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森의 招待詩 - 꿈 속 여자

林森의 招待詩

림삼 | 기사입력 2022/02/26 [07:46]

林森의 招待詩 - 꿈 속 여자

林森의 招待詩

림삼 | 입력 : 2022/02/26 [07:46]

  © 림삼

 

꿈 속 여자

 

그렇게나 멀리 있던 여자 어쩌자고

한 걸음 건너 편에서 굼적굼적 움직일까나?

신기하구나

 

만지고픈 욕구

손끝 자기장처럼 이니, 느낌 알싸하고

한 소끔 지날 때쯤 정적은

낮은 돌비알 위 안개 되어

호젓한 그림 속으로 빠져나가고 대신에

 

문실문실 흘러가는 강물소리와,

저분저분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밤새들 깃 치는 잗다란 소리

생뚱맞게 흘러들어오네

 

나는

주절주절 긴 이야기 했거늘

여자는

허공만 건너다볼 뿐

날 바라보지도 더 이상 채근도 않네, 그래서 나는

내 말 덜 끝났다는 걸 느낄 수 있고

 

벌거벗은 채 뻘쭘하게 마주선 두 사람 사이

두려움 섟삭고 나면 어떤 상황 벌어지려나? ~

 

소리내어 자신의 평화 확인하고 나니

매욱하게 느껴질 만큼

심사 솔직하고 세세하구만,

 

생청스레 따지고드는 서름한 손길로

고붓고붓 흔들리는 여자 머리카락 쓸어주면서

늑골과 늑골 사이 오련한 불빛

소슬한 기운 함께 묻혀

아주 조그맣게 살아나고 있네

 

- ()의 창() -

 

예컨대 은 사람이 간직할 수 있는 영원한 로망이며, 역사적으로 끝없이 이어질 화두이다. 꿈이 없는 사람은 존재할 수가 없다. 아니 사람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꿈을 삶의 하나로 인정하면서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죽는 순간까지도 마지막 꿈을 꾸면서 죽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꿈에 관한 한 우리는 절대적으로 관대하다. 꿈은 어느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으며 다른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언제나 자유로우며 항상 화려하다. 찬란하고 행복하며, 그렇기에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원천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꿈을 주제로 하거나 소재로 삼아, 각종 문학과 예술의 장르가 엄청나게 많은 발전과 진화를 이룩해왔다.

 

꿈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가장 은밀하고 가장 조용하다. 그래서 최고로 소중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생각의 시작과 끝을 일으키고 마무리 지어주는 우상이다. 그렇게 꿈은 신에게까지 닿아있다. 불멸과 영속의 상징인 꿈은 그런즉, 오늘도 우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모름지기 꿈을 잃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실은 그래서 필자도 꿈이라는 주제로 참 많은 시를 지었던 것 같다. 꿈을 잊지 않고 늘 보듬고 싶은 작은 소망에서였다.

 

때로는 과거의 어떤 기억이나 흔적이 꿈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오늘의 버거운 삶의 그늘이나 그림자가 어우러져 꿈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혹은 막연한 내일의 바람과,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이 모두어져 꿈을 빚어내기도 하며, 그런 염원과 집착이 밤에 잠 속에서도 현실처럼 보여지는 형상으로 귀결되어져, 비록 허망할지언정 달콤한 꿈을 꾸게도 한다.

 

아무튼 우리의 꿈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우리가 숨을 쉬는 한 우리의 일부이다. 아니 전부라고 표현해도 어폐가 있다고 하지는 못할 듯 하다. 그만큼 중요한 삶의 요소이다. 물론 꿈이 생각대로 모두 이루어지거나, 꿈에 의해서 삶의 질이 달라지기는 힘들다. 어디까지나 꿈은 꿈에서 끝난다. 아주 가끔씩 꿈이 기적처럼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기는 하겠지만, 역시 꿈은 꿈으로 종결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래서 꿈은 꿈이다.

 

필자도 간혹 황당하고 막연한, 그리고 실현 불가능한 꿈을 꿀 때가 있다. 아주 간절한 바람과 희망을 조심스럽게 담아서 꿈을 꾸지만, 결과는 공허일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지치지는 않는다. 그 꿈을 꾸는 동안에 갖게 되는 기쁨과 행복이 무척이나 소중하고 귀해서, 비록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쉬지 않고 계속 꿈을 꾼다.

 

지나간 추억을 곱씹으면서 꿈으로 연결시키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을 일을 눈앞으로 당겨서 생각과 육신을 넌지시 실어보기도 한다. 때론 거기서 느껴지는 짜릿함과 성취감에 문득 새로운 힘과 활력이 샘솟기도 한다. 또한 현실에서는 좀처럼 맛보지 못할 무한한 자유와 비상을 가슴 벅차도록 느낄 수 있음도 꿈의 매력이다. 꿈은 바로 자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꿈을 꾸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성취가 정 안되면 그 때는 또 다른 꿈으로 위로를 삼으면서, 꿈의 파노라마를 삶의 한 자락에 일기처럼 펼쳐본다. 필자의 우매한 꿈은 아마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래서 많은 줄거리를 잉태하고, 많은 사연을 쏟아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낳는가보다.

