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회 코벤트가든문학상 대상, 송광호 "병상영춘기(病床迎春記)"

강명옥 | 기사입력 2022/09/05 [05:17]

제45회 코벤트가든문학상 대상, 송광호 "병상영춘기(病床迎春記)"

강명옥 | 입력 : 2022/09/05 [05:17]

▲ 수필가 송광호  © 강원경제신문

 

김유정은 잘 알려진 대로 1908년 태어나 1937년 29세의 젊은 나이로 숨진 짧은 생애 동안 30편의 소설과 수필 12편, 편지, 일기 6편 번역 소설 2편을 남겼다. 1996년까지 나온 김유정 문학에 대한 연구논문이 무려 360편에 이르는 것을 보면 김유정은 1930년대 우리니라 문학계의 빛나는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특히 훤칠한 키에 잘생긴 김유정은 1929년 연희전문학교에 갓 입학하였으나 지금의 종로구 동아일보 광화문 사옥 터에 있는 대한제국 시절 궁중 요리를 전문으로 개점한 조선 최초의 요리 집 명월관 기생 박녹주에게 막무가내로 연애편지를 보내며 짝사랑을 고백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젊디젊은 그는 끝내 박녹주에 의해 거절당했다. 결국 김유정은 기생 박녹주 사이의 염문이 장안에 파다해 지면서 1930년 6월24일 학칙 제26조에 의거 제명을 당하고 춘천 실레마을로 내려온다.

  

춘천이 낳은 소설가 김유정의 대표적인 단편소설로 알려진 [소낙비]와 [노다지] 그리고[금 따는 콩밭] [떡] [만무방] [봄 봄]과 더불어 1930년대 일제 식민지 시대의 사회적 배경을 뛰어넘는 토속적인 언어와 표현으로 빼어난 작품을 남기고 2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소설30편, 수필12편, 편지와 일기6편, 번역 소설2편을 남기는 금자탑을 쌓아 그의 문학사적 위치의 중요성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단편소설과 수필은 다른 장르의 문학이다. 김유정의 수필은 제목부터가 단편소설과는 달랐다. 그가 집필한 소설을 집필 순서로 적어본다. [산골 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정분] [만무방] [애기] [노다지] [따라지의 목숨/1934년 흙을 등지고로 개작/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제목이 소낙비로 고쳐짐] [노다지] [금 따는 콩밭] [금] [떡] [산골] [만무방] [솥] [봄봄] [심청] [봄과 따라지] [가을] [두꺼비] [봄밤] [이런 음악회] [동백꽃] [야앵(夜櫻)] [옥토끼] [정조]와 같이 거의 1930년대 당시 우리 조상들의 삶의 바탕이 되었던 정감 어린 시골 이야기가 가득 담겨진 필체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수필은[오월의 산골짜기] [어떠한 부인을 맞이할까] [길] [행복을 등진 정열] [밤이 조금만 짧았더라면] [슬픈 이야기] [병상영춘기病床迎春記]과 같이 제목이 주는 느낌과 분위기는 소설의 그것과는 전혀 달리 느껴졌다. 죽음을 재촉당하는 삶의 귀로에서 갖는 김유정의 절실한 외침이 내 가슴을 비수같이 헤집고 들어왔다. 단편소설로 유명해진 선배 문학인 김유정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사모하기 위해 그가 말년에 삶의 온갖 고통을 참아내며 절절하게 써 내려간 명작 수필 [병상영춘기病床迎春記]를 고민 없이 선택하고 그 속으로 깊이 빠져보기로 했다.

  

⌜햇빛을 보는 것은 실로 두려운 일이었다.

햇살이 퍼질 때이면 밤 동안에 깊이 잠재하였던 모든 의욕이 현실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만일 자유를 잃어 몸이 여기에 따르지 못한다면 그건 참으로 우울한 일이다. 뼈가 저릴 만치 또한 슬픈 일이었다.

햇살!

두려운 햇살!

