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공간

차용국 | 기사입력 2021/06/17 [03:37]

공존의 공간

차용국 | 입력 : 2021/06/17 [03:37]

 

  

, 일상의 언어로 빚어낸 삶의 변주곡

김영남 시집공존의 공간을 함께 거닐며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1. 삶의 공간에 서서

 

  시인의 영원한 화두는 인생입니다. 시인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 주목합니다. 시인은 사람이 어떤 세상을 지향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탐색하고 숙고합니다. 더하여 스스로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 체험과 사유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과감한 모험을 감행하기도 합니다. 더러는 그러한 과정이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이 될 수 있을지라도, 시인은 숙명처럼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망설임 하나 없이 몸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래야 본래의 진실을 찾고, 듣고,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영남 시인이 주목하고 지향하는 시세계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짓을 느낄 수 있고, 그들의 진솔한 속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삶의 공간 바깥에서 관조하지 않습니다. 그는 삶의 공간 한가운데 서서 체험과 사유의 시향을 진솔하게 펼쳐 보입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삶의 공간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땀과 눈물, 쉼과 기쁨의 소리가 녹아있습니다. , 이제 군말을 접고 그의 시향을 따라 삶의 공간으로 들어가 봅니다.

 

이유 없이 들어선 길에

아픔은 왜 그리 많은지

 

뻥 뚫린 허공에 하소연을 한들

한 줄기 소나기뿐

 

누군들 외롭지 않을까

스스로 다독이며

 

가끔씩 불어오는 훈풍에

젖은 목덜미를 말리고

땅거미 어둑해지기를 기다려

거머리 같은 짐 내려놓고

 

그리 넓지 않은 보금자리에서

장미꽃이 피어나기를.

 

- 하루전문

 

  시인은 삶의 공간이 우리가 선택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들어선 길''이라고 합니다. 그곳에는 아픔 많고, 하소연조차도 들어줄 사람이 없는 듯합니다. 암울하고 냉엄한 세상의 단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이런 삶의 공간이 가진 속성을 비관하거나 회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군들 외롭지 않을까/스스로를 다독이며우직할 정도로 담담하게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비록 아픔과 외로움은 있어도 절망과 야합하기 보다는, 긍정적 태도를 보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삶은 고단한 행로이지만, ''가끔씩 불어오는 훈풍에/젖은 목덜미를 말리고/땅거미 어둑해지기를 기다려/거머리 같은 짐 내려놓고//그리 넓지 않은 보금자리에서/장미꽃이 피어나기를'' 소망하며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삶에 대한 시선은 긍정의 사고에 매몰된 도피처럼 상투적 표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삶의 부침을 견뎌내는데 힘이 되어주고 소소한 일상의 소망을 무기교의 언술로 풀어놓은 담백한 맛이 더 느껴집니다. 이처럼 그의 시향은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감성을 끌어내는 맛을 느끼게 합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어조를 타고, 흐르는 강물 위에 떠있는 흰 구름처럼 삶의 공간을 차분하게 거니는 서정입니다.

 

달콤한 새벽을 반납하고

컴컴한 아침을 친구삼아

 

어제의 피곤을 어깨에 매단 체

딱히 갈 곳 없어도

길을 나서야 하는 하루살이

 

바람도 떠나간 땡볕에

장벽 없는 허공을 맴돌다

 

붉은 노을을 붙잡고

알싸한 탁주 한 사발에

고단한 하루를 씻는다

 

딱 한 번만이라도

푸르디 푸른 창공을

구름과 함께 날아보고 싶다.

 

-하루살이전문

 

