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67-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67회 챕터22 <아! 불멸의 꽃, 직지(直指) > 제2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 기사입력 2020/04/11 [18:01]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67-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67회 챕터22 <아! 불멸의 꽃, 직지(直指) > 제2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 입력 : 2020/04/11 [18:01]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67-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김명희(시인 .소설가)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67회

챕터22 <아! 불멸의 꽃, 직지(直指) > 제2화

 

 

▲ 제2회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챕터22 간지 표지     ©김명희(시인 .소설가)

 

 

 

 

 

 

이제는 너무 연로한 활자장 최영감이, 기력이 딸리는지 이따금 중심을 잃고 몸을 휘청거렸다. 그는 앞도 보이지 않는 몸으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창백해진 묘덕의 이마에도 식은땀이 맺혔다. 그새 묘덕의 몸도 더욱 노쇠하여 하루가 다르게 기울어갔다. 오랜 과정 끝에 표본이 말끔하게 완성되었다. 서책으로 탄생한 백운화상의 첫 번째 직지(直指)를 바라보며 모두는 마음의 감격이 뜨겁게 밀려왔다. 서책의 인쇄 상태는 신비롭고 놀라웠다. 모두는 일제히 여러 권의 책을 다시 찍기 시작했다.

 

2

 

흥덕사 뒤뜰에 마련된, 직지(直指) 주조 작업실에서 여러 날이 지나고 새로운 아침이 밝아왔다. 청주 흥덕사의 푸른 하늘이 열리고 산사의 움직임이 더욱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유연묵과 청동과 닥나무로 만든 한지가 속속 흥덕사로 들어왔다. 부족한 밀랍 재료들이 벌을 많이 치기로 유명한 지리산에서 도착했다. 여러 가지 도구들 모두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활자를 쇠톱으로 다듬는 스님들도 손으로 활자를 새기는 각자장들도 한 치 오차 없이 정성을 다해 움직였다. 흥덕사 뒷켠 용광로의 불은 오래도록 활활 타올랐다. 주조 작업은 밤낮 쉬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초벌 제작 과정이 몇 번의 실패를 거치며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다. 용광로 속 뜨거운 쇳물이 세상을 깨울 뜨거운 말씀의 빛처럼 환했다.

 

그것들은 진흙에 자신의 번뇌를 버무렸다가, 또 다시 자신을 모두 비우는 파괴의 과정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거쳐 갔다. 자신을 수없이 깨뜨리고 다시 찾아가는 형상들은, 그동안 세상을 돌며 부처님 말씀을 설파했던 백운화상스님의 간절함과 맞닿아 있었다. 스님이 할! 을 외치며 중생들을 일깨웠던 그 뜨거움과 참 많이 닮아있었다. 많은 양의 금속 활자가 하나 둘 씩 스님들의 작업대에 모아지기 시작했다. 한지에 유묵을 가지런히 놓은 묘덕스님도 이젠 숙련공이 다 되어 있었다. 밖에는 어느 새 몇 번째인지 모를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녀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지금 직지(直指)를 만드는 이 모습을 스승님께서도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것을 생각하면 한시라도 앞당기고 싶었다. 묘덕스님이 한지에, 있는 힘껏 활자들을 눌러 인체로 문지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백운화상의 제자 달잠스님이 그녀를 조용히 밖으로 불렀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보니 어느새 또 하나의 아침이 훤히 밝아오고 있었다. 산 아래 마을에서 첫닭이 홰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주 흥덕사의 눈부신 하루가 또 열리고 있었다. 달잠스님이 묘덕에게 백운화상 이야기를 꺼냈다. 훗날 그녀에게 꼭 전해주라 했다며 비단 천으로 된 주머니를 하나 건넸다. 스승님이 남긴 유일한 유품이라는 말이 그녀의 귓전에 맴돌았다. 주머니를 열어보니 검고 희끗한 무언가가 가득했다. 긴 생머리였다.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한 가득이었다. 그것은 바로 묘덕스님이 출가하던 날, 삭발식 때 자른 자신의 긴 머리였다.

