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꽃잎이 떨어질 때(엄원용 지음, 2020) / 차용국

이정현 | 기사입력 2020/08/13 [07:13]

고운 꽃잎이 떨어질 때(엄원용 지음, 2020) / 차용국

이정현 | 입력 : 2020/08/13 [07:13]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고운 꽃잎이 떨어질 때(엄원용 지음, 2020)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한 시인이 11권의 시집을 통해 발표한 980편의 작품 중에서 뽑아낸 100편의 시는 시인의 정수와 다름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읽는다는 것은 시인의 진솔한 삶의 기록을 펼쳐보는 것이며, 찐하게 용해된 삶의 희로애락을 얘기하며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나는 엄원용 시인의 시선집 ''고운 꽃잎이 떨어질 때''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와 함께 걸어갑니다. 먼저 시인은 사랑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가슴에서 피어나는 고운 꽃잎

사랑은 늘 그립고

때로는 고독하고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서러운 것

 

아프게 피는 꽃잎은 더 아름답고

꽃술에 풍기는 향기는 더 짙어라

 

아름다운 사랑은 

곱게 갓 피어난 꽃잎처럼

애절하고 붉고 짙게 물들어가는 것이다.

(아프게 피는 꽃, 전문)

 

그렇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있기에 아프고 힘든 삶의 고비를 견디며 살아갑니다. 시인은 모든 것을 잃어도 사랑은 '가슴에서 피어나는 고운 꽃잎'이기에, 사랑 하나만 남아있어도 삶은 아름답다고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그 사랑이 죽음보다 더 애절하게 느껴질 때/그 서러운 영혼의 고독 속에서/꿈꾸듯이 그를 바라본다는 것을(잔느는 모딜리아니를 사랑했다, 일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희망의 어머니입니다. 사랑의 자양분이 길러 낸 희망이 미래의 문을 열고, 우리를 행복한 세상으로 초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인이 체험하고 성찰하며 바라보는 세상에는, 사랑과 희망과 행복이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세상을 기다린다는 것은 함께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찬란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시인의 노래를 들어봅니다.

 

밤과 밤을, 또 몇 년을 거듭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은

때로는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허망한 그림자인 줄을 잘 알면서도

그 알 수 없는 희망의 긴 끈이 우리를 꽁꽁 묶어 놓을 때가 있다

 

그리고 기다리는 것, 그것을 항상 즐거운 환상 속에서

가망 없는 줄을 알면서도 가망을 버리고, 언젠가는

함께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찬란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행복한 슬픔을 가져보는 것이다

(행복한 슬픔, 전문)

 

세월이 흘러 어느덧 시인은 80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6월이 되면 1951년 어느 날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전장으로 떠나는 가족의 슬픔을 떠올리고, 4ㆍ19와 5ㆍ16과 5ㆍ18을 겪으면서 정의를 외친 세대였습니다. 굴곡진 시대에서 정의는 '진실의 울타리 안에서/피어나는 해맑은 양심의 꽃(고운 꽃잎이 떨어질 때, 일부)'이었습니다.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견뎌내며, '이 산 저 산 흩어져 꽃 비우며/흐느끼며 울고 있는 홀로 가신/그리운 임들을 위해/앞으로 피어날/우리의 거룩한 꽃들을 위해(어느 젊은이의 질문에 대한 답변, 일부)' 살아야 했던 세대였습니다.

 

그들에게 이 땅은 온 몸을 바쳐 지켜낸 생명처럼 소중한 곳이었습니다. 이 땅은 '저 버려진 들판에 널브러진 이름도 없는 돌멩이 하나도/누구에게 빼앗길 수 없는 모두 우리의 것(이 땅의 노래, 일부)'이기에, 이 땅의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함부로 대하지 마라(땅, 일부)'고 합니다. 그러면서 국가의 중요한 행사 때 4절까지 부르지 않고 1절만 부르는 세태를 안타까워 합니다(4분 20초의 애국심, 참고). 얼핏 보면 철 지난 잔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겠지만, 그 속내는 '막 잠에서 기분 좋게 깨어난/아기의 고운 핏줄처럼 살아 흐르고 있는(한강, 일부)' 아름다운 한강을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은 소망과 사랑의 말씀일 것입니다.

 

시인은 노래합니다. 잔잔한 파도 소리처럼 그리움이 흐르는 시입니다.

 

흰 구름은 바람 따라 흘러가고

파도는 가슴으로 울어

 

그대 떠난 빈 자리에는

서러운 풀빛으로 가득 찼네

 

허허로운 마음 둘 데 없어

먼 데 수평선을 바라보면

 

파도는 바람 따라 흰 물결로 일고

그리움은 물결 따라 밀리어 오고

(봄, 바닷가에서 2, 전문)

 

시인은 고백합니다 ''내 시에는 '그리움과 이별의 시'가 많다. 어떤 독자는 내 시를 읽고, 나에 관한 이야기냐고 묻는데, 시는 가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그 얘기의 주인공이 되어 마치 자기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러므로 시에서의 시적 자아는 자기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이는 시에서의 자아와 타아의 동일화를 의미하는 원로 시인의 귀한 조언이라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아가 타아로 들어가는 것을 '투사'라 하며, 타아가 자아로 들어오는 것을 '동화'라 합니다. 나는 이를 '나와 그의 동일화'라고 부르곤 합니다. '나'는 '시인'이고 '그'는 타아로서의 '시적대상'입니다.

 

결국 나와 그의 동일화는 시인과 시적대상의 동일화입니다. 시적대상은 무수히 많습니다. 또 다른 나일 수도 있고,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나 자연 및 사물일 수도 있습니다. 위에서 예시한 시처럼 시인이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그 친구가 되어, 진달래꽃이나 철쭉꽃이 되어, 바위나 소나무가 되어, 등대나 섬이 되어, 낯선 아이나 엄마(아빠)가 되어, 신화와 역사 속의 인물 등등이 되어, 시를 지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결국 나와 그의 동일화는 시인의 시적 영역의 확대입니다. 시인이 나의 자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내가 그가 되고 그가 내가 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만의 제한된 시의 영역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작의 영토를 확대할 수 있다는 함의입니다. 엄원용 시인의 이런 창작 영토의 확장 노력이 11권의 시집을 낼 수 있는 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엄원용 시인의 시는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나는 늘 시는 쉽게 써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요즈음 독서를 많이 한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시는 '딱딱한 것', '재미없는 것', '알 수 없는 말들로 장식하여 시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수필이나 소설은 잘 읽어도 시는 읽으려 하지 않는다. 물론 시에 대하여 잘 모르는 데서 오는 말일 수도 있으나, 시인들에게도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시인인 나부터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다.''고.

 

엄 시인은 시가 어려워진 원인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때문이라고 합니다. 문학과 예술도 그 시대의 사회적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풍미와 영향은 나름 의미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시가 어떤 문예사조를 기반으로 하든 독자 없는 시는 관객 없는 무대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평생을 시를 사랑하고, 시를 지은 원로 시인의 충언은 깊이 새겨들어야 하겠습니다. 특히 SNS로 연결된 뉴미디어 시대에 암호와 같은 시를 해독하며 시를 읽는 독자는 없을 것입니다. '시를 쉽게 써야 한다'는 말씀을 다시 새기며, 귀한 시집을 보내주신 배려에 졸필을 올려 답례하는 무례를 너그럽게 이해하여 주시길 소망합니다.

▲ 고운 꽃잎이 떨어질 때(엄원용 지음, 2020) / 차용국  ©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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