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깊어지면 빛이 더 소중하듯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수록 살아있음에 더 감사한 거지
신은 네게 필요한 것을 같이 보내주었으나 오만한 너는 보지 못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너는 듣지 못해
너는 세상을 파괴하고 신에 도전하지만 정작 너만 모르고 있구나 신의 사냥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 야망과 견제 -
70. 야망과 견제
잠시간의 침묵이 어색하게 흐르고 여상동 전무는 답답한 듯 입고 있던 상의를 벗어 옆자리에 던지다시피 놓고는 앞에 있던 술잔을 들어 그의 목구멍에 들이붓다시피 마시고는 빈 잔에 다시 술을 채우고 다시 들이켰다
마치 그의 갈증을 술로 채우려는 것 같았다
이한경 상무가 이번 일이 마치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자책을 하고 있듯이, 여전무도 자신이 나서 소위 <중국 사업 정상화 TF>를 만들고 진두지휘를 하면서, 왕부회장의 심기를 건드리는 바람에 일이 더 커지고 꼬여버린 게 아닌가?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건 연수도 마찬가지였다
여전무나 이상무가 그렇듯 연수도 어떻게 해서든 비정상적인 중국 사업을 정상화시켜 보겠다는 충정에서 그의 능력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중국 특별감사를 시행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면담을 통해, 왕부회장을 비롯한 수하들의 비위를 밝혀내고 절차를 밟아 최고경영층에 보고도 했지만,
결국, 우려했던 일이 막상 터지고 나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자신이 그동안 해 온 활동이 모두 역효과로 돌아온 것 같아서 그동안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고 의지해 왔던 사람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냥 여기서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다
이대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
물러난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왕부회장에게 끌려가기만 한다면 기현자동차나 MH그룹의 중국 사업은 종국에는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곰곰히 생각을 거듭하던 연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저희가 고민하는 것은 아마도 같은 문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왕부회장이 우리 중국법인 파트너인 중방 측을 사주해 자신들의 지분을 매각하겠다는 협박성 의사표시를 하도록 움직였다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왕부회장이 이건웅 당서기를 자기편으로 움직여 우리 중국법인을 와해시키고 자기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문제는 사실 국내외적으로 우리 MH그룹이나 기현자동차에 미치는 파장이 클 수도 있지만, 동방그룹이나 상달그룹 입장에서도 별 메리트는 없다고 할 수 있고,
현재 우리 중국법인의 계속되는 적자로 인해 자본이 잠식된 상태이다 보니, 저들이 별로 건질 게 없는 <뻥카>일수도 있다는 겁니다.
즉 저들이 노리고 있는 것은 그 후속효과라고 볼 수 있다는 거죠.
다시 말해, ‘MH그룹과 기현자동차가 더 이상 중국에서는 경쟁력도 없고, 중국 사업을 영위할 능력도 되지 않는다’라는 이미지를 대내외에 각인시키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결국 왕부회장이 노리고 있는 것은 두 번째 문제로 귀결됩니다.
기현자동차 중국법인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더 이상 기현자동차와는 중국 사업을 같이할 수가 없으니, 예청에 있는 기현자동차 중국법인을 폐쇄하거나 몰수해버릴 수 있는 명분을 얻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상일 전무가 저와의 면담에서 양심고백을 할 때, 왕부회장이 기현자동차 중국법인을 통째로 집어삼키려고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었다며 제게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장상무 얘기를 들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데 그렇다고 하면 더 큰 문제가 되지 않나요? 어찌 되었거나 기현자동차 중국법인을 통째로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건데."
여상동 전무가 연수의 설명을 유심히 듣다가 연수의 다음 이야기를 재촉하듯이 끼어들었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결국은 키를 쥐는 사람은 왕부회장이 아니라 예청시의 이건웅 당서기인데,
아시다시피 이건웅 당서기는 행정가이자 정치가입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정치적 야망이 크고 욕심이 많은 인물입니다."
"그건 장상무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 중국법인의 동사회장을 맡은 것도 차기 강소성장을 노린 그의 ‘빅 픽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청시 경제에서 가장 큰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 기현자동차 중국법인을 통해서 자기 인지도를 높이고 영향력을 키워서, 차기 강소성장이 되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는 겁니다. 그는 향후 중앙 정치무대에도 진출하려는 야망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한경 상무가 장상무의 설명에 추가해서 이건웅 당서기에 대해 그가 알고 있는 내용을 부연해서 설명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이제는 저희 쪽에서 상대해야 할 사람은 왕영홍 부회장과 중방 파트너들이 아니라, 이건웅 당서기이고, 그러자면 우리가 직접 그를 상대하거나 나설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동사회가 열리기 전이나 그 후에도 중방 쪽 사람들을 최대한 설득해서 우리 쪽에 유리하게 의사결정을 하도록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요."
"아니, 그러면 이건웅 당서기가 알아서 하도록 가만 놔두자는 건가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이건웅 당서기의 선처만 바라보면서..."
여전무가 알 수 없다는 듯 연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물론 그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정치가를 상대하려면 우리는 정치가가 가장 무서워하는 무기로 공격이나 방어해야 한다는 겁니다. 바로 여론입니다."
"여론이요?"
연수의 설명에 여전무와 이상무가 동시에 반응했다
"네. 여론전입니다. 우리 그룹의 홍보실을 총동원해서라도 이건웅 당서기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못하도록, 우리 쪽에 최대한 유리하도록 보도자료를 만들어서 언론에 배포하고 기사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가 중국의 언론에 흘러 들어가게 만들고, 최소한 이건웅 당서기의 귀에 흘러 들어가게 만드는 겁니다.
다행히, 우리 정부와 중국 정부가 최근 들어 관계 개선이 많이 되어서, 양국의 정상회담 소식도 들리고 있고, 미국과 중국이 패권 다툼을 벌이면서 우리를 서로가 자기네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으니, 이 시류와 분위기를 잘 활용하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한중 양국의 관계 개선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대내외적으로 논란을 만들게 될, 우리 중국법인의 폐쇄나 토지 몰수와 같은 조치를 하기에는 이건웅 당서기도 부담이 되어서 쉽게 결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왕영홍 부회장이 일을 크게 만들어 버렸으니 이제 우리도 거기에 맞추어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연수의 설명을 듣고 있던 여전무와 이상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註 : 본 시소설은 가상의 공간과 인물을 소재로 한 픽션임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 강원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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