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니씨는 본가가 제주도에 있다.바람많고 돌많고 여자가 많다는 삼다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러다가 자고로 큰 인물이 되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어른들의 조언(?)에 힘입어 결국 올라왔다. 자 그렇다면 정녕 주니씨가 큰 인물을 염두에 두고 올라왔느냐?그건 아니었다. 사실 손바닥만한 섬에서는 딱히 할만한 일들이 없었다.무언가 학교에서 갈고닦은 지식이나 스킬들을 써 먹을만한 데가 없다는 얘기다. 결국 제주도에서 귤나무와 기깔난 갈치로 끌어모은 돈으로 서울의 단칸방을 빌렸고 조금씩 빠져 나가는 생활자금을 메꾸느라 공부와 알바를 병행하며 버텨내는데 나름 성공하였다. 그렇게 제주도의 돈과 서울의 생활이 어우러지게 된데는 어렵사리 밤이나 낮으로 물심양면 뒷바라지 해 주셨던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리라. 그 가운데서도 주니씨는 결혼하여 가정까지 꾸릴 수가 있게 되었다. 알바를 전전하며 보내주신 생활비를 축내지 않겠다는 또순이의 기질에 감동한 남친의 적극적인 대쉬에 이끌려 못 이기는 척 마침내 <인서울 가정>의 대과업을 이루게 된 것이다. 주니씨는 사실 서울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보금자리를 이뤘지만 그녀의 남편은 강원도하고도 삼척사람이다.감자와 귤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룬 것이다.하다보니 국토의 남쪽 끄트머리에서 남한의 저쪽 끄트머리까지 포괄적 영역을 제대로 품은 가정을 이루었고 이제 2세를 보게되면 그야말로 국토면적의 트라이앵글을 완성하게 되는 셈이다. 남편의 본가와 주니씨의 본가가 끝에서 끝으로 벌어져 있으니 부모님을 향한 방문은 쉽지 않다. 그나마 강원도는 그렇다치더라도 제주도는 자동차와 비행기를 번갈아 타야 하기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고로 명절이나 가족행사가 있을 때는 두 집 중 하나는 포기해야만 한다. 주니씨는 그래서 순번을 정했다. 다른건 몰라도 명절에는 시댁3번후 친정1번이 타당했다.비용과 시간만 아니라면 번갈아 방문이 제일 합리적이다. 이렇게 순번을 정하니 그나마 좋다. 낼모레가 설날이다.떠나기 전 대설주의보가 내렸다.큰 눈이 내리기 전 서둘러 길을 나선다.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저 혹시 안주리씨 맞나요?" 친정집에서 식구들 먹으라고 천혜향을 보내왔다. "저 그거 저희집 동호수 얘기하시고 경비실에 주세요" 괜히 집앞에 과일박스가 쌓여있으면 아무도 없는 집이라고 과도한 자랑질을 하는 셈이라 경비실에 맡겨놓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었기에 당당히 부탁을 드렸다. 그리고 명절의 끝자락이다.시댁에서 바리바리 이것 저것을 싸 주었기에 주차장에 차를 댄 채 주리씨는 경비실로 향했다.마침 경비실에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분이 작은 창문을 통해 인사를 해 주신다. "안녕하세요? 어쩐 일이세요?" "저 혹시 저희집은 201동45층3호인데요 지난번 택배아저씨.." "아,예옙 그거 천혜향,맞죠? 아 그거 아주 맛있게 잘 먹었어요" "네? 그걸 드셨다고요?" 일전에 택배기사가 우리집에서 경비실에 갖다드리라는 부탁을 받고 명절선물인줄 알고 경비아저씨들끼리 나눠드셨다는 것이었다.때마침 택배기사로부터 과일박스를 전달 받으셨던 분은 이제 막 새로 배치되신 천진무구(?)한 신참 경비아저씨였다고. 어이구야~ 성이 안가요 이름이 주리씨 <안주리>씨의 속 마음은 사실 드리고 싶지 않은 그냥주리가 아닌 안주리가 맞았지만 기분좋은 명절연휴를 전후한 때인지라 그냥 웃으며 패쓰! "하하 그래요,맛있게 드셨다니 감사하네요" 하면서 넘어가기로 하였다. 이름이 <안주리>지만<정주리>가 되어버린 설날명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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