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환상의 경계에서 피는 시향

<몽 이후>로 살펴본 김두기 시론

강명옥 | 기사입력 2021/03/30 [04:46]

삶과 환상의 경계에서 피는 시향

<몽 이후>로 살펴본 김두기 시론

강명옥 | 입력 : 2021/03/30 [04:46]

▲ <몽 이후> 김두기 시집



삶과 환상의 경계에서 피는 시향

- <몽 이후>로 살펴본 김두기 시론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1. 5시집 <몽 이후> 문을 열고

 

여기 시를 미치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몸서리치게 시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시를 향한 짝사랑의 고백이 하도 강열하여, 그가 시인의 길을 걷는 것은 숙명처럼 보입니다. 이번에 제5시집 <몽 이후>를 펴낸 김두기 시인입니다. 그가 시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는 우선 이 시집 ''저자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살다가 우연히 마주친 시에서 살아가는 작은 길을 보았습니다. 마치 구도자가 구도의 길을 찾아 가듯이 시에도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 있었습니다.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어두웠던 시야를 밝힘으로 긍정적으로 살아갈 힘을 얻어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몽 이후> ''저자의 말'' 일부

 

김두기 시인의 고백입니다. 어느 곳 하나 빈틈없이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촉촉하게 배어 있습니다. 그는 시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길을 보았습니다. 그 길은 구도의 길을 찾아 가는 길과 같지만, 그는 기꺼이 그 길을 가겠다고 다짐합니다. 그 길은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고, 자신이 가야만 할 길입니다. 그 길에서 삶의 저편에 존재하는 나를 만납니다. 그것은 진정한 나의 자아를 만나는 일입니다. ,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어두웠던 시야를 밝힘으로써, “긍정적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일입니다. 삶의 저편에서 숨죽이고 서있는 자아를 만나는 일은 시와 대면하는 일입니다. 그의 깊은 자아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하는 것은 시를 짓는 일이기도 합니다.

시는 김두기 시인이 삶을 지탱하는 힘의 원천입니다. 2002년 시인의 문을 열고 들어온 그의 삶은 시로 충만한 길이었습니다. 시력 20년의 내공으로 하나하나 쌓은 돌탑 같은 네 권의 시집도 발간했습니다. <시인이 된 청소부>, <풀씨>, <새벽에 껍질을 위로하다>, <열고 보니 허공> , 네 권의 시집에는 그의 시심과 시향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먼저 2007년에 발간한 시집 <새벽에 껍질을 위로하다>''자서'' 전문을 들어봅시다.

 

세상 어디에서나

소리들이 울려 퍼진다

작은 소리는

조용히 가슴에서 울려 퍼지고

큰소리는

세상을 향해 울려 퍼진다

난 작은 소리다

저 우주보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의 이야기를

작게 쓰며 살아가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적어가면서

오늘도 세상을 사랑하려고

새벽 하늘을 본다

 

<새벽에 껍질을 위로하다> ''자서'' 전문

 

김두기 시인은 위 ''자서''에서 스스로 난 작은 소리다라고 말합니다. 그 소리는 조용히 가슴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이고.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의 이야기를/작게 쓰며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추구하는 시향은 우주와 같은 거시적 담론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소소한 삶의 이야기입니다. , 소중한 미시적 삶의 노래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숨죽이고 있는 모순과 결핍의 실체를 발견하고 이야기로 보충시켜 나가려는 인간 본성에 내포되어 있는 심리적 공간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두기 시인은 그 공간에 자신과 세상에 대한 사랑의 시향을 채워갑니다. 그는 주어진 삶을 적어가면서/오늘도 세상을 사랑하려고/새벽 하늘을보고 있습니다.

