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피아에서 선녀를 만나다(이승해 지음, 2020) / 차용국

차용국 | 기사입력 2020/12/05 [22:51]

레스피아에서 선녀를 만나다(이승해 지음, 2020) / 차용국

차용국 | 입력 : 2020/12/05 [22:51]

▲ 레스피아에서 선녀를 만나다(이승해 지음, 2020) / 차용국  


레스피아에서 선녀를 만나다
(이승해 지음, 2020) / 차용국

  

나는 시인이 쓴 시작노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의 느낌과 생각, 그리고 상상력을 제한 당하기 싫어서입니다. 나는 자유로운 독자이고 싶어서입니다. 시의 매력은 독자의 수 만큼 다양한 느낌, 생각, 그리고 상상력의 확장에 있습니다. 시인의 시작노트는 독자에게 이것들을 빼앗는 일입니다. 독자가 자신의 몫을 잃으면 시를 읽어야 할 이유도 그만큼 사라질 것입니다. 시인은 시로 말하면 그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 한 것입니다. 시를 시시콜콜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은 시인의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어떤 독자가 원작자인 시인과 다른 의미로 시를 이해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독자의 견해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것 자체가 시의 확장성이요 보편성이기 때문입니다. 시가 어떤 경로를 통하여 세상에 나왔든, 그때부터는 원작자인 시인도 독자의 1인일 뿐입니다. 나는 이승해 시인의 이 시집 이름이기도 한 <레스피아에서 선녀를 만나다>를 오래전에 읽으며, '레스피아'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경전철 출구 무인 자동 판매기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시가 출력되어서 나온다

 

조지훈 시인의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서면'

복사되어 시냇물로 출렁인다

 

레스피아로 가는 길은

생의 한가운데서 잠시 돌아 가라고

접시꽃 함박웃음 기생초 눈웃음에

하늘이 헹가래 친다

 

무지개 타고 지상으로 내려온 선녀

고향의 냇물 닮은 시냇가 벤치에서

푸근한 정 담으려 눈을 지그시 감으며

길에서 만난 낮선 여인과 대화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짧은 해라 탓해 본다

 

하늘 나라로 올라 가야 할 시간

선녀와 아쉬운 작별의 시간 소름이 돋는다

 

나 여기 여태 혼자 있었던 걸까

 

그녀는 누구일까

나는 누구인가.

 

(''레스피아에서 선녀를 만나다'' 전문)

 

보통 지명이나 낯선 시어에 대해서는 주석을 붙이는 것이 통례이고 독자에 대한 배려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에도 주석은 없습니다. 이승해 시인을 여러 번 만나고, 이 시집 출판기념회에도 갔지만 '레스피아'에 대하여 묻지 않았습니다. 시인에게 '레스피아'의 주석을 들으면 나의 독자의 몫이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주석을 붙이지 않는 것이 시를 더욱 돋보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시는 이런 시입니다.

 

'레스피아'는 흔히 '하수처리시설과 공원이 같이 있는 공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독자만이 간직하고 있는 특정 지역이나 장소일 수도 있고, 독자의 이상과 상상의 세계를 의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시를 읽으며 독특한 몽상적인 시향에 빠져드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그럼 이러한 몽상적인 이미지의 원천은 무엇일까?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현실의 왜면과 부정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가로등''을 펼칩니다.

 

어둠이 내리면

회색도시에는 키 큰 아버지들이

등을 밝히며 길에 선다

 

포장마차 앞

술 취한 이들의 설움을

지그시 바라보며

자식 걱정에 어둠을 지우고 있다

 

어떤 이는 하소연에 발로 차거나

술에 취해 껴안고 울기도 하지만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묵묵히 밤을 밝혀주는 길잡이

자식 기다리는 마음 하나로

어둠의 끝에 늘 서 있다

 

(''가로등'' 전문)

 

이 시를 읽은 독자는 '가로등'의 이미지에서 아버지를 떠올릴 것입니다. 우리는 보조관념을 통해 원관념을 유추하는 이러한 시적 언술에 익숙해 있습니다. 이 시에서 원관념의 일차적인 대상은 아버지로 볼 수 있지만, 얼마든지 다른 대상으로 확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꿈과 이상을 접어두고 가정과 자식의 안위를 지키고 살피기 위해 현실의 문제를 걱정하고 골몰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어머니, 남편은 물론 시인 자신의 모습으로 재현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누가 대상이 되든 삶에서 자신의 자아는 매몰되어 뒷전으로 밀려나갈 것입니다. 내면의 잠재의식 속에서 숨 죽이고 있는 자아는, 어쩌면 삶의 숙명처럼 '어둠의 끝에 늘 서 있''억압된 자아'의 표상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이승해 시인은 ''삭제''에서 내면의 자아를 정돈합니다.

 

질긴 인연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기억 속 잔영들

비루한 추억의 부스러기들

 

깊은 바닷물 속으로 수장시킨다

 

거대한 물 기둥의 파도가 끊임없이 해변을 적셨다

세월의 그물망에 걸린 그리움 한 조각

 

작은 골방에 뿌리내린 고독이란 사치

뼛속까지 시린 봄밤 탈출구가 필요했지

 

막차를 기다리던 전철 플랫폼에서

떠나 보낸 사랑아

 

(''삭제'' 전문)

 

사람은 살아가면서 생물학적인 유전 요인과 사회문화적인 환경 요인의 제약을 경험하게 됩니다. 행동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사람은 살아가면서 개인적인 제약과 사회문화적인 한계를 인식하게 되고, 자신의 목표가 이러한 장해에 봉착하여 불가능할 때, 공상 속에서 우월감의 보상을 받으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억압된 자아에 대한 보상 의지는 때로는 긍정적인 목표 성취의 동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부정적인 상처와 일탈의 행위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이승해 시인은 억눌리고 상처 받은 자아를 '삭제' 합니다. 그리고 '막차를 기다리던 전철 플랫폼에서 / 떠나 보낸 사랑'을 부릅니다. 내면 깊은 곳으로 떠나보낸 자아를 사랑의 언어로 불러내는 것입니다. 억눌린 자아를 새롭게 단장하여 자신만의 시적 세계를 펼치겠다는 선언입니다.

 

이승해 시인이 자신의 현실적인 제약 요인을 왜면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으면서 구축해 가는 시세계는 내면의 무의식에 잠재해 있던 억압된 자아를 꺼내 상상의 날개를 달고 해방된 세상으로 날아가는 일입니다. 몽상적인 낯선 이미지가 가득한 환상의 세상입니다. 시적 생동감이 철철 넘치는 무한한 상상의 세상입니다. 이승해 시인은 타고난 잠재적 재능과 상당 기간의 습작과 훈련을 거치면서 단단한 기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적절한 시어의 선택을 통해 그려내는 빛나는 이미지가 생생합니다. 이승해 시인의 첫시집 발간을 축하하면서, 벌써 조급하게 다음에 펼칠 이미지를 기다리고 기대하는 이유입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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