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속의 전쟁(방기철 지음, 2015) / 차용국

이정현 | 기사입력 2020/06/11 [05:23]

한국역사 속의 전쟁(방기철 지음, 2015) / 차용국

이정현 | 입력 : 2020/06/11 [05:23]

한국역사 속의 전쟁(방기철 지음, 2015)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 한국역사 속의 전쟁(방기철 지음, 2015) / 차용국  © 강원경제신문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합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불과 2백여 년에 불과하다고 하니(14), 인간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며 사는 존재라는 말이 과언은 아닐 듯합니다. 전쟁은 기본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여 상대에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행위라는 점에서 매우 광범위한 개념이므로, 국가 대 국가 간의 행위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국가 권력에 대한 저항뿐만 아니라 비국가 집단 간의 행위도 포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인간의 본능적인 공격성 때문이라는 견해, 침략자에 대한 자기 방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견해, 인간의 기본적인 '()'이라는 견해 등(15)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단순한 어느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일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인류가 경험한 전쟁의 수만큼 그 원인과 양상도 복합적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역사도 전쟁으로 점철되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원전 2000~1990년까지 931회 이상의 외침을 받았고, 그 기간은 230년이 넘는다(16)고 합니다. 혹자는 우리가 이토록 잦은 외침을 극복하고 존재한다는 자부심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가장 피해야 할 절박한 것이 바로 전쟁입니다. 전쟁은 많은 인명피해를 낼 뿐 아니라, 문화유산과 천연자원 및 환경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 옵니다. 따라서 많은 외침 극복의 역사가 결코 자랑스러운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또 다른 혹자는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으로 단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역사발전에 있어 전쟁은 매우 중요한 촉매로서의 기능을 다해 왔습니다. 따라서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역사 역시 결코 자랑스러운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19). 중요한 것은 전쟁을 통해서 무엇을 배우고, 평화를 이루어내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를 깨닫는 일입니다.

 

전쟁은 고도의 정치경제적 행위입니다. 전쟁으로 인한 직접적인 득실은 물론 종전 후의 문제와 대책까지 치밀하게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시기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삼국시대에는 총 480여 회의 전쟁이 있었는데, 그 중 275회가 고구려백제신라간의 전쟁이었습니다. 삼국간의 전쟁은 대체로 추수가 끝나는 10월이나 파종이 시작되기 전인 1~2월에 주로 벌어졌습니다. 이는 농번기를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70). 농경사회에의 전쟁은 국가 재정의 기반인 영토와 이를 경작하는 백성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삼국이 모두 한강을 두고 치열하게 격전을 벌인 것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경제적인 효과 때문입니다. 한강은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의 곡창지대와 서해안 일대의 소금 생산 기지를 확보하여 교역을 주도할 수 있는 등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인간의 삶의 양식과 언어 등에 영향을 미쳐 문화 변혁의 촉매가 되기도 합니다. 무인 최우가 집권한 고려 정부는 몽골의 침입을 피하여 12326월 강화도로 천도하여 38년 만에 개경으로 환도하였습니다. 수전에 약한 몽골군을 방어해 고려 왕실과 최씨 무인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이들이 섬에서 안전을 보장 받고 있는 30여 년 동안 본토의 백성은 처절하게 유린당했습니다. 전쟁은 외교의 연장이라 했는데, 무식한 무인정권에서는 외교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고려는 몽골의 종속국이 되었습니다.

몽골의 지배는 의복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몽골 여성들이 외출할 때 사용하던 '족두리'는 원에서 전래된 것이며, '저고리' 역시 몽골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의 형태로 변하였습니다. 문익점에 의해 목면이 수입되어 민의 복장에 일대 혁명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168).

몽골의 지배는 우리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벼슬아치, 구실아치, 장사치, 양아치 등의 ''는 원래 몽골말이었고(169), 수라(임금에게 올리는 밥상), 마마(궁중 어른에 대한 존칭), 마누라(세자와 세자빈을 부르는 말) 및 무수리(소녀를 뜻하는 말) 등도 몽골말이었습니다.

