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마저 내려놓으며(남연조 시집, 2020) / 차용국

이정현 | 기사입력 2020/07/28 [06:06]

삶의 향기마저 내려놓으며(남연조 시집, 2020) / 차용국

이정현 | 입력 : 2020/07/28 [06:06]

▲ 삶의 향기마저 내려놓으며 표지  © 강원경제신문



삶의 향기마저 내려놓으며
(남연조 시집, 2020) / 차용국

 

 

 

남연조 시인의 시집 ''삶의 향기마저 내려놓으며''를 읽으며, 나는 어느새 시인이 펼치는 스토리에 빠져있습니다. 시를 읽으며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는 선명한 이미지는 스토리가 됩니다. 스토리는 구체화된 이미지입니다. 스토리는 소설이나 수필 뿐만 아니라 시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사람은 스토리가 있는 시를 기억하고 사랑합니다. 인간의 뇌는 말과 글 자체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미지로 변환하여 기억합니다. 그래서 선명한 이미지로 변환된 그림 같은 시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그렇지않은 시는 바로 잊혀집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남 시인의 시는 오래도록 독자와 기억의 터를 공유할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드라마가 시작됩니다. 평생을 농부의 아내로 살아온 시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민들레가 고개를 떨구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그립고 그리운 어머니였을 텐데, 시인은 '힘없이 고개 떨군 민들레 / 어머니 모습이 겹친다(거친 손 두고 가신 어머니, 일부)'고 회상합니다. 그리움(원관념)이란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고개 떨군 민들레(보조관념)의 이미지가 클로즈업 되면서 속 깊은 애틋한 그리움이 가슴을 적시고 있습니다. '젊을 적 새벽녘 정화수 떠놓으시고 / 내 자식 잘 되게 해달라고 / 천 번 만 번 비시던 우리 엄마(생각에 잠깁니다, 일부)'였습니다. '배고픔 등지고 꼬불꼬불 산길 따라 / 십 리를 뛰어온 집 / 어머니는 자줏빛 감자를 / 반쯤 달은 숟가락으로 / 박박 긁으신다(그 시절, 일부)'는 엄마였습니다. 평생을 '거북 등 같은 손으로 가을 추수(울 엄마, 일부)'를 걷으며 자식을 위해 살다가신 우리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장면이 바뀝니다. 겨울 사과밭에 남편을 따라 나선 시인은 남편의 고된 노동을 반추합니다. 낭군님 따라 톱을 들고 가지치기 하러 나선 겨울 농장은 결코 목가적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치열한 삶의 터전이고 고달픈 노동의 현장입니다. '집에서 나올 때 용기는 산까치가 물고 가고 / 사과나무만 멍하니 바라볼 뿐(겨울 사과밭, 일부)'인 사과밭에서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평생 자식을 위해 땀 흘리며 살아온 남편의 고된 인생을 바라봅니다. 힘들다는 말조차 아끼며 묵묵히 농장을 일구면서 흰 머리가 된 남편. 그 긴 인고의 세월 속에서 남 모르게 얼마나 많은 눈물을 속으로 삼키며 울었을까? '머리에 하얀 서리 내려앉은 / 자식들 키워낸 세월의 흔적(낭군님, 일부)'을 애잔하게 바라보며, 그의 주름진 미소가 고맙고 사랑스럽게 클로즈업 되고 있습니다. 농부의 아내는 노래합니다.

 

힘들고 괴로울 때 웃어야 하고

지칠 때도 참아야 함은

당신이 나를 보고 있기 까닭입니다

 

용기 주려고 미소 잃지 않고

지친 마음 참아야 함은

당신께 힘을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피곤함을 노래로 안마하고

산들바람에 근심 날림은

당신께 행복을 주기 위함입니다

 

눈 오는 겨울 뜨끈한 구들장에

고단한 몸 달랠 수 있음은

당신과 행복 갖기 위함입니다

 

(농부의 아내는, 전문)

 

농부의 아내는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온몸을 바쳐 살았던 것처럼, 남편과 손잡고 고된 삶을 위로하고 힘을 보태며 살아갑니다. 이제 시인이 바라보는 미래는 희망의 나라입니다. 시인은 '서울행 버스를 탄다 // 도시에 가까이 갈수록 // 설렘이 더 크다 // 온몸으로 안으니 / 벚꽃이 만개한다(손녀 맞이 나들이, 일부)'고 노래합니다. 아이는 미래이며 희망입니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자식이라는 희망을 찾아가는 시인의 가슴은 벅찬 설렘뿐입니다. 남 시인의 곱고 따뜻한 시선과 삶의 철학이 희망으로 활짝 피어나는 날이기도 합니다.

 

남 시인의 시향의 근원은 자연입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인간의 본능은 특히나 현대인들의 삶은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살고 있음에도 항상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회귀본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안동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문학적 감성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음은 두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자연은 제 시의 모든 소재를 제공해준 글밭의 씨앗이었다.'라고.

 

484편으로 엮은 시집은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가 있습니다. 남 시인은 시어의 기교를 부리지 않고, 일상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자연의 풍경과 그 속에서 진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며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남 시인의 시를 읽는 독자는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편안하게 공감의 나라로 빠져듭니다.

 

그렇습니다. 시의 궁극적인 평가자는 독자입니다. 독자가 사랑하는 시가 좋은 시라면 지나친 것일까? 어렵고 자극적인 시가 독창성으로 미화되어 평가 우위를 독차지하고 있는 시대에, 뭔 뜬 구름 같은 소리냐는 책망을 들을 수도 있겠으나, 독자 없는 시를 좋은 시로 두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시는 의미를 분석하는 이성적 지성의 학문이 아니라 공감의 터를 공유하는 정서적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기쁨도 심지어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 것도 공감입니다. 공감은 남과 더불어 우는 것입니다. 기쁘면 기쁨의 눈물을, 슬프면 슬픔의 눈물을, 아프면 고통의 눈물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이런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남연조 시인이 그려내는 시적 이미지에는 이런 공감의 스토리가 빨간 사과처럼 달려있습니다. 시인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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