 

“아! 세상에나!”

 

묘덕스님은 오래 잊고 살았던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스승님이 묘덕스님 삭발씩 때 잘 모아 둔 것입니다. 며칠 전 취암사로 떠나시기 전날 제게 맡겨두셨습니다. 스승님은 이것을 묘덕스님께 꼭 전해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스님 것이니 받으세요.”

 

묘덕스님은 떨리는 마음으로 그것을 두 손에 받았다. 그녀는 새벽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굽고 야윈 어깨가 젖은 흐느낌으로 흔들렸다. 스님은 울며 그 것들을 한 올 한 올 가지런히 챙겼다. 삼단 같은 긴 생머리는 그녀에게 수많은 말을 걸며 깨어났다. 묘덕스님은 손안에 가득한 자신의 머리카락을 꼭 감싸 쥐었다. 이것은 더 이상 한 여자의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그것은 백운화상스승님의 남다른 사랑이었고 그가 묘덕스님에게 남긴 마지막 길고 긴 당부였다. 그녀는 그것을 두 손에 성스럽게 받쳐 들고 넋이 나간 듯 법당으로 한발 한발 걸어갔다. 멀리 무심천을 건너가는 마방울 소리가 청아하게 흥덕사까지 들려왔다. 법당으로 들어간 묘덕스님은 부처님 전에 머리카락 뭉치를 곱게 올려드렸다. 그녀는 눈물을 조용히 닦으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박사고깔을 다소곳이 머리에 쓰고 승무복(僧舞服)을 꺼내 입었다. 그녀 손가락 마디들은 이제 기력이 다해 가늘게 떨렸다. 둥글고 커다란 바라를 고요히 양손에 들었다. 하얀 승무복에서 사그락 사그락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아침 바람에 흥덕사 처마 끝에 매달린 물고기가 천진하게 청주 하늘로 헤엄쳐 올랐다.

 

‘챵그랑……!’

 

묘덕스님의 주름 가득한 손에서 두 개의 바라가 힘껏 부딪치며 속세를 깨우는 커다란 소리가 바라의 광택과 함께 섬광처럼 번뜩였다.

 

‘챵그랑……!’

 

작고 노쇠한 묘덕스님의 손에서 또 한번 웅장한 바라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울어가는 그녀 몸 어디에서 그런 기운이 흘러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가 싶더니, 승복을 입고 머리에 흰 고깔을 쓴 한 마리의 하얀 나비가 선녀처럼 훨훨 버선발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의 춤은 젊은 비구니스님처럼 힘차지는 못했지만 숭고한 아름다움이 가득 출렁였다.

 

‘챵그랑……! 챠르르……. 챵그랑……··! 챠르르……. 챵! 챵! 챵그르르…….’

 

희고 눈부신 학 한 마리가 아침 태양처럼 장엄한 바라소리를 안고 날아올라 산사의 고요를 깨웠다. 부처님 전에서 묘덕스님이 버선발로 구름 위를 날아오르듯 춤을 추었다. 양손에 바라를 들고 나비처럼 학처럼 춤을 추며 흥덕사 뜨락에 하얗게 나부꼈다. 묘덕스님의 눈물은 주름진 목을 타고 가슴께로 흘러 옷깃을 흠뻑 적셨다.

 

“ 받으소서 받으소서 누추한 이 한 몸 받으소서

 

한 생을 나서 한생을 살며 부질없는 것에 눈이 멀고

 

형체 없는 것을 쫓아 한 생을 허비한 이 몸

 

 

 

눈에 없는 것이 있는 것임을 눈에 있는 것이 없는 것임을

 

눈부신 광명으로 알게 하신 관세음보살님 나를 받으소서

 

 

 

처음부터 내 것이 없었음을 우매했던 나 이제야 깨달았네

 

내가 찾고자 했던 눈물과 회한 없는 평상심이

 

강 건너에 있지 아니함을 이제야 깨달았네

 

