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한국문화인류학회 엮음, 2010) / 차용국

 

문화인류학자 로잘도(R.Rosaldo)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패잔병들과 필리핀 일롱고(Ilong)족과의 사이에 벌어진 사건들을 연구하면서, 일롱고족 원주민에게 그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 물어보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 그게 그러니까 우리가 부와 계곡을 지날 때이던가......''

''아, 그 일은 우리가 카키두젠 시내를 건너던 날 일어났지......(19쪽)''

 

한국의 문화인류학자 윤택림이 해방 후 한국 사회의 역사적 변화를 연구하러 충청남도 서산군의 어느 마을 할머니를 찾아가 일련의 일들이 언제 일어났는지 물어보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글쎄, 그게 내가 시집오던 해니까......''

''글쎄, 그게 내가 큰 아이 해산하러 친정에 가 있을 때니까......(21쪽)''

 

위 사례를 살펴보면, 일롱고족이나 서산군 할머니는 시간을 장소와 공간 또는 자신의 신상에 일어났던 중요한 일과 연관지어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시간은 '언제'가 아니라 '자신이 어디에 있었을 때 또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때'를 말합니다. 현대인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시간 개념과는 사뭇 다르기만 합니다.

 

현대인은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고, 일주, 한 달, 일 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이러한 시간 개념은 인류의 보편적인 개념일까? 지금 오지에서 농어업과 목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조선시대 살았던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시간 감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들은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눌 이유도 없고, 일주라는 것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씨를 뿌리고, 물때를 알고, 가축을 몰고 나갔다 들어오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니, 하루를 12시간으로 나누고, 보름, 한 달, 일 년 단위로 흘러갔을 것입니다(20쪽).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시간 개념은 인류의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가 짧은 산업사회의 산물이었던 셈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중요한 관심사에 따라 서로 다른 시간 개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어찌 시간에 관한 인식의 다름뿐이겠습니까?

 

개인 간 또는 민족 간의 다름은 결국 옮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마치 물고기가 자기가 살고 있는 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듯이 하나의 문화 속에서 성장한 사람은 자신의 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들을 인식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새빨갛고 매운 김치는 17세기에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한 것으로서 역사가 300년도 되지 않지만, 오늘날 한국인들은 김치를 가장 대표적인 '한국인의 민속 음식'으로 여기고 있습니다(24쪽). 오늘날 김치의 주요 재료인 배추는 불과 100년 전에 들어온 품종이고, 고추는 조선 시대 임진왜란 무렵에 들어온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랜 옛날부터 지금과 같은 김치를 먹어온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실은 현재 한국인의 입맛이 베어 있는 전통의 옷을 입은 퓨전 음식인 데도 말입니다.

 

인간은 특정 문화에서 태어나 성장하는 가운데, 즉 문화화 과정에서 특정한 유형의 정보에는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 또 다른 유형의 정보는 차단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21쪽). 인류는 지난한 진화 과정에서 잉여에너지를 비축하였다가 유사시 사용하는 것이 생존과 유전에 유리하다는 것을 터득했습니다. 사소한 모든 정보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에너지를 과잉 소비하고 충원해야만 하는 수고로운 일이기에 피하려고 하는 문화를 선호하는 것입니다.

 

문화는 흔히 '하나의 인간 집단이 공유하는 가치나 신념' 또는 '삶의 디자인'이라 정의되지만, 가장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는 오히려 사회 구성원들 간에 '공유된 무관심'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문화 속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그 문화의 기본적인 가치나 여러 특질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 즉 의문을 품지도 않고, 질문도 하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30쪽). 이러한 태도는 자칫 자문화중심주의(ethnocentrism)를 고착시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자문화중심주의는 자신의 문화가 가장 우월하고 가치가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다른 문화 사람에게 강요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배운 대로 본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입니다. 눈을 뜨면 물체가 보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보는 법이 배움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같은 물체를 동일하게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22쪽). 배움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학교나 연구실에서 이론과 실험 및 사례들을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관찰하고 체험하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미 찾아내어 정립한 수많은 개념과 이론 및 사례들은 문화를 이해하는 도구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흥미진진하고 신기한 여러 다양한 문화의 관습과 제도들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배움은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는 것입니다. 문화인류학자들이 현지조사를 떠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문화인류학은 '인간의 거울(Mirror for Man)'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거울 속에서 인류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수만 세대를 진화해온 과거의 인간상과 살아갈 미래의 인간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인간상들은 현재의 '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나' 저편에 숨어 있는 낯선 '나'일 수도 있습니다. 그를 불러내 그를 이해하고 그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실은 낯선 나를 만나 함께 살아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문화인류학자들이 구태여 다른 문화로 현지조사를 떠나는 것은 자신의 문화를 더 잘 알기 위해서, 즉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기 위해서(30쪽)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생각과 행동이 다르지도 같지도 않은 다양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양성을 받아들이면서 다른 사람과 자신의 경험 세계의 차이를 꼼꼼하게 되짚어보는 훈련은 인류학자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291쪽)이 될 것입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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