몽골의 음식도 전래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먹었던 '타락죽'은 원의 영향을 받아 고려 말부터 만들어진 음식입니다. '설렁탕'은 몽골인이 물가에서 소를 잡아먹었던 슐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몽골의 영향으로 육식이 널리 퍼졌고, 우리가 즐겨 마시는 '소주'도 원을 통해 전래되었습니다. 그 외 만두와 수박 등도 원을 통해 전해졌습니다(169). 이와 같이 전쟁은 인간의 삶의 총체라 할 수 있는 문화의 융합과 변혁의 계기가 되곤 합니다.

 

전쟁의 승패는 정치외교경제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의 결과이지만, 실전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무기와 군수품 공급일 것입니다. 전투를 직접 수행하는 지휘관의 리더십과 작전도 이 두 가지 능력의 상호작용 최적점에서 펼쳐질 때 빛날 수 있을 것입니다. 수나라가 고구려 을지문덕의 유인책에 휘말려 패한 것도, 거란이 귀주에서 고려 강감찬에게 패한 것도 이 두 가지 능력을 초과하여 무리수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1592414일 일본의 부산진 공격으로 시작된 임진왜란 7년 전쟁에서 일본이 패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순신이 일본군을 상대로 전승할 수 있었던 것은 이순신의 탁월한 지휘력 뿐만 아니라 무기의 우수성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우선 우수한 함선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군선은 V자형 첨저선인데, 조선의 군선은 U자형 평저선이었습니다. 일본의 군선은 직진의 속도가 빠른 장점은 있었지만, 조선의 판옥선만큼 선회와 대형을 바꾸어 화포를 발사하는 데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조선의 주 군선인 판옥선은 2층으로 제조되어 일본군이 배로 접근하는 것이 힘들었고, 포의 위치가 높아 포격전에 절대적으로 유리했습니다(237). 거북선도 이 판옥선을 철갑선 구조로 개조한 대형 돌격선 이었습니다. 당시 3~5척이 실전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120여 명이 탑승할 수 있었고, 배의 양 옆과 앞 뒤 14곳에서 포를 쏘며 돌격할 수 있는 무적함선이었습니다. 게다가 조선 수군은 우수한 함포를 배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총으로 무장하고 상대 배에 접근하여 배를 탈취하는 쓰시마 왜구의 전형적인 전투 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일본이 개전 초기의 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던 것도 이순신이 해상에서 일본 본토로부터의 군수 조달을 차단했고, 육로 곳곳에서 의병이 출몰하여 일본군은 군수품을 현지에서 조달하거나 운송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치루는 나라는 비극이지만, 주변국의 어떤 나라에게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1950625일 한국에서 발발한 전쟁은 우리에게는 처참한 비극이었지만 일본에게는 기회였습니다. 일본의 전 총리 요시다 시게루가 한국전쟁을 ''신이 내린 선물''로 표현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전쟁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것은 일본이었습니다. 패전국으로 미국 점령 하에서 무장해제 당했던 일본은 주일 미군이 한국으로 이동함에 따라 안보에 공백이 생겨 자위대의 전신인 경찰예비대를 창설하여 재무장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일본은 장비와 보급품의 병참기지 역할을 수행하면서 경기가 살아나 경제대국으로 부흥할 수 있었습니다(364).

우리도 베트남전에 참전함으로써 한국 경제가 발전한 것은 사실입니다. 베트남전을 통해 55천 명의 전투요원과 노무자기술자 등 16천 명의 민간인이 베트남에 파견되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 10억 달러 내외의 외화를 획득했습니다. 그 외에도 공공차관 52천만 달러, 상업차관 24천만 달러, 무상원조 약 17천만 달러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전으로 가장 큰 수혜를 받은 것은 단 한명의 병사도 파견하지 않은 일본이었습니다. 일본은 베트남전에 물자를 조달하면서 한국보다 훨씬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382).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싸움의 기술을 익히려는 것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폭력을 정당화 한 전쟁이 남긴 파멸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전쟁의 예방과 평화의 소중함을 배우고 구현하려는 소망에 진정한 목적이 있습니다. 비록 전쟁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예방과 평화의 공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는 아닐 것입니다. 그 노력과 선택은 지금 우리의 몫입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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