김두기 시인의 시짓기는 결국 자기애와 인간애의 보편적 결합을 찾는 일입니다. 2020년 발간한 시집 <열고 보니 허공>''시집을 펴내면서''에서는 노골적으로 시를 향한 짝사랑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때론 시라는 것이 어렵고 지금도 쉽게 적히지 않는 그런 문학이지만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나의 말과 표현을 버리지 못하기에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또 시라는 것에 짝사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열고 보니 허공> ''시집을 펴내면서'' 일부

 

그에게 있어 시는 자신의 영육이 하나가 되어 세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 입니다. 시를 통해 현실의 나와 내면의 자아를 만날 수 있고, 그 자아를 성찰함으로써 실존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김두기 시인은 어쩌면 몽상가일 수도 있을 듯합니다. 몽환이란 꿈과 환상이라는 뜻입니다. 허황된 생각이나 삶의 덧없음을 비유해서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김두기 시인이 펼치는 몽환의 의미를 그렇게 단순한 호흡으로 의미화 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아는 것과 행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듯, 삶과 환상을 어떻게 표현하고 해석하느냐 역시 하나로 통합하여 숙고할 문제입니다. 우선 그가 보여준 독특한 시사랑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그가 펼치는 환상과 꿈의 나라로 들어가서 보아야 그 의미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을 듯합니다.

, 이제 서설을 접고 김두기 시인이 펼치는 <몽 이후> 나라 문을 열고 들어가 봅시다.

 

2. 환상을 탐색하다

 

사람의 삶에는 언제 어디서나 배경이 있습니다. 삶의 환경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합니다. 사람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배경은 크게 자연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으로 구별할 수 있을 듯합니다. 사람의 삶은 자연 배경에 기반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삶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전개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의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인식과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살아온,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갈 사회적 배경이 다를 것입니다. 서로 다른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은 풍부한 다양성의 보고일 수도 있지만, 수많은 갈등의 장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사회적 배경에서 생성된 인식의 차이는 타인과 자연 또는 사회제도를 바라보는 시각에 균열을 일으키고, 크고 작은 갈등이 생겨납니다. 갈등에는 외적인 요인에서 생기기도 하지만 내적인 분열과 결핍에 의해서 생기기도 합니다. 사실 까다롭고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내적 갈등입니다. 내적 갈등은 나와 타인, 자연, 사회제도 등의 차이와 선택에서 생기는 갈등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서로 대립하는 가치의 충돌도 포함합니다. 갈등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는 그것에 대처하고 해결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먼저 시 한 편을 보겠습니다. 시인이 자신의 삶의 배경과 갈등에 대하여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시입니다.

 

새벽에 눈뜨면 어김없이 길을 나선다 아직 꿈에 취해 있는 하늘은 별들을 곳곳에 심어 놓고 가슴 벌리고 길 끝을 잡고 있었다 눈뜨기 직전의 달콤함은 무겁게 어깨 위에 걸터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가로수 잎에 하루를 시작하려는 이슬의 실날같은 마음 기도로 걸어가고 있다 한쪽 가슴 찾아가는 달빛은 더욱더 환하게 손 흔들고 있다 그 빛은 아직 집 찾아가지 못한 삶의 뿌리로 들어가고 있다 새벽 몸통이 기지개를 펴고 갈래갈래 길 찾아 나서는 길의 영혼에 삶은 새처럼 날개를 파닥였다 그 새는 가슴을 한쪽 잠시 땅속에 묻어 놓고 줄기를 피어 올리는 우리들의 영혼들이었다 영혼의 잎사귀들은 언제나 흔들리고 있었다 때론 흔들림의 경련에 못 이겨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 사라지는 울림은 어둠 속으로 파고들다가 아침 해를 불러내고 있었다 나는 나의 직업 속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새벽은 고르고 있다

 

(''새벽길 생각'' 전문)

 