  하루의 소소한 삶의 서정을 소박하게 고백하고 있는 그림 같은 시입니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풍경과 스토리가 어우러져 돌아가는 동영상을 연상케 합니다. 시는 이렇게 삶의 공간에서 풍경처럼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김영남 시인은 삶의 공간에 존재하는 시어를 찾아 맑은 영상을 만들어 냅니다. 군말을 골라낸 짧고 간결한 그의 시에서 불현 듯 눈에 띄는 임펙트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강한 아포리즘(aphorism) 성향의 기운이 전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포리즘은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보여주는 짧은 글을 말합니다. 아포리즘의 가치는 보편성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아포리즘의 언술을 기억하고 틈틈이 삶의 지표처럼 꺼내보는 것은 시대와 지역, 민족과 이념을 초월한 보편성 때문일 듯합니다. 특히 급격한 변동과 복잡한 생활양식이 난무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관념에 찌든 말을 참고 듣는다는 것은 대단한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김영남 시인은 장황한 관념이나 이념의 언술을 버리고, 누구나 생활 속에서 즐겨 쓰는 흔하고 친밀한 말을 배합하여 시를 지어냅니다. 거창한 가치를 해석하거나 설명하기 보다는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의 여정에서 듣고 보고 느낀 서정의 소리를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이것이 김영남 시인의 평범하지만 독특한 시향일 수 있을 듯합니다. 그의 시를 읽으면 흐뭇한 여운이 오래도록 머물다 갑니다. 김영남 시인이 삶의 공간에서 체험으로 찾아내고 담금질한 보화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매일이 아픔이고

매일이 슬픔이다

 

그래도 나는 간다

가지 않으면 안되기에

 

더 이상 바닥은 없겠지

이제부터는 나아질 거야

 

보이지 않는 희망을 붙잡는다

이것이 삶이다

 

그러니 살아라.

 

- 벼랑 끝에서전문

 

  어떤 사람의 삶이든 자신만의 애절한 사연이 있고, 섬광 같은 깨달음의 순간이 있고, 열정을 보태 이끌며 가고 싶은 세상이 있을 것입니다. 삶이 지향하는 나라입니다. 삶의 지향성은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성격인 듯합니다. 그래서 브렌타노(Brentano)'지향성은 인간의 심적 현상의 본질'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삶의 지향성은 기억을 소환해 추억을 펼치며, 미래로 나아가는 길에 친밀한 동무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갈등과 분열의 덫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삶의 공간에 서면, 뒤섞여 있는 온갖 인간 군상들의 속내와 몸짓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영남 시인은 그곳이 다소 혼란스럽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임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습니다. 비록 매일 ''벼랑 끝에서'' 서 있는 삶의 공간일지라도 ''이제부터는 나아질 거야''라며 ''보이지 않는 희망을 붙잡는다''고 합니다. 나아가서는 ''이것이 삶이다//그러니 살아라''라고 말합니다. 삶의 공간에 서서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고, 겸허하게 받아들여 내공을 다지는 의지의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미운 사람 있거든

아주 미워하지 말고

조금만 아주 조금만 미워하자

 

싫은 사람 있거든

아주 싫어하지 말고

조금 아주 조금만 싫어하자

 

어쩌면 나도

미운 사람이고

싫은 사람일 수 있잖아.

 

- 아주 조금만전문

 

삶의 공간에서 수없이 만나는 소소한 일상이 상처가 되기도 하고, 힘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 간의 관계는 말이라는 매체가 이너주는 소통체게일 것입니다. 사람 상호간의 말이 비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나와 그의 관점과 어긋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관점이란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바라보는 세계관입니다. 김영남 시인은 삶의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비록 밉고 싫은 사람이 있을 지라도 아주 미워하거나 아주 싫어하지는 말고, “조금만 미워하고, “조금만 싫어하자고 다독입니다. 누군가에게는어쩌면 나도/미운 사람이고/싫은 사람일 수있기 때문이라고 넌지시 일러줍니다. 자신의 주장을 직설적으로 강하게 주입하려고 요란스럽게 애쓰지 않고, 독자가 스스로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길을 터주는 넛지(nudge)의 방식입니다. 시어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일 듯합니다. 김영남 시인의 시어는 생활 속의 언어로 잔잔하게 펼치는 넛지(nudge)의 은유입니다.

 

2. 일상의 언어로 빚어낸

 

지금의 사회는 정보화 사회를 훌쩍 뛰어넘어 디지털 문명의 시대라고 합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정보를 교류하고 탐색하는 시대가 지나가고, 여러 정보통신 기술매체가 연결되고, 융합되어 지능화의 길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디지털 문명은 정보통신 매체가 단순히 정보를 축적하고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그것을 창조하고 교환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언제 어디서나 활용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은 사회의 모든 분야에 파고들며 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문학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습니다. 이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다양한 형태의 문학 장르와 글의 양식이 출현하고 선호하게 될 것이라는 함의일 수 있을 것입니다. 시도 이러한 변화를 피해갈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난수표처럼 어려운 시어를 해독하며 시를 읽을 독자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시는 노래처럼 향유할 문학이지 탐구할 지식이 아닐 것입니다. 김영남 시인의 시를 읽는 일은 시를 즐기는 일이 될 듯합니다. 이런 면에서 그의 시는 시대의 경향에 어울려 보입니다.

