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森의 招待詩 - 세월 장사꾼

林森의 招待詩

림삼 | 기사입력 2025/07/26 [07:15]

林森의 招待詩 - 세월 장사꾼

林森의 招待詩

림삼 | 입력 : 2025/07/26 [07:15]

  © 림삼



** 림삼의 초대시 **

 

- 세월 장사꾼 -

 

바로 오늘,

 

꼭두새벽 박차고 맹물 벌컥이다 언뜻

세월이 나이 먹어가는 소리 들었소

자글자글 주름진 얼굴도 보았소

 

머언 시절

풋풋한 꿈 앳되이 떡잎솟던 추억 좇으며

세월의 속살 바라보는 눈에는

그렁그렁 매달려 차가운 이슬 가득

들어찬 숙제덩어리, 아름답고도 서글픈

 

어차피 세월과 제대로 거래하려면

지금이 딱 마음 읽을 시간인 건 알아야,

남김없이 죄다 내려놓고 누려야,

비로서 심장 뛰는 맛 느끼게 될 터

 

칩거가 곧 소통인 비밀 알고나면

다들 처음엔 서운해 합디다,

삶이 우리네 어디론가 영 데려가는 줄 알고

 

버거운 맨손체조에도 세월 숨가쁘니

오늘은 본전치기만 해도 일단

과히 밑지는 장사는 아니라오

 

그럭저럭

오십대까진 허청이며 살아남았으니

오늘은 슬슬

육십대를 살아갈 채비 갖춰볼까요?

 

- 시의 창 -

 

몇 해 전, 육십대에 접어들었음을 실감하면서, 문득 세월의 무상함을 한탄하다가 적은 시다. 당시에는 정신 바짝 차리고 새로 산다는 기분으로, 활기차고 보람있는 삶을 다시금 시작하리라는 제법 당찬 각오와 다짐을 얹어 하루를 시작하곤 했었는데, 그렇게 몇 해가 흘러 칠십 고개도 넘겨버리고 만 지금 뒤돌아보니, 그 역시 당시의 허세였고 별 볼 일 없는 삶의 한 자락이었음을 자인하면서, 자못 씁쓰레한 입맛에 헛웃음 짓게 된다.

 

산다는 게 과연 무엇인가? 우리네 삶에서 영원한 화두로 제시되는 이 문제의 해답을 명확하게 제시해줄 철학자나 석학은 도무지 없는 건가? 이토록 발달된 문명과 과학의 이기로도 정작 이 문제를 풀 수는 없는 건가? 저 먼 우주로까지 그 지식의 영역을 확대하는 거대한 인간의 저력으로도 정녕 명쾌한 답안을 제시할 수는 없는 건가? 산다는 행위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깨달을 수 있다면, 그래도 오늘 보다는 좀 더 나은 내일을 살 수도 있거늘, 쓸 데 없는 문제를 끌어안고 끙끙대면서 어느 가수의 산다는 것은을 입속으로 뇌이는 오늘 아침도 필자는 마음만 분주하다.

 

그래서, 본질을 알면 뭘 어떡하겠다는 심사인가? 건방지게 신의 영역에 슬그머니 발을 들여놓고, 모든 삶들을 쥐락펴락하면서, 내남 할 것 없이 모조리 서로 참견하면서 세월을 돌이키기라도 하겠다는 겐가? 터무니없는 고민으로 아침을 열다가 바라보는 하늘이 온통 뿌옇다. 여름의 가운데에서 계절이 몽니를 부리고 있다. 언제나 반복되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산뜻한 공기와 파아란 하늘을 데려다주면 어디가 덧날까? 늘상 이렇게 마지못해 하루를 준비하는 세월의 모양새가 자못 꼴사납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다시 찾아오는 하루하루의 변화는 이제껏 저지른 실수와 실패를 만회하고 또 한 번 날아오를 기회다. 비록 지금까지 제대로 이룬 것 하나 없이 엉절거리고 있었다손 쳐도, 우리로 하여금 철퍼덕 주저앉아 한탄만 하고 있을 막장 드라마만 주어진 건 아니다. 그러니 이제 다시 일어서보자. 그리고 힘을 내자. 우리 앞에 펼쳐질 내일의 날들은 산뜻하고 청아한 꿈과 희망을 가득 품어안고,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라고.

 

아직은 그래도 살만 한 감동과 훈훈한 미담들이 도처에 깔려 있어, 우리를 서럽고 시리지만은 않게 하는 걸, 아직은 그래도 아름다운 마음과 이웃을 돌아보는 가슴 따뜻한 사연들이 누리에 스며들어, 세상을 각박하고 험하지만은 않게 하고 있는 걸, 혹여 아직 보지 못했다면 지금 당장 눈 크게 뜨고 주위를 돌아보자. 우리의 정겨운 가족들이, 우리의 다정한 이웃들이, 우리의 명랑한 동료들이, 곳곳에서 우리에게 손 내밀고 있으니, 이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이 정도면 우리 살기 안성맞춤의 세상 아닐까?