산문시 경향의 이 시의 화자, 나는 새벽에 눈뜨면 어김없이 길을 나서는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직 꿈에 취해 있는시간에 홀로 길을 나서는 것은 여간 고달픈 일이 아닐 듯합니다. “눈뜨기 직전의 달콤함을 쉬 떨어낼 수 없을 것이고, “무겁게 어깨 위에 걸터앉아있는 삶의 갈등도 만만치 않은 무게일 듯합니다. 왜 나는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서는 걸까? 그 이유는 마지막 행에서 밝힌 것처럼 나의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 시의 전반부는 새벽 일찍 일하러 길을 나서는 고달픈 사람의 삶의 모습과 서정의 배경을 잔잔한 드라마의 여운처럼 펼치고 있습니다. 어쩌면 도시 서민의 삶의 애환과 부조리를 고발할 것만 같은 배경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여 민중시 또는 노동시와 같은 참여시의 경향으로 흐를 것만 같은 배경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과 기대는 순식간에 해체되고 맙니다. 뜻밖의 낯선 언술이 시의 방향을 돌려버리기 때문입니다. 시에서 낯선 언술이나 구성은 시적 긴장과 흥미를 돋보이게 함으로써 독자의 주목을 끌어냅니다. 이 새로운 전향이 자칫 식상한 의식화의 구호를 대변하는 참여시를 거부하고, 김두기 시인만의 독특한 환상의 영역으로 이끌고 갑니다. 그 길은 별빛과 달빛이 환하게 손을 흔드는 길입니다. “길 찾아 나서는 길의 영혼에 삶은 새처럼 날개를 파닥이는 길입니다. “그 새는 가슴을 한쪽 잠시 땅속에 묻어 놓고 줄기를 피어 올리는 우리들의 영혼들입니다. 그 영혼의 흔들림과 울림은 어둠 속으로 파고들다가 아침 해를 불러내, “나의 직업 속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발견합니다. 여기서 종소리는 자의식의 울림, , 스스로에 대한 물음과 각성의 상징적 표상을 보여주고 있는 듯합니다.

이와 같이 이 시의 배경은 삶의 현장과 환상의 영역이 혼재해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의 삶은 그 자체가 언제나 새로운 것일 수도 있을 듯합니다. 라캉(Jacques Lacan)의 정신분석이론을 빌리면, 자아의 본능적 욕망과 초자아의 절충을 의미하는 자아방어기제이기도 하면서, 깨달음을 통한 자아 찾기의 열망의 언술로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이처럼 김두기 시인의 시세계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통상적인 관념에 의표를 찌르는 시적 언술로 낯선 환상의 공간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그가 구축해 가는 시의 영토에는 삶과 환상의 영역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의 시는 삶과 환상의 경계, 그 어디쯤의 언저리에서 솟아나는 시심과 시향으로 보입니다.

 

날 추돌해버리고 뺑소니친 계절들을 고발하고 싶어요

내 영혼이 아파하는 신음 듣지만

무섭게 사르르 날 밟고 가는 아쉬움의 속도를

어디에 고발해야 하나요.

걸어온 흔적을 허공의 무상함에

손해배상청구 하고 싶어요

매일 비슷한 시간에 몸을 싣고 달려가지만

제자리 맴돌 뿐이에요

도망가버린 시간의 바퀴에 밟혀

가슴에 옹이처럼

박힌 멍 자국을 치료를 받을 길 없네요

실비시간 보험 받으려니

내가 지닌 시간들이 각종 난치병에 걸려

가입 불가라네요

평소 관리하고 좀 더 아껴 써야 했어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생의 춤을 멋지게 추다가

무대에서 내려오려고 다짐해요.

