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林森의 招待詩 -
약수터의 소리
비 개인 식전하늘 맑은 공기 실핏줄소리 마시며 시작하는 신 새벽의 산책길
촉촉한 이슬 밟으면서 말끔해진 포장도로 지나쳐 통나무계단 하나 둘 발자국소리 헤아리다 보면
작은 오솔길 하나 하얀 나비 한마리 벗해 도란도란 얘기꽃 피우다가
푸드덕 날아가는 산새소리에 둘 다 화들짝 놀라 나비랑 함께 너털웃음 웃고
스삭 스삭 바람에 나뭇잎 부딪는 소리 상쾌한 산속의 내음 꽃향기 몰고 와 밤새 서늘턴 심장 덥혀주네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 메아리로 돌기에 파아란 하늘아래 나무위 바라보니 청설모란 녀석 가지 자르는 폼새하고는,
산소리 모두 담은 약수 한사발 예 있거늘 내 더 이상은 아무 것도 필요치 않으리
- 시(詩)의 창(窓) -
이른 새벽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오르는 등산 코스에 꼭 지나게 되는 장소가 하나 있다. 바로 참새 방앗간 약수터다. 늘상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숨 몰아쉬는 입김을 섞어가며 목소리 높여 지지배배 대화를 나눈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모두가 하나로 친구가 되는 장소가 바로 그곳이다.
먼저 온 사람이 바가지에 물을 퍼서 자신보다 뒤에 온 노인에게 건네는 광경은, 그냥 자연스러운 집안의 풍경처럼 정겹다. 처음 보는 사람들도 경계심을 풀고 시원스런 물맛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한 마음이 되어진다. 약수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감대이며 교류라 하겠다.
지금이라면 특별한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잠자리에서 떨치고 일어나 나서보자. 새벽 공기가 달착지근 하여, 나이든 노인들조차 비 오는 날 골라내곤 조심스레 산행을 시도할 계절이다. 그런즉 마치 장날의 어떤 정경인 듯, 요즘은 더더욱 약수터가 시끌벅적하다.
바위 사이로 솟아나오는 약수물이 맑으면서도 달긴 하지만, 아무나 쉽게 목을 축일 수는 없다. 올 해는 유난히도 초봄 무렵에 가뭄이 심해서 약수터의 물발이 넉넉하지를 못했기 때문에, 이즈막에도 물 한 모금 얻어마시려면 한참을 줄을 서서 기다려야 차례가 오는데도, 이곳에선 어느 누구도 불평이나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없다.
그저 당연히 오랜 기다림 끝에라야, 참새 눈물 같은 미량의 석간수가 흘러내려 고여진 약수터의 한 구석이나마 자리차지가 되는 것이다. 당연히 그 사실을 천고의 진리로 인정하는 양 모두가 너그럽다. 그러니 목 빠지게 기다리던 물맛은 자연 세상에서 최고의 맛이다. 이슬처럼 깨끗하고, 목은 부드러울 수 밖에 없다.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아 약수터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시간이 멈추어서서 흐르지 않으니 계절도 바뀌지 않고, 세월도 갈 리 없으며, 관념적으로 나이도 먹지를 않는다. 따로 어떤 숫자 계산을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약수터는 공간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약수터에서는 시간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나이는 언제나 고정이다.
사람에게는 다섯 가지의 나이가 있다고 한다. 먼저 시간과 함께 먹는 달력의 나이가 있다. 그리고 건강 수준을 재는 생물학적 나이 즉 세포 나이가 있다. 다음으로는 지위, 서열의 사회적 나이를 들 수 있고, 그 다음이 대화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정신적 나이이다. 마지막으로 지력을 재는 지성의 나이가 있다. 이 중에서 어떤 나이가 우리의 일반적인 견해에 해당하는 나이와 같은 건지는,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런가 하면 ‘100년 쯤 살아봐야 인생이 어떻노라 말할 수 있겠지요’ 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문헌에서 주장하는 나이에 대한 시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세. 누구나 비슷하게 생긴 나이, 5세. 유치원 선생님을 신봉하는 나이, 19세. 어떤 영화도 볼 수 있는 나이, 36세. 절대 E.T. 생각은 못하는 나이, 44세. 약수터의 약수물도 믿지 않는 나이, 53세. 누구도 터프가이라는 말을 해주지 않는 나이, 65세. 긴 편지는 꼭 두 번쯤 읽어야 이해가 가는 나이, 87세. 유령을 봐도 놀라지 않는 나이, 93세. 한국말도 통역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나이, 98세. 가끔 하나님과도 싸울 수 있는 나이, 101세. 인생의 과제를 다 하고 그냥 노는 나이’ 라고 설명했다.
