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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매운씨의 맵부심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를 아는 지인들조차 그의 맵부심은 <실로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 그의 맵부심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엄니께서 차려주신 집밥이 다소 매웠었고 그렇다 보니 이왕 먹으려면 매운 음식이 더 나았던 거였다. 또 매운 음식을 먹어줘야 제대로 된 식사를 먹었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그 느낌 그대로 가자니 자꾸만 더 매운 음식을 찾게 되었고 주변에서 인정할 만한 존재로 급부상하게 된 것이라고나 할까? 매운씨는 그래서 식사메뉴가 거의 정해져 있었다.늘상 매운 음식이 주류였다.그 메뉴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매운짬뽕,매운국밥,매운닭발,매운닭갈비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편의점에서 매운불닭볶음면정도였다.그리고 하다하다 먹을 게 없을 때는 평범한 음식에 고추가루나 페퍼가루 듬뿍쳐 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매운씨도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늘상 매운 것들만 먹어댈 수가 없게 되었다.그렇게 좋아하고 맛있게 흡입하던 매운 것들이 몸 안으로 들어서면 어김없이 활개를 치기 때문에 함부로 대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그래서 이제 매운씨가 신중해졌다.뭘 하나 먹으려면 속에서 펼쳐질 활개에 대한 대비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되었다.그런데 오히려 주변에서 난리다. "여어 매운씨! 여기 매운씨가 좋아할 만한 곳이라 섭외했어" "아니 매운씨가 고작 이 정도 가지고 매워하면 안되는데" 주변의 지인들의 뇌리에는 여전히 매운씨는 <매운맛을 이겨내는 자>로 각인되어 있기에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내용을 설명하기에 바쁘기만 하다. 오늘 저녁에 거래처 김사장과 저녁약속이 있어서 일찌감치 회사를 나왔다.약속장소에 근접할 무렵에 아내로부터 전화다. "자기야!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쥐?" " ? 에?가만 뭔 날이쥐?" "어라 자기 이러기야? 곰곰 생각해봐,목욕재개후 기다릴께" 갑자기 멘붕 상태에서 김사장을 만났다. "나사장! 내 오늘 나사장을 특별히 염두에 두고 소개해 주려고 여기서 만나자고 했어,여기 음식이 엄청스레 맵싹하고 맛있더라고!" 김사장이 예약한 맛집은 맵기로 소문난 쭈꾸미집이었다.매운씨 는 아내와의 통화이후 정신이 온통 복잡하다. "아항~모처럼 시간을 내주셨는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금방 일어나야 될 것같습니다만..." "아,그럼 저하고 이 안주에 쐬주 딱 한 병만 나눠먹고 찢어집시다" 필요한 속도감이 맛과 취함을 동시에 잡아가 버렸다.서둘러 약속시간을 소진시켜버린 후 매운씨는 대리기사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승용차의 뒷자석에 앉았다.집으로 향하는 시간중 채 5분이 되지 않았는데 몸 안으로 들어간 술과 쭈꾸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활개를 치려고 한다. "저기 기사님 제가 화장실이 급한데 어디 괜찮은 곳에서 잠깐 차를 대 주실 수 있을까요?" 쏜살같이 건물내부의 화장실 안으로 기어들어갔다.그 활개는 심상치않음을 벗어나서 이미 활동을 개시했고 멀쩡한 팬티의 위상을 무너트렸다.우르르 쾅쾅 쏟아지는 소리와 무너지는 폼을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했다.이 상황을 수습해야만 한다. 그런데 아뿔싸! 휴지가 안 보인다.손에 들려 있어야할 핸드폰도 없다.별수없다.다른 손님(?)이 오길 기다려야한다.시간은 흐른다.마냥 기다릴 수가없다.양말이 보인다.팬티의 남은 부분과 콜라보로 엮었다.비교적 나쁘지 않은 마무리였다.
현관문을 들어서며 오늘이 아내의 생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웬지 그녀가 야시시한 분위기로 매운씨의 옆에 선다. "자갸! 생일 축하해 내 얼른 샤워부터 하고~" 매운씨가 급하게 샤워를 위해 옷을 벗고 욕실로 향했다. 오던 길에 대충 마무리하고 귀갓길에 올랐던 더러움을 박박 닦아내고 그녀가 기다리는 침실로 향했다.그녀가 안보인다. 그녀가 사라졌다.그리고는 거실TV장식장위에 떡하니 남아있는 쪽지 하나... <나 매운씨! 아침에 입고 나갔던 팬티는 어디다 벗어 놓고? 이거 해명하기 전까지 날 볼 생각 말아욧>
성이 나가요 이름이 매운씨 <나매운>씨가 매운 맛을 단단히 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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