 

(''후회'' 전문)

 

이 시는 삶의 부침과 환상의 시 정신을 비유를 통해 비교적 뚜렷하고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는 사람의 성장 과정뿐만 아니라, 평생을 살아가면서 형성되는 지성적이고 감성적인 활동의 산물입니다. 하여 시적 언술은 시인이 세계를 바라보고 인식하는 창으로 기능하기도 합니다. 퍽 현실적인 감각과 일상적인 시어로 지은 이 시는 김두기 시인이 어떤 인식과 태도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삶은 늘 제자리에서 아파하고 무상하게 맴돌 뿐인데, 세월은 인정사정없이 무섭게 달려만 갑니다. 그 매정한 시간의 상흔은 가슴에 옹이처럼 박힌 멍 자국을남겨 놓았습니다. 치료를 받을 길도 없고, 보상도 받을 수가 없으며, 보험 가입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삶은 이렇게 차갑고 답답한 현실 논리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이런 삶에 대응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대략 세 가지 길이 있을 듯합니다. 순응, 대항, 그리고 제3의 길입니다. 김두기 시인이 선택한 제3의 길은 환상과의 결합입니다. 시에 환상의 세계를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삶의 부침과 결핍의 공간에 상상력이 채워지면서 환상의 영역이 만들어집니다. 세월을 고발하고, 세월에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을 순응으로 볼 여지는 없을 듯합니다. 그렇다고 현실의 모순과 사회 제도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대항하는 민중시나 노동시와 같은 참여시와 동일한 선상에서 해석할 여지도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러면 김두기 시인이 선택한 환상의 시세계는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갖는 것일까? 세월에 고발하든 손해배상을 청구하든, 그게 무슨 실익이 있겠느냐는 시비를 받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정말 환상의 시짓기는 실체 없는 허망한 울림일 뿐인가?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이 지점에서 김두기 시인의 시는 개인적인 심리적 차원에서 점차적으로 사회적인 상상력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확산합니다. 김두기 시인 스스로 창조한 환상의 역동성은 그의 자유정신의 발현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무한히 확장 가능한 공간 말입니다.

 

3. 삶과 환상의 경계에서 피는 실존

 

사실 환상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했습니다. 사실성의 저편에 있는 것, '실재 있는 것'이 아닌 '거짓 있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것이라는 인식이 내재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이란 결국 사실 아닌 것의 배제 내지 도움을 받아 성립하는 개념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우리 스스로 구성한 영역의 틀 내에 갇혀 있는 사실일 뿐이지, 사실의 실체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실이란 실체로서의 현실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믿는 환상일 뿐입니다. 결국 환상이란 사실이라는 믿음과 인식의 체계라 할 수 있습니다.

라캉(Jacques Lacan)의 정신분석학 용어를 빌리면, 환상이란 실재(the Real)하는 것으로 구성된 현실의 초과분(excess)으로서의 앎과 욕망의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환상의 언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실재로서의 현실의 변형입니다. , 현실의 결핍과 갈망을 채우고 성취하려는 치열한 반동의 의미를 내포한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환상은 현실성의 부정이나 회피 내지는 훼손이 아니라 그것을 확장하고 보강하려는 열정의 언표로 이해하는 것이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이렇게 열정으로 충만한 시는 우리의 삶을 한 단계 높은 곳에서 성찰할 수 있는 창이며,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실천해 갈 수 있는 힘이 됩니다. , 삶에 실질적으로 작용하는 진정한 시의 힘이라 하겠습니다.

 

가벼움의 발자국을 하나둘 모였다

산 넘고 들을 거닐며 겨울의 중심에 꽃 피웠다

차가운 세상 날씨일수록

더 피어나고 싶어 했지

 

봄 여름 가을을 조금씩 갈무리해오면서

허공뿐인 하얀 현실에 울기도 했지

대지와 깊은 사랑 나누고 싶어서

물의 영혼을 어루만졌지

 

이제 여기서 사는 거야

눈꽃 씨앗 뿌려 꽃 피우고

온몸 녹여 다음 겨울의 길 만들어

겨울의 말로 사랑해야지

 

차가워질수록 더 백색의 자태 보이면서 사는 거야

용기를 내고 사는 거지

아직 밤은 많이 남아 있으니

갈 수 있는 길도 많기에

 

(''백설의 밤'' 전문)

 

