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林森의 招待詩 -
꿈길 오다
부싯돌로 피운 아주 작은 불씨, 포자 퍼뜨리는 민들레 씨앗, 반짝이면서 부서지는 달빛, 부엌아궁이에서 피어나는 연기,
사소한 곳에 모두 내가 숨어있다 그리고 그 순간 바로 허무가 눈 떴다 마치 긴 꿈 꾸듯이
꿈은 모든 걸 이루게 해준다
가질 수 없는 걸 갖게 해주고, 갈 수 없는 델 가게 해주고, 설사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가능하다, 꿈에선
가령 죽은 사람이 살아온다든지, 혹은 떠난 사람이 돌아온다든지, 아님 이미 있었던 이별조차 없던 것으로 돌려놓는다든지
마치 모든 연극은 끝났다는 듯 검은 장막 내려와 세상 한 차례 덮고는 서서히 잠 속으로 스며드는 꿈
그리곤 나타났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져간다
어차피 꿈인 걸 어차피 꿈일 뿐인 걸 꿈길 멀리 돌아 돌아 결국은 꿈으로 오는, 그런 길
입술 태워 기다리지만 한나절 햇살에 스러지고 말던...
- 시(詩)의 창(窓) -
오랜 기간 동안 시를 적다 보니 초창기와 비교하면 내용이나 형식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때로는 어떤 주제에 탐닉하여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한 채 줄창 비슷한 종류의 시만 연작으로 남발하기도 했고, 세상을 풍자한답시고 잡설을 늘어놓으며 사람을 한껏 조롱해보기도 했으며, 스스로의 신앙과 정신적인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방황하며 고백시를 시리즈로 엮어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정신병원같은 공간에 갇혀 수년간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에 처해져서는, 세상의 끝과 지옥의 맛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려고 시도해본 적도 있다.
그리고는 결국 이즈막에 이르렀다. 지금 필자는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오래 전에 한 갑자를 훌쩍 넘기고 일흔 고개 마루턱이지만 황혼이라는 삶의 언저리로 밀려나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또 다른 꿈이 필자의 밤을 사로잡는다. 그래서 그 꿈길 속의 사연을 증명해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 이제까지 몇 달 째 꿈길 시리즈는 이어져 가고 있다. 아마도 필자의 꿈은 쉽사리 깨어나지 않을 게다. 필자의 삶은 꿈길에 있으니까. 필자의 살아가는 의미는 지금부터는 오롯이 꿈 속에 있다. 진실과 정의와 모든 현실들을 소담스레 품어안은 꿈이 바로 필자의 오늘이다.
당연히 필자는 알고 있다. 필자가 추구하는 문제의 답이 무엇인지 안다. 색다를 것도 없고, 새삼스러울 이유조차 없이 그 답은 완전 간단명료하다. “사랑하며 살아가자.”는 거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세상을 사랑하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자는 거다. 어제를 사랑하고 오늘과 내일을 다 사랑하자는 거다. 사랑을 마땅히 사랑하며 미움과 증오와 반목과 질투와 시기, 모든 타락과 방종, 파괴적인 행위까지도 온전히 사랑하자는 거다.
고통과 슬픔과 좌절과 파멸도 기꺼이 더불어 사랑하자는 거다. 아예 안 된다고 속단하여 손을 놓은 것까지, 실현 불가능마저도 가능으로 사랑하면서 그렇게 살아가자는 거다. 세상에 이 답 말고 또 뭐가 있을 수 있을까? 오늘도 필자는 꿈길에 서 있다. 모든 아는 것들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몸부림으로. 후회하지 않고 남은 삶을 온전하게 사랑의 공식에 투영시키며 빛으로 살아가기 위한 지고지순한 노력의 이름으로.
자신의 보여지는 모습이, 겉으로 드러난 모양이나 형태가 어떤 획일적인 기준이나 보편적인 안목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본질적인 가치나 실질적인 자격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재해 있는 근본적인 특성이다. 미처 발현되지 않은 빛이나 멋이 훗날 이 세상을 감동시킬 지도 모르는데 어찌 허투루 판단하고 가늠할 수 있겠는가? 항상 신중하고 겸손할 일이다. 그것이 다시 제시하는 삶의 화두다.