 

돌이켜보면 오늘의 이 시는 너무도 힘들고 참으로 괴로웠던 지난 어느 한 시절에, 애간장을 토하듯이 뱉어낸 시이다. 어쩌면 살기가 죽는 것보다도 벅차다고 여기던 세월이었을 것이다. 한 자락 끈으로 애절하게 붙잡고 있던 인연과 진실의 단초를 야속하게 내팽개쳐 던져버리고, 매몰차게 뒤를 보이던 세상의 배신을 서러워하면서, 아예 어떠한 꿈조차 일절 꾸고 싶지 않았던 심사로 반죽을 빚어, 뒤틀린 시어들이 시의 도배를 하게 만들었다.

 

일부러 과장되고 어려운 시어를 고르려고 애쓴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독자들에게 다가서기는 무리가 있을, 이른바 어렵고 형이상학적인 냄새가 짙게 풍기는 시이다. 그러나 꿈 속에서 보여지던 이름 모를 여자가 현실에서는 시로 승화되면서 기대 밖으로, 잠재되어있던 필자의 마지막 꿈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던 것이라 여겨지기도 해서 내심 대견한 면도 있다. 그런 감상으로 오늘 다시 읽어보니 숨겨졌던 제법 미묘한 향기가 슬금 배어나기도 한다.

 

집 바로 뒤에 봉산이라는 이름의 야산을 끼고 있는 이유로 필자는 자주 산행을 한다. 거의 매일 오른다고 보면 된다. 산행이라야 약수통을 들고 느릿느릿 걸어서 야트막한 정상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약수를 길어오는 불과 두어 시간 남짓의 거리 정도이지만, 어떨 때는 인적 없는 적막한 초저녁 산내음이 그리워 해거름에 무작정 내닫기도 한다.

 

어둠이 내리는 초저녁의 봉산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린 멀미를 달래며 원래의 청정한 모습을 위한 묵상의 기도를 울리고 서있다. 때때로 삶의 무게가 무거워 천 근 물 먹인 솜을 진 듯 피곤해질 제면, 필자는 해질 녘의 봉산을 찾아가 함께 묵상을 하곤 한다. 요즘처럼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을 만나기도 힘겹고, 시급을 다투는 사안이라고 해도 선뜻 약속을 정하기조차 망설여지는, 일상에 깔린 권태와 번민에 힘겨워 시름 깊어지면, 오솔길 걸어 오르며 느끼는 봉산의 어둠은 많은 추스림과 위로가 되어준다.

 

또한 그 길에서 필자는 우리들의 고정관념에 대하여 많은 생각과 자성의 시간을 갖는다. 삶에서 자칫 가치 없이 치부되어버리고 마는 소중한 꿈의 진실을 우리는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 것일까? 겉 모습은 속 마음의 표출이라고 하지만, 그 평이하고 획일적인 안목 위에 아름다운 정신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깊이 생각하며, 겉 모습만 보고 속단하고 판정하는 그간의 필자의 습관에 덧입혀진 잘못과 우둔함을 헤아려본다. 어린 시절, 우리들의 고무신 속이 송사리떼의 놀이터가 될 수 있었듯이, 동냥그릇 속에 꽃씨가 들어있을 수도 있는 우리 의식의 트임, 그것이 바로 진솔한 꿈이며 순수한 얼굴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제부터는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을 가져야겠다. 세상은 하루 밤을 자고 나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게 유혹하고 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것이 달라서, 어떤 사람은 더 많은 재물을 소유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모으고 있다. 지식을 소유하기를 원하고, 사회적인 명성을, 그리고 후세에 남을 명예를 원하기도 하며, 의롭고 선하게 살기를 원해서 불의와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으며 절개를 지키는 사람도 있다.

 

누구나 자기 안에 사상이 있다. 마음에 생각하는 그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며 살아가지만 현실에서는 그 어떤 것도 만족을 주지는 못한다. 마음을 다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재물도, 명예도, 지식도, 그리고 선하고 의롭게 산 것도, 마음에서 만족할 수 있을 만큼을 가질 수 는 없기 때문이다.

 

생각하고 있는 것을 가지면 될 것 같아서 인생을 걸면서, 그것을 가지려고 전쟁을 하듯이 싸우지만, 보이는 것은 가져도 가져도 부족하기만 한 것이다. 헛된 욕심일 뿐이다. 이제부터는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을 가져야겠다. 우리가 갖고자 수고하고 애쓰는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영혼에 있다. 그것을 가지면, 배가 부르듯이 마음을 채워서 포만감이 넘칠 것이다.

 

물질은 육체의 영역, 정신은 영혼의 영역이다. 육체의 영역에 있는 것은 아무리 자신만을 위해 소유하고자 해도, 때로 그것이 되레 자신을 향하는 무기가 될 때가 많다.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이 지나치면 소유하기 위한 방법이 불합리하거나 정당하지 못해, 결국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들 뿐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조차도 불행으로 이끄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반면 정신을 위한 투자는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고 평안을 주며, 안색을 밝게 하여 그를 바라보는 이들에게까지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다. 이 정신적인 투자의 궁극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바로 우리가 꾸는 꿈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같이 자유롭고 싶어 한다. 우리의 영혼이 타인의 영혼을 향하여 활짝 열려있을 때 우리들의 정신도 인습과 타성의 그물을 뚫고 비로소 자유로운 꿈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할 수만 있다면 사랑꽃을 피우는 씨앗을 한 아름, 정성껏 장만하여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고 싶다. 그래서, 만나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 텃밭에 씨뿌림하여 아름다운 기억을 하냥 심어주고 싶다. 온 누리에 꿈의 색깔인 사랑빛 가득하도록, 온 세상이 한결로 사랑의 꿈을 꿀 수 있도록....

 

  © 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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