이 시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환상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겨울의 중심에 꽃을 피우고, “차가운 세상 날씨일수록/더 피어나고 싶어하는 실존의 갈망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곳엔 삶의 부침을 어루만지는 위로와 사랑, 용기와 의지 같은 실존의 열망이 내재된 언술이 숨을 고르고 있는 것입니다. 시는 언어로 통제된 사유와 서정의 언술입니다. 환상적이라고 해서 아무런 단서도 없이 아무 곳에서 불현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일 수는 없습니다. 의미적 상관성을 이탈하거나 무시한 시는 실제가 없는 표상에 불과할 것입니다. 환상의 표상도 언어로 엮어 만든 집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언어가 있는 곳에서만 세계가 있고, 환상도 있는 것이라는 함의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김두기 시인의 사유에서 만들어지는 환상의 언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럴듯하게 그려내는 허위의 언술이 아니라, 현실의 여러 제한을 뛰어넘은 예술적 의지가 전화된 창조적 언술로 재현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다음 시 한 편을 더 보겠습니다.

 

물의 집에 들어간 겨울은

여간해서 나올 줄 몰랐다

물의 뼈대를 한마디 두마디 다져

방을 만들고 기둥을 세웠다

건축공학은 알지 못했지만

자연스럽게 이룩한 물의 건축학

물의 집 석가래 이어 다 같이 사는

집을 만들어 바람도 쉬어가게 한다

매운 날이 될수록 물의 집은

추울수록 단단한

결속의 믿음으로 또 한 계절을 살아낸다

 

(''고드름'' 전문)

 

위 시는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 구체적으로 말하면, 삶과 환상의 결합이 피워내는 실존의 언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을 것만 같은 액체와 고체를 결합하여 새로운 쓸모의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물의 뼈대를 한마디 두마디 다져/방을 만들고 기둥을 세웠다는 것은, 삶과 환상의 결합이 만들어 낸 실존의 구조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이룩한 물의 건축학/물의 집 석가래 이어 다 같이 사는/집을 만들어 바람도 쉬어가게하는 집입니다. 그 집은 삶과 환상의 경계에서 삶과 환상을 다 아우르는 실체입니다. 이와 같이 김두기 시인이 구축하는 환상의 집에는 공존의 가치와 따뜻한 배려의 시향이 잔잔하게 피어 있습니다. 그래서 김두기 시인이 창조하는 환상의 언술은 매운 날이 될수록 물의 집은/추울수록 단단한/결속의 믿음으로 또 한 계절을 살아낼 수 있는 강한 의지와 실천의 진언처럼 보입니다.

 

4. 구도와 성찰의 시향

 

인간은 누구나 사회적 배경에서 형성된 우월감과 열등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열등감의 영향 속에서 살아가지만, 이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작동하기 때문에 더 우월해 보이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도록 유도합니다. 이와 같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열등감의 극복과 우월감 성취의 의지와 욕구를 아들러(Alfred Adler)'권력에의 의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열등감을 극복하고 인정받으려는 의지가 우리를 행동하게 만드는 추진력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인간은 사회문화적인 배경 속에서 부정의 감정을 경험하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긍정적인 선한 노력과 실천의 가치. , 협력과 사랑의 가치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김두기 시인의 시를 살펴보면 대부분 삶의 현실에 터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노래하는 시는 현실을 부정적으로 치부하거나 비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도자와 같은 성찰의 시향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김 시인이 삶의 배경에서 부유물처럼 흘러나오는 열등감과 부조리를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이를 기반으로 가일층 도약할 수 있다는 내면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언술입니다.

김두기 시인이 몽상적인 편력을 보인다고 해서 삶의 현실을 회피하거나 도피로 볼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을 듯합니다. 환상을 끌어들이고 그 의미를 찾아가는 노력이 너무도 진지하기도 하지만, 삶과 환상의 출입문이 따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의 시는 외부 현실과 내부 현실이 병렬하거나 병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채워지지 않는 삶의 현실과 사회적 배경의 한계를 시를 통해 극복하려고 합니다. 그의 시는 삶과 환상의 경계에서 억눌린 단순한 자아 찾기 노래가 아니라, 강력한 열망의 외침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합니다. 마치 징소리처럼 크고 깊은 울림으로 전해오기 때문입니다.

