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시 읽기의 방법(유종호 저, 2011) / 차용국

이정현 | 기사입력 2020/04/07 [21:53]

[서평]시 읽기의 방법(유종호 저, 2011) / 차용국

이정현 | 입력 : 2020/04/07 [21:53]

 

▲ 시 읽기의 방법(유종호 저, 2011) / 차용국


시 읽기의 방법(유종호 저, 2011) / 차용국
  

 

시가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시인도 많고, 문예지도 널려있고, 시집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매일 SNS를 통하여 쏟아지는 시와 문예지, 개인시집 등에 수록된 수많은 시를 다 읽기도 벅차기만 합니다. 가끔 시인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오히려 시인들이 시를 많이 읽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차리고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어떤 시인은 남의 시를 읽는 것이 시창작에 방해가 된다고까지 합니다. 정말 그럴까?

 

물론, SNS에서 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시 중에는 탈고가 덜 된 어색한 시가 많아 숙고가 필요할 것입니다. 시는 가급적 시집을 통을 읽기를 권합니다. 적어도 시집은 시인의 치열한 탈고 과정을 거친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간혹 SNS를 산책하다가 읽은 시를 바라보며 곤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기만 한 시를 만날 때입니다. 서투르거나 빈약한 시는 대체로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의 흉내를 냈다든지, 상투적인 생각이나 표현이 많다든지, 절제나 균형감 없이 군말이 많다든지, 지나치게 조작적이라든지, 어휘 구사상의 적정성이 없다든지 하는 등의 공통성을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5).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시도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합니다. 나의 시 건 남의 시 건, 시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고, 좋은 시를 변별할 수 있는 최고의 명약은 제대로 탈고된 시를 많이 읽는 것입니다.

 

시의 세계에도 그 나름의 축적된 관습이나 기율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시를 많이 읽고 친해 두는 것이 시 이해를 굳히고 넓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시를 많이 읽어보면 언뜻 어려워 보이는 시도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또 어려운 시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서투르거나 빈약한 시인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누구에게 배우거나 전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많은 글 체험을 통해서 글의 속뜻이나 장단점을 제대로 터득하고 파악하는 것을 옛날에는 '문리가 트인다'고 말하였습니다(87). 다양한 많은 시를 비교하면서 읽고 축적한 수고가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일입니다. 문리는 노력의 정도만큼만 트일 뿐입니다.

 

특히, 현대의 삶과 인식의 엄청난 확장에 걸맞게 시의 소재도 빠른 속도로 다양해지고 있어서 자주 시의 모호성과 난해성에 직면하여 당황하곤 합니다. 하지만 시가 모호하고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것은 심오한 사상이나 경지가 드러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글쓴이 쪽의 미숙이나 허영의 소치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을 분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116). 모든 훌륭한 문학 작품은 크건 작건 사람살이와 세상에 대한 독자적인 발견을 보여주고 있고, 또 언어적 세목에서 새로운 발명을 보여주고 있습니다(6). 시인은 다양한 경험과 사유를 통해 시를 착상하고, 시의 주제에 적정한 표현이나 시의 유형을 찾아내거나 새롭고 독특한 기법을 발명하에 구사하기도 합니다. 이는 시의 내용과 형식의 확장이요 발전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자는 현대시가 산문화된다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가 산문화된다는 것과 산문시를 쓰는 경향과는 같은 맥락일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시가 되는가 입이다. 흔히 산문체 시편들이 알쏭달쏭한 모호성을 지향하고 또 그것을 묘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뜻도 없고 울림도 없는 그러한 잡문성 산문은 시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것을 식별하는 능력은 온전한 시 이해를 위해서 가꾸어야 할 자질입니다(284). 산문시라 해서 뜻을 운율에 실어 전하는 시의 근본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시는 원래 기억술의 한 방편으로 발달된 것이고 음률적이고 음악적인 요소는 시를 특권화시켜 주는 시의 본성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뜻이 따라주지 않는 음률성은 공허해지고 말 것입니다. 뜻과 소리가 조화로운 균형을 이룰 때가 시의 이상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73). 리듬을 타는 호흡이 있는 시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시는 역동적인 생동감을 더해줍니다. 자유시나 산문시도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가쁜 호흡의 시행이 절박한 심정을 적설적으로 토로(219)하는 것처럼 나긋나긋한 발걸음과 어울리는 호흡의 시행은 즐거운 감흥을 전달합니다. 간절한 소망이 간결 적절하게 다듬어져(220)있는 시는 아름답습니다. 간결하면서 절제된 시행(227)은 매력적이어서 독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특히 그것이 리듬을 타고 호흡과 어우러질 때 독자는 최고의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서정시는 본시 노래의 가사, 즉 노래로 불리어지던 노랫말이었습니다. 사람 사는 곳에는 노래가 있고, 이야기가 있게 마련입니다. 인류의 초기 단계의 노랫말은 문자로 쓴 것이 아니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노래 부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장가나 노동요를 포함하여 민요가 최초의 시가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고 추정됩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노래한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직접적이고 단순하였습니다. 사회의 생활과 의식이 그만큼 단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문자로 쓸 수 있는 단계에 이르러 당대의 삶을 반영하여 점점 복잡해지고 소재도 다양해져서 근대 서정시 세계를 이루게 되었습니다(113). 삶의 서정은 기쁨과 슬픔입니다. 삶이 복잡하고 다양해졌다는 것은 삶의 서정을 이루는 기쁨과 슬픔도 다양한 방식으로 분출된다는 함의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쁨의 시건 슬픔의 시건, 시는 독자의 편에 서서 삶을 위로하고 희망을 북돋아 줍니다. 모든 시는 궁극적으로 모든 삶에 긍정적으로 기여합니다.