 

별 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을

너는 알아야 해

 

꽃 보다

더 향기롭다는 것을

너는 알아야 해

 

그 무엇보다도

네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너는 알아야 해

 

이 세상은

네가 가꾸어 가야 할

정원이거든

 

정원사전문

 

김영남 시인의 시는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의 소리를 이야기하듯 전하는 생활문학이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시입니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꺼내 읽을 수 있고 글 나눔 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시어입니다. 사실 생활인의 언어가 따로 있고 문학의 언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400년 전에 서포 김만중(1637~1692)<서포만필>에서 ''일반 민중이 쓰는 일상어를 구사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김영남 시인이 소시민의 소박한 희망을 담아 가꾸는 시어는 어려울 것 하나 없는 쉽고 친밀한 말의 표상입니다. 삶의 공간에서 감각적으로 느끼며 획득한 감성이 마음속에서 재생되어 우러나오는 언술입니다. 차분한 어조를 타고 흐르는 마음의 노래입니다. 그래서 그의 시에 분석의 칼과 해설의 펜을 들고 재단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직독 직해가 가능한 일상의 시어를 붙들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늘어놓는 것은 따분한 사족일 듯합니다.

 

지금 문득 그대가 생각이 나서

문자를 보냅니다

너무 오랜 시간

안부를 전하지 못했네요

한때는 그런대로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멀게만 느껴집니다

이렇게 멀어지다 보면 아주

모르는 사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어서 겁이 났습니다

또 다시 조금씩 가까운 사이가 될 수는 없는 건가요?

가르쳐 준다면 노력해 보고 싶습니다.

 

-그대여전문

 

이 시에서 그대가 누구인지는 독자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시에서 그려지는 이미지나 이야기는 각각의 독자가 느끼는 서정의 마당에서 피는 서로 다른 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를 지은 시인도 독자의 1인일뿐입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삶의 공간에서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시에 관한 서정이 크게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시를 어려운 별종으로 치부하며 외면하는 풍토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많은 원인이 제기될 수 있겠지만, 시를 느끼고 즐기기 보다는 의미와 교훈을 찾아내려는 그릇된 시관의 형성도 큰 이유가 될 듯합니다.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친 황정산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시를 대하는 태도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를 읽을 때 시의 의미에 매달려 시와 시인에 관련된 배경 지식을 알아내서 거기에서 의미를 끌어내어 주제를 찾고 그것을 바탕으로 뭔가 의미 있는 교훈을 얻으려고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아마 중고등학교 때 시험 공부하던 버릇 때문일 것이라며,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냥 가슴으로 시를 읽고 시의 느낌을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며, 시에서 쓰여진 말의 느낌, 그 말을 하는 시인의 태도, 그 말들이 주는 이미지를 그대로 느껴보는 것으로 시 읽기를 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힘이 들면

버려도 돼 그깟 사랑

 

겉모습은 그럴 듯 해 보여도

옹졸하고 치사하거든

 

힘이 들면

버려도 돼 그깟 용기

 

겉모습은 씩씩해 보여도

속으로 눈물 흘리고 있는 걸

 

아무리 힘이 들어도

용서는 버리지 마

 

용서는 나약해 보이지만

사랑과 용기의 씨았이거든

 

씨앗전문

 

다소 교훈적인 시이지만 시향을 이해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듯합니다. 다 버릴 수 있지만, “아무리 힘이 들어도/용서는 버리지말자고 합니다. “용서는 나약해 보이지만/사랑과 용기의 씨앗이기 때문이라고 깔끔하게 매듭을 짓고 맙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심각한 논쟁이 될 수도 있는 주제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단순하게 이야기하듯 말하는 것이 김영남 시인의 독특한 언술이라 하겠습니다.

