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66-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66회 챕터22 <아! 불멸의 꽃, 직지(直指) > 제1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 기사입력 2020/04/04 [17:42]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66-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66회 챕터22 <아! 불멸의 꽃, 직지(直指) > 제1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 입력 : 2020/04/04 [17:42]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66-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김명희(시인 .소설가)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66회 

챕터22 <아! 불멸의 꽃, 직지(直指) > 제1화

 

▲ 제2회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챕터22 간지 표지  © 김명희(시인 .소설가)

 

 

 

 

 

“스승님. 무심천입니다…….”

 

“참, 저 물은 언제나 무심하게도 변함이 없습니다……. 저렇게 한결같이 치우침 없는 수행도 드물겝니다. 묘덕스님……. 저 물 말입니다. 오래전 소승이 한 여인을 병처럼 극진히 아꼈던 적 있었습니다. 어딜 가나 그녀가 늘 마음에 밟혀, 죽을 것 같다는 표현을 그 때 저도 경험했던 듯합니다. 허허허. 그녀에게서 도망치듯 세상을 떠돌다 그 때 저는 이 무심천 앞에 문득 서게 되었지요. 울기도 참 많이 울었지요. 정말……, 그녀가 걱정되어 그녀를 안보고는 단 하루도 살아갈 자신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정말 바라만 보기에도 아까운 여인이었지요. 그날도 달은 오늘처럼 밝아서 더욱 그 여인을 사무치게 보고 싶도록 만들었지요……. 오늘은 꼭 오래전 그날 밤 같습니다. 묘덕스님 그런데 말입니다. 소승은 처음에 그녀가 제 안의 번뇌와 망상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제 안의 부처였다는 것을 어느 날, 알았습니다. 저는 그때 비로소 그녀를 통해 무심(無心)을 깨달은 것이지요. 그녀로 인해 무심(無心)을 깨닫고 보니 막상 도를 깨달은 뒤에는 그녀가 전혀 내 마음에 밟히지 않더군요. 그녀를 향한 걱정에 시달리지 않으니 몸과 마음이 실체가 없음을 또 한번 보게 되었지요. 몸과 마음이 모두 헛것임을 알게 된 후로는 가고 오는 것 또한, 나고 죽음조차 시작도 끝도 처음부터 없었음을 깨닫습니다.”

 

“…….”

 

묘덕은 자신의 이야기임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듣고 있었다.

 

“묘덕스님.”

 

“네, 스승님.”

 

“스님은……. 소승이 이번에 다녀가는 이승에서 가장 잊지 못할 가르침을 준 부처입니다. 사랑도 아픔도 삶도 출가도 이별도 나는 이 모두를 당신을 통해 해탈하고 갑니다. 묘덕스님…….”

 

“네…….”

 

“소승은 이번 생에서, 처음과 나중까지 모두를 묘덕스님과 함께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인연을 안고 이승에 갇혀 살며 부처님 뜻을 찾아 헤매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한 시절 모두 꽃처럼 지고 새 계절로 나듯 우리도 그럴 차비를 할 때가 온 듯합니다.”

 

“…….”

 

“묘덕스님…….”

 

“…….”

 

“진정으로 당신을 불법(佛法) 안에서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부처님 뜻 안에서 사랑하고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소승은 영원히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을 영원히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오솔길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높으신 가르침 안에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돌아보면, 당신과 저는 이승의 부부연 조차 넘볼 수 없는 인연이었습니다. 스님과 저는, 가도 가도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었습니다. 스님과 저는 서로 읽을 수 없는 서책과도 같은 업을 안고 태어났었나봅니다. 그래서 제 안에 당신이 들어왔고, 걱정했고, 그래서 저는 당신을 오래도록 번뇌했습니다. 그것만이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부처님은 참으로 오래도록 기다려주시고 믿어주신 듯합니다. 오늘이 올 때까지 말입니다. 부처님이 보여주신 미르바나 언덕 건너편에, 항상 서 있을 당신을……. 저는, 나를 바라보듯 또한 부처님을 바라보듯……, 앞으로도 그렇게 오래 영원 속에서 당신을 바라보겠습니다. 제 눈으로 그대를 영영 볼 수 없게 되는 그 후에도. 영원히…….”

 

“…….”

