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회 코벤트가든문학상 대상, 송정자 "족두리꽃"

강명옥 | 기사입력 2022/07/05 [06:11]

제43회 코벤트가든문학상 대상, 송정자 "족두리꽃"

강명옥 | 입력 : 2022/07/05 [06:11]

▲ 수필가 송정자     ©강원경제신문

족두리꽃  / 송정자

 

간밤에는 또 얼마나 아팠을까. 오늘 하루도 내가 가까이서 지켜줄 테니 잘 견뎌보자. 아침마다 출근길에 눈인사로 말을 건넸다. 배시시 힘없는 미소를 짓는 얼굴이 창백하다.

 

북정마을 주민이 이사를 가면서 화분을 주고 갔다. 족두리 꽃이다. 좁은 화분에 가녀린 이파리 너 댓줄기가 초여름 햇살에 낯가림 하듯 쭈빗거리고 있었다. 길가의 화단에는 생태 학습용의 긴 갈대가 자라고 있었다. 산책하는 개들의 오줌 때문인지 한쪽 모서리가 원형탈모처럼 비어 있어 눈에 거슬리던 차였다. 화분에서 뿌리 째 뽑아내어 그 자리에 흙을 돋우어 족두리꽃을 심었다. 넓은 노지로 분갈이를 시킨 셈이다. 처음에 여리여리한 꽃대만 삐죽이 올랐을 때는 왜소하고 볼품이 없었다. 아기 손 모양의 잎마저 듬성듬성하다. 빨간 우체통 옆에 화단의 새 식구로 자리 잡아주었다. 어느새 뿌리가 잘 내렸는지 날로 꽃대가 실해지고 있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칠보단장을 한 꽃송이가 여기 저기 화르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원줄기 끝에 모여든 주걱모양의 꽃잎 네 쪽이 여인의 손톱처럼 가지런하다. 길게 뻗은 바늘 모양의 암술수술이 동시에 원을 그리며 분홍나비가 너울너울 춤추는 모습 같다. 가지 끝에 몰려있는 꽃 뭉치가 새 색시 시집갈 때 씌워주는 영락없는 족두리모양이다. 주먹만 한 꽃송이를 지탱하기 위해 선모와 더불어 잔가시 홑잎이 굴딱지 처럼 다닥다닥 몸통을 단단하게 둘러싸고 있다.

 

꽃 뭉치는 곧 터트릴 준비를 하는 돌돌 말린 모양과 막 개화한 나비모양의 꽃잎, 씨를 여물게 하고 떨어질 차비를 하는 것들로 뭉쳐있다. 한데 어우러져 뜨겁고 화려한 명암의 대비를 이루고 있ᅟᅥᆻ다. 내가 근무하는 갤러리까페에 불이 켜지는 저녁이 되면 빨간 우체통과 더불어 불빛에 존재감을 드러낸다. 길가에 보석 같은 불꽃송이가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 꽃대 위에 살포시 앉아있는 풀 빛 곤충들이 눈에 띄었다. 여치였다. 낚시 줄 같은 씨 주머니를 그네 타듯이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어린 풀 여치 덕에 족두리꽃이 심심치 않아 보였다. 넌지시 재미있느냐고 눈짓을 보내면 빨간 우체통이 그렇다는 듯 대신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하루는 시원한 물을 흠뻑 뿌려준 후 선녀의 옷깃 같은 꽃잎에 향기를 맡으려 코를 가까이 댔다. 그 순간 내 눈을 비벼댔다. 가녀린 꽃잎마다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여치가 꽃 사이를 오가며 사이좋게 뛰어노는 줄 알았다. 여린 잎을 사정없이 다 갉아 먹는 폭군이 아닌가. 아침이면 꽃송이들이 입을 돌돌 말고 있어 미처 못보고, 저녁에는 불빛에 가려 눈에 띄지 않았다. 애처로워 꽃잎을 쓰다듬었다. 여치는 달아나지도 않고 내 손등을 올라타더니 천연덕스럽게 포르르 옆가지로 날아간다. 족두리꽃 세 송이가 열댓 송이까지 늘어나면서 녀석들의 개체수도 몇 배나 불어났다.

 

무리를 지어 번식하더니 성장속도까지 빨라 거의 메뚜기만한 놈들도 더러 보였다. 꽃송이 하나에 네댓 마리 씩 들러붙어 여린 잎을 파먹으며 녀석들은 살이 오를 대로 올라 제 세상인양 줄넘기를 한다. 그럴 때마다 암수술들이 튕겨나가 낭창낭창 춤을 춘다. 급기야 알알이 여문 씨주머니에도 구멍을 뚫어 놓았다.

 

수시로 꽃들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여전히 여치들은 이 꽃 저 꽃을 옮겨 다니며 꽃의 살점을 파먹고 있다. 그러나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보면 수난을 당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청초하기 이를 데 없는 한 폭의 그림이다. 꼿꼿하게 수형을 가다듬고 의연하게 서 있는 자세가 어렸을 때의 엄마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온갖 풍상을 겪은 그 자리에 엄마가 서 있었다.

