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인 고야]-급여명세서

5/17 급여명세서

최병석 | 기사입력 2025/05/17 [01:01]

[콩트인 고야]-급여명세서

5/17 급여명세서

최병석 | 입력 : 2025/05/17 [01:01]

 (기)가찬씨의 요즘 생활은 대체로 여유롭기만 하다.그도 그럴것이 그의 나이가 은퇴연한을 채우고도 남았기에 전신에 덧입혀져 있던 직장인이라는 겉옷을 벗어버렸기 때문이다.

평소에 느껴보지 못했던 겉옷의 두께가 새삼 다가오는 요즘의 생활이라고나 할까? 가찬씨가 두꺼운 옷을 벗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연금을 받을 나이는 아직 아니었기에 사실 그리 홀가분한 기분을 만끽할 수는 없었다.직장의 마무리로 이사직함을 받은 채 재계약을 안하는 선에서 끝이났기에 이후의 삶은 예측불가능한 수준이 돼버렸다.가찬씨가 여기저기 돈이 될만한 일거리를 찾아 다니는 신세가 될 줄은 꿈에도 모를 일이었다. 분명 이력서를 넣으면 턱하니 합격통보가 올 줄 알았는데 감감 무소식이다.허긴 젊고 팔팔한 인재들이 널렸는데 이제 막 젊음에서 벗어 났으니 젊은 옷은 벗고 늙은 옷으로 갈아 입으라는 통지를 받은 이에게 누가 선뜻 일자리를 주겠는가 말이다.그나마 가찬씨가 다니던 회사는 그리 작은 회사는 아니었기에 은퇴를 했어도 비밀유지 차원을 핑계로 일년동안 급여를 받을 수는 있었다.그러나 그게 이유가 되어 다른 곳에 취직을 할 수도 없는 거였다. 그리고 그 일년이라는 시간은 초고속 KTX를 능가하는 수준의 빠르기로 지나가 버렸다.은퇴식을 치루고 일년의 시간을 그야말로 손을 놓아버린 채 지내고 나니 이제는 무언가 시도해 볼 요량 자체가 식어버린 느낌이다.일종의 경력단절같은 모 그런거다.

  이사로 직함을 마무리하고 사회에 나왔으니 가찬씨를 알고 만나는 사람마다의 입에서 나오는 호칭은 모두 동일했다.<어이 기이사!>혹은 <가찬 이사!>아니면 걍<이사님>이다.

글쎄 이사면 뭐하냔 말이다.차라리 백수가 타당한 말이다.이렇게 일에서 손을 놓고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버리고 나니 가끔씩 아니 비교적 빈번하게 뉴스로만 들려오던 <퇴직금 사기>나 <보이스 피싱>혹은 <로맨스 피싱>과 <코인 사기>같은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한다.그리고 잔뜩 긴장이 된다.이제 회사에서 따박따박 받아먹던 급여는 끊어졌고 일시불로 한꺼번에 입금된 퇴직금으로 나머지 여생을 꾸려나가야 한다.물론 그동안 부어 나갔던 국민연금도 때가 되면 나올테지만 소위말해서 625전쟁이후 끼인세대로 살아오느라 위로는 부모부양 아래로는 자식들 뒷바라지로 뼈가 굵어진 마당에 정작 본인 자신에 대한 노후준비는 대비를 못했다.육십년을 고생했으니 이제 여유롭게 쉬엄쉬엄 살아야겠는데 녹록치가 않다.그러자니 이제 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다못해 아파트 경비라도 해볼 요량이지만 그것두 치열하다.온갖 은퇴자들이 다 몰리는 통에 호화찬란한 경력자들이 후보자 대기명단의 최상위를 장식하고 있다.오늘도 이리저리 취직을 위한 몸부림을 시연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띵동거리는 알람소리가 귓전을 때려댄다. 메일이 당도했단다.

<4월분 급여명세서>가 떡하니 메일로 온 것이다. 가찬씨가 별 생각없이 메일을 확인했다.그리고 화일을 열었다.망했다.말로만 듣던 악성코드가 심겨졌다.열어본 핸드폰이 먹통이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욕심이 화를 불렀다.가찬씨는 사실 받을 급여가 없는 처지였다.아무리 습관적이라고 하지만 누르면 안되는 것이었다. 가찬씨에게 '혹시 실수로 보냈을 수도'라는  생각이 1도 없었다면 열어볼리가 없었다.

 

성이 기가요 이름이 가찬씨 <기가찬>씨는 그야말로 기가찬 일 때문에 어안이 벙벙해졌다.이를 어쩌면 좋을꼬? 그 놈의 급여명세서는 가지고 있던 목돈의 사기당한 내역으로 얼룩지게 되는 걸까?

 

▲ 급여가 얼마나 들어 있어야 좋을까요?  © 최병석



콩트집'콩트IN고야'저자(도서출판 신정,2021,10/15초판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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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시집'먹보들'저자(도서출판 신정,2022,8/15초판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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