 

묘덕스님은 흐느껴 울고 있었다. 그녀의 굽은 등이 힘없이 흔들렸다. 늙고 주름진 묘덕스님의 얼굴에 무심천을 흐르는 물처럼, 뜨거운 것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백운화상이 검버섯 피고 주름 가득한 손을 쓸쓸히 들어올렸다. 가늘게 떨리는 그 손으로 묘덕스님을 가만히 품에 안았다. 백운화상은 손을 들어 묘덕스님의 흉터 가득한 얼굴을 아버지처럼 자애로운 손길로 어루만졌다.

 

“묘덕스님. 당신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묘덕스님의 흐느낌에서 물기가 베어났다. 백운화상의 가슴은 요동치지 않았다. 심장소리도 숨소리도 너무나 고요하고 흰 구름처럼 평화로웠다. 그는 언제부턴가 겨울 들판처럼 드넓은 허공을 가슴 안으로 가득 채우는 법을 깨달은 듯했다.

 

“이제는 당신을 내 품에 안아도 내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는군요……. 이제야 비로소 나는 당신을 올바르게 사랑하는 부처님의 법을 깨달은 모양입니다. 이제야 고통 없는 사랑을 부처님 뜻 안에서 몸소 체험합니다.”

 

“흐흑……. 스승님.”

 

백운화상은 자신의 품에서 흐느끼는 묘덕을 고요히 내려다보았다. 아주 오래전 그녀가 어렸을 때 울면 그랬던 것처럼, 백운화상이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말없이 닦아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느리게 말했다.

 

“이 밤, 당신은 내 품에서 전혀 울지 않는데……. 무심천은 무슨 일인지 참 슬피도 울고 있습니다그려. 흐으음, 바람이 찹니다. 묘덕스님……. 이제 그만 들어가십시오. 나도 이제 먼 길을 떠나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네, 스승님…….”

 

백운화상은 그렇게 그 밤에 말을 타고 여주로 천천히 떠나갔다.

 

4

 

다음날 아침. 묘덕스님이 마당을 쓸고 있는데 급한 파발이 난데없이 흥덕사에 도착했다. 백운화상이 홀연히 입적했다는 급보였다. 새벽이 다돼서야 여주 취암사에 도착한 백운화상은 잠시 누웠다가 일어나겠노라 행자승에게 말을 남기고 영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부처님 계신 곳으로 영원히 돌아간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묘덕스님은 놀라 넋이 반쯤 나갔다. 제자들과 흥덕사 영인스님과 함께 서둘러 취암사로 달려갔다. 취암사 앞마당에 장작이 높다랗게 쌓이고 그 위에 백운화상이 잠을 자듯 고요히 누워있었다.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

 

묘덕스님은 주름 깊은 눈으로 잠을 자듯 누워있는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스승님이 누운 장작에 불이 지펴졌다. 오래도록 고요한 다비식이 이어졌다.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

 

긴 시간에 걸쳐 백운화상이 꿈을 꾸듯 평화롭게 열반에 들었다. 1374년. 묘덕스님의 나이 54세였고 백운화상의 나이 75세였다. 묘덕스님의 슬픔은 안으로 가득 침잠해 들어가는 평안한 슬픔이었다. 백운화상의 열반을 바라보며 오래오래 겨울 들판을 떠올렸다. 한 제자로서 깊이 존경했던 분을 떠나보내는 슬픔은 무엇으로도 씻을 길이 없었다. 그런 그녀 앞에 백운화상의 모습이 홀연히 허공에 나타났다. 불꽃이 이는 한 가운데서 말없이 웃고 있었다. 묘덕스님은 이제 영원히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백운화상의 미소를 구름 저 너머로 바라보며 평안히 가시길 부처님께 합장하며 기원했다. 백운화상은 그렇게 모두의 곁을 떠나 부처님 곁으로 돌아갔다.

 

 

 

며칠 후, 흥덕사로 돌아온 묘덕스님은 허허로운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지팡이에 겨우 의지했다. 그녀는 틈만 나면 자꾸만 눕고 싶었다. 그 때, 묘덕스님의 처소에 달잠스님이 찾아왔다.

 

“묘덕스님. 힘내세요. 스승님의 큰 뜻을 알리고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해주기 위해 묘덕스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뒤뜰에 직지(直指) 주조 작업설치가 다 되었으니 어서 가시지요. 우리 백운화상스승님의 뜻을 하나하나 금속활자로 뜨겁게 새겨야지요. 자자, 어서 기운내시고 일어나세요…….”

