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찾아서(신경림 지음, 2013) / 차용국

이정현 | 기사입력 2020/05/24 [17:45]

시인을 찾아서(신경림 지음, 2013) / 차용국

이정현 | 입력 : 2020/05/24 [17:45]

시인을 찾아서(신경림 지음, 2013)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 시인을 찾아서



 

저자는 이 책의 첫머리에서 우리 시의 환경이 더욱 열악해지면서, 시가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시집이 시장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합니다. 현대는 감정과 사상을 표현할 다양한 매체가 옛날에는 상상도 못했을 정도로 개발되어 있고,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가 사방에 널려 있는 데다, 시대는 속도와 결과에만 높은 가치를 두면서 질주하고 있다는 요인도 있지만, 부분적으로 시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점은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무책임한 말장난은 더 말할 것도 없겠으나, 가령 독자와의 소통을 아예 포기하고 아무런 열쇠도 주지 않은 채 내면이라는 골방으로 들어가 처박힌다면 독자가 어떻게 그 시를 좇아가며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또한 시를 곰곰이 읽고 시를 바르게 이해하게 하는 데는 관심도 없는, 도식적이고 관념적인 시 교육(문학 교육)도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희망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가치관이 어떻게 달라지든, 사람들의 마음에서 아름답고 순수하고 참된 것을 찾는 뜻이 없어지지 않는 한 시는 존재를 이어갈 것이고, 세상의 중심에 서 있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어떤 면에서 감정의 확대라 할 수 있는 시를 가장 잘 이해하려면 그 시인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떤 조건 아래서 살았으며, 그 시를 쓸 당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를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 책은 이런 노력의 산물입니다. 정지용에서 천상병까지 22분의 시인들의 행적을 찾아갑니다. 우리도 서설을 접고 저자와 함께 몇 분의 발길을 따라갑시다.

 

조지훈 시인(본명 동탁, 1920~1968)은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한양 조씨 동족이 사는 마을에서 태어나 열두세 살에 부모를 따라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그의 조부 인석은 새 체제의 박해에 분개해 연못에 투신 자결했고, 부친 헌영(제헌의원)은 남하하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다가 납치되어 북으로 끌려갔습니다(30). 그의 부친은 영문학과 동양의학을 공부한 걸출한 인물이었고, 백부, 숙부, 고모가 모두 국립도서관장, 도경찰국장, 시인 등으로 해방 후의 우리나라 정계, 문화계에서 중요한 일을 했습니다(30). 이러한 배경이 조지훈 시인의 시향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조지훈 시인은 시인일 뿐만 아니라 학자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한국문화사서설이나한국민족운동사만 해도 우리 문화사에 굵은 발자국을 남긴 것으로 평가됩니다(34). 그는 부도덕하고 경박한 진보주의자보다 도덕적이고 성실한 보수주의자가 역사에 더 많이 기여한다(34)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지만, 3 15 부정선거 때는 ''지조론''을 들어 준엄하게 꾸짖기도 했고, 516 군사정부가 마구잡이로 빨갱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학생들을 잡아들일 때 ''그들 사이에 진짜 공산주의자가 몇이나 되느냐''며 호통을 치기도 했습니다(35).

또한 조지훈 시인은 풍류의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는 조지훈 시인의 ''완화삼''에 대한 답시로 알려져 있는데, ''나그네''''완화삼''의 시어와 이미지를 상당 부분 차용했습니다. 서로 주고받는 시에서 차용은 허락되는 것이 관례라는 점에서, 어찌보면 ''나그네''''완화삼''의 이미지를 단순화하고 구체화한 시요, ''완화삼''의 완성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39).

'멋과 지조'의 시인 조지훈의 시비는 1982815일 경북 영양 그의 생가 마을 입구 큰길가에서 울창한 팽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다(30)고 합니다. 나는 아직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아는 그의 시비는 경춘선 마석역 앞에 있는 것입니다. 조지훈 시인은 마석역 뒤에 있는 송라산 자락 그의 어머니 곁에서 영면하고 있습니다. 어찌 시비가 있을 곳이 따로 정해져 있으리오. 후대의 기억이 머무는 곳에 시비가 있는 것을.