 

시를 읽는 독자들은 시를 자신의 삶에 비추어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독자의 삶의 지평은 현실의 삶일 수도 있고, 내면에 묻혀있는 삶일 수도 있습니다. 간혹 어떤 시를 통해서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내면의 자신을 발견했다는 독자를 만나기도 합니다. 좋은 시는 독자와 함께 공감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시는 독자와 감정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독자도 비슷한 느낌과 경험을 가졌었다는 생각을 환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성질이 사실은 시의 성질의 하나입니다.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지만 이러한 의외성 때문에 긴장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 긴장이 시적이란 것입니다(162). 적절한 되풀이나 후렴 같은 것은 시에서 서정적 에너지의 원천이 되어주기도 합니다(185). 삶의 지혜는 결코 난해하고 복잡한 이론이나 처세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를 읽다가 문득 낯선 표현과 마주칠 때면 두 개의 감흥이 교차하곤 합니다. 그 시어가 시 전체를 흐르는 맥락에서 적절하게 투영되어 참신성을 더해주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시 전체와의 어울림이 어색하여 난해성을 증폭시키는 경우입니다. 당연히 좋은 시는 '낯설게 하기'라 불리는 표현의 의외성이 작품 전체에서 표 나지 않게, 그러나 또렷하게 빛나고 있는(214)' 시라 하겠습니다. 담담한 어조 속에 드러나는 비판의 예기가 날카로운 한편으로 은은한 슬픔을 내장하고 있기도 합니다(215). 간혹 사회성이 강한 시를 접할 때가 있는데, 이 경우에도 여느 시와 마찬가지로 위에서 언급한 두 개의 감흥이 교차합니다. 사회시라 해서 직설적이고 과격한 시어가 강한 비판적 공감과 감동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담담한 어조 속에 드러나는 비판의 예기가 날카로운 한편으로 은은한 슬픔을 내장(215)하여 오히려 깊은 공감을 주기도 합니다. 결국 사회시는 해학이나 웃음이 분노나 독기보다 한결 호소적일 수 있다(216)는 함의입니다.

 

좋은 시가 가지고 있는 기능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일상사를 되돌아보며 성찰을 요구하는 것도 중요한 순기능일 것입니다(233). 기발한 착상이나 황당하게 일탈적인 표현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만 사람들은 곧 물리게 될 것입니다. 반면 삶의 심상한 차원은 그것을 드러내기가 어렵지만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향수에도 불구하고 쉽게 식상하는 법이 없을 것입니다(258). 충격적인 소재나 표현은 그 나름대로 문학의 거역할 길 없는 매력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되풀이 읽다 보면 그 충격성도 시들해지고 나중엔 감동이나 매력이 퇴색해 버리고 마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반면에 예사로움 바로 그 때문에 쉽게 시들해지지 않고 은은한 매력을 잃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262).

 

시는 영감을 받아 순식간에 쓰기도 하지만 이런 시는 흔치 않습니다. 대부분의 시는 수없이 많은 탈고를 거칩니다. 소월을 자연발생적인 시인으로 이해하고 영감을 받고 슬슬 시를 써내려갔다는 투로 파악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그런 일은 없습니다. 정도가 다를 뿐 누구나 손질하고 퇴고하고 손을 보기 마련입니다(24). 시는 짧고 간단해 보이지만 넓고 깊은 은유와 독특한 함축을 생명으로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시를 짓는 것은 상근적인 과업이요 혼신적인 놀음(56)이라는 말이 결코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시는 언어를 통한 예술작품입니다. 예술성은 작가의 고유한 영역일 수는 있어도 예술작품은 작가만의 세계에서 머물러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때는 작가도 독자의 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래서 시는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시는 어려움의 벼랑 끝에서 유지되는 안정감의 균형을 요구하는 것(281)일 수도 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주간베스트 TOP10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