 

팀 영폴 홀링스는 미국 뉴저지에서 일하는 소방관으로, 어느 날 밤새도록 화재진압을 하고 현장 근처 식당에서 모닝커피와 식사로 지친 몸을 달래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 밥값을 내겠다며 말하던 둘은 계산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두 분 아침 식사는 제가 대접할게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두가 꺼리는 곳으로 출동하셔서 생명을 구하는 귀한 일을 해 주셔서요. 두 분의 역할이 무엇이건 간에, 용감하고 듬직하십니다. 날마다 거칠고 힘든 일을 맡아 주셔서 고마워요! 불 앞에서 샘솟는 힘과 용기로 무장한 두 분은 훌륭한 사회의 본보기입니다. 오늘은 푹 쉬세요! ‘리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식당 종업원이 감사의 편지와 함께 그들에게 아침 식사를 선물한 것이다. 감동한 두 소방관은 이 일을 SNS에 올려 주변에 알렸다. 그러는 중 식당 종업원 리즈의 아버지 스티브5년 전부터 사지 마비 증세로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로지 휠체어에 의지한 리즈의 아버지는, 이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휠체어에 앉은 채로 탈 수 있는 자동차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팀 영과 폴 홀링스는 이를 위한 모금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덕분에 다른 소방관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나눔에 참여했고, 며칠 만에 실제로 필요한 17,000달러보다 훨씬 많은 70,000달러의 기부금이 모였다. 뜻밖의 상황에 감격한 리즈는 말했다. “저는 단지 아침을 사드렸을 뿐이에요. 단순히 두 분의 미소를 보고 싶은 마음에서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순수한 마음은 가치를 매길 수 없이 아름답다. 언제나 더 크고 멋진 사랑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단지 어느 날 아침, 우리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의 미소를 보고 싶다는 이유로 건넨 작은 마음이 이렇게 큰 사랑으로 돌아온다면, 매일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자 애쓰는 우리에게 라면 어떤 사랑이 기다리고 있을까? “조그마한 친절이, 한 마디의 사랑의 말이, 저 위의 하늘나라처럼 이 땅을 즐거운 곳으로 만든다.” 이 아름다운 동요같은 말은 ‘J.F. 카네기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의 귀띔이다. 작은 정성과 선행이 예상치 않은 큰 감격으로 화해 다가오는 것이 삶의 마술이다. 삶의 기적이다. 그게 바로 삶이다.

 

어느 시골 장터에서 할아버지가 강아지들을 팔고 있었다. 흰둥이, 검둥이, 누렁이, 점박이 등 각자의 생긴 대로 이름을 가진 포동포동한 강아지들이 꼬물꼬물 움직이며 까맣고 동그란 눈망울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 강아지들을 한참 구경하던 한 여학생이 흰둥이 한 마리를 들어 올리며 이 강아지를 사고 싶다고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아이고. 그 녀석이 왜 여기 끼어있지? 그 강아지는 다리가 아픈 애라서 팔지 않고 내가 키우려고 해. 여기 튼튼한 다른 강아지를 천천히 골라봐.”

 

하지만 소녀는 다리가 아픈 이 하얀 강아지를 사고 싶다고 계속 말했다. “그래? 학생 그럼 돈은 안 받을 테니 그냥 데려가. 아픈 녀석 키우기 힘들 테지만 잘 보살펴 주고.” 인심 좋게 강아지를 준 할아버지는 강아지를 안고 걸어가는 학생의 뒷모습을 보고,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학생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던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의 한자성어다. 다른 사람의 아픔과 괴로움을 이해할 수 있다면, 다리가 아픈 강아지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소녀처럼 세상에 더 많은 것을 사랑하고 그것을 위해 마음을 나눌 수 있다.

 

사실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행복을 찾아 늘 과거나 미래로 달려간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자신을 불행하게 여기는 것이다.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당신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서도,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은 한 코 한 코 완성을 향해 가는 뜨게질과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하루 또한 없어서는 안 될 뜨게질의 한 코와 같다. 오늘의 행복이 내일 추억해야 할 행복 느낌이며, 내일의 행복은 오늘 우리가 바라는 희망이 아닐까? 행복은 오늘 하루, 또 내일 하루... 그렇게 구별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이어가는 연결고리라 생각한다. 보편적인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인 것 같다. 누구나 다 행복하기를 원하고, 행복해 질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 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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