 

3. 아름다운 삶의 변주곡

 

지금은 문학이 세분되어 여러 갈래의 장르를 이루고 있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가 가장 오래된 문학 양식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래되었다는 것은 본능에 가까울 정도의 태초의 말이라는 함의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생래적으로 시심을 가지고 있어서 시가 시인만의 전유물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시인은 다만 그것을 끄집어내어 자아와 타아의 친밀한 만남과 소통을 주선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는 삶의 공간에서 공감의 영토를 확장하고 향유하기 위한 유용한 매개체라 하겠습니다. 이제 김영남 시인은 새로운 삶의 공간에서 피울 씨앗을 뿌립니다. 시라는 꽃의 씨앗입니다. 그는 시의 꽃이 피는 삶의 공간을 만들고 가꾸기를 소망합니다.

 

씨앗이 하나 떨어졌습니다

하얀 종이 위에

 

꽃이 되고 싶은 마음

그 마음 때문에

 

가끔은 비도 내렸습니다

아주 조금씩

 

하나 둘 피어나더니

기어이 시 꽃밭이 되었습니다

 

-종이 위에 피는 꽃

 

김영남 시인은 시를 씨앗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씨앗을 뿌리는 일은 고귀한 생명을 키워내겠다는 태초의 의지로 이해해도 좋을 듯합니다. 그는 농부가 흙에 씨를 뿌려 생명을 키워내듯이 시인은 하얀 종이 위에시를 뿌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씨앗이 생명의 근원이듯이 인간사 삶의 근원이 시라는 웅변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좋은 씨앗에서 튼실한 생물이 번성하듯이 좋은 시에서 질 좋은 삶의 가치가 피어난다는 기표로 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여기서 기표를 메시지(전언) 정도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메시지는 그것을 받는 사람이 의미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라캉(J. Lacan)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 기표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미끄럼을 타는 존재입니다시를 짓는 일로 크게 다를 바 없을 듯합니다.

 

생각에 끈을

놓쳐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단어들을 주섬주섬 모아

짜 맞추기를 여러 번

 

이게 시냐?”

툭 내 뱉은 말 한마디에

울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설령 불쏘시게로 던져질 지언 정

나만의 생각을

나만의 시를 적어

팍팍한 내 삶에 옹달샘 하나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옹달샘

 

이 시는 시 짓는 일을 마치 한 장면의 에피소드(episode)처럼 말하고 있지만, 속내를 들추어 보면 시 짓기의 고민과 소망이 한 가지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어려움이 없을 듯합니다. 김영남 시인은 시를 지으면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계속 정진할 것을 선언합니다. 시 짓기는 팍팍한 내 삶에 옹달샘 하나/만들어 주고싶은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를 통해 자아를 만나고 사유하며, 그것을 삶의 공간으로 확대해 나아갑니다.

 

어쩌면 우리는 알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를

 

그래서 가는 것이다

서슴없이 내일로

 

높은 빌딩과

낮은 건물들

 

새롭게 태어나는 기쁨과

잊어져 사라지는 것들의 아픔

 

너희는 너희 방식대로

나는 나의 방식대로

 

그것이 우리의 삶이고

방식이 되는 것을

 

공존의 공간전문

 

인류가 지난한 진화의 역사를 통해 언어를 변형하면서 다양한 삶의 공간을 만들어 온 것처럼, 지금도 또 미래에도 새로운 삶의 공간을 계속해서 개척하고 확장해 갈 것입니다. 그것이 문화의 유전입니다. 리처드 도킨슨은 <이기적 유전자> 에서 이 문화적 유전자에게 밈(meme)이라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습니다만, 밈의 생육과 유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이 언어입니다. 그래서 문화의 기저에는 언어가 있고, 언어가 있는 삶의 공간에는 시가 흐르고 있습니다. 시는 인류가 태초에 배운 언어였을 뿐만 아니라 최후까지 존재할 언어일 것입니다.

지금도 시에서 분리된 수많은 독자적 장르의 문화예술이 빛을 발산하며 팽창일로에 있기도 하고, 소멸의 불랙홀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시 자체도 변형에 변형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시가 만들어가는 공간에는 잘 짜인 각본의 교향곡이 아니라, 수많은 변형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각본 없는 재즈가 흐르는 세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가 지향하는 공간이란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시가 있는 세상은 이처럼 언제 어느 곳에서나 아름다운 삶의 변주곡이 흐르는 나라입니다. 김영남 시인이 소망하는 공존의 공간은 바로 이런 삶의 공간입니다. 김영남 시인의 첫시집 발간을 축하드리며, 더욱 정진하며 그 푸른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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