 

울림이 하늘 한 모서리를 치고 지나간다

 

소리 바다가 출러인다

둥근 몸 안으로 하늘을 채운 징은 소리를 불러오고

상쇠의 첫 박자 받아내면

우렁찬 대장군의 호령이 사방을 질타한다

한 번의 울림이 소리 물결 휘몰아치는

떨림의 소리로 일어난다

사물놀이중이다

휘몰이에서 오방진의 리듬과 신명을 지닌다

빠른 장단은 가장 먼저 몸짓한다

두드려라 잠자는 소리의 꿈을 향해

손목에 온 신경을 주며

마음속 소리로 그들을 만나라

가장 깊고 은은한 소리 그것

가슴을 펄떡이게 하는

징을 쳐라

 

울림은 긴 여운으로 사방 구석구석을 들었다 놓지만

징은 언제나 한 박자 앞에서 논다

진정한 소리는 멀고

먼 곳에서 아닌 가까운 곳에서부터 울림은 일어선다

울림의 길목을 만들어 걸어갈 힘으로 날 두드려야 한다

하늘 바다 넘실거리며 손목잡으려는

울림의 첫 박이 올 때

 

난 두드린다

징의 몸통 속을 살펴보았다

 

아무 것도 없는 평평한 가슴이다.

 

(''징소리를 찾아서'' 전문)

 

시의 언어는 깊은 고뇌와 사유를 동반하는 정신적 울림이면서, 동시에 온 몸으로 내면의 욕망과 소망을 파 해치려는 몸의 울림입니다. 시는 곧 영혼의 울림이고, 어떤 매체의 조력을 통해서 소리로 전달됩니다. 이 전달의 매체는 종종 비유의 보조관념이나 상징 등과 같은 언표로 등장하곤 합니다. 위 시에서 '징소리'는 영육이 혼연일체가 된 울림이라 하겠습니다. 그 울림이 하도 크고 강열하여 소리 바다가 출렁이고, “둥근 몸 안으로 하늘을 채운 징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내면의 소리는 억압된 삶의 상황과 정면으로 맞선 도발적인 언표이기도 하며, 숨죽이고 있는 자아를 깨워 일으키는 당찬 언술일 수 있습니다. 김두기 시인은 징을 두드려라 잠자는 소리의 꿈을 향해라고 외칩니다. “가슴을 펄럭이게 하는/징을 쳐라고 거듭 외칩니다. 징소리는 멈추지 않는 환청과 같이 그의 시세계로 지배합니다. 김두기 시인에게 징소리는 진리의 깨달음을 찾아가는 울림의 소리이며, 그 언술은 퍽 감각적입니다. 청각과 시각의 어울림입니다. , 시청각적 감각의 울림을 형상화하여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어쩌면 환상적일 수 있는 이런 내면의 이미지는 실은 김두기 시인 내면의 갈망을 대변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김두기 시인은 그 울림이 먼 곳에서 아닌 가까운 곳에서부터 울림은 일어난다, “울림의 길목을 만들어 걸어갈 힘으로 날 두드려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두드려 깨달음의 세상으로 정진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영육을 다 던져 찾아갈 치열한 구도와 성찰의 길임을 다음 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만 번의 두드림을 받았다

 

징 징 징 저 소리 울림에

나의 징 소리 찾아 허공 길 간다

철이 들면서 가슴에 와 닿는 소리하나

내가 낼 수 있는 소리라고

수없이 날 두드리고 자책하고

두드려도 소리 나지 않는 나의 징

 

두드리면 도시의 소음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는

장단과 박자 어느 것 하나 지니지 못한 두드림

무작정 두드리는 심장이 아파서

울어본다. 징 징

 

