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밍아웃, 가밍아웃

여지영 | 기사입력 2023/03/28 [01:01]

암밍아웃, 가밍아웃

여지영 | 입력 : 2023/03/28 [01:01]

▲ 춘천에서 언니 여지영     ©강원경제신문

암밍아웃, 가밍아웃

 

 

커밍아웃(coming out)’은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걸 의미하는데, 이걸 그대로 번역하면 벽장 속에서 나오다이다. 사람들 앞에 공개하기 힘든 것, 벽장 속에서 꽁꽁 숨겨두고 싶은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말, 그게 커밍아웃이다. 이야기를 꺼내봤자 자랑이 될 것도 없을뿐더러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거나 동정만 받을 수 있는 일. 혹은 남들은 아무 말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상처가 될 수 있는 그런 일. 이렇게 각박하고 복잡한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누구나 그런 것 하나쯤 있지 않을까.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듯 말이다.

 

나는 2가지에서 커밍아웃을 했다. 그중 한 가지는 에 걸린 일이다. 그래서 난 이걸 ()밍아웃이라 부른다. 내 몸이 암세포에게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일에 미쳐서 밤낮없이 뛰었다. 태어나 단 하루도 게으르게 산 적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고, 그게 나의 자부심이었는데. 그 자부심이 하루아침에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TV 드라마에서 암 걸린 사람들은 그래도 괜찮아 보였는데. 막상 내가 암에 걸리니 너무 아파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차에 실려 가는 내내 고통을 잊기 위해 머리를 차창에 쿵쿵 박았을 정도니 말이다. 수술을 받기 전날에는 자다가 침대가 축축해서 일어나보니 침대 전체가 온통 피범벅이었다. 무섭고 놀라서 선생님을 불렀는데, 선생님도 내가 너무 놀란 걸 눈치채셨는지 암도 무서웠나 봐요. 내일이면 그 몸에서 떠나야 하니 마지막 발악을 하네요.” 하고 웃어주었다. 그 따뜻한 미소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암에 걸린다는 것. 일생에 아무나 겪는 일은 아니다. 수술이 끝나고 침대에 누워있는 한 달 동안 마치 벽장에 있는 것처럼 힘들었다. 왜 하필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내가 열심히 살지 않은 것도 아니고,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원망과 아픔이 쏟아졌다. 그리고 나는 젊어서 암 진행속도가 빨라 암 수술 후에도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땐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만약 그 침대 속에서, ‘이라는 벽장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누구나 겪는 일은 아니겠지만 이미 벌어진 일인데. 벽장에서 울고 있는다고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순 없는 일이다. 내 고통을 대신해줄 수도, 내 고통을 알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문을 열고 나왔다. 암밍아웃을 한 것이다. 사람들이 움츠러든 내게 손 내밀기를 바라는 대신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나 많이 아팠다고. 참 힘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아플 때 떠난 사람들을 속 시원하게 미워하고, 아픈데도 함께 있어 준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해 감사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벽장 밖으로 나오자 세상이 보였다. 그전과는 다른 세상이.

앞으로 마구 달려가던 내 삶의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고, 옆의 세상들이 보였다. 내가 미처 손 내밀지 못했던 곳들과 내 눈에 보이지 않았던 다른 세상들이 보였다. 혼자서는 무엇도 할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설사 혼자 할 수 있다 해도 함께하는 게 더 즐겁고 행복하단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픈 건 절대 혼자 참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정말 소중한 걸 지키고 싶다면 먼저 나부터 지켜야 한다는 것을. 내가 건강하고 내 마음이 행복할 때 내 주변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나의 암밍아웃은 성공적이었다.

 

또 하나의 커밍아웃은 바로 가()밍아웃이다. ‘이라는 벽장에서 나온 것.

나에게는 엄마가 많다. 소개 못 하는 언니, 오빠, 동생도 많다. 항상 가난했고, 부모 때문에, 말도 안 되는 가족사 때문에 잘못한 것이 없어도 손가락질 받아야 했다.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선 새로운 엄마들에게 눈치껏 행동해야 했다.

이런 우리 집이 좋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태어난 것도, 그리고 우리 부모도, 나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처음엔 화가 났다. 있는 그대로 가만히 있어도 사랑받고,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을 볼 때마다 성냥팔이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누가 나에게 부모님에 대해 묻기만 해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부끄러웠다. 늘 곁에서 사랑하는 내 강아지라고 불러주는 할머니가 미울 때도 많았다. 그건 분명 사랑이었지만, 내가 받을 수 있는 유일하고 풍성한 사랑이었지만 그건 사랑도 아닌 것처럼 밀쳐내기도 했다.

지금 내가 가장 감사한 건 이라는 그 벽장에서 나온 것이다. 이 글을 읽는 그 누구도 내 부모를 선택할 순 없다. 세상 모든 것을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지만, 단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나의 탄생이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태어났다고 삶을 원망하는 사람. 왜 우리 부모는 이런 사람들이냐고 원망하는 사람. 왜 우리 집은 이렇게 가난하냐고 원망하는 사람그런 사람을 숱하게 보았고 나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원망은 나를 조금도 바꾸어주지 않는다. 벽장 속에 있으면 난 여전히 가난하고, 슬프고,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다. 조금만 마음을 열고 시선을 돌린다면 우리 삶은 분명 달라질 수 있다. 사랑받기 위해 보아야 했던 눈치를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센스로 만들고,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걸 동력 삼아 부자의 꿈을 꿀 수도 있다. 남들과 똑같은 환경 속에 놓이지 않았기에 나는 누구보다 특별하다. 사랑을 받고 싶어서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고, 날개가 없기 때문에 더 빨리 잘 달리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 알게 된다. 패널티를 개런티로 바꾸는 법을. 그건 내가 안고 있는 나만 아는 그 상처를 벗어던지고 과감하게 벽장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다. 벽장을 찢고 나와 소리쳐라. “나는 이제부터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라고.

 

그리고 커밍아웃 해라.

당신에게는 어떤 아픔이 있는가?

암밍아웃도 좋고 가밍아웃도 좋고 또 다른 것도 좋다.

 

두려워하면 그 두려움이 우리를 삼킨다.

그러나 내가 먼저 두려움의 통수를 치면

그 두려움은 더 이상 나를 건드리지 않고 도망갈 것이다.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고,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꾸고, 패널티를 개런티로 바꾸는 건

일단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원망과 불평을 멈추는 것이다.

 

잊지 마라!

 

지금 당신에게 있는 그 약점이,

당신을 성공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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