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비녀(이수진 지음, 2020) / 차용국

강명옥 | 기사입력 2020/11/26 [06:13]

어머니의 비녀(이수진 지음, 2020) / 차용국

강명옥 | 입력 : 2020/11/26 [06:13]

▲ 어머니의 비녀(이수진 지음, 2020) / 차용국  © 강원경제신문


어머니의 비녀(이수진 지음, 2020) / 차용국
 

 한 시인이 자신의 시적 세계를 어떻게 구축해 가는지를 바라보는 것은 흥미진진한 드라마입니다. 이수진 시인의 제1시집 <그리움이라서, 2016>와 제2시집 <사찰이 시를 읊다, 2017>에 이어, 시조집 <어머니의 비녀, 2020>를 읽으면서,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아 가는 이 시인의 수고와 무르익어 가는 시향의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시를 읽는 기쁨은 시향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은 물론, 눈에 확 띄는 시어를 낚는 재미도 한 몫을 합니다. 참신한 시어가 전하는 전율 같은 것입니다. 흔히 '낯설게 하기'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표현 기교는 시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좋은 자질입니다. 이수진 시인은 제1시집 <그리움이라서>에서 보여주는 은유, 상징, 의인화 등과 같은 여러 시적 기재의 어울림에서 구현되는 참신한 묘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인의 재능과 노력이 체화되어 이룬 소중하고 단단한 기반입니다.

 

2시집 <사찰이 시를 읊다, 2017>는 주제에 관한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국의 수많은 사찰을 제목으로 시를 지어 한 권의 시집으로 펴내는 열정은 뼛속까지 시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제 이수진 시인은 또 하나의 창조의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시조집 <어머니의 비녀, 2020>에서 살짝 속내를 보입니다.

 

휘어진 마음을 바로잡으려

가슴 깊숙이 먹줄 긋고

날 선 자음 모음을 둥글게 깎는다

 

터를 고르듯이

앙상한 언어에 살 붙여 기둥을 세우고

눈비 가려줄 지붕을 씌우는

건축가처럼 펜을 든다

 

거칠고 멍든 갈라진 시어

곱게 다듬어 초심을 덧입힌다

 

아직 마무리 못한 문짝 달듯이

저 밑바닥 거미줄 걷어내고

아쉬운 대로 둥글게 한 조각 세운다

 

아직 미완성된 문살을 끼운다

 

시의 집을 짓고

또 집을 짓고 싶은 날

 

('시의 집을 짓다' 전문)

 

이수진 시인은 이 시처럼 '나만의 시어로 집을 짓고 싶다'고 합니다. '나만의 시어'가 궁금합니다. 오로지 시만 사랑하는 이 시인이 찾는 시어는 시의 모태적 원형인 '운율'의 시어일 듯합니다. 시조집을 펼칩니다. 그리움이 가득합니다.

 

봄 향기 스쳐가는

길목에 홀로 서서

 

고운 빛 마음 밭에

소롯이 담았더니

 

피어난 외로움 송이

가슴 가득 울리네

 

('그리움 1' 전문)

 

시의 원형은 노래입니다. 기본적으로 운율(리듬)이 있어야 시가 됩니다. 현대시의 산문화 경향에 편승하여 시의 운율 보다는 묘사 중심의 시가 평가 우위를 받고 있는 현실이지만 운율을 잃은 시는 결국 외형뿐만 아니라 내면도 잃게 될 것입니다. 시어는 운율의 언어이지 설명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이데거는 '언어가 있는 곳에서만 세계가 있다'고 합니다. 운율을 잃은 언어로 지은 글은 제 갈길을 잃고 시의 세계로 들어온 미아일 뿐입니다. 이수진 시인의 운율 찾기는 새로운 시의 세계를 향한 열망이며 희망입니다.

 

쉼 없이 꺼내 놓네

열정의 노랫소리

 

넘어도 끝이 없네

험준한 고갯길로

 

오늘도 시련 견디며

희망 항해 달리네

 

('자유' 전문)

 

오랜 전통을 유전하며 살아온 민족의 언어에는 고유의 특성이 있습니다. 2음과 3음이 대부분인 우리말에는 조사가 붙어 3음보와 4음보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시조의 3음보, 4음보의 생생한 운율(리듬)은 이런 우리말의 자연스러운 어울림과 반복의 발현이라 할 것입니다. 시조는 우리말의 특성과 궁합이 제대로 맞는 시문학입니다. 시조는 우리의 삶에 체화된 숨결 같은 시입니다.

 

시간을

툭툭 치니

가슴이 째려보고

 

추억이

숨죽이니

화들짝 깨어나서

 

까맣게

줄줄이 꿰어

습관처럼 답한다

 

('문자' 전문)

 

괴테는 '훌륭한 민족 문학은 위대한 한 사람의 작가에 의해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그 민족 문화의 전통과 민중적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서양에는 '소네트', 중국에는 '절구''율시', 일본에는 '하이쿠'와 같은 전통의 시문학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시조가 있습니다. 시조의 3612음보의 정형성은 시짓기의 제약 요인이 아니라 우리말의 고유 특성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발현이므로 익히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또한 시조는 기본적으로 음악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노래 가사와 친밀합니다. 엄마에게 배운 말처럼 쉽고 정감어린 시어들이 노래가 되어 대중과 함께 공감을 펼칠 수 있는 세계입니다. 이미 이수진 시인은 그것의 체화를 경험하고 구사합니다.

 

희미한 지문들이 머릿결 쓰다듬어

추억을 틀어쥐면 검게 탄 얼굴에는

하얗게 미소가 번져 패인 주름 그립다

 

('어머니의 비녀' 전문)

 

지금까지 이수진 시인의 시적 세계를 살펴보았습니다. 3권의 시집을 지으며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고 변화를 거듭하며 자신만의 시적 세계를 건설해 가는 아름다운 여정입니다. 벌써 알찬 묘사와 당찬 열정, 그리고 운율이 융합된 다음 여행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기다려집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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