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하×이도하 시집 <연인>을 중심으로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시를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시를 영화로 제작하여 상영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많은 소설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져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례를 보면 더욱 그러하다. 또한 시대의 조류를 살펴보아도 그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이 전혀 뜬구름 잡는 것처럼 황당하지만은 아닐 듯싶다.
지금 지구촌은 디지털 문명의 가속 페달을 밟으며 달려가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디지털 문명의 키워드는 초연결, 초융합, 그리고 지능화다. 세상은 어느 하나의 학문이나 기술로 접근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복잡계를 이루고 있다. 동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이질적인 것들을 상호 연결하고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다. 통섭적 사고와 융합을 강조하는 것도, 그것이 대전환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편이기 때문일 듯하다.
예술도 예외일 수는 없을 것 같다. 각 예술 분야가 고유의 영역에 벽을 치고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새로운 예술 분야의 탄생도 있을 것이고, 기존의 예술 분야가 융합하여 각 예술 분야의 확산과 활로도 개척해야 할 듯싶다. 시도 언어 예술이란 점에서 시대의 조류에 문 닫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 시단에서도 이러한 시대 변화를 감지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시인들의 움직임이 있다.
신규호 문학평론가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먼저 현대의 시문학 환경을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대중을 사로잡는 각종 전자매체들의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함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문화적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어, 대중은 이들 각종 전자매체가 제공하는 컨텐츠에 몰입되어 있다. 그 영향으로 현대시는 사회의 변방으로 내몰린 채 고사 직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렇다. 적절한 진단이다. 지금의 시문학은 수요 없는 시장에 과잉 공급되고 있는 형국이다. 당연히 재고가 쌓이고 주기적인 폐기는 불가피해 보인다. 새로운 활로를 찾는 일은 사생의 결단처럼 절박해 보인다. 이러한 시대에 부응하여, 최근에 '한국시문학아카데미' 회원들을 중심으로 시도되고 있는 각종 실험시 운동(예를 들어 '하이퍼시'를 비롯해서 '디카시', '공연시', '디지털시' 등)은 IT시대의 달라진 문학적 환경을 직시함으로써 21세기 시의 새로운 변모를 모색하기 위한 노력의 일단으로 나타난 것들이며, 특히 이 글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하이퍼시' 운동은 그중에서도 전자매체의 영향을 수용하고자 시도하는 실험성이 직접적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사실 시문학의 주변을 돌아보아도 시와 뉴미디어의 융합은 진행되어 왔다. 시 고유의 함축적이고 다의적인 언어와 상상력으로 빚어낸 이미지가 지면의 글을 뛰쳐나와 오디오와 동영상으로 갈아타고 있다. 전자시집이나 낭송시집의 발간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고, 시를 향유하는 주요 통로가 유튜브 등 SNS로 이동하고 있다. 이쯤 되면 시가 지면만을 고집할 수 없는 처지에 몰려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현대는 문화의 주류는 동영상이고, 영화가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시와 영화의 만남이 지체되었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시를 영화로 만드는 데는 어떤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먼저 사례를 살펴본다. 박민영 교수에 따르면, 아직 시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는 많지 않지만, 원작이 시인 영화는 시 작품 자체를 영상으로 해석하여 옮겨놓은 것과, 시를 영화의 주된 소재로 삼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로는 장정일 시인의 <요리사와 단식가>를 원작으로 한 박철수 감독의 영화 <301 302>와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 에히디오 코치미글리오 감독의 <섹슈얼 컴펄전>을 들 수 있다. 후자에 속하는 영화는 황동규의 시 <즐거운 편지>를 소재로 한 이정국 감독의 영화 <편지>가 있다. 물론 시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로는 망명지의 파블로 네루다를 다룬 영화 <일 포스티노>, 베를렌과 랭보의 사랑을 다룬 영화 <토탈 이클립스>, 스페인내전 발발 직전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를 다룬 영화 <데스 인 그라니다> 등이 있다. 국내 영화로는 이상과 금홍의 사랑을 다룬 영화 <금홍아 금홍아>, 윤동주와 송몽규의 우정을 다룬 영화 <동주> 등이 있었다.
시를 영화의 주된 소재로 삼는 것과 시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진정한 의미에서 시를 영화로 만들었다고 치부하기는 어줍다. 오히려 시나리오 창작에 가깝다는 생각을 떨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시 작품 자체를 영상으로 제작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의미의 함축과 은유의 언술인 시를 스토리로 치환하여 영상으로 그려내려면 적잖은 노력이 필요할 듯하다. 또한 시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미지를 영상으로 그려낼 수 있는 섬세한 기법의 개발도 필요할 듯하다. 시와 영화가 기본적으로 스토리와 이미지의 배합이란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장르의 마남이 요원한 것만은 아닐 듯하다.
만약 한 권의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다면, 영화 제작의 수월한 요건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시집을 읽다가 눈에 확 띄는 독특한 시집 <연인>을 발견했다. 이정하 시인과 이도하 시인이 공동으로 펴낸 <연인>은 일반적인 시집의 틀을 깬 낯선 구성에 더하여,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의 매력까지 갖추고 있다. 첫 장을 넘기자마자 무섭게 빠져들어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와 여자가 시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전개하고 있는 이미지는 마치 사랑의 노래를 주고받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연인>이 펼치는 사랑 이야기는 일반적인 구성에서 크게 벗어나 보이지는 않는다. 즉 만남에서 사랑(1장) -> 사랑에서 동반(2장) -> 동반에서 이별(3장) -> 이별에서 영원(4장)으로 전개하는 시나리오다. 각 장에서 숨어있는 스토리와 이미지를 대략 살펴보자.
''제1장 만남에서 사랑 - 당신의 시간에 이르기까지''에서는 도시의 중년 남자와 호반의 도시 춘천의 중년 여인의 마남과 사랑을 잔잔한 호수 위를 스치는 윤슬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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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사랑에서 동반 - 그곳에 우리가 있었다''에서는 상당히 진척된 사랑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아름다운 시어가 무지개처럼 쏟아지는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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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동반에서 이별 - 저만치 다가온 이별''에서는 현실과 사랑의 상황과 갈등, 그리고 이별의 정한이 노을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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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이별에서 영원 - 뜨겁던 우리의 사랑은''에서는 이별의 아픔을 치유하고, 삶의 의미를 사유하는 속 깊은 시향이 여운처럼 눈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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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사랑은 하나였으나 우리는 각자의 마음을 시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남과 여,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과정 속 시각과 생각의 차이. 그 간격은 대부분 우릴 한없이 슬픔에 잠기게 했다. 이 이야기가 실화이건 꾸며낸 이야기건 그건 중요치 않다. 다만 꽉 막힌 현실 속에서도 사랑은 어떻게든 빛을 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사랑마저도 시류에 흔들리는 이 시대에, <연인>의 스토리에 담겨있는 주옥같은 시어는 사랑하고 아파하는 모든 이에게 전하는 치유의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또 하나의 치유의 선물인 영화로 만들어 시의 서정을 영상으로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지금까지 시문학의 환경 변화와 시를 영화로 만들어 향유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시집 <연인>의 사례를 대략 살펴보았다. 시를 영화로 만들려면 이 글에서 언급한 것보다 더 많은 협업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 노력은 힘들지만 값진 결실을 안겨줄 것이다. 시문학계와 영화계가 머리를 맞대고 그 방법과 결실을 공유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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