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낱같은 세발 줄기로 태어나 거친 세월에 할퀴며 지친 수족 기댈 곳 찾다 보니 어느새 굵은 손의 칡 나무가 되었네
오뉴월 뙤약볕에서 인내를 배우고 득도하는 사찰에서 부처를 섬기고 선량한 민가에서는 그늘을 만드니 어진 사람들은 등나무를 좋아하지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둘이 만나면 서로 정신을 갉아먹고 내적 조화를 파괴한다니 이 또한 모순이라
칡과 등나무는 상반된 삶에 저항하고 서로를 닮은 모습이 싫어 사람들 틈에 숨어 같이 또 따로 산다네
- 갈등 -
66. 갈등
연수는 마음속으로 이상일 전무가 마음을 바꿔, 그에게 모든 것을 실토하고 자신이 바라는 일에 협조하여 주기를 기대하며 기다렸다
연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고, 이제는 이상일 전무의 변심을 기다리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전무의 결심을 기다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는 연수의 목구멍에서 갈증을 느끼고 있는지, 마실 것을 달라며 아우성을 치고 연수는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서 다 식은 채로 놓인 차를, 마치 음료수처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침묵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이전무가 불쑥 연수에게 물었다
"내가 장상무에게 협조해주면 장상무는 내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 거요?"
"전무님! 솔직히 제가 전무님께 해드릴 수 있는 건 별로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전무님과 어떤 거래를 하자고 여기 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전무님의 양심선언을 바라고 있는 거고, 그건 전적으로 전무님께서 판단해야 할 몫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무님께서 제게 협조해주는 것으로 결심하신다면, 저 역시도 전무님을 위해서 법규나 회사의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정상적인 선에서 전무님께 최대한 유리하도록 적용을 해보겠습니다."
연수는 단호하게 이전무에 대한 징계나 처벌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피력하면서 양심선언을 한 사람에 대한 정상참작은 가능하다는 것을 넌지시 말해주었다
"좋소. 나도 기현자동차의 임원으로서 응당 가져야 할 자부심과 애사심이 없는 것은 아니고, 나 역시도 오랫동안 내가 충성을 맹세했던 왕부회장님과 내 마음속에 조금은 남아있는 양심 사이에서 갈등했던 것도 사실이오. 그래서 스스로 가책을 느껴왔었는데, 기왕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제는 숨길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내가 지금이라도 양심고백을 해서, 회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래서 내가 벌린 일에 조금이라도 속죄가 될 수 있다면, 내가 아는 선에서 다 이야기해 주겠소. 장상무도 알다시피 난 태왕그룹의 모회사 격인, 태왕차체라는 회사에서 정호일 사장과 같이 일한 적도 있었소.
거기서 왕부회장의 신임을 얻어 일하고 있던 차에 MH그룹의 중국 사업을 총괄하게 된 왕부회장의 특별임무를 받고 기현자동차 중국법인의 구매본부장으로 가게 되었지요.
거기서 내 역할은 기현자동차가 납품받는 중국 내의 협력업체에게 편의를 제공해주거나, 부품단가를 올려주면서 리베이트를 챙기고, 그 챙긴 돈은 몇 가지 경로를 거쳐서 태왕그룹, 다시 말해 왕부회장의 수중으로 흘러 들어가게 하는 것이었지요.
능력도 없고 별 볼 일 없는 내가, 왕부회장이라는 뒷배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기현자동차의 고위임원이 되었겠소?
그래서 나는 왕부회장에게 충성을 다하겠노라 맹세를 했고, 그의 충실한 수족으로서 왕부회장이 시키는 일은 무엇이 되었든 다 수행해 왔소.
내 역할은 기현자동차로부터 협력업체로, 그리고 협력업체에서 태왕그룹으로 비자금을 만들어 결국은 왕부회장에게 가게끔 만들어 주는 거고, MH중국법인에도 나와 똑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북경법인의 구매본부장으로 있지요.
그리고 그 외에도 알게 모르게 우리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여기 예청이나 북경, 성도에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본사에도 여럿 있어요."
이전무가 설명하는 조력자들이란 이한경 상무가 연수에게 건네준 비선조직의 명단에 있던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왕부회장이 그 많은 비자금을 어떻게 얼마나 쓰고 있는지는 솔직히 나도 정확히 알 수 없어요.
그 부분은 역할이 나뉘어 있고, 왕부회장의 먼 친척이자 수행비서 역할을 하는 왕돈수 이사라는 사람이 맡아서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 비자금은 자세히는 몰라도 강소성이나 예청시, 그리고 북경이나 중앙정부의 관리들에게서 업무협조를 받아내기 위한 소위 '꽌시'용으로 접대를 하거나, 직접 현금 뭉치를 건네주거나 선물을 사준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고 정확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리고 이건 중요한 비밀사항이기도 한데, 최근 몇 년 동안 여기, 중국 사업이 전반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왕부회장의 입지가 약해지고 자신들의 사업이 쇠퇴할 것을 우려한 왕부회장과 상달그룹의 장송 총경리가 비밀리에 일을 모의하고 있는 것인데,
그 둘이 손잡고 예청에 있는 기현자동차 중국법인을 통채로 집어삼키는 계획도 모의하고 있다는 겁니다."
"네? 뭐라고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상일 전무의 설명을 조용히 듣고 있던 연수는 이전무가 비밀사항이라며 왕부회장과 장송 총경리가 기현자동차 중국법인을 집어삼키려는, 작당 모의를 하고 있다는 얘기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註 : 본 시소설은 가상의 공간과 인물을 소재로 한 픽션임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 강원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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