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제국(58)

詩가 있는 詩소설

정완식 | 기사입력 2021/09/28 [01:01]

바람의 제국(58)

詩가 있는 詩소설

정완식 | 입력 : 2021/09/28 [01:01]

 



내가 걷는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는지 

처음은 어디였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지만​

 

처음부터 향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걸었던 것처럼 

피할 수 없는 너와의 운명은 

하나의 잘 짜인 각본이었음을​

 

이유도 없이 부는 것 같던 

한 점 바람도 

정해진 듯 떨어지는 잎새 하나도 

너를 향하여져 있었음을​

 

만남도 헤어짐도 

망각도 그리움도 

좋든 싫든 감사히 여기리 

너로부터 비롯되었음을​

 

- 각본 - 

 

59. 최악의 각본 

 

"난 그렇게 얼마 있지 않아서 그 부실회사와 함께 거기서 정리되었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퇴직금과 그동안 모아놓았던 돈으로 이 식당을 차렸어요.​

 

처음 2, 3년간은 생소한 음식 장사로 와이프와 가족들만 엄청 고생시키다, 다행히 그 후 한국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우리 식당을 찾는 사람도 늘어나고 겨우 정착을 하게 된 거죠.​

 

이제 안정이 되고 나름 성공했다고 남들은 말하지만 5년 전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아올라요.​

 

물론 내 잘못도 크고 그것을 알고 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살아왔지만, 철저하게 왕영홍 회장에게 이용당하다가 그로부터 토사구팽을 당한 것이지요...​

 

난... 정말, 일이... 

와이프한테도 가족한테도..."​

 

정호일 사장은 옛일을 떠올리며 억눌러 왔던 회한이 밀려왔는지 끝말을 매듭짓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답답한 실내공간에 무거운 침묵이 흐르자, 연수 역시 가슴이 답답해져서 밖으로 뛰쳐나가거나 아니면 창문이라도 활짝 열어젖히고 싶었지만, 꾹 참고 고개를 숙인 정호일 사장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며 기다려주었다​

 

정호일 사장의 진술대로라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이용하고 심지어 자신의 팔다리가 되어 자신을 위해 희생을 했건만,​

 

왕영홍 부회장은 그런 정호일 사장을 자신에게 해가 될까 후환이 두려워 명분을 잡아 내쳐버린 냉혈한이었다​

 

그런 그가 MH그룹을 속이고 여기 중국에서 어떤 일을 벌여 왔고, 지금 이순간 또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연수는 두려웠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이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는 만에 하나라도 왕영홍 부회장과 상달그룹의 장송 총경리, 그리고 예청 시정부와 이건웅 당서기 등이 똘똘 뭉쳐 곤경에 처한 기현자동차 중국법인을 흔들어대고,​

 

태왕그룹과 상달그룹에서 야금야금 알짜배기 사업을 빼내 가거나 자신들의 지분을 키워나가면, 빈껍데기만 남은 기현자동차 중국법인의 앞날은 장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여기는 권력과 자본이 합쳐지면 가공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가?​

 

물론, 국가 간의 외교 문제와 통상문제가 걸려있는 일이지만 극단적인 경우, 기현자동차가 빈털터리로 중국 사업을 접고 철수할 수도 있는 것이었고,​

 

그건 북경의 MH자동차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안될 일이었다​ 

연수는 냉정해져야 했다​

 

연수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좌우로 강하게 흔들며 여전히 고개를 떨구고 있던 정호일 사장에게 조용히 물었다​

 

"사장님! 사장님께 무리한 질문이겠지만 혹시 사장님께서 왕영홍 부회장에게 만들어준 비자금이 어는 정도나 되는지? 

그리고 그 비자금이 누구에게 얼마나 전달되었는지?​

 

물론 자료들은 태왕차체 회사에 다 놔두고 오셨다고 말씀하시긴 했는데,  혹시 사장님께서 가지고 계신 다른  자료들은 없으신지? 

없으시면 그런 내용을 대강이라도 제게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정호일 사장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연수를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그의 오른편 협탁 서랍을 열어 그 안에 있던 서류봉투를 하나 꺼내어서 연수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 두텁지는 않았다​

 

"지난 밤, 많은 고민 끝에 이한경 상무에게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다 털어놓기로 작정하고 내가 지난 5년 동안 장롱 속에 꽁꽁 숨겨 두었던 서류를 꺼냈어요.​

 

그게 이 서류인데 내가 상무님 질문에 일일이 답을 하는 것보다는 이 서류를 한 번 보시는 게 나을 것 같네요.​

 

물론 나는 근 15년 동안 비자금을 만들어서 왕영홍 회장에게 전달만 했을 뿐, 내가 직접 다른 누구에게도 그 돈을 전달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얼마의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어요.​

 

다만 내가 왕영홍 회장에게 전달한 그 돈의 대부분은 상달그룹의 장송 총경리에게 전달되고, 중요한 사람들이나 필요한 곳에는 장송 총경리가 직접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연수는 정호일 사장이 알고 있는 것과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연수에게 어느 정도 다 얘기해주고 전달해주어서 그 이상, 특별한 건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이제는 이 자리를 정리해야 할 때임을 직감으로 알았다 

 

"네. 알겠습니다. 주변 상황이 많이 어려우실 텐데, 중요한 결심을 해 주셔서 다시 한번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장님께서 제게 해 주신 말씀과 이 서류는 저희 MH그룹의 중국법인 정상화 추진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신속하게 일을 마무리해서 사장님께는 폐를 덜 끼치도록 저희도 조심하고, 노력하겠습니다."​

 

연수는 정호일 사장이 연수에게 바라는 것을 대신 얘기해주며 정호일 사장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그와 함께 식당의 홀 쪽으로 나왔다​

 

벌써 시간이 꽤 지나 본격적인 식사 시간이 시작되었는지 식당 안에는 붐비지는 않았지만, 여럿의 손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연수는 카운터와 홀을 오가며 바삐 움직이고 있던, 정호일 사장의 부인인듯한 여성과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하고, 정호일 사장과도 작별한 뒤, 식당을 나와서는 일행이 있는 두보초당으로 가는 대신에 호텔 쪽으로 발길을 향했다​

 

정호일 사장이 건넨 서류봉투의 내용도 확인하고 연수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이한경 상무와의 통화에 마음이 조급해졌기 때문이었다​​ 

 

 

註 : 본 시소설은 가상의 공간과 인물을 소재로 한 픽션임을 알려드립니다.

 

ㅇㄷㄱ 21/09/28 [09:28] 수정 삭제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 다음회고 빨리 읽고 싶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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