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안사회(백욱인 지음, 2018) / 차용국

이정현 | 기사입력 2020/07/18 [21:24]

번안사회(백욱인 지음, 2018) / 차용국

이정현 | 입력 : 2020/07/18 [21:24]

 

▲ 번안사회(백욱인 지음, 2018) / 차용국

 번안사회(백욱인 지음, 2018)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광복 75주년이 되는 2020년 지금도 한일 간의 갈등의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잔해가 때로는 한일 양국 간, 때로는 국내 집단 간의 치열한 혐오와 비방으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은 36년 간의 일제 식민 통치가 있었다는 것이고, 지금 우리의 사회 곳곳에는 당시 번안되어 들어온 문화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식민지 번안 사회에 살고 있다고(7쪽). 

 

번안의 사전적 의미는 원작의 내용이나 줄거리는 그대로 두고 풍속, 인명, 지명 따위를 시대나 풍토에 맞게 바꾸어 고치는 것을 말합니다. 부연하자면, 번안은 특정 장르의 작품을 다른 장르의 작품으로 바꾸거나 배경과 인물을 바꿔 시공간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전유해 현실에 맞는 배경과 형태를 갖추는 작업입니다(10쪽). 번안은 문학과 예술의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학문과 종교와 같은 정신적 영역은 물론, 음식과 의복 및 놀이와 같은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납니다. 

 

삶에 단절이 없듯이 인간 생활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에서 번안을 가로막거나 피해가거나 제거하는 것은 허상일 수도 있습니다. 좋든 싫든 문화는 대를 이어 기존의 문화에 당시의 문화가 보태져 유전되기 때문입니다. 문화는 다소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이동하면서 전파되고 섞이는 과정에서도 번안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번안이 누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번안되는가 일 것입니다. 

 

급격한 사회 변동기나 바깥으로부터의 문화가 격심하게 몰려올 때 배경과 형태를 바꾸는 번안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10쪽). 100여년 전 조선은 격동의 시대와 마주섰습니다. 하지만 홀로 폐쇄적이었던 조선은 서구를 중심으로 급변하는 문화의 변동에 주도적일 수 없었습니다.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에는 일본이 번안한 근대 서양의 문화가 먼저 이식되었고, 한국이 번안한 서양이 뒤따랐습니다. 하나의 서양으로 불렸지만 둘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에는 근원과 의미가 다른 두 개의 서양이 공존합니다. 

 

일제가 조선에 이식한 번안물은 지속적으로 변화를 거듭하면서 모습과 의미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번안물은 영구불변의 실체긴 아니며, 문화는 지속적인 번역과 번안 과정 속에서 변화하기(13쪽) 때문입니다. 변화하는 번안의 문화에서 드러나는 것은 원본이나 서구, 일본이 아니라 우리 자신입니다. 원본이 두 번의 매개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거나 이식될 때, 혹은 전유되거나 복제되거나 지워질 때조차 그것은 원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번안이란 구리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밤마다 부끄럽게 그 거울을 닦아야 합니다. 유물의 흔적이자 때로 유령으로 나타나 뒷목을 잡아당기는 과거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지 않으려면 먼저 그 흔적들을 찾아 바로 대면해야 합니다. 제국의 지배가 남긴 자국을 통해 제국과 식민지 모두를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타협과 투쟁이 이어지던 일상의 장소와 그들이 섞이며 만들어낸 결과를 보고 평가할 수 있을 때, 제국과 식민지는 주체와 객체가 아닌 대등한 관계로 거듭날 수 있기(14쪽) 때문입니다. 그래서 번안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겸허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먼저 사진입니다. 카메라는 100여년 전에 영국과 프랑스에서 발명되어 일제를 통해 들어왔습니다. 당시 일제가 찍은 수많은 사진은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사진은 재현된 사실이지 진실이 아닙니다. 사진으로 재현된 사실은 찍는 사람의 의도와 시선, 인화하는 사람의 선택과 배열에 따라 달라지는 복제의 산물입니다(30쪽). 그래서 카메라는 단순한 재현과 복제의 도구가 아니라 의도적인 시선이며, 생각과 의미를 해석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수단입니다. 일제가 카메라에 담은 식민지 조선을 바라보면서 긍정적인 의미를 도출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서구에서 발명된 근대 기술의 산물인 카메라는 일제가 효과적인 식민지 지배를 위한 이념의 척후병 노릇을 하였던 것입니다. 

