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집 마당에 겨울비가 내린다(이현수 지음, 2020)

차용국 | 기사입력 2020/12/15 [22:20]

막걸리 집 마당에 겨울비가 내린다(이현수 지음, 2020)

차용국 | 입력 : 2020/12/15 [22:20]

▲ 막걸리 집 마당에 겨울비가 내린다 표지  © 강원경제신문

 

막걸리 집 마당에 겨울비가 내린다(이현수 지음, 2020)

 

차용국(서평 쓰는 시인)

 

사람은 자신이 존재하는 시대의 자연적 또는 사회적 환경에 반응하면서 살아간다. 사람이 자신의 시대적 환경에 반응하는 방식은 대략 순응, 저항, 그리고 회피다. 사람은 한 가지 반응 방식으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여러 가지 방식을 선택하거나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의 내면에는 지나온 시대의 환경과 그물코 매듭처럼 연결된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영혼의 곳간을 여는 일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개인적 삶과 시대적 정서가 어우러져 형상화된 시는 개인적 서정을 넘어 시대적 정서로 승화된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잘 익은 술도가에서 꺼낸 신선한 막걸리처럼.

 

금간 벽 사이로 술꾼들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간다

술이다, 낮부터

얼굴보다 큰 파전을 손으로 찢어 놓으며

시 같은 건배를 외치는 찰나

바바리코트 깃을 세운 새 손님이 성큼 들어왔다

찬비 냄새를 몰고 온 오랜 벗이다

녹슨 나무난로를 사이에 두고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잔을 돌린다

내 영혼이 기생하는 막걸리 집 마당에

종일 비가 내린다

수북이 쌓이는 건 회한이고 눈물이다

 

오랜 벗을 만난 막걸리 집 마당에 내리는 겨울비는

먼저 간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내는

술잔에서 넘쳐나는 그리움의 눈물이다

 

넘치는 술잔 위로 겨울비가 종일 질벅거리며 내린다

 

(''막걸리 집 마당에 겨울비가 내린다'' 전문)

 

이현수 시인의 제3시집 이름이기도 한 이 시의 1차적인 서정은 '먼저 간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겨울비가 내리는 허름한 막걸리 집에서 '먼저 간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술잔을 기울이는 그리움의 이미지다. 반백을 넘어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은 경험했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이러한 1차적인 개인적 서정을 공감의 마당으로 끌어오는 것만으로도 이 시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발표되고 있는 많은 시들이 이와 같이 1차적인 서정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나는 이런 경향을 탓하거나 경박하다고 치부하지 않는다. 다만, 시를 읽다보면 이런 1차적 서정을 넘어 전해오는 깊은 시향을 맛볼 때가 있다. 이런 시를 만나면 눈부신 감흥에 놀라 어두운 바다에서 등불을 찾은 것처럼 행복해지곤 한다. 이 시가 바로 이런 시다.

 

이 시를 개인적인 서정의 공유 수준에서 마무리 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이현수 시인이 단서처럼 남겨놓은 시어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시를 다시 살펴본다. 1행을 보면, '금간 벽 사이로 술꾼들'이 있다. 단순히 금간 낡은 벽이 있는 막걸리 집에서 술을 마시는 풍경으로 볼 수도 있지만, 경계의 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믿음과 말('웃음소리가')을 내뱉는('새어 나가다') 현장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막걸리 집 마당''분열된 시대의 광장'을 상징하는 언술로 볼 수 있다. 6-7행을 보면, '새 손님'처럼 '찬비 냄새를 몰고 온 오랜 벗''녹슨 나무난로를 사이에 두고' 잔을 돌린다. 여기서도 응당 반갑기만 할 것 같은 '오랜 벗'에게서 '찬비 냄새'가 나고, 그와도 경계의 선('녹슨 나무난로 사이')을 두고 술을 마신다. 경계의 선에서 넘을 수 없는 극단의 안타까움에 대한 역설적 언술로 다가온다. 결국 낡은 시대의 광장에서 벗이 되어 함께 했지만, 지금은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벗을 향한 사무친 그리움의 고백으로 보인다. 그 광장(막걸리 집 마당)'내 영혼이 기생하'는 곳이다. 뼛속까지 스며있는 미안함과 자책의 울림이다. 먼저 간 벗에게 쌓인 '회한의 눈물'이다. 이처럼 이 시를 1차적인 개인적 서정을 넘어 시대적 정서로 보면, '먼저 간 벗들'은 낡은 시대의 광장에서 이상을 향해 함께 했던 벗들로 대체된다. 이현수 시인과 나와 같은 60년대 연배들은 민주화를 부르짖던 80년대의 벗을 연상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어떤 이상의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함께했던 벗들일 수도 있을 듯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이 시를 읽는 독자의 몫이다.