머리 위까지 이불을 잡아 들쓰고는 암흑을 찾는다마는 두터운 이 이불로도 틈틈이 새어드는 광선은 어째 볼 길이 없다. 두 손으로 이불을 버쩍 치올렸다가는 이번에는 베개까지 얼러 싸고 비어진 구멍을 꼭 여미어 본다. 간밤에 몇 번 몸을 추겨 놓았던 도한으로 말미암아 퀴퀴한 냄새는 코를 찌른다. 감을려고 무진히 애를 써 보았던 눈에는 수면 대신 눈믈이 솟아 오른다. 그뿐으로 눈꺼플이 아물아물할 때에는 그래도 필연 틈틈으로 광선이 새어드는 모양이다.⌟

 

1936년 김유정은 만성적인 늑막염과 치질,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정릉 언저리의 암자에서 휴양을 했다. 휴양 중에도 글쓰기는 이어져 같은 해[산골 나그네] [옥토끼] [슬픈이야기] [동백꽃] [야앵夜櫻]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약을 제대로 쓰지 못해 건강은 날로 악화되었고 암자에서 내려온 그는 병든 몸으로 다시 효제동 셋방과 매형의 집 등을 전전하면서 아편까지 쓰면서 투병했다. 그때 그는 자신의 병 수발을 들던 넉넉 하지 못한 여조카에게 와서 폐를 끼치고 있는 신세라며 한없는 자학에 빠져들곤 했다. 김유정은 지극히 선량한 마음을 소유한 착한 문학인이었다.

 

⌜오한 뒤의 밥맛이란 바로 모래 씹는 맛이었다. 그러나 조카의 명령이라는 까닭만으로 꾸물꾸물 기어 나오면 방 한복판에 어느덧 저녁상이 덩그렇게 놓여 있다.

밥을 먹는 것은 진정으로 귀찮다. 어떻게 안 먹고 사는 도리가 없는가?.이런 궁리를 하여 가며 눈을 감고 앉아서 꾸역 떠 넣는다. 그러다 옆을 돌아보면 조카는 나의 식사 행동에 어이가 없었음인지 딱한 시선으로 이윽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근근이 저녁을 때우고 궐연 하나를 피우고 나면 이럭저럭 밤이 든다. 밤, 밤, 밤이 좋다.별이 좋은 것도 아니요. 달이 좋은 것도 아니다. 그믐 칠야의 캄캄한 밤 그것만이 소용된다. 자정으로 석 점까지 그 시간에야 비로서 원고를 쓸 수 있는 것이 나의 버릇이었다. 그때에는 주위의 모든 것이 잠이 들어 있다. 두 주먹 외의 아무것도 없고, ,게다 몸에 병들어 건강마저 잃은 나에게 이 시간만은 극히 귀중한 나의 소유였다. (중략)

기침 발작의 전조, 미리 예방하고자 펜을 가만히 놓고 냉수를 마셔본다. 심호흡을 하여본다.

 

궐련을 피워 본다. 그러다 황망히 터져 나오는 기침을 어쩔 수 없어, 쿨룩거리다가는, 결국에는 그 자리에 가로 늘어지고 만다. 어구머니 가슴이야, 이 가슴속에 무엇이 들었는가. 날카로운 칼로 한번 뻐겨나 볼는지, 몸이 아프면 아플수록 나느니 어머니 생각, 하나 없기를 다행이다. 그는 당신이 낳아 놓은 자식이 이토록 못 생기게스리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편히 잠드셨다. 만일에 이꼴을 보신다면 응당 그는 슬프려니, 하면 없기는 불행 중 다행이다. 한 숨을 휘돌리고 눈에 고였던 눈물을 씻을 때에는 기침에 욕을 볼대로 다 본 뒤였다.⌟(중략)

 

⌜이러다 보니 시계는 석점이 휠걱 넘었다. 눈알은 보송보송하나 잠하나 올듯 싶지 않고, 머지않아 먼동이 틀 것이다. 해가 뜰 것이다

그럼 낼 하루는 무얼로 보내는가?

탈출을 계획하는 옥중의 죄수같이 한껏 긴장이 되어 선후책을 강구한다.

