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森의 招待詩 - 존재 가치

林森의 招待詩

림삼 | 기사입력 2022/11/05 [07:53]

林森의 招待詩 - 존재 가치

林森의 招待詩

림삼 | 입력 : 2022/11/05 [07:53]

  © 림삼

 

- 林森招待詩 -

 

존재 가치

 

바람이 창문 덜컹이면요

세상 모든 문들 닫히는 소리 들려나고요

 

낯선 세계속 던져진 예감에

여린 가슴 쥐어뜯기는 이 느낌은요

 

황홀한 인간사 추억 수려한 눈동자

여전히 밤이면 별빛 부서지네요

 

저항인지, 은둔인지,

판타지 뿌리는 진실 앞세우니

우리네 현실 함께 꾸는 꿈

합리성 상상없인 존재치 않아요

 

존재를 할 수 없지요

존재, 존재 가치

 

심장 퉁퉁 붓는 감동 묵직하거늘

먹먹하도록 핏빛 물든 가슴

더 말해 감정 혼란케 하느니

덜 말해 여백 남기려 하는,

 

이 공분의 심사 말고는

존재랄 것도 없긴 없어서....

 

- ()의 창() -

 

우리나라의 장애인 수는 비공식적으로 집계해보면 언어, 시각, 청각, 지체 등 모두 400여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열 명 중 한 사람 정도는 어떤 부류이든 장애인으로서,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우리 이웃과 사회인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신체만 건강하면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라고, 장애인에 관한 생각의 부담 자체를 스스로 경시하는 버릇이 있다.

장애인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신체의 일부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어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나 곰곰히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아무런 장애 하나 없이 심신 모두가 건강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 존재 가치는 충분히 숭고하고 소중한 것임을 너무 쉽게 망각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존재 가치라는 제목의 내면에 깃들어있는 위대함까지도 값싸게 치부하면서 말이다.

우리 주변에서 마주치는 장애인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동정의 모습도 갖지만, 반면에 업신여기거나 불쾌하게 대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이다.

그런 수모와 멸시를 받아가며 살아가는 장애인 본인의 모멸감과 괴로움이야 오죽하겠는가?

 

필자에겐 가슴에 옹이처럼 남몰래 아픔을 느끼게 하던 다섯 살 위의 누님이 한 분 계시다.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 초에 태어나 미처 보살핌을 받을 겨를도 없었고, 순식간에 천연두[마마]라는 병마에 사로잡혀서는 그 후유증으로 얼굴 전체와 신체 일부가 심한 곰보가 되었으며, 입술과 코도 흉하게 일그러지는 장애인이 된 문자라는 이름의 누님이다.

세상에 곱게 태어난 보람도 없이, 모습이 점점 이상해져가는 어린 아기를 부여잡고 천지신명께 간절한 기도로 애원하며 가슴 태웠을 할머니와 부모님의 저 깊은 가슴엔 어떤 강이 흐르고 있었을까?

자기 자신이 변해가는 운명도 모르고 초롱초롱한 눈망울 굴리며 웃음지었을 누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 목이 메며 눈물이 맺히곤 한다.

그 어린 생명이 1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너무나 가혹한 선고를 하던, 당시 군의관 앞에서 억장이 무너지셨다던 할머니의 예전 모습도 종종 아련하게 그려진다.

인명은 재천이라던가?

하늘은 아무 죄도 없는 어린 생명을 부모님으로부터 차마 앗아가지는 않았다.

지극한 정성과 은덕으로, 비록 장애인의 얼굴은 되어버렸지만 병마로부터 벗어나 건강은 회복되고, 그 뒤로는 무탈하게 자라났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손가락질 때문에 차마 학교에는 보내지를 못하였다.

그런데도 당돌한 우리 누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전혀 좌절하거나 의기소침하지 않고 오히려 누구보다도 명랑 쾌활하게 성장하였다.

또한 남이 버린 책과 공책을 어디선가 얻어와서는, 혼자 독학으로 열심히 글을 깨치고 읽으며 노력을 계속하여 어엿한 문학소녀로 거듭날 수 있었다.

비록 남들처럼 학교 졸업장이나 동창생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 어떤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들보다도 훨씬 예쁘게 글씨를 쓰며, 영어나 한문까지도 떠듬거릴망정 조금은 해독을 하는 수준에 다다른 것이다.

그렇게 자라던 누님이 사춘기에 접어들게 되고, 자아를 터득하면서부터 겪었던 고뇌와 절망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니, 차마 글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을 지경이다.