 

조선에 쉽게 이식된 일본산 근대어는 한문을 한글로 풀어 쓰는 조선의 언해 전통이 아니라, 한자를 기반으로 하는 한문맥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포괄하는 서양 근대 학문의 기본 개념어는 대부분이 일본에서 번역되어 건너온 한자어로 만들어졌습니다(33쪽). 말은 혀와 입을 놀리는 행동으로 마무리되지만, 글은 머리로 생각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완성됩니다. 말은 타자에 대한 직접적 행동이지만 글은 생각을 전달하고 다른 사람의 사유를 촉발하며 다른 행동의 계기를 제공합니다(39쪽). 그래서 하이데거는 '언어가 있는 곳에서만 세계가 있다'고 합니다. 나는 이 말을 의미심장하게 동의합니다. 언어는 사람 간의 소통을 위한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언어가 사람의 생각과 의식을 지배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도입된 서양 근대 학문은 언어의 번안을 통해일본이 이식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이해하도록 한 것입니다.

  

반면에 조선에서는 구한말 선교사들이 조선인과 힘을 모아 성경을 낱권으로 옮겼습니다. 그 뒤 낱권을 모아 성경 한 권으로 꿰는 역사가 반복되었는데, 선교사의 교파에 따라 번역 방식이나 문체가 달랐습니다. 해방 뒤에도 교회의 분리에 따라 다양한 번역본이 나왔고, 우리말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계속 새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번역에는 국역의 역사와 한글의 변화도 담겨 있습니다(41쪽). 1864년 한문 신약성경 ''신약전서문리( 新約全書文理)''를 간행 후, '1882년에 만주 봉천에서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서''가 번역된 뒤 요한복음, 마태복음, 마가복음 등이 더해져 1887년에 ''예수셩교젼서''로 출간되었습니다. 선교사 로스(John Ross)가 번역한 이 책이 최초의 완역 한글 신약성경입니다(42쪽). 이와 같이 일제가 이식한 번안이 아니라, 원본과 한글이 주체가 되어 번역한 성경은 한글 발달의 귀한 역사적 사료가 됩니다.

  

지식과 권력은 서로 긴밀하게 닿아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지만, 힘이 있어야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식이 권력관계를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68쪽). 얼핏 보기에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이지만 이것이 제국주의의 손에 들어가면 침탈과 지배의 도구로 변합니다(77쪽). 보편적이고 객관적으로 보이는 과학기술에도 그 전파와 사회적 수용에는 여러 층위가 섞이게 됩니다(79쪽). 번안의 잡종성을 창의적으로 극복하면 새로운 성장과 발전의 가능성이 열리지만, 과도기가 너무 오래가거나 바람직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촌스러운 부조화나 키치적 형태가 나타납니다. 맥락을 상실한 탓에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은 원조와 달리 기이한 모양으로 존속하면서 흉물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103쪽). 이와 같이 번안은 지식과 힘에 따라 변형되고 전파의 속도와 범위도 달라집니다. 힘은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어느 분야에서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번안에 관한 생각과 가치관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한국 근대화 시기 도시의 번안을 살피는 일이 우리가 일본의 무엇을 번안했는가를 밝히는데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번안의 흔적을 찾는 작업은 과거의 유산에 대한 발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현재와 과거의 끊어짐 너머에 자리 잡은 이음새를 들추어내면서 흔적의 원천을 찾아내고, 식민지의 시간과 근대의 시간이 어디에서 연결되었고 그것을 끊어낼 지점이 어디인가를 현재의 입장에서 찾아내는 적극적이고 비판적인 작업이어야 합니다(224쪽). 제국의 역사 또한 식민지의 흔적을 지니고 있으며, 그들이 본뜬 서구라는 원본이 존재합니다. 하물며 서구 또한 다른 나라와 지나간 시간을 번역하고 번안했습니다. 서구를 모방한 제국을 또다시 모방한 식민지 번안이 갖는 이중 번안의 껍질이 하나씩 걷힐 때, 번안의 원본을 그 배경과 함께 재배치할 수 있을 때, 더 이상 매개자를 통한 번안이 필요 없게 될 때, 강건하게 내 장소에 내 것과 남의 것을 내식으로 융합하고 배열할 수 있을 때, 식민지 번안의 지긋지긋한 유령은 이 땅에서 사라질 것입니다(343쪽). 그래서 한국 사회의 곳곳에 남아있는 번안물의 원천을 살피고 내 것으로 재현하는 일은 본래의 나를 찾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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