밝은 날 이 땅에 퍼질 광선의 위협을 느끼며

낼 하루는 무얼로 보내는가?⌟ 1937년1월 <조선일보>

 

위의 내용까지 읽어 내려오던 나의 심정이 멎는 듯했다. 김유정이 자신의 몸속을 파고든 폐결핵과 악성 치루로 투병하면서 밝은 빛조차 혐오할 만큼 피폐화된 정신적인 환란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이 잠든 새벽에 깨어나 신문사의 마감 원고를 쓰던 김유정. 그가 마지막까지 온 정신을 불사르며 치료비를 벌기 위해 몸부림쳤던 절명의 순간은 어쩌면 그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쓰라린 기억, 그리고 폐결핵 선고에 이어 찾아온 모든 시름과 고뇌, 절망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몸짓이었을 것이다.

 

“유정, 유정만 싫지 않다면 나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일개 요물에 부상당해 죽는 것이 아니라 27세를 일기로 불우한 천재가 되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라며1936년 가을 유정의 친구 이상(李想)이 보낸 편지로 은밀한 동반 자살을 제안받은 유정은 고통이 너무 심한 나머지 아편까지 쓰게 되지만 1937년 3월29일 김유정의 다섯째 누이의 집이 있던 경기도 광주에서 스물아홉 나이로 삶을 마감하게 된다. 그리고 20일이 지난 뒤 김유정에게 동반 자살을 제안했던 시인 이상도 일본에서 김유정의 뒤를 따라갔다.

 

김유정은 1936년에 “새로운 문학은 무엇을 목표로 할 것인가”라고 묻는 한 잡지의 설문에 “이 시대의 풍상을 족히 그리되 혈맥이 통하야 제물로는 능히 기동할 수 있는 듯 하오니, 우선 무엇보다도 우리의 정조와 교배 할지니”라고 답한 바 있다고 한다. 그가 “이 시대의 풍상”으로 주목한 것은 가난의 문제와 유랑을 문제로 보았던 것이다. 그는 일제의 수탈과 억압 때문에 가난의 사슬에 묶여 신음하는 민중과 어느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인간 유형들을 따듯한 시선으로 그려냈으며 김유정의 진면목은 그가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죽은 뒤에도 한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한다.

 

만약 내가 김유정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다면 유정이 그렇게도 사모하며 곁에 두고 싶어 했던 기생 박녹주가 유정이 숨을 거두기 전 경기도 광주로 찾아와 그녀의 치마폭으로 유정을 감싸 안으며 “오늘 밤에는 당신이 나의 님이시오”라고 말하며 파랗게 식어가는 유정의 볼에 입맞춤을 해주는 정경으로 마무리를 해주고 싶다. 아마도 유정은 박녹주에게 눈을 맞추고 그 잘생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병마에서 봄을 기다리는 병상영춘(病床迎春)의 모습으로 눈을 감을 것이다. “잔인한 박녹주여, 그대는 더 이상 유정을 울리지 말라.

 

 

문학은 말로 된 것이든, 글로 적은 것이든, 언어예술이면, 모두 다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코벤트가든문학상 작품은 선배작가의 글을 심취하여 보았다. 과거 예술과 학문이 구별되지 않았던 시기에서는 문학이란 용어 사용에서 혼란이 있었으나, 지금은 예술 활동을 문학이라 하고, 학문 활동을 문학연구라고 한다. 문학의 범위에서 문학적 표현을 엄격히 제한하지 않으면 말이나 글이 많아져 범위가 넓어지고, 원래는 문학의 범위는 넓었으나 신문학 운동 이후에는 달라지고 있다. 반대로 실용적인 언어사용은 문학의 범위는 줄어들므로 문학의 범위를 넓게 잡을 수 있고, 좁게 잡을 수 있다. 송광호 작가의 새로운 참여는 신선하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춘천 출생으로 창조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청계문학회 단편소설부문 신인상(2019) 수상, 토지문학 회원(2013~), 강원수필문학회 회원(2014~), 한국문인협회 춘천지부(춘천문학회)회원, 강원수필문학회 사무국장(2020~)으로 춘천도예 대표(현), (사)카이로스입주기업체협의회 대표(현), 케이디파워 주식회사 본부장(현), 현대미술대전 5회 수상(입선,특선,장려상,특별상,등) 및 초대 추천작가(공예2부), 산토리니 9인전(아크릴화),아가 갤러리 & 송암아트플라자 단체전(도자기) 참여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코벤트가든문학상 대상 시상식은 코로나19로 12월초 코벤트가든에서 단체시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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