방황과 좌절로 이어지면서 몇 번에 걸친 삶의 포기 시도와 가출 등이 반복되고, 주위의 가족들이나 친지들을 정말 암울하게도, 혹은 지치게도 만들던 누님의 삐뚤어진 행동과 일그러진 모습은 당시 어린 필자의 눈으로 봐도, 문자 그대로 비상구 없는 어둠의 늪이었었다.

자포자기한 누님의 가슴을 무엇으로 채우면 좋을지, 가족들은 한 아픔이 되어 얼마나 울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기적같은 행운의 소식이 왔다.

하늘도 저 가엾은 한 마리 양을 아주 잊지는 않았나보다.

누님에게 중매가 들어온 것이다.

알고보니 결혼하겠다는 그 남자도 누님과 똑같이 천연두를 앓은 장애인이었다.

오히려 누님보다도 더 심한 곰보에다가 한 쪽 눈까지 거의 감긴 중증의 상태였다.

그러나 사지가 멀쩡하고 힘은 센 그 남자와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누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한 눈에 결심을 하였다.

왼 손의 아픔을 오른 손이 대신하듯 둘이는 만나자 마자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백년가약을 약속하게 되었고, 일사천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급속도로 일이 진행되어 조촐한 혼례식도 치르게 되었다.

당시 집례를 맡으셨던 신부님은 그들을 향해 오늘 신랑 신부는 세상에 두 번 태어난 것이라고 표현하셨을 듯 하다.

50년 훨씬 넘게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뛴다.

그렇게 산골 오지로 시집을 간 누님이 알콩달콩 금슬좋게 시집살이를 잘 하면서 첫 아들을 낳았을 때 아버지는 펑 펑 눈물을 흘리시며 대성통곡을 하셨었다.

그리고 타지의 고모님께 전화를 걸어 큰 소리로 외치시던 절규의 소리는 아직도 또렷하다.

누님, 누님! 우리 문자가 글쎄 아들을 낳았대요. 아들을....”

지금은 손자 손녀에 증손자들까지 더불어 안락한 노후를 사실 수 있는 터전을 잘 닦아놓으셨지만, 아직도 그저 평온하고 편안한 삶 보다는 이골난 농사일 그게 뭐라고, 오로지 흙이 전부라고 믿으시면서 쉬지 않고 일하시는 중에 교회의 장로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셨던 매형과, 사지에 힘이 있는 한 일을 놓지 않으시며 침침한 눈으로도 마을의 살림은 도맡아서 꾸려나가셨던, 전 부녀회장 누님의 청춘같은 삶의 모습은 영원한 필자의 자랑이며 긍지이다.

 

일전에 버스를 타고 가다가 길 가에 놓여진 팻말에 우연히 눈길이 갔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우의 승하차를 도와주세요.” 라는 내용의 알림판이었는데 누군가가 장애우라는 글자를 두 줄로 지우고 옆에 이라는 글자로 바꾸어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장애인장애우의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한참 생각해보았다.

장애우는 장애를 가진 친구라는 뜻이지만 실제 장애인들의 입장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표현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장애를 가진 친구라는 표현이 다소 측은해 보인다는 점이다.

둘째는 나이가 많은 장애인에게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셋째는 자기가 자신을 스스로 지칭할 때 친구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종합해보니 장애우라는 표현보다 장애인이 훨씬 더 보기 좋은 표현인 것 같았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함께 부르는 호칭도 신경써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장애를 가졌다는 특수한 제한점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

사람들도 각기 다르듯이 장애인도 마찬가지이다.

장애인은 마치 모두 동일한 인격을 소유하고 있는 단순한 존재라고 착각하지 말고, 그들의 인격을 각각 존중해주며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들을 만나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연스러움으로 대하고, 그들이 요구할 때만 도움을 주고, 그들 스스로 해낼 수 있게 성원해야 한다.

동정이나 과잉 친절을 베풀려고 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것은 그들이 보기엔 쓸데없는 참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섣불리 그들의 능력과 관심에 대해 앞질러 생각하다가는, 그게 얼마나 잘못된 판단인지 곧장 놀라게 될 것이다.

요즘 들어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해 얼마나 벽을 쌓고 살고 있는지는 주변의 여러 가지 불편한 여건들만 잠시 돌아보아도 금세 느낄 수 있다.

사실은 호칭이나 표현에 얽매이기보다는 얼마나 더 그들에게 가깝고 친근하게, 말이나 글이 아닌 행동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어차피 장애인이 없는 세상은 없을 수가 없겠지만, 바라기에는 우리 모두의 한결같은 성원과 의지를 모아 장애인이 전혀 불편함이나 차별을 느끼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려, 서로 화합하면서 살아가는 바람직한 세상이 하루 빨리 이룩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을 지면에 적어본다.

 

  © 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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