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森의 招待詩 - 원 (圓)

林森의 招待詩

림삼 | 기사입력 2024/09/07 [07:39]

林森의 招待詩 - 원 (圓)

林森의 招待詩

림삼 | 입력 : 2024/09/07 [07:39]

  © 림삼

 

- 林森招待詩 -

 

()

 

산허리 뭉툭 휘돌아 잘리고

숲 성글어

하늘 펄쩍 나타날 젠

걷잡을 수 없을 정도 격한 떨림,

 

하루살이

파꽃처럼 둥글게 무리져 날아다니고

고추잠자리

치잣빛 저녁햇살 속 둥근 춤 추던 계절에도

난 해가 눈부셔

눈 감았었지

 

눈꺼풀 속에서 해는

반고흐의 그림자로

둥근 원 수없이 그리며

이글이글 타올랐고,

 

둥근 빛의 원 속에는

원이 있고,

또 그 원 안에는

원이 있고,

원이 있고, 있고,

있고.... 원이....

 

원초적죄인 주제에

죄인의 머리에서 짜낸 시는 왠지

개발에 편자같이 어울리지도 않겠지만,

 

기다리진 않지만,

 

각혈인듯

문득문득 그놈의 시가

목구멍으로 넘어올 때가 있는 걸,

차마 서럽게도

 

- ()의 창() -

 

오늘의 시는 제목이 ()’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형이상학적인 개념이 바로 원이다. 딱히 어떤 것을 지칭할 수도 없으면서, 막연한 존재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가치가 바로 원이다. 태초부터 모든 만물의 근원이었으며, 영원까지 이어질 진리의 본질이 바로 원이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주장하는 진실이 원이며,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추구했던 이상이 원이다. 이미 인류가 익히 알고 있는 궤도가 원이며, 끝까지 풀리지 않을 숙제가 원이다. 그렇게 원은 우리 곁에 놓여져 있지만, 발견할 수 없는 꿈이다. 그래서 원은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머무른다. 그리고 그 자리는 원에 둘러쌓여 있다.

 

어찌보면 말장난처럼 들리지만, 원의 개념이 그만큼 모호하다는 사실에 입각해보면 누구도 쉽사리 단정지을 수 없는 개념이며, 정의를 추구하는 수수께끼같은 원초적 단계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있기에 오히려 후련한 미로의 끝자락 까지 느끼게 된다. 아이러니한 현대세계의 빛과 그림자를 대변하는 오직 한 글자가 바로 원이다. 그렇게 원은 사람일 수도 있고, 자연일 수도 있으며, 시간과 공간을 통칭하는 세상의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그 원에서 필자는 먼저 사람을 발견한다. 사람다운 사람을 발견하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발견하려 애쓴다. 사람의 삶을 통한 사람의 세상을 그려본다. 사람이 만들어가는 시간과 공간 속으로 스며들어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한다. 비단 번잡스럽고 지난한 행보라고 해도 필자가 걸어가야 할 숙제라고 여기면서 오늘도 사람들 속에서 숨을 쉬고 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대명제를 전제로 한 동거다. 결국 필자가 발견하려 애쓰는 건 자연과 사람의 동화라는 운명적 과제에 관한 해결책의 모색이다. 그래서 참 어렵다. 그리고 너무나 넓고도 길다.

 

한 작은 시골 마을에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들은 마을 주변에서 아름다운 돌을 주웠다.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 아들은 자랑스럽다는 듯 돌을 내밀며 말했다. “아버지, 이 돌 좀 보세요. 친구들과 놀다가 주웠어요. 저는 이 돌처럼 늘 반짝이는 멋진 사람이 될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가 한참을 생각에 잠기더니, 창가에 놓아둔 초를 가지고 와 성냥으로 불을 밝혔다.

 

어두웠던 방안이 금세 환해졌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촛불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들아, 너는 이 촛불 같은 사람이 되어라!” 후하고 불면 바로 꺼지는 촛불 같은 사람이 되라니 아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다시 말했다. “이 아름다운 돌은 빛이 있어야만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지만, 이 촛불은 스스로 자신을 태워 빛을 내어 어둠을 밝혀 주고 있구나. 너도 이 촛불처럼 어둠을 밝히는 사람이 되면 좋겠구나.”

 

사람들은 빛이 자신을 비추길 원한다. 그 빛으로 인해 자신이 돋보이고, 그 빛으로 인해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란다. “과연 이 빛이 얼마나 나를 향할까?”라며 우리는 언제나 불안하고 초조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꺼지지 않는 빛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 뒤에 어둠이 있어도 불안하지 않을 빛. 스스로 능력을 키우고, 마음 속을 사랑으로 가득 채워, 언제나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가게 하는 빛. 그 빛은 영원히 우리를 밝힐 것이다.