‘ADHD(주의력결핍 / 과잉행동장애)’의 증상이 심한 경우,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때로는 폭력적인 행동도 많이 일으킨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의 한 아이는 교사와 의사들에게까지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만큼 산만한 아이였다. 그러나 그 아이의 어머니는 약물치료와 함께 ADHD의 증상인 과잉 행동을 제어하기 위한 치료 목적으로 아이가 온전히 수영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온 정성을 기울여 함께했다.
지금까지 교육은 “그렇게 하지 마.” 라고 가르친 것이 전부였지만 엄마는 아이의 성향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격려하고 칭찬했으며, 아이가 수영을 처음 접했을 때 얼굴을 물에 담그는 것조차 두려워했지만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엄마를 통해서 좋은 방향으로 성장한 소년은 뛰어난 수영선수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큰 발과 짧은 다리를 가지고, 긴 팔을 휘적거리며 걸어 다녀 괴물이라 놀림 받았고, 7세에는 ADHD 진단을 받았던 이 소년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무려 6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는 은퇴하기까지 통산 28개의 올림픽 메달을 획득해 역사상 가장 많은 올림픽 메달을 거머쥔 선수로 기록된 ‘마이클 펠프스’가 바로 그다.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쉽게 말하곤 한다. 그러나 그 아이들의 가능성을 꽃피우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감을 느끼도록 끊임없는 격려 뿐만 아니라 큰 노력과 이해가 필요하다. “절대로 고개를 떨구지 말라. 고개를 치켜들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라.” 이 말은 영원한 우리의 멘토 ‘헬렌 켈러’의 말이다.
한 어린 여자아이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이쁜 모습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삐뚤삐뚤, 듬성듬성 어설프게 그려진 머리카락. 그 끝에 덩그러니 매달린 어여쁜 빨간 리본. 암 병동에서 아이는 희망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그 작은 손으로 그린 그림은 가까운 미래에 이루어질 소원이기도 하다. 이 아이의 손 끝에는 삶의 의지가 있다. 어른도 견디기 힘든 항암 치료로 잃어버린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는 장면을 꿈꾸는 아이에게는 희망을 잃지 않는 숭고함이 있다.
그 작은 몸에 담고 있는, 크고 아름다운 의지와 미래를 응원한다. 너무 힘들어 그냥 포기하고 싶은 적이 있었던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번의 인생을 살면서 원치 않는 고난과 역경 앞에서 푸념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작고 약한 존재일지라도 내면에 의지와 희망을 품고 있다면 분명 이겨낼 수 있다. 인간은 패배했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했을 때 끝나는 것이다. 그런 믿음으로 우리는 오늘도 함께 꿈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몸이 무감각해지면 그야말로 큰 병이다. 놀라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병원 가고 약 먹고... 그러면서도 마음의 감동이 줄어드는 것은 그야말로 무감각에 대한 무감각이란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 세월 만큼 많은 것들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훈련 되어진다고도, 연륜이 쌓여간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에든 마음에든 큰 동요 없이 맏닥뜨려진 일에 대한 처리 능력이 자라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마음이 마음대로 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감동하여야 할 일에 조차 무감각해지지는 말아야 하는데, 세월은 때로 마음을 마비시키는 무서운 병을 우리들에게 주는 것 같다.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을 연륜으로 착각을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몸이 마비되는 것에는 치료 방법을 총동원하면서도 마음이 마비되는 것에 대해서는 방관을 한다는 것이다.
마음의 동요와 감동 또한 우리가 누려야 할, 주어진 복이며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제 5월의 하순에 접어드는지라 날씨가 제법 무덥다. 건강한 여름을 나기 위해 즐거운 마음은 필수다. 오늘, 작은 것들로, 미미한 움직임들에조차 마음의 감동을 얻는 그런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언제나 변함없이 꾸는 꿈 속에서는 또한 변함없는 사랑이 있어서 우리를 웃음 짓게 한다. 그것이 우리가 쉬지 않고 꿈을 꿀 수 있는 이유다. 우리의 꿈길이 한결같이 아름다울 수 있는 진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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