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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자씨는 아침잠이 많다.소위 말하는 저녁형 인간에 속하는 지라 해가 사라질 무렵부터 활발해지는 생체리듬이 자정을 지나 새벽까지 이어지면 광합성작용을 마친 식물처럼 흐물거리며 맥을 못추기 일쑤였다. 그녀는 그래서 아침이 싫다. 그러나 모든 일은 그 싫기만 한 아침부터 시작되기에 괴롭고 미칠 것만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중이다. 맥없이 널브러져 있는데 번쩍 정신을 차리고 출근길에 나서야 한다. 이불 속에서 달콤한 잠에 빠져 있을 때 사정없이 날아오던 엄마의 등짝 스매싱때문에 그나마 아침 출근길에 평화가 찾아왔다. 어찌 되었든 아침엔 일어나야만 하고 또 그렇게 일을 시작해야만 하는 루틴인 거다. 물론 그렇게 억지춘향으로 일어난 발동은 그저 순순히 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버스에 전철에 그저 올라 타고 자리에 앉기만 하면 쏟아지는 잠 때문에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치기 일쑤인데다가 출근해서 사무실에 앉아 있어야 할 그 시간에 버스종점 혹은 또다른 전철역을 휑하니 지나고 있을 때가 다반사이긴 했다. 그러자니 어쩌겠는가? 그녀는 아침형 인간보다 저녁형 인간이니 말이다. 그런 연유로 그녀에게 모처럼의 주말은 황홀한 휴식을 보장하는 꿀같은 시간들이다.밤늦게까지 달콤한 로코나 미드에 열을 내다가 꿈자리로 접어들면 아침식사고 뭐고 하루종일을 이불 속에서 빈둥거릴 수가 있다. 누군가 그랬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명언이다.이 좋은 이불 속에서 뭣땀시 밖으로 나가겠는가?
그녀가 모처럼의 휴일을 맞이했다.휴일도 보통 휴일이 아니고 사흘연휴다. 그냥 주구장창 늦게까지 여유를 부려도 전혀 하등의 터치도 없을 황금같은 귀한 시간들이다. 그런데 그런 연휴를 그냥 놔둘 청춘들이 아니다. 이런 귀한 시간들을 어찌 맹숭맹숭하게 보낼 수 있다는 말인가? 결혼식이 있었다. 태자씨가 이불 속을 사랑하고 있을 그 시간에 어린 시절을 쭉 함께 해 왔던 단짝친구가 자그마치 내일 결혼을 한다고 했다. 다행히 결혼식은 오후2시였다. 충분하다. 죽기보다 싫은 아침일찍 일어나야만 하는 불상사는 피했다. 여유롭게 이불 속에서 완충지대를 섭렵하고 나서 준비를 해도 안전하게 결혼식의 하객들 속에 섞일 수가 있겠다. 정오다.지랄발광을 하는 알람소리를 잠재우고 보드라운 오리털 이불 속에서의 탐닉을 즐기다가 더 이상은 곤란하다는 시그널의 재촉을 받은 연후에야 이불 밖으로 나왔다. 주변은 조용했다.식구들은 모두 밖으로 나갔을 것이다.왜냐면 태자씨 이외의 다른 가족들은 모두 아침형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오랜만에 얼굴에 분칠도 했다. 전신거울에 온 몸을 던져 감당할 수 있는지 물음표를 보내봤다.잠시의 시간을 달라기에 이런저런 핑계로 시간을 끌었다. 거울 속에서 오케이 사인을 찾았다. 현관문을 나가기 전 의식에 동참하기로 한다. 지금의 태세에 어울리는 패션의 완성은 신발이 아니겠는가? 친구의 결혼식에 가서 정작 신부의 모양보다 더 튀어서는 곤란하다.고르고 또 고르다가 이제사 오케이다. 드디어 문 밖으로 나가면 된다. 시간은 오후로 내달리고 있으니 그야말로 그녀의 세상인 것이다.
그런데 현관문이 안 열린다. 여자이지만 없어질 듯한 용을 바득바득 쥐어짜내 힘을 춰 보지만 어림도 없다. 혹시나 간밤에 너무도 추워 문짝이 얼어붙었을까? 이곳저곳을 살펴보지만 얼음의 얼자도 안 보인다. 엄마한테 전화를 넣는다. "엄마! 왜 현관문이 안 열려요? 끄덕도 안해요" "에이 그럴리가 있니? 잘 열어봐"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전화를 끊고 다시한번 힘을 써본다.옴짝달싹도 않는다.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저기 여기 38층5호인데요 제가 지금 안에 갇혔어요! 어찌된 일인지 현관문을 못 열겠어요,함 와주시면 안될까요?" 태자씨 그녀의 애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중이다. 함께 가기로 했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넣어본다. "미정이니? 나 태자야 글쎄 준비 다 하고 나가려는데 현관문이 안 열려 꼼짝도 못하고 있다니까 이를 어쩌지?" "야~ 무슨 핑계 같지도 않은 이유를 대냐? 빨리 안 오면 우리 먼저 가 있을께""
한참이 지난 후 문 밖에서 무언가 치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누군가 벨을 누른다. "저 관리실에서 나왔는데요 이제 문좀 열어 보세요" 기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린다. "아니 이게 왜 그랬던 거죠?"
범인은 택배아저씨였다. 연로하신 엄니께서 장보기가 힘이 들기에 택배로 주문했던 쌀과 생수가 도착했던 것이었고 그걸 너무나 바쁘신 택배아저씨가 현관문 바로 앞에 잔뜩 쌓아 놓고 가신 것이었다. 성이 여가요 이름이 태자씨 <여태자>씨 그녀의 눈에 순정만화의 여주인공이 흘리던 억울한 눈물이 왕방울만하게 맺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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