 

저렇게 작은 촛불이 어쩌면 이렇게 멀리까지 비쳐 올까? 험악한 세상에선 착한 행동도 꼭 저렇게 빛날 거야.”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말이다. 사람스러운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촛불같은 사람이 되라고 권면하고 싶다. 스스로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 소양과 인격을 쌓아가는 배움의 자세가 필요한 이유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어둠을 밝히는 촛불의 존재로 나아가야 하는 소명이 요구되는 까닭이다.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꼭 눈으로 보아야 믿는 우리들의 현실에 진실로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면서 기원한다. 보이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기를. 우리의 사랑이라는 고귀한 가치가 비단 눈으로 보여야만 가치를 인정받는 게 아니다. 사람이라는, 이미 고귀한 사람이라는 인격체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스스로 존귀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를 영원히 보전할 수 있게 해주는 안전장치가 바로 원이다. 사랑을 사랑으로 빛나게 하고, 의미를 의미 이상으로 다듬어주는 보고가 바로 원이다. 누구나의 마음 속에 곱게 간직된 대자연과 소통하는 참된 진실이 바로 원이다. 작고 볼품 없는 돌맹이 하나, 잠깐 동안에 피었다가 사라지고 마는 길 가의 풀 한 포기나, 하루살이 삶을 살고 가는 미물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삼라만상의 탄생과 회귀의 윤회가 모두 원이라는 제목의 인연 안에서 반복된다.

 

1974년 평범한 30대였던 프리랜서 게리 달(Gary Dahl)’은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고 있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 도중 애완동물을 돌보는 문제로 화제가 이어졌고, 다들 기다리기라도 한 듯 강아지나 고양이 등이 끼치는 갖은 수고와 말썽, 사료값과 병원비 따위 불평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 잠자코 있던 달이 농담으로 한 마디 한다. “나는 돌을 키워(I have a Pet Rock).” 어리둥절해하는 친구들에게 달은 애완 돌에 관한 너스레를 떨게 된다.

 

밥 줄 필요 없고, 똥 치울 일도 없고, 말썽도 안 피우고, 씻기기도 쉽고, 안 씻겨도 그만이고, 산책 시켜달라고 조르지도 않고, 나보다 오래 살고.” 어떻게 보면 썰렁한 농담이었지만 친구들은 열정적으로 맞장구를 치며 애완 돌의 장점들을 덩달아 몽상하기 시작했다. 이 때 까지는 그 누구도, 심지어 달 자신조차, 불과 한 달 뒤 벌어질 일을 상상하지 못했다.

 

일이 별로 없는 프리랜서였던 달은 책상 앞에 앉아 애완돌에 대한 몽상을 이어갔고 애완돌을 팔아보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숨구멍을 뚫은 두꺼운 종이로 만든 박스에 톱밥둥지와 멕시코만해변에서 채취한 1센트 가격의 돌을 넣은 구성의 상품이었다. 또한 박스 안에 펫 락 훈련 교본이란 걸 직접 만들어 함께 넣어 주었는데 위트 있는 교본의 내용이 흥미로웠다.

 

그는 개당 약 4달러에 일명 펫 락(Pet Rock)’이라는 상품을 출시하였고, 그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시판 6주쯤 뒤부턴 300명도 넘는 보조일꾼을 고용해야 했고, 불과 6개월 동안 개당 약 4달러에 150만 개가 팔리게 되면서, 그는 단숨에 벼락부자가 되었다. 크리스마스 직전에는 하루에만 10만 개가 팔려 나갈 정도였다. 또한 달은 ‘NBC 토크쇼등에 두 차례나 출연하면서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달은 펫 락의 인기에 대해, 당시 미국의 상황,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의 집단적 공허와 허탈감, ‘워터게이트 사건닉슨 대통령의 하야 등 우울한 뉴스들에 지친 소비자들에게 자신의 유쾌한 장난이 먹혔을 거라고 스스로 분석했다. 펫 락 성공 이후 게리 달은 실제 모래를 배양해서 자신만의 사막을 만드는 키트나 모래 성별 테스트기등의 아이디어를 선보였지만 대중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언뜻 생각해보면 시대와 시기를 적절하게 이용한 상술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우선하는 게 자연과 사람의 공감대다. 생물이나 무생물을 막론하고 원 안에서는 모든 것이 형통한다. 이미 정해진 불변의 논리나 원칙도,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사회의 인식이나 관습도 모두 원이라는 대전제 앞에서는 그 의미가 없다. 앞으로 언제 또다시 달처럼 획기적이고 기상천외한 자연의 풍운아가 튀어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제 마무리를 짓자. 오늘의 주제는 단연 원이다. 오늘의 중요한 소재도 원이다. 원을 설명하자니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원을 표현하자니 자연의 이야기가 동원되었다. 그래도 아직 원은 설명이 안 된다. 원은 그냥 원이다. 원은 언제까지나 원이다. 쭈욱 원이다.

 

▲     ©림삼

 

도도 24/09/07 [13:47] 수정 삭제  
  멋진 시, 창까지 멋진 힐링 하고 갑니다, 건승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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