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금요일이다. 수정씨는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이다. 그도 그럴것이 오늘만 지나면 이틀간 휴무인데다가 특히나 내일 이 맘때면 소개팅이 예정 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정씨의 발걸음이 유달리 가벼운 이유이다. 추석연휴가 지나고 난 후의 아침공기는 쾌적함을 돋군다. 기다리던 마을버스가 저만치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ㅎㅎ 오늘 만큼은 우아하고 여유로운 탑승각이닷'는 개뿔.. 버스는 더 이상의 승차를 거부한 채 냅다 정류장을 벗어나버린다. '앗,이러면 지각이닷' 무조건 이번에 당도할 버스는 기를 쓰고 잡아야 한닷. 이번에도 기사님은 문을 안 열어줄 태세다. 수정씨가 나섰다.이쁜 눈으로 한쪽눈을 찡긋 해주니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고 수정씨만 홀랑 태우고 출발이다. 버스안은 만원이고 숨조차 쉴수없는 지경이다. 이렇게 승객이 많으면 내릴 때가 걱정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 내려야 하는데 통로가 안 보이고 안내방송도 안 들린다. 눈앞이 뿌옇고 앞이 캄캄해진다. 낙담한 수정씨 앞에 구세주가 등장했다. 평소 늘 같은 곳에서 내리던 잘생긴 박보검을 닮은 건장한 청년이 내리려고 움찔거린다. '오,그래 저 분이 내릴 때 묻어 가면 되겠다!' 그 청년은 출근길에 늘상 보아오던 얼굴이었다. 그저 대충 막 생겨 먹은 청년이었다면 눈 여겨 보지 않았을 터인데 그나마 깔끔한게 박보검씨를 떠올리게 하는 비주얼이라 인상에 남아 있었다. 게다가 늘 수정씨가 내리는 곳에서 따라 내리듯이 함께 하는 기분 좋은(?)사이였다. 예전 CF에 그런 게 있었다. 전철 안 이었던가? 여학생은 자리에 앉았고 훈훈한 남학생이 자신의 가방을 맡긴 채 서 있었다. 그러다가 여학생이 목적지에 다 다르자 한마디 한다. "저 이번에 내려요~" 그러자 앞에 있던 남학생이 활짝 웃으며 뒤따라 내린다. 이 CF보면서 전국의 남학생들은 다들 한번쯤 그런 일이 있게 되길 학수고대 하였을 각이었다. 암튼 그랬다는 야그였고 수정씨는 그와는 별개로 앞뒤 꽉 막힌 버스안에서 조금의 틈도 허용치 않는 승객들을 뚫고 내려야만 하는 순간을 맞은 거였다. "자,좀 내립시다 잠깐만요~" 묵직한 저음으로 깔려지는 부탁의 말씀때문에 승객들의 틈이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고 그 틈을 비집고 마치 그 보검씨 닮은 청년과 같은 일행인 양 비교적 수월하게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다. '어흐,성공했다~' 수정씨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 보았다. '아뿔싸! 이번 정류장에서 내리면 안 되는 거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정씨가 내려야 할 목적지는 다음 정류장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수정씨는 못 볼것을 보고야 말았다. 그 보검씨 닮은 청년이 자기를 따라 버스에서 내린 수정씨를 보고는 흠칫 놀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은 수정씨의 자존심에 스크레치를 내는 중대한 모양새였다. 그 청년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는 이랬다. "너,혹시 나 따라서 내린거니? 내가 좋아서?" 수정씨는 격하게 도리질을 해 대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눈에 뜨인 커피 테이크 아웃점으로 향했다. "여기 아이스 아메리카노 샷추가" 이 주문을 해석하면 이런 거였다. "얘,나 너 때문에 내린 게 아니고 커피를 사야해서 내린 거야,그러니까 괜한 오해금지!" 수정씨는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당황한 눈빛으로 갈 길을 재촉하는 그 보검씨닮은 청년을 슬며시 바라보았다. "105번 손님! 커피 나왔습니다" 수정씨는 샷을 추가해 평소보다 많은 양의 커피를 한 손에 들고 한 정거장 먼저 내린 수고를 빠른 걸음으로 지워 나가는 중이다. 이제 분명 가을이고 아침 저녁으로 시원타 했는데 왤케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지 알 길이 없었다. "휴,덥고 더운 하루가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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