 

우리가 시를 사랑하고, 좋은 시가 시대와 장소를 넘나들며 사랑받는 것은 시에 내재하여 있는 보편적 정서를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의 보편적 정서에 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나는 개인적 서정과 시대적 정서의 어울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애창하는 것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는 순수한 개인적 서정과 암울한 시대의 아픔을 견디며 고뇌하는 젊은 시인의 시대적 정서가 어우러진 울림 때문일 것이다. 이현수 시인의 ''막걸리 집 마당에 겨울비가 내린다''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개인적 서정과 시대적 정서가 어우러진 수작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뜬금없이 시가 무엇이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참으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기에 머뭇거리다 대충 얼버무리고 만다. 시의 정의에 관해서는 수없이 많은 논의가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래서 엘리어트는 ''시의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다''라고 말한다. 시에 대한 정의의 어려움과 불가능함을 시사하는 말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를 짓고 읽는다. 우리의 내면에 시심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시심이란 시를 불러일으키는 생각이나 느낌 등을 말한다. 시 짓기는 바로 시심을 언어라는 매체로 기록하는 일이다. 시심을 언어로 기록하는 일은 경험을 구체화하여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물론 재구성의 기재는 관찰과 상상이지만, 이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온 시집에는 시인만의 독창적인 시심과 언술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집약된 결정체가 시집 맨 앞에 있는 글이다. 보통 '서시'로 부르거나 '시인의 말' 등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어떤 형식이든 그 속에는 시인의 정화수와 같은 시심이 놓여있다.

 

시처럼 살다가는 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중간 중간의 크고 작은 생의 아픔 스스로 이겨내고 운명이 부르는 시간 오면 이치에 순응하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시인에게 마지막 순간이 있다면 절정의 순간에 지는 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초라한 모습 없이 절정에서 낙화하는 동백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인의 말'' 전문)

 

이현수 시인이 원하는 삶은 '시처럼 살다가는 생'이다. 시처럼 사는 삶은 동백꽃과 같은 생이다. 삶의 굴곡에서 '크고 작은 아픔'과 시련이 있겠지만, '스스로 이겨내고' '절정의 순간에 지는' 동백꽃처럼 살기를 고백한다. 불의와 모순에 현혹되지 않고, 구차스럽게 변명하면서 연명하지 않고, 올곧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이다. 이것이 이현수 시인의 시심이다.

 

가장 낮은 자세로

몸을 바닥에 깔고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는 순간

내세우기만 했던 자신의 삶이

그저 허무였음을 범종 소리 멈추고 나서야 알았다

삶의 무게는 혼자 느끼는 것이 아님에도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아팠던 시간이 많았다

 

(''산사의 아침'' 일부)

 

이현수 시인은 늘 자신의 허물을 정직하고 겸손하게 돌아보고 반성한다. '가장 낮은 자세로 / 몸을 바닥에 깔고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는 순간' 깨달은 사유에서 깊은 시심을 우려낸다. 무명의 번뇌를 걷어낸 맑은 시심은 이렇게 시로 출력되기 때문에 깊은 울림을 생성한다.

 

가끔은 안개가 우리를 가두었다

사랑하는 가슴에

늘 행복만 충족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때로는 아픔도 있었고

때로는 안개처럼 가두어진 우울감에 슬픔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안개는 걷히는 것이었다

 

생각해 봐

가두고 갇혀 봐도

우린 금방 또 행복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잖아

 

(''안개'' 전문)

 

이현수 시인의 시심이 닿은 세상은 긍정의 세계다. '때로는 아픔도 있었고 / 때로는 안개처럼 가두어진 우울감에 슬픔도 있었지만' 결코 그의 올곧고 맑은 시심을 꺾지는 못 한다. 오히려 시련의 시간을 담금질하여 더욱 단단한 시어를 창조한다. 천상 시인의 내공이다. 그 깊은 내면의 종소리가 전하는 울림을 듣는 것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행복의 소리를 공유하는 것과 같다. 이현수 시인은 그 울림을 전하며 함께 사랑하고 행복하기를 소망한다. 삶은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모든 삶은 그대와 함께 만들어가기 때문이(''바람 소리'' 일부). 이현수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백''''사랑해''라는 말이라고 외친다. 그에게 '사랑은 서로 통한다는 말에 방점을 찍는 / 무언의 향기'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한 곳을 바라보는 것

 

아픈 곳을 약점 잡는 것이 아니라

보듬어주고 지켜주는 것

 

각자의 생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텔레파시 통할 때까지 집중해 주는 것

 

서로의 가치를 지켜주고

서로의 가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꾹 눌러주는 것

 

사랑은 서로 통한다는 말에 방점을 찍는

무언의 향기

 

(''사랑은'' 전문)

 

시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사람과 자연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그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는 일을 하는 것이 시인의 숙명이요, 이 세상에 시인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서정시든, 사회비판적인 참여시든, 또 어떤 장르의 시든, 그 내면에는 시인의 세상과 사물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시심이 들어있는 것이다. 시는 시심의 형상화이기 때문이다. 이현수 시인은 <막걸리 집 마당에 겨울비가 내린다>를 통해 독자와 함께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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