소리는 나지 않지만 그래도 울어본다

나의 소리가 너무 그립다

나의 사물놀이 장단이 그립다

더 담금질 하고

더 우주를 닮아야 소리를 찾을 수 있을까

 

아직 살아온 시간이 짧은 탓인지

강약의 소리 맞춤에 생의 박자가 미숙한 탓인지

그래도 간절하게

내가 날 알아보는 소리하나로

그에게 가서 소리치고 싶다

 

('''' 전문)

 

시인의 산고를 거쳐 펴낸 시집을 살펴보면, 시인마다 사랑하는 특정 시어가 반복해서 눈에 띄곤 합니다. 그러한 시어는 시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탄생했는가를 알려주는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이 시집에서 주목하는 시어는 바로 '징소리'입니다. 환청과 같은 그 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오는 신의 말씀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소크라테스(Socrates)가 마음속으로 자주 반복해서 들었다는 내면의 소리. , 다이모니온(daimonion)과 같은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소크라테스가 들었다는 다이모니온은 마음속으로부터의 금지와 경고의 소리였다면, 김두기 시인에게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는 '징소리'입니다. 김두기 시인은 이 징소리의 울림이 전하는 비밀스런 다이모니온을 치열하게 찾고 있는 듯합니다.

김두기 시인은 천만 번의 두드림을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여전히 징 징 징 저 소리 울림에/나의 징소리 찾아 허공 길 간다고 술회합니다. “수없이 날 두드리고 자책하고/두드려도 소리 나지 않는 나의 징찾기를 향한 애절한 심정을 토로합니다. “나의 소리가 너무 그립다/나의 사물놀이 장단이 그립다며 애환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소리를 찾는 일이 힘은 들지만 간절한 소망이기에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더 담금질 하고”, 스스로 더 우주를 닮아야 소리를 찾을 수 있을것이라고 자신을 채근합니다. 쉬 찾을 수 없는 소리지만 그래도 간절하게/내가 날 알아보는 소리 하나로/그에게 가서 소리치고 싶다는 일념이 숙명과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5. 소리, 몽환의 시를 짓다

 

결국 김두기 시인이 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은 시를 짓는 순례의 길처럼 보입니다. 그가 내면으로부터 끊임없이 듣고 있는 다이모니온은 시인으로 살라는 주문처럼 들립니다. 어쩌면 그가 시인의 삶을 사는 것은 정해진 길이었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세상 만물이 곤히 잠든 새벽, 끝없이 반복되는 적막함과 혼잡함이 교차하는 도시, 뫼비우스 띠처럼 펼쳐진 일상의 삶에서 환상의 소리를 엮어 한 땀 한 땀 시를 짓는 일은 거미의 숙명과 달았습니다.

 

삼백육십오일을 잡아 먹는 거미를 아시나요

삼백육십오일을 다 잡아 먹고 나면

새로운 삼백육십오일을 부화시켜

또 하나씩 잡아먹는 거미

거미가 지나간 흔적과 증거는

주름살로 남긴 발자국

어떤 사람은 깊게

어떤 사람은 희미하게

분명히 본적은 없지만

거미줄이 치렁치렁

십이월 끝 날이 되면

거미는 새날을 탄생시킨다고

온 사방으로 새롭게 뻗어 나갈

출렁 거미 다리 만드는 소리가 요란해요

오도독 소리 나는 맛있는 날들이

거미의 입맛을 변하게 하지 않길 바라요

쉽게 끊어지고 쉽게 허물어졌던

내 얼굴의 거미집에

새로운 거미가 쉼 결에 노크하네요

이제 문을 열어야 살 시간

첫날의 햇살 눈부심에 환호성이

터져 나오도록 거미를 다시 불러봅니다

 

(''시간 거미'' 전문)

 

