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위에 사람 있듯 왕 위에 왕이 있다 하니 우스워진 꼴이 마름모다
바로 걷기 우습다며 모로 기니 꼴불견은 매한가지 어사화 꽂고 등 돌려 웃는 자를 경계하라
정글만리 부푼 꿈에 취해 사리 분별 못 한 패악질 불장난은 마파람에 꺾이었으니 이제는 읍참마속의 시간
못된 버르장머리는 형장으로 보내고 정글에는 새 술을 담아야지
- 태왕(太王) -
56. 태왕
오후의 면담시간에 연수는 집중적으로 태왕그룹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주력했다
공회의 위장 파업에 대해 정태은으로부터 소청화학의 사례를 듣게된 것은 큰 수확이긴 했지만, 설사 그 사례가 실제로 밝혀지고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연수나 태스크포스의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감사보고서에 한 페이지 분량으로 들어간들 중국 토종 협력업체에 대한 조치는 그쪽에서 잡아떼면 별 뾰족한 수가 없었고, 거래를 당장 중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들과 사전에 입을 맞추고 이상일 전무나 MH북경법인의 또 다른 누군가가 협조를 해주고 있었다면 거기에는 응분의 조치를 할 수 있기에 후속의 정보파악과 이상일 전무에 대한 추가 감사, 증거자료 수집 등이 진행되어야 했고,
태왕그룹에서 기현자동차나 MH자동차 중국법인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그리고 태왕그룹에 협조를 해주고 있는 사람이 이상일 전무 외에 또 누가 있는지,
이한경 상무가 작성했던 비선조직 리스트와 태왕그룹과의 관계, 그들의 역할은 각각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다 파악하려면 우선 태왕그룹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파악해야만 했다
연수는 오후에 가졌던 두 명의 면담자 진술을 통해 태왕그룹이 이곳 성도에서 중국의 로컬 자동차업체에 납품을 하던 중소규모의 부품업체 한 곳으로 시작해서 예청과 북경 주변에 약 이십여 개의 법인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고,
MH자동차가 중국에 상용차공장을 성도에 건설하게 된 것도 이 태왕그룹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것과 여기에는 왕고문으로 불리는 왕영홍 부회장의 실력행사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태왕그룹의 실제 주인은 왕부회장이라는 것 등을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태수>의 퇴근 시간에 맞춰 5시에 특별감사를 끝내고 호텔로 돌아온 방동혁 부장과 박수현 차장의 구두보고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방동혁 부장은 통역사인 류태진과의 태왕그룹에 대한 대화를 겸한 면담을 통해
왕영홍 부회장이 측근들에게 "한국의 MH그룹에 회장과 왕회장이 있다면, 나는 중국의 태왕회장이다"라고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라고 전하며
명색이 MH그룹의 부회장이라는 분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흥분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왕부회장은 그룹회장 앞에서는 자신의 간이라도 빼줄 듯이 하다가, 뒤돌아서는 자신이 MH그룹회장을 좌지우지하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떠벌리고 다닌다는 것이었고,
중국 내에서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발언이었으며
한편으로는 지금 특별감사를 진행하면서 이런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여상동 전무를 비롯한 연수와 태스크포스의 팀원들, 그리고 나아가 이한경 상무나 강춘권 부사장까지 얼마나 무모한 일을 벌이고 있는지,
이 일이 거꾸로 왕영홍 부회장의 귀에 먼저 들어가면 어떤 사태로 번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아찔한 일이기도 했다
연수는 호텔 인근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겸해 다음 날의 일정 점검을 하기로 하고, 일행들과 함께 호텔을 나섰다
저녁 일곱 시가 다되어가는 호텔 뒷골목의 식당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어느 곳이나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술이 한 잔씩 들어간 중국인들 특유의 우렁차고 거침없는 입담과 뒤섞인 분주한 움직임들은 연수에게는 익숙한 풍경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소음이기도 했다
조용한 곳에서의 차분한 대화가 필요했던 연수는 앞장서 걸으며 적당한 식당을 찾고 그의 뒤를 따르는 일행은 골목 끝까지 걸어 들어가서야 비교적 조용하고 깔끔한 식당을 하나 발견할 수가 있었다
마파두부 전문점이었지만,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식당 골목이라 쓰촨요리를 대표하는 탄탄면과 매운 요리를 먹고난 후 달콤한 디저트로 먹을 수 있는 찹쌀 경단까지 다 시킬 수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으로 보아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은 아닌 것으로 보였지만 실내가 비교적 단정해 보여서 연수의 마음에 들었다
연수와 일행은 창가의 구석 자리를 찾아 앉고 나서 각자 먹을 식사와 맥주를 골라 주문을 하고, 바로 낮에 있었던 일들을 리뷰하며 다음 날의 일정을 간단히 체크했다
박수현 차장이 먼저 류태진의 도움으로 오늘 감사를 잘 진행할 수 있었다며 어레인지를 해준 이선 과장에게 감사를 표하고, 각 부문별로 진행한 감사의 주요 내용 중 성과라고 할 수 있는 리베이트 의혹과 관련된 내용을 보고했지만, 물증은 찾아내지는 못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고,
방동혁 부장은 태왕그룹과 왕부회장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다시 한번 왕부회장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내일의 일정도 각자 오늘과 비슷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보고와 함께 업무 이야기는 간단히 끝이 나고, 주문한 음식과 맥주가 나오자 딱딱한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바뀌어, 방부장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상무님! 오늘도 막간을 이용해서 이과장과 데이트를 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식당을 찾아오는 길에 몇 발자국 뒤에서 연수를 따라오던 이선 과장이 방부장과 박차장에게 연수와 함께 두보 사당을 다녀왔다는 얘기를 한 모양이었다
연수와의 일은 누구에게나 숨김이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는 그녀의 성격상 방부장과 박차장이 모르고 있으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연수가 방부장의 선제공격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방부장의 농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듯 식사에 집중하며 대꾸를 하지 않자, 방부장이 씩씩거리는 흉내를 내며 박차장에게 도와달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러나 박차장 역시 별 대꾸를 하지 않자, 방부장은 재미가 없어졌는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자신이 주문한 마파두부 요리와 함께 맥주를 벌컥거리는 소리를 내며 들이키고,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자리가 조용해지자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연수가 입을 열었다
"내일까지 이곳에서의 특별감사가 큰 문제 없이 마무리되면, 토요일에 바로 귀국하지 않고 하루는 여기에서 문화체험을 하고 일요일에 귀국하는 것으로 낮에 여상동 전무께 말씀드렸으니 그리 알고들 있으세요.
그리고 이한경 상무께도 연락을 드려 이과장도 일요일 예청으로 복귀한다고 얘기를 했으니, 호텔에는 우리 모두 하루 더 연장하는 것으로 요청해 주세요..."
세 사람이 고개를 들어 일제히 연수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註 : 본 시소설은 가상의 공간과 인물을 소재로 한 픽션임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 강원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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