글쎄, 나이라는 건 대관절 무엇일까? 아무튼 나이 값 한다는 것이 결국은 사람 값 한다는 건데 “나는 과연 내 나이에 걸맞게 살아가고 있을까? 막연하게 시간과 함께 흘러가버리는 달력의 나이를 먹은 것이 아닌지?” 자문해 보고, 이 물음에 “그렇지 않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그는 사람 값을 하며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텐데... 과연 나는 지금 몇 살일까? 문득 약수터에서부터 생각났던 물음표가 계속 맴돈다.
어여쁜 아이가 엄마와 함께 전철에 탄 걸 보고 한 아주머니가 물었다. “얘야, 아주 예쁘구나, 몇 살이니?” 그러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를 향해 물었다. “엄마, 내 진짜 나이를 말해야 해요? 아니면 전철용 나이를 말해야 해요?” 유아일 경우 무임승차가 가능하기 때문에 엄마는 아이에게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말하라고 한 것이었다.
하나의 수단으로써의 거짓말부터 배운 아이들이 나중에 정직하게 살라는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정직한 세상에서 살도록 우리 모두 마음을 모아 노력했으면 한다. 비단 이 아이에게만 국한된 예가 아니다. 국민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모두 나이를 잊고 함께 더불어 행복할 수 있음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요 인지상정의 귀결이다.
어느 여름날 해질 무렵에 그녀는 남편과 다툰 후 속상한 마음을 달래려 마당으로 나왔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스치자 소름이 돋을 만큼 한기가 느껴졌다. 그 때 남편이 드라이기를 들고 나오며 말했다. “그만 화 풀고 이리 와!” 남편은 못 들은 척하는 그녀를 억지로 의자에 앉히고는 머리를 말려주었다.
정원에 핀 꽃들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남편에게 머리를 맡기고 있는 동안 그녀는 그와 다툰 이유조차 생각나지 않을 만큼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녀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남편은 이해심과 포용력이 많은 사람이었고, 다툼이 있을 때마다 이런 식으로 그녀를 달래주곤 했다.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이런 남편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잠시 후, 남편은 말했다. “언젠가는 당신 혼자 이 자리에 앉아서 오늘 이 순간을 회상하는 날이 오겠지...” 남편의 목소리는 담담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묻어 있었다. 뜻밖의 말에 당황한 그녀는 남편을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당신은요?” 남편은 드라이기의 작동을 멈추고, 그녀를 안심시키듯 싱긋 웃어 보이고는 다시 그녀의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침묵 속에서 드라이기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남편은 한참 만에 대답했다. “글쎄... 아마 당신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가 있지 않을까?” 순간 그녀는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남편 없이 혼자 남겨질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어째서 나는 소중한 사람의 마음에 그토록 쉽게 생채기를 내는 것일까? 남편은 내가 어떤 잘못을 해도 매 번 나를 용서해줄 거라는 믿음 때문일까?’
그녀는 앉은 채로 몸을 돌려 남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그는 갑작스러운 아내의 행동에 놀랐지만, 이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녀는 남편을 좀 더 힘껏 껴안으며 다짐했다. 세상의 단 한 사람, 소중한 남편의 마음을 다시는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
바로 이런 것이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변해서는 안 되는 마음가짐, 그것이 진리이다. 그것이 삶의 정답이다. 처음과 끝이 똑같아야 하는 진리, 이것을 우리는 ‘진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어느 이른 여름날 새벽, 필자가 약수터에서 품었던 의문부호에 강렬한 느낌표로 답을 제시하는 불변의 공식이다. “변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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