내가 갈망했던 당신이여, 나의 미르바나여

 

그 해탈의 세계 내 안에 있음을 깨달았네

 

 

 

받으소서, 받으소서 누추한 이 한 몸 받으소서

 

어리석었고 부족한 삶을 산 소승의 머리카락으로 뜨거운 직지를 간행 할 때

 

부처님이시여, 뜨거운 바람이 되고 붉은 쇳물이 되고 냉철한 불이 되어 오시어

 

우주의 신령한 말씀으로 온 누리를 되살리고 업장소멸하게 하오소서

 

영원히 소멸되지 않을 열반의 언약으로

 

부처님과 중생들의 영원한 불보리의 다리를 놓게 하오소서

 

 

 

지금부터 천년만년

 

후손들의 마음하늘에 깃발처럼 휘날릴 깨달음이여

 

저, 밤하늘처럼 검고 긴 속세의 회한들이

 

뜨거운 직지(直指)속에서 깨달음의 활자가 되고 어둠 속에서 야광 같은 돈오가 되어

 

뜨거운 말씀의 열반을 되살리게 하오소서”

 

바라춤을 마친 묘덕스님이 가쁜 숨을 고르며 부처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주름진 얼굴은 이미 땀과 눈물로 흥건했다. 부처님 미소에 아침햇살 같은 광명이 가득했다. 흥덕사를 향해 방금 막 떠오른 금빛 태양이 대웅전 법당의 부처님 이마를 비췄다. 보석처럼 박힌 부처님 인당에 영롱하고 푸른 기운이 맴돌았다. 부처님 용안에 그윽한 미소가 가득 피어올랐다. 바라춤이 끝나고 묘덕스님은 거칠고 주름진 손으로 삼단 같은 머리를 정성스레 품에 안고 금속활자인쇄 작업장으로 향했다.

 

3

 

묘덕스님은 그날부터 기도하는 생불의 마음으로 직지 간행에 더욱 전념했다. 계절은 어느새 덥고 습한 7월로 접어들었다. 거친 폭우가 쏟아졌다. 며칠 동안 청주 하늘도 먹장구름이 가득했고 폭우와 장마가 이어졌다. 큰 비로 무심천 변은 붉은 흙탕물이 범람했다. 그로인해 한동안 주조에 필요한 물자가 중단되었지만 직지(直指) 활자 인쇄는 가까스로 다시 이어졌다. 묘덕스님은 세상을 떠난 백운화상이 마지막 선물로 남긴 자신의 인체로 활자들을 간절히 눌러가며 기도하듯 인쇄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뜨거운 직지(直指)를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해 새기기 시작했다. 진흙에서 연꽃이 피듯, 백운화상스님 어록은 하나하나 뜨거운 쇳물에서 다시 또렷한 부처님 말씀으로 영생을 되찾아갔다.

 

공민왕이 살해되고 고려에는 어린 우왕이 즉위했다. 즉위 초부터 명나라와의 복잡한 외교문제가 발생해 고려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들이 보낸 첩자들은 고려 금속활자주조실험 비법서를 찾아내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갈수록 왜구의 약탈이 극심하여 서책들은 동이 났다. 조정은 또 다시 불안한 정세를 맞았다. 우왕은 정사를 전혀 돌보지 않았다. 사냥이나 유희를 즐겨 만백성의 원성을 샀다. 고려 민초들은 오랜 동안 우매한 왕과 이기적이고 음탕한 왕들로 인해 골육이 쇠잔할 지경이었다. 궁 밖 골목마다 배고픔과 한탄이 그칠 날 없었다. 그럴수록 백성들은 평안과 위로의 말씀에 목말라 했다. 갈수록 영육이 피폐해져가는 민초들을 돌아보며 묘덕스님은 직지(直指) 간행을 더욱 더 서둘렀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고려 최초의 금속활자 직지가 마침내 첫 탯줄을 끊고 탄생했다. 잘 말린 완성 본을 한 장 한 장 읽는 동안 묘덕스님의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움이 넘쳐났다. 백운화상의 음성이 바로 그녀 곁에서 살아 들려오는 듯 했다. 직지(直指)는 우선 먼저 백여 권이 인쇄되었다. 금속활자본 직지(直指)는 그렇게 백운화상 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라는 이름으로 세상 곳곳을 향해 은은한 연꽃 향기처럼 퍼져나갔다.