위 시에서 시적 화자는 나이고, 시적 대상은 거미입니다. 거미는 삼백육십오일을 다 잡아 먹고 나면/새로운 삼백육십오일을 부화시켜/또 하나씩 잡아먹는 거미입니다. 거미의 행태는 위태롭기만 합니다. 윤회의 사슬처럼 끝없이 시간을 잡아먹고 부화시키는 거미는 생존 방식은 끊임없이 시를 짓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시인의 삶과 닮았습니다. 거미집 짓기는 시짓기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거미는 시인의 분신이면서 화자인 나입니다. “거미가 지나간 흔적과 증거는/주름살로 남긴 발자국처럼 고통과 번뇌의 시간이지만, 새로운 시를 창조하고 싶은 갈망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 얼굴의 거미집에/새로운 거미의 숨결과 노크를 기다리는 것이며, “첫날의 햇살 눈부심에 환호성이/터져 나오도록 거미를 다시 불러'내는 것입니다. 이는 창조적 시짓기를 계속 펼치겠다는 다짐이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김두기 시인은 주어진 환경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시를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진정한 인간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실존의 인식과 노력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의 관절이 부딪치는 소리 들린다

찌뿌둥해 하는 시를 달래 보려고

마사지 한다

퇴고의 빨판에 올려놓고

시의 옷을 하나씩 벗기고 보니

빈약해도 너무나 빈약한 시의 몸통이다

 

시의 오일을 바르듯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리면서 쓰다듬는다

시의 멍울이 느껴진다

풀어내기 위해 두드리고 눌리고

여간해서 잘 풀릴 기색이 없다

 

한참 동안이다

나의 시는 지금 흥분해서

사정을 할 지점에 도달해 있다

좀 더 좀 더

만지고 또 만져서

절정의 시 한 편 만들어보려 하지만

더 나가지지 않는 진도

 

더 깊은 내공의 마사지로

퇴고할 가슴이 필요해

 

(''내가 쓴 시 한 편'' 전문)

 

시짓기의 고뇌와 번민이 구구절절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시사랑의 열정도 넘치는 시입니다. 이 시의 화자 나를 김두기 시인으로 치환해서 보면, 그의 시 한 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시작은 소리입니다. 그것은 환상의 세상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야생의 소리입니다. “시의 관절이 부딪치는 소리처럼 정돈되지 않은 투박한 소리입니다. 그는 그 소리를 퇴고의 빨판에 올려놓고/시의 옷을 하나씩 벗기기도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읽어 내리면서 쓰다듬기도 하며, “만지고 또 만져서/절정의 시 한 편 만들어보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하지만, 시는 빈약해도 너무나 빈약한 시의 몸통처럼 보이고, “시의 멍울이” “여간해서 잘 풀릴 기색이 없으며, “더 나가지지 않는 진도를 탓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포기하지 않고 더 깊은 내공의 마사지로/퇴고할 가슴이 필요해라며 스스로에게 채찍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는 평생 시를 짓고, 시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천상 시인입니다.

 

6. 독자의 공감과 사랑을 기대하며

 

지금까지 김두기 시인의 제5시집 <몽 이후>를 중심으로 삶과 환상의 경계에서 꽃을 피우는 그의 시향을 살펴보았습니다. 김두기 시인은 직면한 현실을 부정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현실을 뛰어 넘는 상상의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땀과 환상적인 꿈의 어울림이 느껴지는 시향입니다.

사람의 모든 정신의 밑바탕에는 시가 있습니다. 시는 사람의 정신세계에 가장 먼저 울리는 소리의 공간이며, 마지막까지 태초의 울림을 조탁하는 소리의 공간입니다. 시는 한 개인의 정신적 세계를 투사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시대정신이 생성되어 성장하는 인식의 창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시인의 자유로운 상상의 언술은 단순히 개별적인 자의적 정신 작용을 넘어 보편성의 체험 공간을 공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김두기 시인이 불을 지핀 몽환의 시향이 독자의 공감을 받으며 사랑으로 피어나기를 기원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 차용국(시인, 문학평론가)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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