 

청마 유치환은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성장했습니다. 젊은 시절 만주로 가서 살기도 했습니다. 귀국 후에는 경남북 일대 중고교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통영여고에는 그가 교사 시절 작사를 하고 동료 교사이던 윤이상이 작곡을 한 교가가 남아서 불리고 있으며, 시비는 윤이상과 자주 올랐다는 남망산 중턱에 세워져 작고 큰 배로 가득한 강구안을 굽어보고 있습니다(306). 이러한 청마의 삶의 행적을 들여다보면 그다지 특별한 굴곡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통영에서의 삶이 청마의 시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얼마나 녹아있는지는 좀더 깊은 탐구가 필요할 듯합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구별짓기에 익숙한 듯합니다. 시인에 대한 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우리는 흔히 청마를 인생파 또는 생명파 시인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구별짓기가 1천여 편이 넘는 청마의 시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 될 수 있는지는 의심이 적지 않습니다. 시인의 시적 관심이나 특성 등은 변화를 거듭하는 것이기에 한두 마디로 규정하기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청마 유치환의 시향을 '남성적 그리움과 호방한 울부짖음'이라고 말합니다. 모순되어 보이는 듯한 이 말은 청마의 시 ''깃발''에서 보여주고 있는 모순적 시어의 강력한 은유를 차용한 듯합니다. 나는 이 말이 청마의 시 전체에 흐르는 시향을 적절하게 함축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깃발''의 도입부를 보면,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깃발, 부분)''으로 시작합니다. 모순된 언어의 배치를 통한 신선하고 충격적인 은유와 이미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 시각적 이미지의 ''깃발''''아우성''이라는 청각적 이미지로 바꾼 듯하지만, ''아우성''''소리 없는''이라는 모순적 수식에 의해서 다시 시각적인 이미지로 되돌려, 깃발의 모습을 머릿속에 강력하게 각인시키며, 한편으로는 ''소리 없는 아우성''의 남성적 이미지가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라는 여성적 이미지를 동반하면서 그것이 가진 힘과 그리움의 양면을 돋움새긴다(294)는 점입니다.

 

세인들은 흔히 천상병 시인을 '기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애초부터 기인은 아니었습니다. 기인이기는커녕 처음에는 독설로 선배 문인들을 곧잘 골탕 먹이는 날카로운 신예 비평가였습니다(344). 몸도 튼튼해서 매일처럼 술을 마시고 아무 데나 묻어가 자면서도 쓸 글은 다 쓰는 그를 두고 친구들은 ''저 친구의 속은 쇠로 된 모양이야''라며 혀를 내둘렀다(345)고도 합니다.

하지만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반공법 위반으로 6개 월 간의 정보부 고문을 치루고 선고유예로 풀려나온 후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졌습니다. 동백림 사건이란 베를린 유학생들이 동베를린 동포의 주선으로 동베를린을 관광한 일입니다. 이 사건에 동베를린과 일면식도 없는 천상병 시인이 엉뚱하게도 연루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 천상병 시인은 20년이 지난 후 ''다정한 친구로 인해 동백림 사건에 걸려들어 심한 전기 고문을 세 번 받았고 그로 인해 정신병원에도 갔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344, '외할머니와 손잡고 걷던 바닷가'에서 재인용)''고 회고하였습니다.

극도로 쇠약해진 천상병 시인은 손놀림이며 걸음이 불편했고 귀가 멀었으며 말이 어둔해졌지만, 다행히 어린애처럼 순진무구하고 티 없는 시심은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 역시 그는 천상 시인이었던가 봅니다(348). 그래서 저자는 천상병 시인의 시향을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마음과 눈(341)''이라고 합니다. 이런 삶의 행적이 창작과 비평에 발표된 ''귀천''과 같은 시를 지어낼 수 있는 배경이 되었을 것입니다.

음울하고 처절할 듯한 죽음마저도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소년처럼 하늘나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 밑바닥에는 당연히 삶에 지친 눈물과 한숨이 배어 있을 터이지만, 그 한숨과 눈물을 곧장 눈물과 한숨으로 표현하지 않은 데 이 시의 미덕이 있을 것입니다(352). 시가 왜 은유의 문학인지를 보여주는 백미입니다. 시는 사실의 전파가 되어서도 아니 되고, 절제 없는 헤픈 감정의 분출이 되어서도 아니 되며, 도덕과 윤리의 말씀이 되어서도 아니 되는 것은, 은유를 통한 감동만이 공감의 터에서 영속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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