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옷깃이 스치려면 얼마나 가까이 가야 하나. 이 말의 진짜 뜻은 옷깃이 스칠 만큼 가까워져야 인연이 된다는 뜻과도 같다. 옷깃은 절대 그냥 스쳐지지 않는다. 상대방을 끌어안을 때 옷깃이 맞닿는다. 그래서 진짜 인연은 상대를 품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사람들을 자주 안아주는 사람이었다. 어릴 땐 아빠와 떨어져 사는 게 싫었고 나에게 냉랭하게 대하는 아빠가 싫었지만 사실은 우리 아빤 참 멋있는 사람이었다. 얼굴도 잘생겼지만 늘 아빠를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말로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가만히 있어도 멋짐이 풍겨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중에 자랐을 때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를 추억하듯 나에게 말하곤 했다. 너희 아버지 진짜 좋은 사람이었다고. 아빠는 길에서 가난한 사람을 보면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걸 다 꺼내 건네는 사람이었다. 남이 힘든 걸 그냥 보고 지나갈 수 없었고, 도움을 준 사람에게 단 한 번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다. 우리 아빠는 굉장히 멋쟁이었고 사람들과도 잘 지냈는데, 항상 센스가 넘쳤고 나누고 교류하는 모든 것에서 어색함이 없었다. 마음을 주는 법도, 받는 법도 잘 아는 분이었던 것이다. 아빠를 원망했던 나였지만 실은 아빠를 가장 많이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아빠를 닮기 위해 노력했는지도.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나에게 아빠는 가장 감사한 존재로 남아 있다.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었고, 세상의 좋은 점을 보며 살아가게 해주었으니까. 생전에 아빠가 쌓은 복이 나에게로 모두 오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지금은 가끔 하늘에다 이야기한다. 그땐 나의 그릇이 작았지만 지금은 그 그릇이 조금 넓어져 아빠를 안아줄 수 있는데 같이 있지 못해 너무 아쉽다고. 그러면 아빠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 같다. “나 대신 다른 사람들 많이 안아주라고. 그릇을 더 넓혀서 더 많은 사람들의 옷깃을 따듯하게 안아주라.”고 말이다. 아빠는 내게 마음을 주는 법도, 마음을 받는 법도 다 알려주고 가셨다. 나는 적어도 이제 내 인연을 만들 줄은 안다. 상대의 옷깃이 한껏 내 품에 들어오도록 꼭, 진심으로 끌어안는 법을 아니까. 우리 삶은 인연과 인연이 모여 만들어내는 한 편의 드라마다. 그리고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이 드라마의 끝은 반드시 해피엔딩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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