 

감격스러운 직지를 자신의 생에서 마지막으로 완성한 활자장 최영감은 그 후 고향으로 떠난다며 힘겹게 흥덕사를 나섰다. 묘덕스님은 말 한필과 마부를 불러 고생한 영감님을 고향까지 안전히 모시도록 신신당부해서 떠나보냈다. 새벽까지 비를 퍼부은 하늘이 잠시 갠 아침이었다. 영감은 모두와 작별한 후, 말을 타고 흥덕사를 내려갔다. 그러나 고향으로 간다했던 활자장 최영감은 사흘 후 무심천 하류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묘덕스님이 놀라 며칠 전 영감과 함께 보냈던 마부를 급히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활자장 최영감은 그날 흥덕사를 내려간 후, 얼마 안가 말에서 내렸다는 것이었다. 마부와 말을 한사코 먼저 보내고 영감은 무심천 변에 오래 앉아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마부가 본 영감의 마지막 모습이라 했다. 묘덕스님은 가슴이 미어질듯 너무 아파 청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영감님……, 왜 안전하게 말을 타고 고향으로 가지 않으셨나요? 눈도 불편한 분이, 왜 하필 장마로 범람했던 위험한 무심천 변에 있었던 겝니까? 영감님 말씀 좀 해보세요…….’

 

묘덕스님이 영감의 주검을 수습했을 때, 영감은 평화로이 잠을 자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웃음을 띠며 잠들어 있었다. 그의 영가를 흥덕사에 안치하고 묘덕스님은 아픈 가슴으로 부처님 전에 엎드려 그의 영면을 간곡히 빌고 또 빌었다. 활자장 최영감, 그는 육신의 고향보다 더 영원한 불심(佛心)의 고향으로 그렇게 평안하게 돌아갔다. 무심천이 영감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 준 듯했다.

 

1378년. 어느새 그녀의 나이 58세가 되었다. 묘덕스님은 소중하게 탄생한 직지(直指)를 품에 안고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느릿느릿 길을 떠났다. 몇 곳의 사찰을 찾아다니며 부처님 전마다 직지를 올리고 인사를 드렸다. 어느 날 양평목을 지나다 오래전 출가하던 날 자신의 가산을 처분해 시주했던 용문산 윤필암이 생각 나 기쁜 마음으로 찾아갔다. 깊은 산길을 어렵게 헤집으며 찾아가 보니 어느 새 암자 복원공사가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다. 묘덕스님은 나옹화상의 제자 지선과 지수를 그곳에서 만났다. 그들은 서로 반갑게 손을 잡아주었다. 묘덕스님은 직지를 간행하고 조금 남은 재물을 모두 윤필암에 마지막으로 시주를 하고 주변을 뿌듯하게 돌아보다 대웅전에 들어가 향불을 피우고 부처님께 예불을 올렸다. 그녀의 주름지고 쇠약해진 모습을 부처님이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스님은 법당에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한권을 정성껏 올리고 윤필암을 나섰다.

 

산사를 천천히 내려오는데 오솔길에서 삿갓을 깊이 눌러쓴 나이 지긋한 스님 한분이 문득 그녀를 스쳐갔다. 묘덕스님이 순간 뭔가에 이끌리듯 그 스님을 돌아보았다. 윤필암으로 가는듯했다. 묘덕스님은 낯선 그에게서 순간 뭔지 모를 것이 뇌리 속에 섬광처럼 스쳤다.

 

 

‘허 열? 열이 같은데……. 분명 허열 이었어.’

 

 

 

 

 

 

-> 다음 주 토요일 ( 4/18) 밤, 68회 <마지막 회>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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