 

묘덕스님은 지팡이를 짚고 방문을 나섰다. 달잠스님을 따라 있는 힘을 다해 흥덕사 뒤뜰에 만들어 놓은 직지(直指) 주조 작업실로 향했다. 스승님의 뜻을 기리어, 쇠잔한 고려의 불심을 되살리고 눈부신 인쇄문화를 일으킬 대역사를 시작하기로 다짐하고 흥덕사 뒷건물로 갔다. 이미 모든 스님들이 모여 주조실행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제 더는 앞을 보지 못하는 활자장 최영감이 한 쪽에 지팡이를 짚고 앉아 이것저것 신중하게 지시를 하고 있었다. 묘덕스님은 활자장 최영감이 그새 몰라보게 연로해진 모습에 마음이 쓰렸다. 용광로에 불이 벌겋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옆 가마에서 밀랍을 끓여 채에 걸러내는 스님들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모두는 노을처럼 상기된 얼굴로 바삐 제 할 일을 하느라 분주했다. 목은 이색과 얼마 전 창산 부원군에 봉해진 성사달 영감도 이미 와 있었다. 백운화상의 신도였던 연화문인 보살님도 보였다. 직지(直指)의 서문을 담당한 목은 이색도 시주를 한 산 아래마을 부인들도 들뜬 마음으로 직지(直指)가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우선 실험삼아 한두 권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만약 예상대로 잘된다면 백운화상스님 어록 백여 권 완성을 그 첫 번째 목표로 정했다.

 

 

 

< 22. 아! 불멸의 꽃, 직지(直指) >

 

1

 

첫날, 판심제 판형틀을 만들고 밀랍을 녹여 판형틀에 붓고 응고시켜 밀랍판형을 만들었다. 그 위에 결정된 자본을 뒤집어 붙이고 밀랍판형에 붙여진 자본에 따라 조각칼을 사용하여 양각으로 새겼다. 셋째 날, 양각된 어미자의 획이나 굵기 등 내면을 잘 다듬었다. 연속된 밀랍판형인 경우에는 일정한 크기로 하나씩 낱개로 잘라내어 완성해나갔다. 밀랍봉을 사용하여 가지를 만들고 완성된 밀랍 어미자를 한 자씩 낱낱이 붙여 어미자 가지를 만들어나갔다. 다섯째 날, 밀랍 어미자를 녹여 낸 후 쇳물이 흘러 들어갈 수 있는 홈이 생기도록 밀랍봉을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래, 황토 등을 불에 뜨겁게 구워 물에 오래 침전시켜 정성껏 혼합한 주물토 반죽을 밀랍 가지에 발라 거푸집을 만들고 굳으면 열을 가해 밀랍 활자를 완전히 녹여 그 속을 비워냈다.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홉째 날 청동을 녹여 주형틀 입구로 쇳물을 붓고. 쇳물이 완전히 식을 때를 기다렸다가, 단단해진 거푸집을 깨뜨려 완성된 활자 가지를 정성껏 들어냈다. 완성된 활자 가지쇠가 식으면, 쇠톱으로 하나씩 조심조심 떼어냈다. 거친 활자들을 줄로 깎고 곱게 다듬어 활자면을 평평하게 매만지며 활자를 완성해갔다. 그 다음날 백운화상의 가르침 내용에 따라 활자를 뽑아 인판틀에 조판을 했다. 먼저 밀랍을 계선 사이에 깔고 열을 가하여 녹인 후 활자를 고정시켜 배열하고 인쇄하기 쉽도록 수평을 잡아주었다. 달포가 지난 어느 날, 선명한 인쇄를 위해 금속에 잘 묻는 유연묵을 골고루 발랐다. 활자면에 먹물을 칠하고 그 위에 질 좋은 한지를 올려놓고 사람의 머리카락을 둥글게 뭉쳐 만든 인체로 골고루 문질러 애벌인쇄를 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렇게 나온 애벌 인쇄물 교정을 다시 살펴 수정하고 필요한 부수만큼 인쇄해나갔다. 묘덕과 백운화상의 제자들과 흥덕사 스님들 모두 너나없이 앞다퉈 뛰어다니며 인쇄 일을 거들었다. 이제는 너무 연로한 활자장 최영감이, 기력이 딸리는지 이따금 중심을 잃고 몸을 휘청거렸다. 

 

 

 

 

 

 

 

 

-> 다음 주 토요일 ( 4/11) 밤, 67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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