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추억(작가들의 숨 공저, 2020) / 차용국(서평 쓰는 시인)

차용국 | 기사입력 2020/12/27 [14:50]

숨-추억(작가들의 숨 공저, 2020) / 차용국(서평 쓰는 시인)

차용국 | 입력 : 2020/12/27 [14:50]

▲ 숨-추억(작가들의 숨 공저, 2020) / 차용국(서평 쓰는 시인)


 

숨-추억(작가들의 숨 공저, 2020) / 차용국(서평 쓰는 시인)

 

  

'숨'이라는 단어는 한 글자임에도 긴 여운이 남는다. 나의 원초적인 생명이 보이고. 다른 이의 그늘이 될 수 있는 여백이 느껴진다.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실날같은 희망이고, 동아줄 같은 목숨통이다. 숨표나 쉼터처럼 다른 이의 기댈 어깨가 되기도 한다. 숨은 뿌리처럼 깊으면서도 멀리까지 아우르는 광대함이다. 

 

숨은 '이음'과 '연결'의 소통으로 맺은 인연의 숨결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생활하며 활동하는 작가들이 '숨'이란 한 글자의 매력에 이끌려 <작가들의 숨> 카페에 터를 만들고 글나눔 한다. 이제 '숨'은 작가와 작가를 이어주는 자리를 넘어 작가와 독자를 연결해주는 자리를 편다. 함께 나눈 글을 모아 책을 펴냈다. 2019년에 선을 보인 <첫숨>에 이어 2020년 세밑에 <숨-추억>을 출간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인 만큼 글도 10인 10색이다. 먼저 각자의 수필, 다음에 시와 시조를 펼쳐 보여준다. 마지막 장에서는 사진과 함께 추억을 소환한다. 이 책의 테마 '추억'을.

  

사람은 매일 한순간도 쉬지 않고 정보를 받아들인다.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정보다. 흔히 오감을 통해 듣고, 보고,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가공하는 생각이나 판단 등에 관한 모든 것이 경험 정보다. 사람은 매 순간 쏟아지는 수많은 경험 정보를 쉬지 않고 받아들였다가 버리기를 반복한다. 다 축적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험에서 얻은 정보 중에는 버릴 수 없는 정보가 있다. 현재를 넘어 미래에도 필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이 정보는 기억으로 저장된다. 저장된 기억은 끊임없이 재해석 되고, 재가공 되어 유전한다. 리처드 도킨슨이 <이기적 유전자> 에서 제기한 문화적 유전자 밈(meme)의 진화라든가, 노벨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사람에게는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가 있지만, 결국, 기억의 자아만 남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실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인류 진화의 비밀 한 꺼풀을 들추어냈을 뿐이다. 결국, 개인이든 사회이든 문화는 기억의 산물이다. 그래서 기억은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해 흐른다. 기억의 서정적 자아가 추억이다. 그래서 추억은 과거-현재-미래의 삶을 지탱하며 영향을 미친다.

  

박선정 작가는 수필 ''밀양역''에서 아버님의 생신날 새벽부터 밤을 쌂는 아버지의 훈정의 추억을 그리고 있다. 객지에서 찾아온 자식에게 주려고 밤을 쌂는 작은 마을에는 한없이 퍼주기만 하는 부모님의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은 어렵지만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나의 다짐이 된다. 아름다운 서정의 눈꽃 수채화다. 졸작 수필 ''추억은 언제나 제자리다-수락산행''에서는 바쁘게 열심히 산다는 핑계로 아이와 많은 추억을 만들지 못하고 살아온 반백의 삶을 반추하면서, 어린 아들과 첫 산행을 했던 추억을 소환한다. 그러면서 인생은 다 때가 있어 그때를 잃지 않고 추억을 만들면서 살아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최미란 작가는 수필 ''자연스러워진다는 것''에서, 힘든 과정을 겪은 뒤 오히려 편안해 보이는 친구를 만난다. 비가 오는 공원에서 친구가 건네준 고리가 살짝 고장 난 우산을 쓰고 걸으며, 마음 한편에 여백을 마련해 놓는 삶의 가치를 단아한 어조로 이야기 한다. 최성돈 작가는 수필 ''그리움이 분노를 이깁니다''에서, 뾰족한 모서리가 다른 별과 어긋나 접근되면 상처를 내어 분노를 만들어 내지만, 잘 맞춰진 연합은 더 밝고 아름다운 별빛을 비추듯이 합했을 때 더 밝았던 추억이 그리움을 만들어 낸다는 은유의 사유를 보여준다.

  

추억은 기억의 추상화다. 추상은 난해한 관념이 아니라 거추장스러운 군더더기를 다 버리고 남은 알짜배기 정수를 말한다. 그래서 추억은 시에 가깝다. 원래 시는 효율적인 기억술의 한 방편으로 발전했다. 쉽고 간결한 언술이 리듬을 타야 오래간다. 우리는 시를 짓는다고 한다. 책도 만들고, 보고서도 만들고, 심지어 분위기조차도 만들면서, 시는 짓는다고 한다. 밥이나, 옷이나, 집처럼 정성으로 한 땀 한 땀 지어야 한다. 그렇게 '시인이 지어낸 시는 / 갓 지어낸 밥처럼 찰지다' 시는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밥상 같은 거(김재호, ''아내는 시인이다'' 일부)'다. 시인은 눈이 밝다. 심안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가 와도 별이 뜬다' '비요일엔 마음속에 따로 뜨는 별(김학주, ''비가 와도 별이 뜬다'' 일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는 추억의 동산에서 피는 그리움이다. 시를 짓는 것은 '기억의 뒤안길에서' '낯설지 않은 그리움을 읽는(민지유, ''낯설지 않은 그리움'' 일부)'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좋았던 이야기도, 힘들고 비참했던 이야기도 다 소중한 것은, 이것이 삶의 한 축을 지탱하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찍이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견디기 힘들었던 일도 좋은 추억이다''라고 말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는 '눈먼 무소처럼 살아가는 동안 / 무엇인가를 잊었고 / 추억은 길을 잃'기도 하지만, 삶의 어느 시점에 '엉킨 중추신경을 풀고 / 튀어나온 / 풋내 나는 추억'처럼 여전히 '오래도록 나를 본다(이연화, ''사진 한장'' 일부)’추억은 '리베카 금지된 댄스곡'처럼 '홀연히 떠나간 젊음'의 열정을, '삼십 년을 돌아온 길' 위에서도 여전히 '재생'할 수 있는 '노랫말(황병숙, ''슈가맨'' 일부)'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세월이 흘러'도 '늘 그 자리 /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뚝 선 / 내 어머니 / 품속 같은 나무(황도경, ''느티나무'' 일부)'와 같은 우리네 삶의 모태적인 '숨' 소리.

  

여러 사람들이 한 가지 주제를 다루는 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와 수필과 같은 문예지에서는 흔한 것은 아니다. 각자의 관심 분야가 다르기도 하고, 함께 주제를 선정하여 책으로 엮기에는 들이는 수고가 적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심도 있게 들여다 보는 것도 매우 가치 있는 일이지만, 여러 작가들이 한 가지 주제에 관하여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을 듣고, 보고, 느끼는 맛도 별미가 될 수 있을 듯싶다. 우리는 다양한 시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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