 

아버지는 다 큰자식을 잃고 그때부터 수족이 잘린 듯 한 고통을 엄마에게 다 푸셨다. 밤이면 짐승이 되어 울부짖었다. 막걸리에 절어 끅끅대던 쉰 소리는 담벼락을 넘어 갔다. 전봇대를 휘돌던 바람에 오도카니 갇혀 메아리처럼 골목을 맴돌았다. 창살에 부딪혀 웅웅거리던 바람소리와 아버지의 신음소리가 합쳐지면 무겁게 가라앉은 장송곡처럼 들렸다. 엄마와 나는 한겨울에도 동이 틀 때까지 밖에서 오돌오돌 떨었다. 여름에는 모기에 뜯기며 아버지가 잠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폭풍이 지나간 아침이면 엄마도 나도 한마디의 말도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여기저기 어질러진 가재도구며 옷가지를 정리했다. 딸자식 필요 없다며 내 던진 책가방을 챙겨놓고 해장술을 받아왔다. 엄마는 핏기 없는 얼굴로 술국을 준비했다. 박달나무 도마에 마른 북어를 올려놓고 방망이질을 계속 하신다. 밤새 잠 못 이룬 그 기운으로 어디서 힘이 났을까. 아버지는 막걸리를 넘기는 목울대에다 떠난 자식을 매달고 살았다. 엄마는 아버지 수발에다 남은 자식들 거두느라 깊은 한숨 한번 내 뱉지 못했다. 아버지는 술만 드신 것이 아니라 엄마와 나의 영혼까지 갉아 먹고 있다는 것을 그때 알기나 했을까.

 

족두리꽃은 더운 나라 아프리카가 고향이다. 먼 나라로 족두리를 쓰고 시집을 온 것일까. 낯선 곳에서 힘들게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 내던 차에 뜻하지 않는 여치 떼의 습격을 받았다. 여치 떼의 갖은 횡포에도 우체통만큼 키가 자랐다. 소복한 꽃송이도 한아름이 됐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빨간 우체통과 족두리 꽃 옆에 서서 연신 사진을 찍어간다. 나는 수형을 잡아주기 위해 목질화가 된 줄기에 수시로 하부의 누런 잎을 쳐내 주었다. 더운 날에는 철벅대도록 시원한 물을 뿌려주었다. 장마 때는 거센 비에 꺾여 바닥으로 쓰러질까 지지대를 세워 주었다. 매끈해진 몸통이 기린의 목처럼 길어져 갔다. 꽃송이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곱게 씌워준 신부의 족두리가 아니라 여치의 폭정을 견뎌내고 우여곡절 끝에 얻은 왕관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게다.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했다. 족두리꽃은 상처를 더 드러내는 줄도 모르고 꽃 날개를 활짝 편다. 여치가 머물다 간 손톱만한 꽃 이파리에는 여백보다 구멍이 더 많다. 현무암이 된 꽃송이가 비를 흠뻑 들이키고 있다. 빗물에 상처를 씻어 내리는 걸까. 상처투성이의 시간이 윤색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일까. 여름의 끝자락까지 피고 지기를 무수히 거듭하던 족두리꽃은 할 일을 다 한 양 혼연히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평생을 살 것처럼 고함만 지르시던 아버지도, 족두리꽃처럼 숭숭 뚫린 빈 가슴을 안고 살았던 엄마도 모두 떠났다. 칠보단장을 하고 족두리 쓰고 곱게 시집왔던 엄마도 저 족두리꽃처럼 꽃잎 한 점 남기지 않고 가셨다.

 

엄마 수고 했어요. 잘 가요. 나는 족두리꽃을 하염없이 매만지고 있었다.

 

 

무덥기만 한 요즘 얼마나 힘이 들까. 족두리꽃은 야생화로 새색시 머리에 얹던 족두리 같다고 하여 족두리꽃이라 불리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비같다고 하여 나비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야생화로 그린 우리네 삶이 그대로 녹아내린 작가의 마음에 아침부터 울먹여 본다. 수필은 일반적으로 사전에 어떤 계획이 없이 어떠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의 느낌·기분·정서 등을 표현하는 산문 양식의 한 장르이다. 그것은 무형식(無形式)의 형식을 가진 비교적 짧고 개인적이며 서정적인 특성을 가진 산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전기(前記) 홍매의 정의나 "수필은 한 자유로운 마음의 산책, 즉 불규칙하고 소화되지 않는 작품이며, 규칙적이고 질서 잡힌 작문이 아니다"라는 S.존슨의 정의나, "수필은 마음 속에 표현되지 않은 채 숨어 있는 관념·기분·정서를 표현하는 하나의 시도다. 그것은 관념이라든지 기분·정서 등에 상응하는 유형을 말로 창조하려고 하는 무형식의 시도다"라는 M.리드의 정의 등도 모두 대동소이하다. 수필은 그 정의가 좀 막연한 것과 같이 종류의 분류도 일정하지 않다. 보통, 일기·서간·감상문·수상문·기행문 등도 모두 수필에 속하며 소평론(小評論)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수필을 에세이와 미셀러니(miscellany)로 나누는 이가 있는데 전자는 어느 정도 지적(知的)·객관적·사회적·논리적 성격을 지니는 소평론 따위가 그것이며, 후자는 감성적·주관적·개인적·정서적 특성을 가지는 신변잡기, 즉 좁은 뜻의 수필이 이에 속한다. 모처럼 깊이 있는 인생체험 수필이 나왔다. 작가의 관찰력과 그려지는 풍경이 아름답기만 하다. 송정자 수필가는 경남 밀양 출생으로 한국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하였으며 한국수필가협회. 동대문 문인협회, 미리내 수필 문학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공저로  "내게 준 선물"외 다수가 있다. 코벤트가든문학상은 강원경제신문이 주최하고 토지문학회가 주관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시상식이 미뤄져 왔다. 이번 대상 시상식은 2022년 12월 10일 코벤트가든에서 진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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